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생활·은퇴 뒤 많은 기고문 보내 스크랩 / "시대 휩쓸리지 말고 정직하게 써달라" 당부
지난 31일 오후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자택에서 만난 이강녕 씨(84)는 족히 수백 번은 더 펼쳐봤을 것 같은 낡은 스크랩북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스크랩북에는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빛바랜 신문들이 정성스럽게 모여있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론’, ‘전북광장’ 등 이 씨가 전북일보에 기고한 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워지지 않는 교육의 사표’, ‘도립공원 이래서 좋은가’ 등 이 씨는 얼마나 다시 꺼내 보았을지 모를 자신이 쓴 신문 기고문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조용히 소리 내 읽었다.
취재 기자가 살아온 인생보다 더 많은 세월이 지난 신문 기고문들을 손으로 하나씩 매만지는 이 씨의 얼굴에는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나왔다.
이 씨는 1981년에 쓴 기고문을 가리키며 “전북일보와는 참 인연이 많아요. 필진은 아니었지만, 공직생활 할 때나 은퇴하고 나서도 전북일보에 글을 많이 보냈었죠. 이때는 한자도 많이 들어가고 지금이랑 다르게 세로쓰기로 돼 있네요”라고 말한다.
‘언제부터 전북일보를 구독하셨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씨는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니 내 인생과 함께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며 “신문을 처음 보기 시작한 것도 전북일보였고, 지금도 전북일보는 매일 읽고 있다”고 말했다.
1934년 임실에서 태어난 이 씨는 1956년 전주 사범대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전북교육연구원 연구사와 김제 금구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한 후 도교육청 장학사와 전북교육연구원장을 지내고 지난 1999년 정년 퇴직했다.
“전북일보 만큼 산을 사랑한다”는 이강녕 씨는 특히 모악산을 좋아해 ‘모악산 산신령’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공직 시절 부정맥 치료를 위해 산을 오르며 건강관리를 했던 이 씨는 1999년 공직에서 퇴임하면서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다.
지리산, 한라산, 백두산, 중국 화산, 캐나다 로키산맥 등 국내외 곳곳의 명산을 찾았던 이 씨는 지난 2010년에는 78세의 나이에 국내외 유명산 5000회 등반이라는 대기록도 세우기도 했다.
이제 나이 때문에 높은 산은 못 오르지만, 이 씨는 요즘도 매일 아침 건지산에 다녀온 후 전북일보를 펼쳐든다고 했다.
이날 거실 테이블에도 전북일보가 다정히 놓여있었다.
이 씨는 “중앙지와 지방지 두 개를 봐요. 지역 소식을 듣기 위해서는 무조건 전북일보를 봐야죠”라고 말한다.
그는 이내 생각에 잠긴 듯 과거 전북일보 기자들의 이름을 입 밖으로 하나씩 꺼내 놓는다.
“김 기자는 기사를 참 잘 썼고, 이 기자는 안면도 있었지, 참 기사가 좋았어… 기사를 보면 그 사람 됨됨이도 괜찮을 것 같아 그렇지 않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이 씨의 전북일보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남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과거의 전북일보와 현재의 전북일보를 모두 바라본 이 씨를 만나니 궁금해졌다.
요즘 신문과 예전 신문을 비교했을 때 어떤 것이 변화한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평가를 하기보다는 꾸준히 부담 없이 내 일평생 옆에 있는 친구처럼 인생을 함께 보낸 신문이다. 고향 소식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읽는 중이다”고 말했다.
지금의 젊은 기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하니 그는 “정치에 정을 두지 말고 냉정해져라”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번에 사상 초유의 탄핵 파면 대통령, 사상 3번째로 구속된 전 대통령 등 참 불행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 휩쓸리지 말고 사회와 지역에 관해 정직하고 올바르게 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스크랩북 끄트머리에서 전북일보에 실린 ‘5000번째 등반’ 기사를 꺼내 보이던 이 씨는 “내가 전북일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겠죠? 내 눈이 글씨를 읽을 수 있는 한 전북일보를 볼 것”이라며 환한 미소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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