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감수성 진한 음악
번역에 따라서는 '감정과다양식'이라고도 하는 전(前)고전시대의 독일지역 엠핀드삼머 스틸(Empfindsamer Still) 즉, 민감양식 클래식은 영어로 센시티브 스타일(sensitive style)이니 '섬세한, 감수성 진한 음악'이라고 하면 이해하기가 더 쉬울 것 같기도 하다.
프랑스 갈랑양식 음악이 북독일 지역으로 옮겨지며 나타난 고전시대의 바로 전 음악이 민감양식이다. 이 시대 18세기는 정치적으로 왕족간 결혼을 통해 독일 왕족이 영국, 스웨덴, 폴란드 왕이 되고 나폴리는 지중해 반대편에 있는 스페인 왕이 지배하는 등 범세계주의 시대였다. 문화적으로도 프랑스인 볼테르가 프랑스어로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프러시아 프리드리히 2세 궁정에서 일하고, 이탈리아 시인 메타스타시오는 오스트리아 빈의 궁정에서 일하는 시대였다. 음악 역시 독일지역 관현악 작곡가들이 파리, 런던에서 활동하고,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과 가수들이 오스트리아,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등 범세계주의 시대이었다.
이와 같은 분위기에서 프랑스의 갈랑은 독일지역으로 옮겨가며 갑작스런 화성변경, 빈번한 반음계, 흥분된 리듬, 열광적으로 말하는 듯한 선율 등이 강조되며 민감양식이 되었다. 민감양식 역시 감정표현이 중점이지만 바로크시대의 감정이론과는 차이가 있다. 바로크시대는 도식화된 감정이었지만 민감양식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이 훨씬 자유롭고 예민하였다. 문학에서의 당시 사조이었던 질풍노도(Strum and Drang)와 추구하는 이상이 같았다. 질풍노도의 이상은 개인의 자유, 천재를 발휘하는 예술가의 충만한 감정표현이 어떤 구속에도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으며, 민감양식도 천재의 개인적인 감정표현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하나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는 감정을 조성의 자유나 갑작스런 대조 등으로 표현하였다. 다이내믹의 범위도 바로크음악에서 '테라스 다이내믹'이라고 하는 '점점 여리게' '점점 세게' 같은 단계 없이 p와 f 정도로만 표현되던 것을 민감양식으로 곡을 쓴 크반츠(Johann Joachim Quantz, 1697~1773)는 ppp에서 fff까지도 사용하기를 권하였다.
민감양식은 가장 음악을 사랑한 군주로 알려지는 프러시아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대제의 영향도 크다. 베를린에 있는 대제의 궁전에서 C.P.E.바흐를 비롯하여 크반츠, 그라운(Carl Heinrich Graun, 1703~1759) 등은 대제와 함께 창작, 연주를 하며 민감양식 음악을 즐겼던 것이다. 프리드리히 대제 궁전에서 28년을 봉직한 후 함부르크의 여러 주요 교회에서 음악감독을 한 민감양식의 대표작곡가 J.S.바흐의 아들 C.P.E.바흐(Carl Phillipp Emanuel Bach, 1714~1788)는 "음악가는 자신이 감동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영혼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음악이 할 일이다. (중략) 장식음의 필요성은 아무도 반박하지 않을 것이다. 장식음은 활기를 더해준다. 그러나 장식음의 과도한 사용은 맛있는 음식을 망쳐놓는 양념이 될 수도 있다"며 갈랑음악에서처럼 장식음을 너무 많이 사용하지 않기를 권한다. C.P.E.바흐는 독일지역의 피아노 전신인 건반악기 클라비코드(Clabichord) 음악에 이와 같은 미학으로 장식음들을 사용하였다. 그는 훌륭한 기악 선율은 노래하는 어법을 닮아야 한다며 단순히 귀를 즐겁게 하는 선율보다는 듣는 이를 감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민감양식 작곡가들은 질풍노도 운동의 시인들, 문학가들과도 친했다. 따라서 그들의 시를 노래로 만든 독일지역의 예술가곡 리트(Lied)가 많이 작곡된다. 베를린은 18세기 후반 리트의 독특한 양식이 나타나는 중심이 되어 시를 노래하는 리트를 작곡하는 작곡가들이 많았다. 그들을 베를린악파라고 한다. 따라서 베를린악파의 리트에는 송(頌)시, 노래 부르기 위한 시 등의 가사는 다르지만 노래는 같은 선율이 반복되는 유절식(strophic) 노래가 많았다.
민감양식의 유행은 또 민감양식 작곡가의 순수한 기악음악 선율에 가사를 붙이기도 하였다. 가사가 없는 기악 선율에 표현되어 있는 감정을 그에 맞는 가사를 붙여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갈랑양식으로 곡을 많이 쓴 텔레만, 런던에서 헨델의 뒤를 이어 활동한 J.S.바흐의 막내아들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Johann Christian Bach, 1735~1782), 빈의 바겐자일(Georg christoph Wagenseil, 1715~1777), 만하임의 슈타미츠(Johann Stamitz, 1717~1757) 등도 민감양식의 곡을 많이 썼다. 특히 텔레만은 바로크 양식, 갈랑양식, 민감양식, 이탈리아의 로코코양식 등 많은 양식으로 곡을 썼다. 그는 그만큼 모든 양식에 노련했다. 이 민감양식 음악이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시대 음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이든은 민감양식의 대표 작곡가 C.P.E.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얘기했다.
/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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