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변산반도의 끝자락에는 서해바다의 수호신인 개양할미를 모신 수성당이 있다. 1992년 해안초소를 보수하면서 수성당 주변자리가 고대 삼국 중 백제 이래로 계속 제의행위가 이루어진 곳임이 확인되었다. 이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은 지금까지 발견된 백제의 유일한 해양제사 유적으로 항해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제의행위는 통일신라, 고려, 조선을 넘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삼국시대 유물들이 양호하여 당시 구체적인 제사의 양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대다수이고 금속유물과 모조품, 옥제품, 중국제 자기, 일본 계통의 토기들도 있다. 토기들은 4세기 중반~7세기 전반까지 백제의 것들이 모두 확인되고 있는데, 5~6세기대가 중심연대이다. 대형항아리 중에는 말안장테, 철제 방울 등의 마구류나 철제 거울이 담겨진 채로 확인되기도 하였다.
이 유적은 유일한 백제의 해양 제사유적이라는 중요성 이외에도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교차점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으로도 큰 의의를 가진다. 중국제 흑갈색 유약을 입힌 흑유항아리와 청자항아리, 일본 계통의 스에키(5~6세기 일본 고분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토기)뿐만 아니라 신라, 가야지역의 유물들도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흑유항아리는 4세기대 중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현재 서울의 풍납토성, 홍성 신금성 등 주로 한성백제의 중앙을 비롯한 주요 지역에서만 확인되고 있다. 스에키도 웅진백제의 수도였던 공주 정지산 유적을 비롯하여 나주 복암리, 정촌 유적 등에서 발견되어 백제가 바닷길을 통해 일본이나 영산강유역 사람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죽막동에서 이루어졌던 제사는 이 지방의 토착세력들이 주도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흑유항아리나 중국제 청자들은 평범한 지위에 속했던 사람들이 사용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스스로 해양교섭능력을 가졌거나 상당한 사회·경제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던 계층으로 보인다. 부안 죽막동 제사유적은 제의를 주체한 사람들이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진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한 축이었음을 증명하면서 해양국가 백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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