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쓸 때는 절로 나오게 해야"
'떠도는 자'의 한평생 시 쓰기. 바로 고은 시인(78)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지난 7일 미국 '컨템퍼러리 아츠 에듀케이셔널 프로젝트'(Contemporary Arts Educational Project)가 수여하는 '아메리카 어워드'(America Award)의 수상자로 선정된 데에 "황송합니다, 황송해요."라고 답했다.
"사실 전주에 마음의 빚이 있어요. 2009년인가요. 나를 한 번 오라고 초청했는데, 거절했어요. 내 친구가 전화를 줘서 흔쾌히 오겠다고 했습니다."
8일 전주 시청 강당에서 열린 전주시 열린 시민 강좌에서 그는 가람 이병기, 육당 최남선, 고운 최치원 등을 통해 시대와 시의 연결 울타리를 넘나들며 '바다의 시 정신'을 강조했다. 그에게 바다는 우주적이며 자기 폐쇄적인 세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바다의 시 정신'은 사람들에게 적극 다가가는 시를 쓰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한국 근대시의 시초인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알고 있지요? 당시에 바다와 소년이 등장한 것은 엄청난 사건입니다. 한국 현대시의 출현을 알린 사건이죠. 과거엔 우리 시에 바다가 거의 없었어요. 최치원의 시에 중국으로 건너갈 때의 풍랑이 시련으로 조금 언급되기도 했지만, 바다는 우리에게 금역의 공간이자 절망과 죽음의 부정적 대상이었지요."
그는 이어 "황진이마저도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 하면 다시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읊었듯 바다는 두 번 다시 돌아오기 어려운 금기의 대상으로 여겨졌다"고 했다. 바다를 중심에 둔 시 정신이 중요하지만, 실제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당이 대단한 발견을 한 것이죠. 이제 한국 문학이 바다 앞에서 청장년이 된 것인데, 바다는 시의 운명적 기호로서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겁니다. 한국 현대시는 노 하나 저으며 죽느니 사느니 하면서 살아남아 100년인데, 사실은 그 바다가 강력한 원점이 됐다는 것이죠."
그는 이어 시인들에게 당부하는 말로 "시를 쓸 때 절로 나오게 하라"면서 "시에 너무 고도의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시 정신에 너무 고취되지 말것"을 조언했다.
"시에는 두 가지가 있지요. 하나는 많이 읽히는 시가 잘 쓴 시요, 또 하나는 어딘가 숨어 박힌 시가 잘 쓴 시에요. 요즘은 박혀 있는 시가 드물어요. 그게 있어야 하는데…. 시적 불운이 필요해요. 보면 아무 매력도 없는데 어딘가에 기가 막힌 것 말입니다."
군산 출생인 그는 1958년 「현대시」와 「현대문학」 등에 추천돼 문단 활동을 시작, 첫 시집 「피안감성」(1960)을 비롯해 시선집 「어느 바람」, 서사시집 「백두산」(전 7권), 「고은 전집」(38권) 등 150여 권에 달한다. 1989년 이래 전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돼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된다. 그는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 의장, 하버드 옌칭연구소 특별연구교수 등을 거쳤으며, 현재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위원회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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