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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원의 '미술 인문학'] 전주 화단의 ‘독립군’, 김충순

자신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고 즐거워하는 생전의 작가.
자신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고 즐거워하는 생전의 작가.

김충순, 그는 자칭 ‘독립군’이었다. 전주라는 작은 미술인 사회에서도 그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는 전주를 벗어나 파리 같은 곳에서 살기를 원했다.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공기를 흡입하며 살기를 원했다. 죽기 얼마 전, 파리에 마련해 둔 작업실에서 3개월여 머물다 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그는 염원하던 파리에서의 작가 생활을 더 이상 지속하지 못했다.

김충순 사후, 그의 32번째 전시가 열렸다. 과슈로 얼굴과 사람을 그린 작품들로 꽉 채웠지만 정작 주인공인 그가 없었다. 어릴 적 바이올린을 배우고 고등학교 때에는 첼로를 배웠지만 정작 대학은 미술로 방향을 선회했던 그의 운명은 그때부터 불안정한 삶의 파고를 예견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을 좋아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게 좋아서 그림을 그리면서도 주위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러면서도 작품의 손길을 멈추지 않던 그는 아직도 예술적 낭만에 도취하여 떠돌고 있으리라.

 

김충순의 2019년작. 손풍금을 치는 사람, 배경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배경을 꽉 채우고 있다.
김충순의 2019년작. 손풍금을 치는 사람, 배경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배경을 꽉 채우고 있다.

2009년에는 전주영화제 무대미술도 했던 그는 그룹전 보다는 개인전을 좋아했고, 화랑의 초대전이나 기획전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갤러리 공간을 스스로 대관해서 마음대로 전시하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예술 행위에 대하여 제약받고 구속되는 것을 싫어하는 그였지만 그는 작업하나로 평생 생활을 영위하면서 지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캔버스에 꽉 차도록 많이 그렸지만, 특정인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그렇게 그렸다. 그게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의식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여자의 얼굴로 생각했다. 2005년 전라도 닷컴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묘사하는 대목이 있다. “…이 사회에서 용케 길들여지지 않고 스스로를 버텨낸 그. 그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터. 살면서 가장 많이들은 말은 ‘미쳤다’이고 그 다음은 ‘싸가지 없다’라나. ‘독립군’답다. 불의를 향해 돌격하는 돈키호테처럼 엉뚱하고도 열정이 넘치는 그인 것이다.”

예술가가 죽을 때까지 손을 놓지 않고 작업을 하는 것이 중요할까? 그는 2년여의 암 투병 중에도 작업의 손길을 놓지 못했다. 햇볕이 잘 드는 ‘시집’같은 카페에 가서 하루 종일 드로잉을 하기도 했다. 예술을 하는 예술가의 삶은 행복할까? 인간의 삶은 행복의 추구 이상의 의미를 가질 때가 종종 있다. 인간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에 생각한 것 이상의 밝은 빛을 내기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는 길을 고집해서 굽히지 않고 나아 갈 수 있었던 돈키호테, 미치광이로 불리었던 아웃사이더는 어떤 미소를 띠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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