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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호의 클래식과 친해지기] (49) 하이든의 고용계약

구속에 얽매인 음악활동

18세기 후반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많은 지역을 통치하는 유럽의 맹주였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모든 면에서 유럽의 중심지였다. 그 같은 배경 때문에 그곳에서 나타난 빈 고전음악은 갈랑양식, 민감양식 등 여러 지역 다양한 음악의 종합이었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 새로운 하나를 만들어내는 용광로같이 빈에서는 범세계적인 음악이 형성된 것이다. 이탈리아의 관능, 프랑스의 우아함, 독일의 감흥이 하나로 융합된 클래식!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고전시대음악이 그것이다.

 

빈의 고전양식은 하이든의 교향곡을 비롯한 협주곡, 현악사중주 등 기악작품들에서 1770년경에 처음 나타난후 1780년경에는 더 넓게 확산되며 보편적인 범세계적 음악어법이 되었다. 음악의 흐름이 환히 보이는 듯한 투명함과 곡(曲) 전체의 정돈된 균형이 특징인 고전시대 음악은 하이든은 물론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작품들에서 슈베르트의 초기 작품들에서 환히 보여지는 것이다.

 

고전시대에는 음악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에 의해 음악의 단순성과 보편성이 강조되었다. 또한 시대변화에 따른 중산층 시민계급의 확산에 따라 그들의 음악 요구에 부응하는 음악의 창작이 활발했다. 모차르트가 쉽고 어렵지않은 음악, 가장 끔찍한 환경에서도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추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전시대 음악은 성악음악보다는 기악음악이 많다. 하이든은 어느 누구보다 100곡이 넘는 교향곡들을 비롯한 많은 기악곡들을 작곡하며 고전시대 클래식에 기여했다.

 

하이든은 헝가리 귀족가문 에스테르하치 공(公)의 궁전에 고용된 음악가이었다. 처음에는 부지휘자로 임명되었으나 지휘자의 사망으로 34세 때 지휘자가 되었다. 음악가는 당시 궁전에 고용되면 그에 따른 고용계약이 있었다. 하이든도 물론 그와같은 고용계약에 따라 음악활동을 하였다.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에 기술된 하이든의 고용계약 내용을 보면 당시 음악가들의 고용계약이 꽤 구속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하이든은 이 집안의 구성원으로 대우받을 것이다. 오케스트라 연주로 음악가들이 소집됐을 때 부지휘자와 모든 음악가들은 동일한 제복을 입고 등장해야 한다(흰 스타킹과 흰 아마포로 된 제복을 입고 얼굴에는 분을 발라야 하며 땋아 올린 머리를 하거나 끈으로 묶은 가발을 써야 했다)

 

* 하이든은 주군이 명하는 음악을 작곡하는데 따른 의무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이들 작품은 다른 어떤 사람에게 전달해서도 안되고 복사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 하이든은 매일 정오에 대기실에 와서 주군이 오케스트라를 주문할지 어떨지를 문의해야 한다.

 

* 하이든은 모든 음악과 악기를 주의깊게 살펴야 할 의무를 지니며 부주의 하거나 태만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상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 하이든은 여성 성악가들이 빈(비엔나)에서 배운 음악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또한 각종의 악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을 주의깊게 살펴 익히고 있는 모든 것을 연마해야 한다.

 

근자에 사회문제가 되었던 대중문화 연예기획사의 고용계약 못지않은 내용인 것 같기도 하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치 궁전에서 그와같은 고용계약으로 30년을 봉직했다. 물론 공작은 하이든에 대한 예우를 고용계약 내용에만 의하지 않고 예술가에 대한 예우로 잘 대해줘서 작곡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에스테르하치 궁전에는 극장도 2개나 있었고 상시 근무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도 25명 정도였다니 가히 그 규모를 알 수 있겠다. "나의 주군은 내가 작곡한 모든 작품에 기뻐하셨다. 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의 권한을 위임받아 무엇이 효과를 강화시키고 약화시키는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하이든이 적어놓은 글이다.

 

하이든이 작곡한 교향곡 104곡을 비롯 68개의 현악 사중주곡, 20여 협주곡과 다수의 오페라 등은 대부분이 에스테르하치 공을 위한 작품이었다. 하이든이 타계한지 201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인은 주군이었던 에스테르하치 공 보다 고용된 지휘자였던 하이든을 더 잘 아니 아뿔사, 권력과 돈은 한 때지만 예술은 영원하구나! 에스테르하치 공은 하이든 때문에 알려지고 있는 셈이다.

 

/ 신상호(전북대 음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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