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좋아했지만, 공포영화를 보는 건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다행히 공포영화를 만드는 건 싫어하지는 않았던 것 같네요."
일본의 나카다 히데오 감독은 90년대 J호러를 대표하는 감독이다. 데뷔작 '여우령'(1996)으로 공포 영화계에서 주목을 받더니 두 번째 작품 '링'(1998)으로는 대박을 터트렸다.
'링'은 1990년대 일본 공포영화의 틀을 완전히 바꾼 작품이다. 꼼꼼하기 이를 데 없는 치밀한 서사, 공포의 끝을 향해 몰아가는 응집력은 90년대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첫손에 꼽힌다.
TV에서 기어나오는 귀신 사다코는 아직도 우리나라 공포영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동빈 감독, 신은경 주연의 리메이크작 '링'(1999)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링' 시리즈를 만들고 나서 나카다 감독은 2001년 할리우드에 진출해 고어 버번스키 감독에 이어 리메이크판 '링2'의 메가폰을 잡았다.
제15회를 맞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는 J호러 특별전이 열리고, 상영작 중 '링'과 '여우령'이 관객과 만난다. 지난 15일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부천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링'이전에도 호러라는 장르는 있었어요. 그런데 주로 비디오물로 만들어졌죠. '엑소시스트' '오멘' '서스페리아' 같은 해외 공포영화는 있었지만 일본 공포영화는 장르영화로 인정받지 못했죠. 물론 일본에서 공포영화 전통은 오래됐어요. 가부키 전통에 입각한 괴담이 여름철마다 만들어졌어요. '링' 이후에는 일본 호러 영화가 주류 장르영화가 되면서 마침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요. 요즘은 코미디가 대세죠."(웃음)
공포영화로 할리우드에 진출할 정도로 호러물에서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사실 그는 공포영화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 유학 중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실탄'이 떨어져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돌아와 만든 작품이 '여우령'이었다.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어찌하다 보니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베스트셀러 '링'을 스크린에 옮겼다. 영화는 일본에서만 270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링'에 등장한 원혼 사다코의 잔영은 아직도 한국 공포 영화에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사다코의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었을까.
"머리를 늘어뜨리고 괴상한 움직임을 선보이는 건 츠루타 노리오 감독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에서도 비슷한 영향을 받았죠. 가부키와 '노'의 영향도 있었고, 에도 시대부터 있던 귀신 그림의 영향도 있었죠. 한국 여인이 입는 소복에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자칭 "시골출신"(오카야마현)이라는 그는 어렸을 적부터 영화를 자주 봤다고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더티 해리' 시리즈를 챙겨봤고, 입석으로 '오멘'을 보기도 했다.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처음으로 외운 감독 이름이기도 했다.
시골을 떠나 도쿄대 이공계열에 진학해서는 하루 3편을 볼 수 있는 동시상영관에서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수학을 좋아해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대학에 와서는 인문학에 더 끌렸다. 신문방송학으로 전과했고 좌익 학생운동에도 가담했다.
학생운동의 영향 때문에 정치인이나 관료, 대기업 직원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신문기자가 될까 잠깐 고민했지만 좋아하는 영화를 하기로 결심했다.
집안의 반대에도 고집을 피운 그는 결국 할리우드로까지 진출하는 성공을 누렸다. 그는 이러한 성공이 "이상한 욕심을 품지 않아 더 잘된 것 같다"며 웃었다.
일본과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방식의 차이에 대해서 묻자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카메라 감독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할리우드와 다른 나라의 차이점은 할리우드에는 영화산업이 있는데 영화문화가 없고, 다른 나라에서는 영화문화는 있지만 영화산업이 없다'고요. 일본에서 '컷'을 결정하는 건 감독이지만, 할리우드에서 '컷'을 결정하는 건 감독이 아니예요. 관객이 하죠. 모든 게 다 관객의 기호에 맞춰서 기계적으로 제작됩니다. 감독으로서는 욕심을 죽여야 해요. 자존심을 버려야 할 때도 있죠. 그래서 한때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는 할리우드에서는 감독보다는 시스템에 의해 영화 산업이 굴러간다고 했다.
"할리우드에 진출하면 돈은 벌어요. 하지만 시간을 너무 허비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는 어느 홍콩 출신 감독은 7년간 보수는 받았지만 한 작품도 찍지 못하고 돌아간 사례도 있어요. 할리우드 진출은 숙고해보고 판단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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