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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니치는 늘 변방인…그들의 절절한 아픔 담아냈죠"

전주대와 연극 '해바라기의 관' 올리는 일본 극단 '신주쿠 양산박' 김수진 연출가

대지진 참사가 일본을 강타하기 이틀 전 한국에 왔다. 가족들은 무사했지만,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긴 참혹한 상황에 망연자실해졌다. 원전 폭발의 후폭풍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과 공포의 육중한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 극단 신주쿠양산박을 이끄는 재일교포 연출가 김수진씨(57)를 전화로 만났다. 착잡한 심정인 그는 서울에 이어 전주에서 연극 '해바라기의 관'을 올린다.

 

"인생은 본래 무겁고, 어려운 거에요. 비극의 이면에는 희극이 있습니다.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키는 것. 그래서 삶은 희망인 겁니다."

 

신주쿠양산박과 전주대 공연엔터테인먼트학과(교수 박병도)의 한·일 공동 프로젝트인 이번 공연은 와해된 가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재일교포가 겪는 비애를 해바라기 꽃밭에서의 죽음으로 형상화한다. 일본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씨의 자전적 희곡.

 

"일본에서 자이니치(재일교포)는 늘 변방인입니다. 유미리씨를 만나면서 더 절절한 아픔을 들여다 보게 됐죠. 그 절박함이 사라졌다면, 이런 비극적인 작품은 못 썼을 겁니다."

 

대학 시험을 앞두고 정서적 불안을 겪는 오빠, 유년의 상처를 씻지 못하는 여동생, 밤마다 집을 나간 아내의 편지를 읽는 아버지 등 연극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고독하다. '어서 돌아오세요'만을 반복하는 구관조, 어머니의 부재를 침묵으로 입증하는 거울 등 소도구의 활용으로 소통의 부재를 보여준다.

 

1987년 신주쿠양산박을 창단한 그는 텐트 극장을 무대로 하는 실험적인 연극으로 일본의 소극장 정신을 이어왔다. 단원만 해도 100명이 넘는다. 정식 단원은 아니지만, 공연이 올려질 때마다 양산박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판을 펼친다. 대사 위주보다는 노래와 춤이 곁들여진 독특한 연극을 선보인 터라 그는 다소 무거운 이번 작품에 기대반, 우려반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반응은 기대 이상으로 뜨거웠다. 그는 "재일교포로서 일본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공감하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앞선 세대들이 일본에서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이 귀화를 하더라도 한국사회는 늘 호의적이지 않아요. 결국 우리는 갈 곳이 없는, 한·일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사이의 문화'인 겁니다. '경계의 연극'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잇는 '사다리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는 이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국 각계 각층이 힘을 모아 일본 대참사를 돕고 있어 고맙다"며 "한국이 일본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만큼 간절한 마음으로 더 이상의 희생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 연극 '해바라기 관' = 19일 오후 4·7시30분, 20일 오후 4시 전주대 JJ 아트홀

 

이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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