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달프고…안쓰럽고…두 여자의 삶에 깃든 애환
역시 연극은 시간의 얼개를 감고 풀 줄 아는 예술이다. 창단 50년의 저력은 무서웠다. 가난한 연극이 얼마나 풍성할 수 있는 지, 비극과 희극이 얼마나 근접해 있는 지 보여줬다. 창작극회(대표 홍석찬)가 야심차게 불러낸 '그 여자의 소설'. 지난 19일 창작소극장에서 열린 '제27회 전북 연극제'에 출품한 '그 여자의 소설'은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배경으로 씨받이(이혜지 역)로 살아가는 한 여인의 신산한 삶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정경선 전주시립극단 단무장은 "이혜지(작은 댁) 김은혜(큰 댁)는 나이가 어린 데다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연결됐다"며 "특히 귀분네를 맡은 배우 지수는 자신의 친 할머니를 모델로 삼아 어르신들의 춤추는 장면을 재현해 웃음을 자아냈다"고 평가했다.
공연은 194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석 댁(김은혜 역)은 사내 아이 나아줄 작은 댁을 선택한다. 아내를 '지집'이라 부르며 주먹질도 서슴지 않는 남편(이부열 역), 어린 딸 조촌이를 두고 시집 와 평생 죄책감으로 살아가는 작은 댁, 속 깊은 장석댁이 주인공. 사투리와 능청맞은 비유를 그대로 살려낸 故 엄인희 특유의 문체는 맛깔스러운 대사가 되어 펄펄 뛰놀았다. 전라도 사투리의 향연을 펼친 이들의 연기는 차지면서도 쫀득했다.
김정수 전주대 교수도 "이 무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또 한 명의 배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라며 "속도감을 즐기는 젊은 배우들이 세월의 호흡을 터득한 삶과 제대로 놀 줄 아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했다"고 했다.
이날 무대에서 이부열씨는 유일한 연장자로 안정된 발성과 중후한 연기로 이 무대의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귀분네(역 강지수)는 순간 순간 질펀한 운율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관객도 그 흥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다가 웃음을 터뜨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다만 남편과 큰·작은 댁의 나이 차이가 큰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기구한 삶을 연기하는 여배우의 얼굴이 너무 예뻐서도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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