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장신구를 사용했을까? 자신을 꾸미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아래 현대 사람들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채로운 장신구를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치장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이아몬드, 비취, 에메랄드, 금 등이 가장 값비싼 귀금속으로 인식되지만 1600년전 한반도의 마한 사람들은 금과 은보다도 옥을 가장 좋은 장신구 재료로 생각하였다. <삼국지(三國志)> ‘위서동이전(魏書東夷傳)’에는 ‘마한사람들은 금이나 은보다 옥을 귀히 여겨 몸을 꾸미는데 다양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증명하듯 마한의 무덤에서는 옥으로 만든 다양한 장신구들이 나타나고 있다. 마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한 장신구였음을 의미한다. 삼국지(三國志)>
마한계 무덤에서 발견되는 옥은 수정이나 마노, 벽옥, 천하석, 탄화목, 뼈, 흙 등 각종 천연재료와 인공적 재료인 유리로 제작된 것들로 나뉜다. 고고학 분야에서는 이러한 것들을 통칭하여 ‘옥(玉)’으로 부르고 있으며, 형태에 따라 곡옥(曲玉), 관옥(管玉), 조옥(棗玉), 다면옥(多面玉), 환옥(環玉·丸玉)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옥 장신구는 마한의 이른 시기로 평가되는 초기철기시대부터 발견된다. 이 시기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이어져 온 장식문화를 유지하면서 신소재로 제작된 옥 장신구가 새롭게 등장하는데, 그 소재가 바로 유리이다. 철기와 함께 당시 최첨단 기술의 결과물인 유리는 부여 합송리, 당진 소소리, 장수 남양리 등에서 대부분 관옥의 형태로 발견된다.
초기철기시대 옥 문화는 원삼국시대 마한사람들에 의해 꽃을 피운다. 이 시기 옥 장신구는 특정 형태나 색상에 국한되지 않고 각양각색,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양상으로 발견되면서 옥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전북지역 최대의 마한 분구묘 유적인 완주 상운리 유적에서는 6000여점에 이르는 옥 장신구가 수습되었다. 마한사회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재료와 형태의 옥이 발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양은 조금 투박하지만 그 영롱한 빛깔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김왕국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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