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6억4500만원 투입 / 기념재단, 활용 방안 등 구체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큰 유산의 하나가 집강소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관민상화(官民相和)’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전역에 집강소 설치를 합의했다. 전라도 전역에 설치된 집강소는 조선정부가 공식적으로 농민군에게 통치권을 인정한 것으로, 한국사 더 나아가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민과 관이 함께 폐정개혁을 추진한 집강소는 농민자치 더 나아가 농민통치를 실현한 우리나라 자생 민주주의의 효시로서 동학농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설치된 집강소 중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김제 원평집강소 건물이다(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소재). 그러나 이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안돼 폐가로 방치되면서 붕괴 직전까지 가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본보와 민간단체 등이 나서 보존대책을 촉구하기도 했다(2014년 3월19일, 6월23일자 보도).
이후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과 김제시가 문화재청에 문화재 긴급매입 신청을 했고, 문화재청은 지난해 10월 원평집강소의 긴급매입 및 복원을 결정했다.
이를 바탕으로 원평집강소 복원 작업이 올 구체화 된다. 문화재청이 총 6억4500만원을 투입, 올 연말까지 집강소 복원 및 주변 정비에 나선다. 민간대행사업자로 선정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은 13일 원평집강소 현장에서 자문위원회를 열어 복원 방향과 향후 활용 방안 등을 구체화 할 계획이다.
동학농민혁명 보다 12년 앞서 1882년 건립된 원평집강소 건물(상량문에 ‘光緖 捌年 壬午三月二十’ 기입)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백정 동록개가 김덕명 대접주에게 헌납한 것으로 전해졌으며, 혁명 이후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30년대 원불교 불법연구회에서 활용했으며, 1950년대 이후 개인 소유 건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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