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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신시아 라일런트, '그리운 메이 아줌마'

『그리운 메이 아줌마』로 뉴베리상과 보스턴 글로브 혼북 상을 수상하고,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이 ‘올해의 최고 우수작’으로 선정된 작품성이 높은 작품이다. 잘 짜진 구성과 절제된 문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메이와 오브는 여섯 살 어린 서머를 보자마자 ‘우리 저 아이를 데려가요.’ 말할 만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그들은 낡은 트레일러에서 끊을 수 없는 가족이 된다. 수많은 바람개비로 가득한 그곳은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서머를 믿게 한다. “천국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표현한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언제라도 거기에서 천사들이 떨어져 나와 금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트레일러 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중략) ’메이”라는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다른 바람개비보다 작은 날개들이 많고 모두 순백색이었다.’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다녔던 서머. 분명 윤기 나는 머리카락을 빗겨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골고루 발라주며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을 엄마가 있었을 것이란 믿음으로 버텼다. 메이와 오브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메이가 밭에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을 때 서머는 슬픔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 자신을 사랑해 주는 오브마저 떠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컸다. 메이를 분명히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집중하는 오브는 서머를 더 옭아맸다. 반짝이는 과자봉지부터 온갖 것을 수집하는 클리터스의 등장은 메이를 만나리라는 오브의 믿음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클리터스가 물에 빠져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사연은 오브를 더 간절하게 했다. 급기야는 영혼을 만나게 해준다는 심령 목사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목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다. 서머는 절망할 오브 생각에 모든 것을 멈추게 했다. 의외로 오브는 돌아가던 차 방향을 클리터스가 기대하는 주의회 의사당으로 향할 때 서머는 무기력했다. 낡은 트레일러로 돌아온 오브는 메이가 생전에 가꾸던 밭에 바람개비를 모두 걸어둔다. “큰 바람이 쏴아 불어와 모든 것을 자유롭게 날려 보내 주었다.” 는 해방을 상징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강한 상실의 트라우마는 서머의 감정을 일찍이 제한시켰다. 메이와 오브와 가족이 된 것은 축복이기도 했지만 언제 없어질지 모를 두려움이었다. 메이의 죽음은 가족에 대한 간절함을 반 토막 냈다. 서머는 마음 놓고 메이 아줌마를 그리워할 수도, 모두 내려놓고 울 수조차 없게 만든다. 또다시 겪는 결핍은 서머를 보이지 않게 억눌렀다. 심령목사를 만나러 갔다 돌아오는 하루는 어느 시간보다 길었으며 정지되었다. 기억에도 없는 시간 속에서 엄마가 발라줬을 거라 믿는 베이비 로션은 극한 고독을 상징한다. 드리웠다 금방 사라질 연기보다 가볍다. 하지만 서머의 조였던 숨통을 트이게 한 건 밖으로 나온 바람개비다. 메이와 영원히 함께 할 거란 믿음을 상징한다. 『그리운 메이 아줌마』는 간결하지만 매 순간 극적이다. 서머의 상실과 결핍, 치유의 과정은 읽는 동안 숨죽이게 한다. 작가의 절제된 서술은 깊이를 더하게 하는 백미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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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9 18: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정숙인 작가-'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 때때로, 세상의 어법이 해독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접하는 상황이나 기분 때문인지, 권력적 구조 때문인지 경계가 모호할 때 그렇다. 그럴 때면 이 세계가 너무 거대하고 무거워서 막막하다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언어가 가진 자의 것이라면, 약하고 소수인 누군가는 무엇으로 말하고 버텨야 하나.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주장할 수 있을까. 먹고 싶은 반찬이 무엇인지 묻지 않기 때문에 선택할 수도 없다.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짧은 머리의 미소년이 되어야 했다는 깨달음도 얻는다. 삶에 선택되었을 뿐 그녀는 장애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현실을 인식하는 나날을 살아왔다. 