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전적으로 혼자 장가들지 않고 여자는 전적으로 혼자 시집가지 않는다. 반드시 부모를 통하고 중매를 필수로 한다. 이는 무엇 때문인가? 부끄러움을 멀리하고 음란함을 방지하기 위해서다."(43쪽) 조선의 학자 윤휴(1617-1680)가 '독서기'에서 이같이 지적한 것처럼 조선시대의 결혼은 대부분 부모가 개입된 중매결혼이었다.
어려서부터 '남녀칠세부동석'을 되새기며 내외하다 부모가 정해준 짝과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결혼해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의 지극히 상하적인 관계로 부부생활을 유지하는 조선시대 부부에게 낭만이나 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단어일 것 같다.
그러나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의 책 '부부'(문학동네 펴냄)에 수록된 옛글속 부부들의 모습은 오늘날의 부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옛 문헌과 문학작품 등을 바탕으로 옛 사람들의 부부관과 부부생활 모습을 살펴보고 있다.
이 교수는 "인간이 생각과 감정을 표출하여 문학이 생겨난 이래 문학의 가장 큰주제는 바로 남녀의 사랑이었다"며 "이러한 점에서 부부는 인문학과 문학 연구의 가장 큰 본령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말한다.
유교적 예법이 강조되던 조선시대에는 자유연애란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남녀칠세부동석을 강조한 것으로 볼 때 역설적으로 조선시대에 자유연애로 인한 사고가 적지 않았던 모양"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제도권 밖에서 '남녀상열'하여 '야합(野合. 남녀가 중매 없이 서로 좋아만나는 일)'하고 '불고이취(不告而娶. 부모 동의 없이 혼인하는 일)'하는 일이 성행했다고 한다.
또 어린시절 함께 자란 남녀가 결혼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안중(1751-?)의 연작시 '자야가(子夜歌)'를 비롯해 허구의 문학작품을 빌려 남녀의 자유로운 만남과 사랑을 그리기도 했다.
당시 부부에게도 애틋한 사랑과 치열한 갈등은 있었다.
이안중의 또다른 시 '달거리 노래'에는 알콩달콩한 신혼 생활의 모습이 엿보인다.
"오늘밤 촛불 켜지 않았더니 / 낭군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 향긋한 숨소리만 듣다가 / 아침에 거울 보고 하는 말 / '어찌하여 뺨에 바른 연지가 / 낭군 얼굴에 가득 묻었나요?'"(160-161쪽. 이안중 시 '달거리 노래' 중)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사소절(士小節)'에서 자존심 다툼과 가난, 그리고 서로를 너무 잘 안다는 점 등을 부부 갈등의 원인으로 들기도 했다.
"부부간에 불화가 생기는 까닭은 다만 남편이 천존지비의 설을 고수하여 스스로 높은 체하여 아내를 억눌러 용납하지 않고, 아내는 제체(齊體. 등위와 품격을 같게하여 동등하게 대우하는 동급의 몸이라는 의미로 주로 부부를 뜻함)의 의의를 지켜 나나 저나 동등한데 무슨 굽힐 일이 있겠는가 하는 데서 연유할 뿐이다."(205쪽) 옛 사람들의 부부 생활에는 어쩔 수 없이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담겨 있지만 그속에서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부부의 도(道) 역시 발견할 수 있다.
308쪽. 1만3천800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