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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은 나라가 할 일" 폐교 꿈꾸는 전주 샛별야학 변상경 교장

"지하 내려와 어둠 밝히는 교사·학생에 감사" / 지난달 검정고시 15명 응시 10명 합격 쾌거

▲ 12일 전주 금암동에 위치한 샛별야간학교에서 교장인 변상경(오른쪽 앞)씨와 교사들이 수업 준비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형민 기자

누구는 그를 ‘야학계의 전설’이라 하고 누구는 그를 ‘전주 만학도의 우상’이라 치켜세우지만, 정작 전주 샛별야학 교장 변상경 씨(41)는 손사래를 쳤다.

 

“일 끝내고 저녁에 와서 수업하는 게 뭐 대단하다고… 신문에 나오는 것도 어색한데, 사진까지 찍으려니까 창피하네요.(웃음)”

 

서른아홉의 나이에 샛별야학 교장이 된 사연을 묻자, 무 자르듯 명쾌하게 답했다.

 

“마땅히 할 사람이 없었어요. 야학의 불은 끌 수 없잖아요. 오히려 지금은 학생들을 통해 더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스승의 날(5월 15일)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오후 6시께 찾은 전주시 금암동 샛별야학.

 

10여 평의 오래된 반지하 공간에서 교사 강민준(21·전주대 2), 변지영(20·전주대 1), 지슬빈(25·전북대 4), 강해성 씨(26·전북대 4)는 각자 맡은 과목의 책을 보며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 옆에 교장 변 씨가 앉아있었다.

 

샛별야학은 지난 1981년 학업을 마치지 못한 전주 지역민들에게 한글 등 기초적인 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자치단체의 예산 지원 없이 오로지 교사와 학생들의 노력으로 명성을 유지해온 이 학교는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6시 50분부터 4시간 가량 20대부터 60대 이상 노인이 함께 하는 공간이다.

 

남원 출신인 변 교장은 전주 상산고와 전주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피자 가게 운영과 직장생활을 하던 중 지난 2011년 지인 최동찬 전 샛별야학 교장의 추천으로 야학 교사가 됐다.

 

그는 지난 1955년 전쟁의 아픔이 채 가시기 전 태어나 제대로 학업을 마치지 못한 노재영 할아버지의 배움의 한을 풀어 준 것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다.

 

변 교장은 “재영 아버님은 열심히 공부해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금은 전주비전대에서 기계학을 전공하고 있다”며 “우리 주변에는 배움의 기회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재영 아버님들이 많다”고 했다.

 

지난달 샛별야학 학생 15명이 응시한 검정고시에서는 10명이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지하 1층에 있는 샛별야학은 교사와 학생들이 찾아오는 데 적지 않게 망설여지는 곳이기도 하다.

 

변 씨는 “차마 계단을 내려오지 못하고 돌아가는 학생과 교사의 모습을 많이 봤다”며 “그러나 ‘마음의 계단’을 내려와 어둠을 밝히는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 옆에서 수업을 준비하던 교사들이 변 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와 과학교사이자 샛별야학 교감인 대학생 강해성 씨는 “늦은 나이에 열정적으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간다”고 했다.

 

올해 11월 샛별야학의 2년 교장 임기가 끝나는 변 씨는 깊은 고심에 잠겼다. 후임 교장을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샛별야학의 불이 꺼지지 않으려면 후원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변 교장은 “사실 야학은 저희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나라가 할 일이죠. 새로운 정부에서는 야학이 ‘폐교’되어야 합니다. 젊은 시절 어려운 형편으로 학업이 중단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수업 시작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6시 50분께 걱정 반 설렘 반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는 학생들의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은 지상보다 환한 지하, 낮보다 밝은 밤이었다.

남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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