그녀, 누구도 장애를 선택하지 않았다. 시설 안에서의 장애인은, 다수의 중증장애인을 사회복지사 1인이 지원하는 구조 때문에, 개인이 불편해야 다수가 편하다는 암묵적 수용을 한다. 그렇게 불편함을 견딘다. 억압과 해방을 주는, 몸과 맘을 이루는 나의 물질로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장애는 삶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또 생(生)의 전부라서 나의 모든 것을 옭아매고 만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상황일 때는 사람과의 관계나 일상이 모두 예민해진다. 현재의 장애가 감기처럼 지나가지 않는다면, 평생 그 예민함 속에 살 수밖에 없다. ◦‘온전한 나’라서 『나에게 새로운 언어가 생겼습니다』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의 문제’로 여기는 ‘나의 문제’이며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의 깊이와 태도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게 만드는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이다. 임은주, 국화, 미숙, 차지숙, 이지숙, 정아, 최송아, 모두 일곱 명의 그녀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나와 너의 기록으로 완성한 손바닥 에세이다. ‘가족의 선택으로 시설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오거나 할머니와 살아온 시간이 더 많던 그녀. ‘늘 남의 시선이 먼저’ 보였던, ‘민폐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그녀. ‘온전한 나’로 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솔직한 이야기는 ‘일곱 개의 새로운 언어’로 드러난다. 인생이란 스스로 ‘밀어야만 열리는 문’이라는 성장기를 완성해 냈다. 한때 좌절했으나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타인의 장애나 고통을 나누지 못하는 사람의 말은 일회성 위로일 뿐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속이며 스스로 ‘나의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의 간절함이 더해져서 어떤 장애, 역경에도 정직하게, 현상을 돌파하는 지혜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는 답을 얻기까지 그녀들은, 참 얼마나 아팠을까. 거울을 보고 조심조심 발라도 지멋대로 발라지는 게 장애 때문이라던 생각을, ‘원래 내 생김새’라며 자신에게 ‘예쁘다, 귀하다’ 말을 건네는 그녀. 늘 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손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포기하던 그녀가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그녀. 결혼과 이혼, ‘평화로운 하루를 좀 더 빨리 갖지 못한 것’을 꼽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갈 때 우리도 함께 안타까워지고. 그런 그녀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활동가이자 인권 강사이며 상담가인 다니엘을 만나며 ‘누군가가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꿈을 다시 꿀 때는 우리도 그녀와 함께 행복해진다.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그가 잃어버린 오늘은, 우리의 내일로 온다. 나와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아니라 나의 절망이고, 너의 절망인 채로 두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시선이 곧 나의 시선’이므로, ‘그들의 시선을 판단하는 것은, 내 시선’이므로 ‘편견의 족쇄를 푸는 열쇠는 내 눈에 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한다. 정숙인 작가는 201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백팩'으로 등단했다. 작품으로는 몇 편의 단편소설과 채록집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라는, 개복동에서>(2017)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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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22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 – 에이미 탄 '뒷마당 탐조클럽'

