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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유물로 읽는 옛 이야기] 석정 이정직의 서예 연구자세 '담계재현첩'

이정직李定稷(1841-1910)/ 대한제국 1902년 /첩, 종이에 먹, 28.0×14.8cm /전북대학교 박물관 소장
이정직李定稷(1841-1910)/ 대한제국 1902년 /첩, 종이에 먹, 28.0×14.8cm /전북대학교 박물관 소장

석정石亭 이정직李定稷(1841~1910)은 칸트와 베이컨 철학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했고, 이를 성리학과 비교 분석한 남다른 연구자였다. 조선말기의 유학자 이정직의 학문적 탐구는 성리학 뿐 아니라 서양학문과 철학, 그리고 천문, 지리, 의학의 범위를 넘어 넓고 깊게 펼쳐졌다. 독설가로 유명한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학문적 동반자이자 마음의 친구로 이정직을 존경했고 “모르는 것이 없고 통달하지 않은 바 없는 희귀한 인재”로 찬사했다. 이정직은 따뜻한 인품을 지녔고, 세속의 영달에 매달리지 않았던 고고한 선비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던 그는 놀랍게도 홀로 학문적 경지를 이룬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가르칠 스승이 주변에 없을 정도로 학문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그의 가난한 환경으로 더 높은 사승관계 맺을 수 없었다. 이정직의 스승은 바로 고인古人이었다. 끊임없이 고인의 학문을 연마하며 그는 이를 자신의 것로 쌓아갔다.

이정직은 서예가로도 유명했다. 그는 임서臨書를 매우 중시했다. 고인의 서법의 특징과 서풍을 파악하는 서예 연마와 연구 방식인 임서를 행함에 있어, 그는 말미에 반드시 고인의 필적을 평가하고 연원과 가치 등을 세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서법을 파악하였다.

이정직이 옹방강翁方綱(1733-1818)의 글씨를 임서한 <담계재현첩覃溪再現帖> 은 그의 서예 연구 자세를 잘 보여준다. 청의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옹방강은 첩학帖學과 비학碑學 두 영역을 모두 아울렀던 대가로, 고법古法의 법도를 글씨에서 실천하고자 평생을 노력하였다. 김정희金正喜와 신위申緯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정직은 옹방강 서예에 대한 관심을 임서로써 남겼다. <담계재현첩> 에서 주목할 것은 이정직의 발문이다. 여기에 그의 서예 연구 자세가 담겼다.

자하 신위의 글씨는 석암石菴 유용劉墉과 담계覃溪 옹방강으로부터 왔는데, 석암은 전적으로 종요鍾繇를 배웠고, 담계는 구양순에게서 득력得力하고, 미불과 동기창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두 분의 묵법墨法은 모두 동파東坡 소식蘇軾을 귀숙처歸宿處로 삼았다. 고인古人의 글씨를 임서할 땐 마땅히 ‘먼저 그 글씨의 유래를 알아야’ 바야흐로 따라갈 수 있게 된다.

 

/박성원 국립전주박물관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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