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난아 씨, 영아원에서 6살까지 생활 후 프랑스로 입양
22일 47년 만에 고모와 고모부 등 만나, 생부는 2009년 별세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버지랑 꼭 닮았네”
22일 출생과 동시에 가족들과 헤어진 박난아 씨(프랑스 이름 제시카 브룬·47·여)는 극적으로 가족들과 상봉했다.
이날 오전 10시께 전북지방경찰청 현관, 박씨가 초조하게 정문 쪽을 바라보고 있다.
5분여 시간이 흐린 뒤 회색 승용차가 경찰청 입구에 서고 차량에서 박씨의 고모 박애순 씨(78·여)와 고모부 김민술 씨(82)가 내렸다.
박씨는 떨리는 눈동자로 단번에 자신과 닮은 이들이 가족인 것을 알아보고 고모와 고모부에게 다가가 눈시울을 붉히며 끌어안았다.
고모부 김씨는 박씨를 보며 “울지 마라. 정말 잘 자라줘서 고맙다. 아버지랑 참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박씨의 손을 잡은 채 생부와 생모의 빛바랜 결혼 사진과 다른 가족들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박씨의 프랑스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이 박난아라는 사실 등을 알려줬다.
박씨는 “그동안 주변에서 가족 찾기를 포기해야 되지 않냐는 이야기를 듣고 좌절해 있었는데 결국 가족들과 상봉해서 너무 기쁘다”며 “이제 나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과 가족에 속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며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슬픈 소식도 있었다.
박씨가 그토록 찾았던 생부는 이미 지난 2009년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고모 박씨는 “살아 생전 생부가 눈 감기 직전까지 자신의 딸에 미안해하며 애타게 딸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씨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렇지 못해 안타깝고 조금 더 일찍 아버지를 찾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1972년 2월 18일 박씨는 전주예수병원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생후 7일이 지난 후 어머니가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씨의 한국 가족들에 의하면 당시 박씨의 생부는 남겨진 아이들을 키우는데 힘이 부쳐 예수병원에 아이를 맡겼고 이후 직원에 의해 영아원으로 보내졌다.
그렇게 6살까지 영아원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프랑스의 한 가정으로 입양을 갔고 이후 12살이 되던 해 스페인 테네리페 지역으로 이사 간 박씨는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한국의 가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한국에 가면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그 방법의 하나로 진로를 조선업으로 정했다.
한국에서 근무하게 되면 가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조선 관련 학과를 전공해 이후 노르웨이에 있는 한국 조선사에서 검사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이날 가족 상봉에 앞서 그녀는 지난 2월 21일 전북지방경찰청을 찾아 ‘헤어진 가족 찾아주기’를 신청했고 경찰은 박씨의 기억과 일부 자료들을 토대로 석 달동안 수소문 끝에 박씨의 가족들을 찾아 47년 만에 혈육의 만남을 주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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