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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헌수 작가, 박수서 '날마다 날마다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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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날마다 생일 표지/사진=교보문고 제공

그를 처음 만난 건 대학원 모임 때였다. 수줍은 듯 구석에 앉아서 눈웃음을 치던 모습이 선하다. 대뜸 형이라고 부르며 다가온 박수서 시인. 트롯트를 온몸으로 풀어내며 부르고, 연극무대에서 연극을 하는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이다. 예술로 삶을 연주하는 끼를 발산하며, 낭만가객의 풍류를 읊는 그를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늘 그 자리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학교 행정의 근간을 살피는 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오십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는 그, 마흔 아홉은 더디게 지나가고 몸도 마음도 힘겨웠다고 말한다. 시를 못 짓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아래코를 잡아 올려 뜨개질했다는 시인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수척해진 몸과 퀭한 눈이 몸으로 맘으로 앓은 흔적을 내보였고, 담배와 술 없이 쓴 시집이라는 말에 슬몃 웃음이 나왔다. 

우리네 삶의 고단함이 생일날 마주한 미역국 한 그릇에 녹아내리고 다양한 축하와 덕담으로 이어진다면, 날마다 생일처럼 산다면 부러울 것이 무엇이랴. 박수서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스스로 시의 화자가 되어 시의 대상이자 시의 글감이 된 생활을 담담히 풀어내었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세상 나이 쉰을 앞둔 중년의 육체적 증상을 통해 시적 완성을 제공하고 있다. 

"나무는 쓸 만한 것이 먼저 베인다지만/ 사람은 쓸모없는 것이 먼저 베인다/ 살면서 작게 적게 베인 상처를 꿰매다 놓친 바늘이/ 수북이 쌓여 나는 잣나무처럼 뾰족해졌다/ 말미잘처럼 박힌 날카로운 모양이/ 신통하게 나이테가 되었고/ 마흔 아홉 테에서 층계가 낮고 넓어졌다" (시 '마흔 아홉' 부분)

마흔 아홉이라는 나이를 ‘바람은 어깨를 반도 걸치지 않았는데’자신의 생애가 가지 많은 나무처럼 몸 한그루가 통째로 출렁댔다고 표현했다. 시집에는 만성단순치주염, 전립샘증식증, 심실조기수축, 수면장애, 불안장애, 등과 같이 마흔아홉을 맞으며 만나는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견뎌내고 버텨내는 삶을 한 줄 한 줄 토로해 내었다. 살아오면서 얻은 딜레마로부터 멀리 떨어져, 익숙하고 낯익은 개념을 마주한다. 자신만의 의미를 단단하게 세우며 생경하지 않은 경험을 발견하고 있다. 

삶의 서정을 스스로 마주하며 세계를 거스르거나 재단하기보다는 순응하며 그것을 믿어주고 받아들이는 삶을 말한다. 세련되지 않은 일상의 이름 앞에 생활시를 보듬고, 당연함과 낯익음, 그냥 그럴듯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대로, 그가 전하고자 하는 시도대로 온전하게 끌어내었다. 시의 통로 속에 채집된 중년 남자의 생채기가 자신과 가족, 주변을 아우르는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세월이 준 나이테를 탄식하지 않고 꽃잎도 나이 들면 군주름이 생긴다는 상상과 함께 낯설은 시로 머물지 않았다. 누군가를 향한 노래가 되고 고백이 되어 마음의 옹이로 남은 시, 그가 온몸으로 부대끼며 쏟아낸 시, 가쁜 호흡으로 때론 조용한 읊조림으로 고백한 시, 시어의 들숨과 날숨이 꿈틀거림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사는 일이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힘주어 말하는 그와 갑오징어숙회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고 싶다.

김헌수 작가는

2018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삼례터미널'로 등단해 시집으로는 <다른 빛깔로 말하지 않을게>, <조금씩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있고, 시화집으로는 <오래 만난 사람처럼>,  <마음의 서랍>이 있다. 오디오북으로는 <저녁 바다에서 우리는>이 있다. 작가는 전북작가회의 작품상을 받았으며 글과 그림을 짓고 그리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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