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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쓰는 전북 기업사] 문어발식 경영실패 경험 바탕 타산지석 삼아야

1974년 3월 문병량 사장은 이리상공회의소 회장에 피선됐다. 41세의 나이에 이리상의 회장에 피선될 만큼 문 사장의 활동폭은 넓었다.

그는 남성학원 이사장을 지낸 이춘기, 원광대 초대 총장을 지낸 숭산 박길진, 원광대 총장을 지낸 김삼룡, 도지사와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 등 지역 출신 주요 인사들과 막역했고, 업계에서도 진로 장학엽, OB 박두병 등재계 거물들로부터 사업가로서의 기질과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가 이리에서 남선양조장을 시작한지 불과 11년만에 이리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기업가적 치열함과 적극적인 기질, 항상 주변을 벤치마킹하며 시대에 앞서가고자 했던 도전과 창의력 등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리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하던 1977년 이리역 화약열차 폭발사고로 아수라장이 됐을 때 문병량은 재난대책위원회 민간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했다. 이후 1981년에는 민정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4년간 보사위원회에서 일했다. 국회 예결위원, 올림픽 특별위원 등으로도 활약한 문 회장은 서해안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에너지 절약 시대에 대비해 프랑스 고속열차 떼제베(TGV)와 같은 고속열차를 도입해야 한다는 말을 기회있을 때마다 했다. 소주업을 하면서도 국민건강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그는 B형간염 관련 법안에도 관심을 보였다.

소주기업 사장 문병량은 두주불사였다. 1990년대 알콜도수 43도짜리 민속증류주 '천지'를 개발, 중국시장 개척에 나섰을 때 문 사장은 '천지(天地)'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주연에 사용했다. 하지만 보배그룹이 쓰러지면서 천지를 내세워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던 문 회장의 꿈도 무산됐다.

전북의 대기업 보배그룹이 쓰러진 것은 정치적 상황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진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였던 전남 목포의 삼학소주가 정치적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의문과 비슷한 지적이다.

하지만 당시 보배그룹이 문어발식으로 계열사를 늘리는 공격적 경영을 빠르게 진행했고, 게다가 개발과 건설사업에 뛰어들면서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많다.

(주)보배, 동주발효, 보배도시가스, 보배항운 등은 당시 경영상태가 좋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1990년 이리시 창인동에 18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보배빌딩이 침체된 부동산경기 영향으로 임대난을 겪는 등 어려움이 겹치면서 결국 그룹 전체가 쓰러졌기 때문이다. IMF 외환위기 이전, 대마불사의 신화를 믿고 은행에서 거액을 차입해 몸집키우기에 나섰다가 실패했다는 지적도 있다. 소주업 본연의 수직계열화에 치중하지 않고, 섣불리 수평계열화에 나섰다가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 비록 그가 그룹 회생을 위해 사력을 다했다고 하지만, 보배그룹을 둘러싸고 관계를 맺었던 많은 이해당사자들에게 이런저런 피해가 불가피했을 것이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실패 사례는 되새겨보고, 미래 발전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문병량 회장이 문어발식 확장 경영을 하다가 도산했다는 비판이든,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성장했다는 비판이든, 기업인이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는 주장이든 결과적으로 보배그룹은 쓰러졌다. 옛 보배그룹의 한 관계인은 "오직 한 길, 본업인 소주를 중심으로 한 수직계열화에 충실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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