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인원·예산 극복 / 합창단·조명 등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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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읍시립국악단의 ‘환생’공연장면. | ||
올해는 동학농민혁명 2주갑, 회갑(回甲)을 두 번 맞은 해다. 120년, 즉 육십갑자를 두 번 환갑(還甲)한 해이니, 어찌 이것이 예사로운 일이랴.
구한 말 극심한 외세의 침탈과 부패한 관료의 학정에 저항해 들불처럼 일어난 혁명의 땅 정읍에서, 민중이 주인으로 자치권을 찾은 동학의 의미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희망의 노래다. 이를 새기는 도내 문화계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지만, 특히 동학의 본고장인 정읍에서 정읍시립 정읍사국악단의 활약은 단연 선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해 국악단 창단 20주년을 맞아 동학 프로젝트를 준비, 지난해 12월14일 정읍사 예술회관에서 올렸던 공연 ‘정읍 역사 속으로 여행 환생(幻生)’이 그것이다.
그리고 지난해 공연의 호평에 힘입어 올해 서울과 전주 순회공연을 야심차게 추진했다. 지난 11일 전북대 삼성회관 대극장은 모처럼 활기와 기대에 들뜬 관객들로 만석을 이뤘다. 정읍과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단원의 자부심은 유료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한 객석의 점유율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공연 당일 이전에 이미 850석의 유료 예매를 확보했다고 하니, 그들의 기개와 자부심을 뽐내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수한 전북의 단체도 무료공연인 국악공연, 전국의 국악인이 두려워하는 전주에서의 공연이다. 그동안 늘 변방에 머무는 것처럼 보였던 정읍시립 정읍사국악단이 전북의 심장 전주로 들어 왔다. 120년 전 동학은 서울 진격에 실패했지만, 이들은 이미 서울 국립극장을 평정하고 전주로 온 것이 다를 뿐이다.
무대는 전면을 춤과 연기 공간으로 비워두고, 상하수와 후면은 연주석으로 구성했다. 지휘자는 마치 보이는 연출자나 무대감독처럼 무대 중앙에서 극의 진행을 조율했다. 이러한 구성은 공연의 인적요소를 가능한 가시적인 하나의 공간 안에 조합해 놓으려는 류기형 연출의 의도가 반영됐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마당판의 원리를 관통해온 결과로 이날은 큰 무대를 채우기 턱없이 부족한 단원들의 빈공간을 대신하는 역할도 했다. 도입부분의 가야금, 아쟁, 해금의 연주는 부드럽고 몽환적이었다.
이번 공연 제목이 왜 환생(還生)이 아닌 환생(幻生)이었던가. 120년 전 전봉준을 불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랜 역사 속에서 정읍을 빛냈던 인물들, 최초의 백제가요 ‘정읍사’의 여인, 풍류의 고운 최치원, 최초의 가사문학 ‘상춘곡’의 불우헌 정극인 등을 내장산같은 멋진 풍광과 함께 꿈처럼 살려내는데 있었다. 본 공연 첫 장에서, 유현하고도 장중한 명곡 ‘수제천’과 민초의 애환과 흥을 담은 노래 ‘흥타령’을 크로스 오버시킨 것은 음악부분에서 가장 멋진 한 대목이었다. 특히 이세정 씨는 수제천의 본청으로 과하거나 부족하지 않게 소리를 조절하는는 능력을 보였다.
동혁의 아내로 분한 김찬미 씨의 처절한 절규가 실린 ‘이름모를 골짜기에’가 없었더라면 극의 후반부 관객은 아마 상당히 섭섭했으리라. 무엇보다도 이번 공연에서 정읍사 국악단 왕기석 단장의 미덕은 핵심이었다. 그는 쉽지 않은 극의 중심을 잡아 단단히 안정시키면서도 개인적으로는 ‘하늘이시여 기원합니다’와 같은 절창을 통해 남자 명창 최고의 아리아를 들려주었다. 또한 김수현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장의 절제된 안무, 송대규 작가의 안정된 영상도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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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장영 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장 | ||
사실 다소 무모해 보였던 이번 공연의 추진은 왕 단장의 과감한 도전과 꿈이 빚은 산물이다. 국립창극단 33년 세월 동안 각종 주역을 맡아 온 그는 마치 전봉준의 환생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국악단에 새로운 꿈과 희망을 심었다. 국악단은 마치 120년 전 전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동학군과 같이 턱없이 적은 인원, 부족한 예산, 인색한 지원의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서울을 거쳐 전북의 중심 전주에서 당당한 기획과 공연으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다만 다소 기복이 느껴지는 합창단, 간혹 초점이 분명하지 않았던 조명, 특히 원작 ‘천명’을 기본으로 하고 여러 인물을 무리하게 조합해 낸 대본의 문제는 극복해야 할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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