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큰일이다.”
성충이 한숨과 함께 말을 잇는다.
“한솔은 이 밀서만 전하라고 하더냐?”
“예, 대감.”
하도리가 똑바로 성충을 보았다.
“대감께서 알아서 판단하실 것이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래. 이 밀서를 가져가던 놈, 문독 양하는 죽였느냐?”
“예, 죽여서 묻고 말을 소인이 끌고 오다가 빈 말로 버렸습니다.”
“잘했다.”
“그럼 소인은 돌아갑니다.”
하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절을 하자 놀란 성충이 말렸다.
“이 시간에 돌아가? 3백리 길을 달려왔지 않느냐?”
“말이나 바꿔줍시오.”
“그러지. 그럼 내가 한솔에게 답장을 쓸 동안 좀 먹고 쉬도록 해라.”
성충도 서둘러 일어섰다.
하도리가 돌아왔을 때는 다음날 오후 신시(4시) 무렵이었으니 만 하루 만에 600여리를 주파한 강행군이다.
“나리, 대감의 답신을 가져왔소.”
성안의 밀실에서 만난 하도리가 품에서 밀서를 꺼내 내밀었다. 목소리는 씩씩했지만 몸이 늘어져서 눈꺼풀이 감기는 중이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장하다. 문독.”
하도리를 칭찬한 계백이 성충의 밀서를 펴 읽는다.
“한솔 보게. 역적의 밀서를 읽고 통분한 심정을 가누기 힘드네. 그러나 대사(大事)를 경솔히 처리할 수는 없는 법, 국충과 내 휘하의 병관부 달솔 진재덕, 그리고 왕비까지 연루된 사건인 바 신중하게 처리해야 될 것이네. 그래서 먼저 한솔이 국충과 그 일당을 제거해주기 바라네. 방법은 한솔에게 맡기겠네. 내가 다시 연락을 할 것이나 매사 신중하게 처리해주게.”
이것이 성충의 답신이다. 머리를 든 계백이 하도리에게 말했다.
“너는 쉬어라. 큰일을 했다.”
계백의 표정은 어둡다. 그날 밤 계백의 처소에는 나솔 화청과 육기천, 수군항에서 불러내온 윤진과 백용문까지 심복 무장들이 다 모였다. 계백이 먼저 자신이 왕비에게 가는 밀사 양화를 죽인 것부터 말하고 성충의 밀서를 꺼내 모두 읽도록 했다. 그동안 방안은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이윽고 모두 읽기를 마쳤을 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국창을 없애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국창은 왕비한테 밀사로 보낸 양하가 올 때가 되었는데, 하고 기다리는 중일거요.”
“그렇습니다.”
나솔 윤진이 머리를 끄덕였다.
“양하가 돌아오지 않으면 의심을 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오전에 국창이 전함을 타고 홍도에 순찰을 갑니다.”
장덕 백용문이 말했다.
“그 전함에는 국창의 심복 무장들이 다 타고 따르지요. 홍도 수군기지에서 조련을 핑계삼아 놀다가 오는 것이지요.”
홍도는 서쪽으로 40리 떨어진 섬으로 수군 초소가 있다. 풍광이 좋고 가까워서 놀기가 좋은 섬이다. 계백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