지난 겨울, 모두가 그랬겠지만 마찬가지로 고달픈 연말을 보내느라 진이 빠졌다. 목표로 한 일은 죄 실패했고, 일거리도 없었고, 좋은 뉴스도 들리지 않았다. 무기력에 몸이 처졌고, 지하로 굴을 팔 것 같았다. 이런 때를 종종 겪으면 나름의 예방책을 찾게 된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움직일 것. 겨우 신발을 고쳐 신고 무작정 도서관에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에너지는 자주 바닥을 쳤다. 움직이기까지는 힘을 낼 수 있지만, 사람을 만나기는 어려운 정도로. 그때쯤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옷을 아주 두껍게 껴입고서 도서관을 가다 말고 천변 벤치에 앉아서 온갖 새들이 오가는 걸 지켜봤다. 운이 좋은 날은 잠시 들른 수달을 볼 수도 있었다. 발끝이 얼고, 코가 차가워지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다시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가상에 살얼음이 낀 물 위를 오가면서 정신없이 먹이를 찾는 오리를 보고 있자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바빠진 탓이었다. 그 뒤로는 생물 도감과 검색을 통해 새들의 이름을 익혔다. 그저 새라고만 불리던 조류들은 차츰 이름을 되찾았다. 백로, 청둥오리, 물까치, 까치, 왜가리, 멧비둘기. 오늘 보이는 오리 가족이 어제 있던 오리 가족인지 추측하며 들여다보는 재미로 무기력한 시간을 잘 견뎠다. 그 겨울에는 알게 모르게 나를 돌본 주변 사람들이 있었고, 관심을 끌어준 새가 있었다. 날이 풀리고, 좋은 뉴스가 들리고, 일이 바빠지면서 겨울의 탐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들른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책을 만났다. 이름하여 '뒷마당 탐조클럽'. 정말이지 반가운 제목이 아닐 수 없었다. 책을 열고 서문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주 흥미로운 탐조 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막연한 즐거움이 새로운 취미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이 클럽을 통해 새들이 먹이를 찾고, 터전을 지키며, 짝을 찾고, 새끼를 기르는 모습을 조금 더 깊고 오래 바라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혹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에 도전해 보거나, 매일 한 마리의 특별한 새를 찾아보는 즐거움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중략) 결국 이 클럽이 지향하는 바는, 야생 새들과 이어진 작은 인연 속에서 인간으로서 의미를 되새기며, 삶을 더욱 깊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7쪽) 책을 덮으며 지난 겨울을 다시 떠올렸다. 철저히 도서관을 향하는 산책과 그 길을 둘러싼 생명을 중심으로. 새들을 관찰하고 그 곁에 식물과 다른 생물들을 관찰하면서 안부를 묻던 일이 퍽 즐거웠던 것이 떠올랐다. 다 함께 아름다운 스케치가 곁들여진 이 탐조의 기록을 보자. 그리고 노트와 펜을 들고 나가자. 집 근처에, 마당에, 천변에 자주 등장하는 새를 찾아보자. 그러다가 생각나는 이가 있으면 안부를 묻자. 분주하게 자신의 생을 이어가는 새들을 보며 따라 해보자. 그러다 우리가 자연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감각해보자.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힘을 낼 수 있게 한다. 지난했던 지난겨울을 다 함께 견딘 것처럼.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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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15 18:3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김근혜'들개들의 숲'

인간은 늘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래서 오늘의 고단함을 딛고 이상향을 향해, 현재를 담보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여기보다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유토피아를 그리며 순간의 행복을 내일로, 모레로, 그다음으로 미룬다. 이러한 세상을 꿈꾸는 게 인간만은 아니다. 얼마 전, 출간한 김근혜 작가의 『들개들의 숲』에서는 인간의 품을 떠난 개들과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간들에 의해 유기되었지만, 인간의 삶과 멀어지면서 그들만의 자유를 찾아 떠난다. ‘섬숲’이라는 소문 속 낙원을 향한 여정은 단순한 모험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 연대, 책임에 대한 고백이며 우리 내면의 유토피아에 대한 질문이다. 『들개들의 숲』은 유기견 ‘라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라도는 자신의 주인이 감당하지 못하고 버려지지만, 거리에서 만난 늙은 개 ‘할매’의 마지막 유언을 믿는다. 인간의 폭력도 없고, 먹이 걱정도 없는 평화로운 곳, ‘섬숲’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도는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 보리, 유기견 코털과 함께 섬숲으로 향한다. 이들이 섬숲 가까이 가면서 낙원에 대한 부푼 마음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 ‘섬숲에서 향긋한 냄새가 불어왔다. 텁텁했던 목과 잔뜩 엉킨 실타래 같던 머리를 상쾌하게 해주었다.’라면서 노래를 부른다. (p19) 하지만, 섬숲이 소문처럼 꿈꿔왔던 낙원이 아니라는 걸 도착하자마자 깨닫는다. 먹이가 부족하고, 생존의 위협을 받고, 개장수와 개 공장, 섬의 무차별적 개발 등 인간의 욕망이 만든 그림자들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라도 일행은 섬숲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친구들을 구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잃기도 하면서 ‘유토피아’라는 허상과 현실 사이에서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걸 배우게 된다. ‘섬숲’이라는 공간은 희망과 자유의 상징이지만, 그곳 역시 생존을 위해서는 수많은 갈등과 먹이 쟁탈전이 일어난다. 