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영토에 대한 처치와 진흥왕의 권위적인 면모 보여줘
그동안 발견된 진흥왕 순수비는 모두 네 개로 알려져 있다. 오늘 소개하는 창녕 진흥왕척경비(이하 창녕비)는 이전의 세 비와 달리 척경비라는 명칭을 붙였다. 문헌을 들춰보면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조선금석총람」에 그렇게 기록되어 있으며, 이전의 기록에는 창녕비가 수록되어 있지 않다. 여타의 세 비는 모두 비문의 첫 행에 진흥왕의 이름과 '巡狩管境'이라는 내용이 보이므로 진흥왕순수비로 확정하였으나, 창녕비에는 첫 행에 비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써 학자마다 순수비와 척경비 또는 왕과 신료들이 회맹한 것을 기록한 회맹비(會盟碑)로 규정하는 등 그 설이 분분하다. 현재 문화재청에 따르면 '昌寧新羅眞興王拓境碑'로 명명되어 있으며, 1962년 국보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척경비란 영토를 개척하고 세운 비를 의미한다.
창녕비는 앞서 소개한 세 개의 순수비와 달리 특이한 면모를 보인다. 우선 비의 형태로 볼 때, 다른 순수비들이 정방형의 석재에 개석(蓋石)을 얹고 있는 형태를 취하고 반하여 창녕비는 전형적인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 특이하다. 또 비문을 새길 비면을 정리하면서 비의 형태에 따라 거의 정방형의 직선을 그어 공간을 확보하였는데 왼쪽 상단부는 돌의 모양에 따라 마치 계단처럼 구획되어 있어 매우 특이한 모양을 취하고 있다. 부정형의 자연석에 정형화된 공간을 확보하면서 빚어진 특이한 공간구성은 여러 가지 추측을 유발한다. 비문의 구성을 관찰해보면 먼저 비면을 다듬어 비문을 새긴 뒤 비문을 감싸는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 비문의 마지막 세 글자인 ?智述干?이 사각의 구획선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보면 글씨를 새긴 뒤 비문의 바깥에 구획선을 그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문의 첫 구절은 "()巳年二月一日立"이다. 여기에서 판독된 ()은 辛자로 이해되어 辛巳년을 뜻하는데, 고예(古隸)로 쓰인 고구려 광개토호태왕비에도 이와 비슷한 자형이 보인다. 광개토호태왕비에서는 글자의 윗부분 立이 士로 되어 있어 마치 來자처럼 보인다. 비문에서 나타나는 이체자이다. 여기에서 호태왕비를 예로 든 것은 창녕비의 자형이 정형화되지 않은 과도기적 형태를 지니고 있어 호태왕비와도 일면 흡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신라의 고비에서 나타나는 고졸함이 창녕비에서도 엿보이는데, 그 결구방식이나 조화미에서는 이전의 순수비에 비해 떨어지는 감이 있다. 판독된 내용에 따라 건립연도를 추정해보면 신사년은 진흥왕 22년으로 신라가 가야를 정벌한 651년에 해당한다. 신라의 북진정책과 아울러 남진정책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기년의 아래에 보이는 "寡人幼年承基, 政委輔弼"이라는 구절은 진흥왕과 직접 관련이 있는 대목이다. 과인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정사는 보필하는 자에게 맡겼다는 내용인데, 이는 「삼국사기」에 진흥왕이 즉위할 당시의 나이가 7세였다고 하는 내용과 부합한다. 7세에는 정사를 판단하고 결정할 만한 처지가 되지 못하므로 부득이 섭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사기」에서 "어머니는 김씨로 법흥왕의 딸이며, 왕비는 박씨 사도부인(思道夫人)이다. 왕이 어렸으므로 왕태후(王太后)가 섭정하였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그 정황을 알 수 있다.
이후의 내용은 성년이 된 진흥왕이 함께 수행한 신료들의 관작과 이름을 일일이 기록함으로써 새로 개척한 영토에 대한 처치와 진흥왕의 권위적인 면모를 동시에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을 잠시 인용하면 "서인(書人)은 사탁의 도지 대사(導智 大舍)이다. 촌주(村主)는 멱총지 술간(멱聰智 述干), 마칠지 술간(麻叱智 述干)이다."라고 끝맺고 있다. 담당한 직책과 이름 그리고 직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나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書人이라는 두 글자가 유독 필자의 눈길을 이끈다. 그것이 비문의 서자를 의미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사탁의 도지(導智)는 창녕비의 서자로서 소속과 직위를 동시에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 이은혁 (전주대 한문교육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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