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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성공기업인] (22)국중하 우신산업(주) 대표

'투명·근면' 경영원칙 실천 위기 극복…현대건설·중공업 임원 거쳐 중견기업인 성장

완주군 봉동읍 우신산업㈜ 사무실에서 수필집을 5권 낸 문인이기도 한 국중하 대표가 벽에 걸린 액자 속의 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아래는 우신산업이 생산하는 자동차 범퍼. (desk@jjan.kr)

 

현대건설·현대중공업에서 잔뼈가 굵은 '현대맨' 출신으로 현재 중견기업을 이룬 우신산업㈜의 국중하 대표(74). 기계공학을 전공했지만 5권의 수필집을 낸 문인이기도 하다. 평소 기업의 역할과 의식전환 등을 역설하는 강사이기도 하고 현재 어린이재단의 후원회 회장을 맡아 대외활동도 활발하다.

 

74세라는 나이에도 2㎏ 가량 체중을 줄여야 한다며 다이어트에 신경쓰는 모습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 현대맨, 나이 50 넘어 사업 시작

 

지난 11일 완주군 봉동읍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노무현·이명박(자신이 상관으로 모셨던) 대통령의 표창과 500만불 수출탑 등 각종 표창과 상패가 눈에 띄었다. 14년 전 전주에 터를 잡은 후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의 길을 올곧게 걷고 있었다.

 

국 대표는 군산 옥구 출신으로 보릿고개를 모르고 자란 부농의 막내 아들이었다. 기계공학을 전공, 지난 1962년 당시 열악한 국내 상황에서 '공장다운 공장'이었던 호남비료공장에 취직했다. 그 뒤 1972년 현대건설㈜의 간부 사원으로 입사, 63빌딩·성산대교·국제그룹사옥 등을 짓고 26만톤급 대형 유조선을 건조하며 성장한 현대그룹의 주역이었다.

 

39살에 임원을 달아 '잘 나가던' 그가 사업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일본을 다녀온 뒤였다.

 

"1970년대에 선박 건조와 관련해 일본에 출장을 갔는데 호황기였던 일본 기업들은 종신제 고용이었어요. 하지만 45살이 넘으면 급료가 오르지 않았어요.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사업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회사에서 쉽게 놓아주질 않더군요. 입사와 마찬가지로 퇴사도 신의를 지켜야 해요. 그래서 입사보다 퇴사가 어려웠죠."

 

그는 10여년을 더 근무한 뒤 사업가가 됐다. 퇴사 뒤 기존 인맥을 통해 주문·자금 등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께서 선박 같이 거대한 물건을 만드는데 작은 부품까지 여기서 해야 하냐고 반문했어요. 그래서 내가 일감과 직원 26명을 데리고 나와 울산에서 우신공업이라는 협력업체를 차렸죠."

 

당시 대기업 중역이 퇴사해 중소기업을 차린 일이 화제가 돼 각종 기고와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1년 뒤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그의 삶의 목표인 "죽을 때까지 공부하고 일하자"를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이어 울산에 우신엔지니어링㈜을 설립한 뒤 현대자동차를 따라 전주에 터를 잡고 ㈜우영과 우신산업㈜을 경영하고 있다.

 

▲ 투명하고 근면한 경영자 지향

 

그는 대기업 협력업체로 출발하며, 깨끗한 회사를 만들자는 포부를 세웠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수직관계로 형성된 풍토에서 거래 질서 확립이라는 신념을 추구했다. 그 첫번째 단계로 직원에게 회사의 사정을 밝혔다.

 

"매월 관리자급을 대상으로 회사의 매출·이익 상태를 알리고 회사가 남는 장사를 했는지 밑졌는지 이야기하죠. 우리가 은행에서 돈 빌려서 밑지면 경제사범인 셈이잖아요. 매년 우신가족 세미나에서도 재무상태를 설명해 직원의 신뢰를 얻었죠."

 

국 대표도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은행은 자금줄을 죄고 어음의 만기는 돌아오는 상황이었지만 직원은 상여금 자진 반납으로 경영부담을 덜어 줬다.

 

그가 성공 경영의 또다른 요인으로 꼽는 것은 부지런함이다. 국 대표의 경영 원칙 중 하나는 '이른 출근'이다. 그는 평일 6시30분에 출근, 7시 관리자급 조찬회의를 주재한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경영 방식이 몸에 밴 현대맨다웠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사람이 부지런하면 어려운 일이 없다고 강조하셨죠. 직원의 7시 출근은 3가지 목적이 있어요. 아침 먹이고, 회의하고, 현장 직원에게 '관리자가 먼저 나와서 애 쓰는구나'라는 동정심 유발을 위해서죠."

 

▲ 수필집 계획, 항공 산업 진출 희망

 

대학·시민단체 등에서 강의하고 받는 돈은 기부 전용통장에 기입한다는 국 대표. 평소 남는 돈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신념으로 지난 2001년에는 여산 장학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내가 회사 경영할 시간에 강의를 하니까 강의료는 내 돈이 아니죠. 1년에 1400만원 안팎인데 많이 받을수록 기부를 많이 할 수 있어 좋아요."

 

문인으로서는 6번째 수필집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인생 대부분 기계 만진 사람이 무슨 문학이냐고 하지만 저는 숨을 쉬기 위해 글을 씁니다. 제 삶에서 문학은 오아시스입니다."

 

한편 지난해 200여명의 직원으로 370억원의 매출을 올린 회사는 올해 43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삼았다. 현재 진행하는 러시아와의 계약이 성사되면 수출도 1000만불이 가능할 전망이다. 하지만 협력업체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은 과제다.

 

"현대 관련 수주가 70%인데 이를 60% 수준으로 낮추고 거래를 다변화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앞으로는 육(陸)·해(海)를 넘어 공(空)에 진출하고 싶어요. 자동차·배는 만들어봤으니까 비행기 부품 쪽으로 진출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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