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렇게 역사책에 쓰인 글로 500여 년 지속된 고려시대 익산의 역사와 문화를 모두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문화재를 살펴보는 것이다.
고려는 태조 왕건이 훈요십조에서 첫 번째로 고려가 대업을 이룬 데에는 부처의 호위에 힘입었다고 할 정도로 명실상부한 불교국가였다. 거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산과 물가에 사찰, 탑, 석불 등이 도처에 조성되었다.
익산지역도 마찬가지 양상을 보이는데, 고려시대 익산지역에서 번성했던 사찰을 꼽자면 삼국시대에 창건된 미륵사를 비롯하여 숭림사, 심곡사 등을 들 수 있다.
미륵사는 조선 <태종실록> 에 실린 자복사 88곳 가운데 하나로 언급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금마의 제례를 주관하는 자복사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태종실록>
숭림사 역시 고려 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실물은 없어졌지만 재산대장에 ‘지정 5년’(1345)이 새겨진 기와가 그려져 있어,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 해준다.
심곡사에는 연화대좌 형태의 기단부가 있는 칠층석탑이 있어 관심을 받아왔는데, 2012년 6월에 이 석탑의 상층기단과 지대석 두 곳에서 사리갖춤이 발견되어 세간의 주목을 더욱더 끌게 되었다. 칠층석탑 상층기단의 사리구멍에서는 백자항아리와 함께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금동불 2구가 봉안되어 있었으며, 지대석의 사리구멍에서는 고려 말~조선 초에 조성된 불감과 함께 금동불 7구가 발견되었다.
특히 사리갖춤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지대석의 사리구멍에서 확인된 불감과 금동불이다. 불감의 문은 파손이 심하지만, 안쪽에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이 보존수복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불감 내부에서 확인된 7구의 불상 가운데 불감의 앞쪽에 있는 금동불좌상 1구와 금동보살좌상 2구가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이는 반면, 뒤쪽에 봉안된 4구는 앞쪽의 3구와는 또 다른 특징을 보인다.
앞쪽에 안치되어 있던 아미타삼존불은 라마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아 고려 말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는 반면, 뒤편 금동불 4구는 고려 전통 양식을 기반으로 하여 조선 초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한편, 여산면 원수리에서는 순금제 불상이 출토되었는데, 이 불상에 ‘신축辛丑’년이라는 간지가 새겨져 있어 주목받아왔다. 이 불상 역시 심곡사 금동불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에 유행한 라마양식 불상과 유사한 면모를 보이기 때문에 신축년은 1361년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고려시대 익산사람들이 이룩한 다채로운 불교문화재는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고려시대 익산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진정환(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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