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에서 은행나무로
2016년 4월 9일 토요일, 전북작가회의 회원들과 시인의 제자들은 ‘정양 시인과 함께하는 문학기행’을 떠났다. 이 기행은 김제 일대에서 펼쳐졌는데, 그것은 창작 시기 전반을 고향과 그 인근(익산, 완주 비봉면 ‘수선리’, 전주)에서 지내며 문학 활동을 해 온 정양의 출생지가 ‘김제’였기 때문이었다. 정양은 ‘장소애(topophilia)’에서 출발한 ‘장소기반적(place-based)’ 작품들을 창작하면서 지역문학과 지역문단을 활성화하였고, 이를 정양 문학의 요체인 ‘탈식민’의 세계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문학인의 소명이 중심과 중앙에 대한 저항과 극복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문학기행’은 정양 시의 설화적 공간이 된 ‘마현리’의 ‘은행나무 배꼽’으로 시작되었다. 정양은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를 보여주면서, 근대 국가중심주의나 자본주의가 이끄는 세계화의 자장이 미치지 못하는 탈영토화된 곳으로 ‘마현리’를 재현하였다. 다음으로 정양의 선산을 찾아 초혼비를 읽고 ‘빈 무덤’을 낭송하였다. 부친 정을(鄭乙) 선생은 일제 때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세 차례 투옥되어 수감생활을 하였고, 6·25 직전에 다시 투옥된 후 행방불명되었다. ‘빈 무덤‘은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현장 지리산에서 ‘흙’을 떠와 고향 산자락에 마련한 가묘였다. 우리는 망해사로 이동하여 ‘불갯마을’을 읽었고, 금평저수지에 도착하여 ‘大同契 집터’를 바라보았다. ‘불갯마을’은 최초의 판소리 이론서 <조선창극사> 를 쓴 정노식의 출생지였고, 大同契 집터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이루려던’ 정여립이 대동계를 모으던 집터였다. 조선창극사>
전주로 돌아온 우리 100여 명은 <헛디디며 헛짚으며> (모악출판사, 2016)의 출판 기념 자리를 마련하였다. <헛디디며 헛짚으며> 는 주로 우석대 문창과에서 정년퇴임하기 전후에 쓴 시를 묶은 시집이다. 제1부 ‘응답하라 1950’에 실린 9편의 시는 “1950년대 황량했던 내 중고등학교 시절이 자꾸만 회상된 편린들”로서, 2016년 당시 부정한 정권의 “어이없고 황당한 역주행의 시절이 어서 마감되기를 바라며” 묶은 시편들이었다. 헛디디며> 헛디디며>
이 시집에서 눈에 띈 시는 ‘겨울나무’였다. 경기도 용인시로 거주지를 옮긴 시인은 그곳 마을버스 종점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내 고향마을’의 ‘은행나무’와 오버랩시킨다. 이 ‘은행나무’야말로 아픈 근현대사를 관통해 온 그의 삶이었고 그의 문학이었다.
*김혜원 시인은 문학과 사진을 전공했다. 지난 201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먼지’가 당선되었고, 지형과 환경에 대한 사진 작업과 함께 시와 사진의 상호텍스트성에 대한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현재 전북대 국문과 시간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