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원평집강소 준공 / 역사 공간으로 재탄생
121년 전 ‘신분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던 한 백정(白丁)의 외침이 후세에 전해지게 됐다.
백정 출신 ‘동록개’가 동학농민혁명 당시 원평대접주 김덕명 장군에게 헌납한 ‘원평집강소’가 21일 새단장을 마치고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원평집강소는 1894년 집강소로 사용되던 건물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동학농민군 최고지도자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동학농민군은 이곳에서 민주사회와 평등사회를 지향하며 주민자치를 이끌어냈다.
이날 원평집강소 준공식이 열린 김제 원평 일대는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지역 주민들은 동학농민혁명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원평집강소가 그동안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해 붕괴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복원된 기쁨을 한껏 누렸다.
비록 121년 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원평집강소 건립 당시 상량문에 세겨진 ‘光緖捌年壬午三月二十(광서팔년임오삼월이십·1882년 건립)’ 문구를 보며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최고원 (사)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세월이 흐를수록 원평집강소 붕괴 속도가 빨라지면서 영원히 사라지게 될까 지역주민 모두가 걱정했다”면서 “많은 분들의 도움 끝에 새 생명을 얻었고, 앞으로 원평집강소가 민주사회와 평등사회를 지향한 동학농민혁명을 널리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번에 복원된 원평집강소는 1894년 5월 동학농민군이 조선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한 이후 전봉준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관민상화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만들 때 설치됐다.
이 건물은 1882년 4칸의 초가로 지어졌으며 동록개가 동학농민혁병 당시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헌납했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면사무소, 해방 후에는 개인주택 등으로 사용됐지만 90년 대 중반부터 방치되기 시작했다. 원평집강소는 130년 이상 오랜 세월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결국 지난 2012년부터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김제시는 지난 2012년 문화재청에 ‘긴급매입 대상 문화재’로 신청했으며,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계기로 지난해 10월 김제시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2차로 문화재청에 매입복원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현지조사를 통해 긴급매입을 결정하고 매입복원사업 대행기관으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선정했으며, 기념재단은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한 ‘원평집강소 복원자문위원회(위원장 신순철 원광학원 이사장)’를 구성해 1년여 동안 역사적 고증과 자문을 거쳐 마침내 이날 복원·준공하게 됐다.
김대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은 “전북도내 동학농민혁명 유적지와의 연계를 통해 특화된 역사콘텐츠 관광자원을 개발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원평집강소는 앞으로 김제시와 (사)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문화재청의 위탁을 받아 관리·운영하게 된다.
김제=최대우 기자, 김정엽 기자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