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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록 장편소설〈붓다의 십자가〉1·2권] 기억을 찾아가는 모험의 역사, 도발적인 제목의 당혹스러움

사람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 유년시절을 보냈던 고향을 일평생 잊지 못하는 이유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도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그늘 넓은 둥구나무가 자라며 정겨운 옛 사람들이 산다. 인간의 기억은 그래서 위대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특별한 장소를 기억하듯 장소 또한 그곳을 거쳐 간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때의 기억은 유물이 되어 퇴적물로 쌓인다. 기록은 더 확실한 물증이다.

 

대학시절, 부안 변산을 여행한 적이 있다. 드넓은 평야를 달리다가 서해안에서 우뚝 마주치게 되는 평지돌출의 신비한 땅. 변산의 속살은 감수성 짙은 한 청년으로 하여금 무한한 상상력을 달리게 만들었다.

 

소의 천엽 같은 산들에 솟구친 기암괴석과 동굴, 직소폭포 그리고 비탈밭가의 통나무집과 망망한 바다. 언젠가 이곳을 무대로 역사소설 한 편을 써보리라 맘먹었었다. 고려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가 변산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작목사(斫木使) 벼슬을 지냈다는 기록과 만나자 결심은 더 굳어졌다.

 

세월이 흘러 청년은 어느덧 중년이 되어갔다. 철학에 빠져들고 히말라야와 바이칼 호수로 영성기행을 떠나는 동안 변산은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2011년, 팔만대장경 천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간절함이 얼마만큼 깊으면 천년의 세월을 관통할까? 나는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관된 해인사로 달려갔다. 거기서 코리아의 어원이 된 고려 사람들의 꿈과 사랑과 고난의 연대를 파헤쳐가는 모험의 역사를 통감하게 되었다. 오래 전, 실크로드 답사를 하던 때, 중국 시안에서 본 동방기독교 경교(景敎) 이야기가 겹쳐졌다.

 

그래. 이거다. 문화강국 고려는 세계 24국과 교류했고 로마와 아랍 상인들이 벽란도에 드나들었다. 문명의 총화 고려인들은 이미 세계의 종교와 두루 교섭했을 터. 팔만대장경을 새길 때, 거기에 서방정토에서 깨달은 예수이야기를 넣으려는 시도도 있었을 게다. 그런 위대한 도발을 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으로 외진 바닷가 변산 만한 데가 있을까.

 

중앙 일간지에 주말 전면 연재를 시작했다. 〈붓다의 십자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걸고 천년의 기억과 모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려사는 우리에게 아직 낯설다. 나는 여러 역사학자와 불교학자들과 숙의하면서 집필에 매달렸다. 은산철벽 같은 한계와도 만났지만 철저한 고증과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돌파해나갔다. 틈틈이 변산에 내려와 현장답사를 했음은 물론이다.

 

연재를 끝내고 책을 낼 때, 문제가 생겼다. 〈붓다의 십자가〉라는 제목으로는 어렵다는 출판사의 의견이었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에 불교와 기독교의 혼재가 뭐가 문제냐고 버텼다. 몇 개월을 씨름하다가 뾰족한 대안이 없어 저자인 내 고집대로 결정되었다. 출판계의 신화, 김영사 박은주 전 대표는 아쉬움을 거듭거듭 토로했다. 다시 못나올 역작인데 제목이 지닌 반감 때문에 당분간 빛을 보지 못할 거라는 예견이었다. 출판시장의 반응은 박은주 대표의 예상대로였다.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라는 것.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 〈소설 풍수〉를 쓸 때보다 더 공들여 쓴 소설이다. 작가에게 작품은 자식새끼나 마찬가지. 쑥쑥 자라서 성대하면 얼마나 대견한가.

 

하지만 일마다 때가 있는 모양이다. 마디마디 자라다가 점프하듯 커나갈 때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다음 작품을 준비중이다. 영화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이 빨려들 듯이 읽었다며 흔쾌히 추천서를 써줬다. 종교학자 오강남 교수는 한국판 〈다빈치코드〉라며 기대가 컸다. 그런데 왜 안 뜨는 거지?

 

나는 넉살좋게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거대한 점보기가 뜨려면 활주로를 꽤 달려줘야 양력이 생기는 법이잖아요. 사람에게도 팔자가 있듯 책도 팔자가 있나 봐요.”

 

그래도 이준익 감독이 해준 말은 머릿속에 맴돈다. “종교의 타락, 최씨 무인정권의 부패, 몽골 침입이라는 3중고의 시대를 살았던 혁명가 김승. 주인공 지밀과 손잡고서 결론부분에서 크게 한판 붙어야 하지 않았을까? 독자의 예측을 벗어나면서 기대는 저버리지 않을 것!”

 

인생도처에 유상수라던가. 고수들 천지에 발가벗겨진 작가는 부끄럽다. 그래도 행복하다. 〈붓다의 십자가〉를 읽는 동안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는 독자의 편지를 방금 받았음에.

△소설가 김종록 씨는 전북대 국문과와 성균관대 한국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중앙일보 문화전문객원. 밀리언셀러 〈소설 풍수〉를 비롯, 〈바이칼〉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 〈근대를 산책하다〉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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