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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이스키 강제 이주 슬픈 역사를 아시나요"

엄넬리 모스크바 한민족학교장, 전주 근영중서 역사 특강 / 자랑스러운 나라서 큰 꿈꾸고 이뤄내길

▲ 엄넬리 니콜라예브나 러시아 한국민족학교 교장이 15일 전주 근영중학교에서 고려인의 이주사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박형민 기자

“왜 우리는 러시아말만 해야 하는가, 왜 모국어를 배울 수 없는가, 왜 모국 땅에서 살지 못하는가, 왜 우리는….”

 

15일 오후 전주 근영중 교단에 선 엄넬리(77) 러시아 모스크바 한민족학교 교장은 어릴 적 부모님께 이 같은 질문을 수없이 되풀이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로 이주한 고려인(카레이스키)의 후손이다.

 

카레이스키는 1937년 스탈린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일대로 흩어졌고, 한국말 사용까지 금지당했다. 엄 교장의 언니는 강제이주 과정에서 사망했고, 오빠는 한국말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2주간 감옥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핍박과 억압이 형벌처럼 내려지던 시대였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한국어를 배울 수 없고, 한국 땅을 밟을 수도 없었다.

 

1992년 구소련이 붕괴한 뒤, 엄 교장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처음으로 한민족학교(모스크바 1086학교)를 설립해 고려인 6세대, 7세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의 3500개 학교 가운데 한국인 교장은 그가 유일하다. 이 학교에는 35개 소수민족 학생(초등학생~고등학생) 700여 명이 재학하고 있다. 이 중 고려인이 60%를 차지한다.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그는 ‘안녕하십니까’, ‘나는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말 모릅니다’라는 세 문장만 겨우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었다. 모국 땅에서 누구하고도 말을 나눌 수 없었다. 행복한 만큼 눈물이 흘렀다. 그래서 학교를 설립해 한국 언어·역사·전통·문화 등을 가르치기로 했다. 스스로 한국어를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이 53세.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로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제는 고등학교 한국어 교과서를 발간할 만큼 우리말에 능통하다.

 

그리고 이날 전주 근영중에서 역사과 조은경 수석교사와 함께 ‘카레이스키 강제 이주 역사’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특강은 2년 전 모스크바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조은경 교사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행복한 시대, 행복한 나라에서 사는 만큼 꿈을 꾸고, 그 꿈을 꼭 이뤄내도록 노력하길 바랍니다.”

 

카레이스키 이주사와 이와 맞물린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엄 교장은 학생들에게 꿈을 향한 노력을 당부하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역사 특강을 기획한 조은경 교사는 “엄넬리 교장의 삶 자체가 한국 근현대사의 축”이라며 “한민족의 꼭지를 찾는 수업으로 아이들에게 역사적 경험을 전달하고 애국심과 자긍심을 심어줬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25년째 한민족학교를 운영해 온 엄 교장은 한국어 보급과 한국 문화·교육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과 국민포장,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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