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적인 성대에 음질까지 갖춘 소리꾼…탁하면서 맑은 맛, 거칠면서 부드러워…판소리 창자로서 최상의 조건 타고나
김소희의 소리를 말할 때 맨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타고난 목이다. 판소리는 성악의 일종이기 때문에 목소리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김소희는 어느 대담 자리에서 '20대는 그냥 철없이 목이 잘 나오고', '목구녁 갖고는' '안 되는 게 없'었기 때문에, '이것 저것 해'보았다고 한다. 김소희의 소리를 잘 들어보면, 그의 이런 말이 괜한 자신감에서 나온 허풍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게 된다. 어디를 들어도 조금 더 올라갈 데를 못 올라간다든가, 더 내려갈 데를 못 내려간다든가 하는 곳이 없다. 꺾을 데는 분명히 꺾고, 떨 데는 분명이 떨어서 소리를 낸다. 어려운 기교도 힘없이 발휘된다. 잘못된 것 같은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김소희의 소리에는 흠이 하나도 없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언젠가 김소희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소리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김소희는 다른 점은 몰라도 소리 때문에, 노래가 잘 되지 않아서 고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노라고 자신있게 말하였다. 김소희는 또 폭포수 밑에서 소리를 해 보았느냐는 물음에, 박동실에게 소리를 배울 때 해 보았는데, 박동실이 '자네는 하느님이 내준 목이니까 더 하지 말라'고 해서 그만두었다고도 한다. 요컨대 김소희가 천부적인 성대의 소유자였다는 것은 여러 경로로 입증되는 것이다.
김소희의 목에서 또 들어야할 것은 음질이다. 판소리는 특히 음질에 관한 독특한 미학을 가지고 있다. 판소리의 음질은 쉰 소리, 곧 수리성이 기본이다. 그래서 이 수리성이 중심이 된 옛 판소리는 '자칫하면 듣는 이에게 쾌감보다 고통을 주는 일이 많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무조건하고 탁하기만 한 소리여서는 안 된다. 탁하면서도 맑은 맛이 있어야 하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데가 있어야 한다. 판소리에서는 상대적으로 맑고 고운 소리를 천구성이라고 하여 좋은 음질로 친다. 그런데 이 천구성 중에서도 슬픔이 깃든 소리를 애원성(哀怨聲)이라고 해서, 판소리에서 최상의 음질로 친다. 김소희의 목소리는 거칠지 않다. '청아하고 미려하다'는 표현이 절대 과장이 아니다. 거기다가 애원성의 음질을 지니고 있다. 김소희의 소리를 가리켜 '가을 달밤의 기러기 울음소리'라고 하는 것도 바로 김소희의 판소리 음질이 애원성임을 뜻하는 것이다. 김소희는 성대의 기량뿐만 아니라, 음질까지도 판소리 창자로서 최상의 조건을 타고 났던 것이다.
김소희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명창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천부적인 성대와 음질 때문이었다. 물론 여기에 한 번 들으면 곧 이를 따라서 부를 수 있는 능력이나, 다양한 바디의 소리를 배우고 이를 취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판소리로 재창조할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이 있었던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김소희는 본래부터 어렵게 소리를 만들어간 사람은 아니다. 김소희는 천부적인 능력에 의지하여 쉽게 소리를 익히고 불렀다. 그러기 때문에 김소희의 소리에는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공력'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김소희는 일제 강점기 최고의 여류 명창으로 군림했고, 한 눈에 김소희의 재능을 간파하고 소리꾼으로 데뷔시켰던, 김소희 판소리의 대부 이화중선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 점이 김소희를 키워낸 스승 중에서도, 소질은 덜 타고났으나 오랜 노력 끝에 대가가 된 정정렬, 박동실과 다른 점이다. 1930년대 이후 김소희와는 경쟁 관계에 있었던 박록주나 박초월의 소리와 김소희의 소리가 가는 길이 달라지는 것도 바로 이 지점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김소희의 소리는 아무래도 하늘이 낸 천의무봉의 소리이지, 부족한 인간이 뼈를 깎고 살을 깎아가며 만든 소리, 그래서 인간적인 고통과 고뇌가 서린 소리는 아닌 것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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