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창암 이삼만 선생 유묵첩' 발간 후 10년 이상 조사 완성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 창암 선생의 일생과 서도 평전식 구성
창암 출생지 논란과 관련해 ‘정읍 출생설’ 확증 서술
김익두 전북대 국문과 교수와 조선시대 서민 명필인 창암 이삼만(1770~1847) 선생과의 인연은 약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교수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70년대 초반, 서정주 시인의 시 ‘전주우거’를 읽고 창암 선생을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창암의 묘소를 찾은 이후 본격적으로 창암의 친필 유묵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2004년 창암에 관한 자료를 책으로 엮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관련 책자와 자료를 재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묵을 수집·고증했다. 그 책이 2005년 발간한 <창암 이삼만 선생 유묵첩> 이다. 창암>
이로부터 13년이 흐른 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에 관한 연구서 <조선 명필 창암 이삼만-민족서도의 길을 열다> 를 내놓았다. 조선>
창암 선생에 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김 교수는 “창암 서도와 서예 특징에 관한 몇몇 연구 외에 이렇다 할 본격적인 창암 연구서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면서 “이런 현실을 그저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하게 됐다”면서 집필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창암 선생은 우리나라 서도를 중국 서도의 그늘에서 벗어나도록 해 중국 서도와는 다른 한국 서도, 곧 우리 ‘민족서도’의 지평을 크게 드높이신 분”이라면서 “창암 서도 예술에 관한 참뜻과 가치가 뒤늦게나마 세상에 널리 제대로 알려지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길 바라고 빌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창암 선생의 일생을 선대와 가계, 가족 관계, 청장년과 노년 시절, 서거와 사후 등 평전식으로 자세히 기술했다. 창암 서도의 계보, 창암 서도와 서예의 역사적 의의·가치도 풀어 설명했다. 말미에는 현관·주련, 비문·석각, 서첩 글씨, 병풍서 등 창암의 주요 유묵 작품을 싣고, 이에 대한 감상과 평가를 덧붙이는 형식으로 창암의 유묵 세계를 살펴봤다.
특히 그동안 설왕설래가 오갔던 창암 선생의 출생설에 관해서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정읍 출생설과 전주 출생설을 정읍 출생설로 확증하는 논증을 전개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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