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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발생한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유족 홍인표 할아버지 "추석날 희생된 아버지 시신도 못 찾아"

선친, 경찰 재직하다 인민군에 무참히 살해돼 / 오늘 효자공원묘지서 가족 못 찾은 175구 추모

▲ 홍인표 할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인민군에 학살 당한 아버지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안봉주 기자

“비명에 가신 아버님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한 불효자식입니다. 구천을 떠돌고 계실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6·25전쟁 당시 전주를 점령한 인민군은 1950년 9월 26일부터 이틀간 전주형무소 수감자 500여명(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추정)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들 희생자들은 남침한 인민군으로부터 공산주의에 반하는 ‘반동분자’로 분류돼, 형무소에 수감됐다.

 

이 중 300여명의 시신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지만 나머지 175구의 시신은 유족을 찾지 못해 현재 전주 효자공원묘지에 합동으로 안치돼 있다. 시신이 너무 훼손돼 가족들이 식별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전주에 거주하는 홍인표 할아버지(82)도 이 때 아버지(고 홍순태 씨)를 잃었다. 홍 할아버지의 선친은 군산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하던 중 1950년 8월 인민군에 붙잡혀 전주형무소로 끌려갔다. 이후 한달만인 1950년 9월 26일 추석 당일에 숨졌다.

 

사건 당시 홍 할아버지의 조부는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부랴부랴 전주형무소를 찾았지만, 시신 상당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끝내 찾지 못했다.

 

홍 할아버지는 24일 “아버지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우셨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숨진 이듬해인 1951년부터 매년 음력 8월 14일에 아버지 제사를 지내고, 다음날인 추석 당일에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차례를 치른다.

 

비명에 떠난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삯바느질을 하며 키운 4남매는 어느덧 모두 백발의 노인이 됐다.

 

4남매 중 장남인 홍 할아버지도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도 열심히 일해 돈을 모았고, 현재는 전주 중앙시장에 어엿한 건물 한채를 소유하고 있다.

 

어려운 가정형편을 딛고 이제는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살지만,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죄스러운 마음이다.

 

홍 할아버지는 “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서 아버지를 만나면 ‘정말 그리웠고, 보고싶었다’고 말하고 싶다”며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25일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자 중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한 175구의 시신이 묻힌 전주 효자공원묘지를 찾아, 다른 희생자 유족과 함께 희생자들의 혼백을 달랠 계획이다.

 

6·25 민간인 학살조사연구회는 이날 전주 효자공원묘지에서 전주형무소 학살사건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제와 추모상 제막식을 연다.

최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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