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병장수' 기업이념, 국내 식품산업 선두주자로 '우뚝'
창립 20년만에 국내 식품산업의 선두주자로, 세계가 주목하는 초일류회사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주)하림(회장 김흥국)은 인간의 무병장수를 추구하는 기업이념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바이오테크산업, 생명과학산업, 온라인유통산업까지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하림은 1차 산업인 농업을 2·3차 산업인 식품제조·유통 산업으로 변모시켜 농업이 다른 어떤 산업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 힘은 혁신적인 경영구조에서 나왔다. 하림의 경영구조는 버티컬 인터그레이션(Vertical Integration), 즉 수직통합경영이다. 수직통합경영을 통해서 1차 산업인 농업을 2차, 3차 산업인 식품제조·유통 산업으로 발전시켜 부가가치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
병아리 열마리가 준 행운
우리 농업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하림은 김흥국 회장의 삶이 그대로 녹아 든 업체이다.
마치 어린시절 교과서에서 봤을법한 소설같은 태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김 회장은 하림의 탄생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처음 사업에 눈을 뜬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때 외갓집을 갔더니 외할머니께서 병아리 열 마리를 주셨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병아리 열 마리를 사과박스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당시 사료는 꿈도 꿀 수 없는 시절이었다. 개울에 널린 개구리를 잡아다가 먹이고 미꾸라지도 잡아다가 삶아 먹였다. 물론 가끔씩 부모님 몰래 쌀도 퍼다가 먹였다.
어미 닭이 되자 지나가던 닭 장수들이 사겠다고 했다. 대략 3천 원 가량의 돈이 생겼다. 나는 닭 판 돈으로 다시 병아리를 샀다. 닭을 키우는 재미는 정말 쏠쏠했다.
초등학교 때 가축을 사육하는 특별활동부가 있었다. 이른바 사육부였다.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하고 계실 때 나는 종이에다가 양계장을 그렸다. 모든 생각이 닭을 키우는 일로 집중되었다.
닭은 점차 늘어 갔다. 목돈이 생기자 그 다음 돼지를 키웠다. 돼지를 키우고 그 다음엔 염소를 키웠다. 중학교 다닐 때 학교 옆에 물엿 공장이 있었다. 사료를 얻기 위해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6km를 왕복했다. 물엿 찌꺼기 한 리어카를 얻어오면 2∼3일 돼지 먹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위기와 실패가 빚어 낸 깨달음
김회장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사업자등록을 냈다. 그 때 막 배합사료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사료를 사 쓸 수 있었는데, 사료를 사기 위해서는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모은 돈이 어느덧 3천만 원 가까이 됐다.
김회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사업을 했다. 그러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사람을 고용했다. 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고 술을 마시러 다녔다. 당연히 사업은 뒷전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전염병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축산업의 특징 때문이었다. 돌림병이 돌면서 닭 값이 폭락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수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닭들이 살아 있는 한 사업은 계속해야 했고 사료 값을 댈 수 없어 돈을 빌려야 했다.
이 때 김회장은 일생일대의 큰 실패를 맛보았다. 집으로 연일 빚쟁이들이 들이닥쳤다. 김회장은 돼지우리 한쪽 구석에 모기장을 치고 숨어 지냈다. 그런 고생을 하면서 반성을 했다. 뒤늦은 후회였고 이미 때도 늦어 있었지만 문제점을 분석했다.
그 때 생각한 것이 닭 값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는 방법이었다. 생산원가를 낮춰 능동적으로 대처하면 되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생산원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사료를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게 바로 통합경영이었다.
통합경영이 토대가 되어
김회장은 그 와중에 또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닭 값이나 돼지 값이 폭락해도 이상하게 소시지 값은 안 떨어진다. 왜 그럴까? 그 때 번쩍 하고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렇다. 고기를 가공해서 식료품을 만들면 원자재 값에 관계없이 제 값을 다 받을 수 있겠구나.
그러던 차에 통합경영(Vertical Integration)으로 뉴질랜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이 농민 교육을 위해 대전으로 강연을 왔다. 강연 내용은 그 동안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고민했던 생각들, 바로 그것이었다.
김회장은 통합경영에 관한 교재를 집으로 가지고 와 읽고 또 읽었다. 다른 사람은 빚을 지고 사업이 망해도 나는 빚을 지지 않을 방법, 출렁이는 원자재 값에 능동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방법, 머릿속에만 그릴 뿐 공식화하지 못했던 것이 학술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그날 이후 김회장은 즉각 통합경영을 농업 비즈니스에 적극 도입했다. 바로 하림만의 독특한 경영방식인 '삼장통합경영'이 탄생한 것이다.
그 때가 80년대 초였다.
김회장은 "그때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고 했다. 그 좋던 친구와 술도 끊었다. 그날 이후 30대 초반까지 나는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사람이 일에 미치니까 아프지도 않았다"고 회고했다.
1978년 황등농장을 설립, 본격적으로 축산업에 뛰어든 김회장은 1986년 (주)하림식품을 설립했다. 1988년 정부로부터 육계계열화 전문업체로 지정을 받았으며 1990년 10월 11일 인간의 무병장수를 추구하는 기업이념아래 오늘의 (주)하림을 설립했다.
1991년 7월 당시 동양 최대규모의 초현대식 닭고기가공시설인 도계가공공장의 준공에 이어 1992년 8월 김제 만경농공단지내에 월 2만톤 규모의 배합펠렛사료만을 생산할 수 있는 육계사료 전문공장을 준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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