결국 낙원이라는 것도 누군가의 희생이나 상실 위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작품 곳곳에서는 유기 동물에 대한 연민만이 아니라 돌봄과 책임, 인간과의 연관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시한다. 라도와 보리, 코털의 우정은 단순한 동료애를 넘어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연대를 보여준다. 인간의 보호 아래 있던 존재들이 버림받고, 때로는 인간이 만든 애견 상점과 개 공장에 갇히면서도 서로를 구하고 함께 일어서는 모습은 따뜻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생명을 소유하거나 소비의 대상으로만 다루는 태도를 비판하면서 존재의 존엄성과 자율, 그리고 인간이 가져야 할 책임도 묻는다. 더불어 은유와 상징, 섬세한 감정의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마치 사회 소설처럼 풀어놨다. 라도의 두려움, 친구들의 생존 투쟁, 엄마를 찾는 보리의 슬픔이 단순한 감성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의 부조리와 자기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든다. 결국 동물들의 지상낙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유토피아는 일정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관계의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선택하고 만들어가는 지금, 이곳 속에 낙원은 숨어 있다. 『들개들의 숲』에서는 인간들의 불편한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책을 읽는 내내 지상낙원이라는 ‘섬숲’보다 현실의 무게와 희망을 놓지 않는 용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진짜 가족 맞아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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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24 18:4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겠다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내 고장 시인이 있었다. 그는 시의 이슬에 튄 몇 방울의 피를 훈장 삼아 문학을 길러냈다. 스물몇 해였던가. 그 마음을 닮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내가 마주한 것은 언제나 늪이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자기 위안’만 남는 한계였다. 이럴 때 환기(喚起)의 시간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른 시기에, 내 고장을 거쳐간 수인이 있었다. 전주교도소에 머물며 “녹두장군의 농민군이 전주성을 공략할 때 넘었다던 완산칠봉”을 애정의 눈으로 바라보았다던 실천가이자 사상가. 1968년, 스물네 살에 강단에 선 신영복 선생은 어떤 이유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해 겨울, 선생은 ‘빙광’에서 희망을 찾았다. 빙광은 얼음에 비친 빛이 공중으로 반사되는 현상이다. 기온이 일정 온도 이하로 내려가야만 자기 숨결로 만들어진, 벽에 달라붙은 성에에 비친 빛을 볼 수 있다. “빙광이 날카로워지면서 파릇한 빛마저 내뿜는 때를 가장 좋아한다”고 선생은 말했다. 선생은 혹한이 주는 고통조차 진실을 마주하는 창으로 여겼다. 날이 풀려 자기 입김이 만들어낸 성에가 “느릿느릿 벽을 타고 기어내리”는 것을 보면 공포스럽다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첫 장에서 고백한다. 염치없는 ‘자기 위안’이 만연한 시대에 물리적 한계를 넘어 실천적 의지가 만들어내는 용기와 통찰을 느낀다. 진실을 마주하는 자에게 따라다니는 한없이 깊은 사유를 본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능력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이다. 따라서 문화는 이러한 능력을 계발하여야 하며, 문명은 이를 손상함이 없어야 한다.” ‘사랑은 경작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선생은 인간에게서 희망 찾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책을 읽다 보면, 수감자라는 이유가 학문에 대한 열정을 식게 만들 수 없음을 발견한다. 감옥 안에서 서예와 독서를 이어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쇠창살 안에 갇힌 몸이지만 부모, 형제는 물론이고 형수나 계수, 조카와의 소통을 소홀하지 않은 것 또한 페이지 마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청구회 추억」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키워 간 선생의 한없는 인본주의의 극치를 엿본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정서를 대변하는 시대에도 오롯이 느껴질 키득거림과 들뜸, 애잔함이 뒤엉킨 장면에서 느껴지는 선생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드높다. “기쁨과 마찬가지로 슬픔도 사람을 키운다는 쉬운 이치를 생활의 골목골목마다에서 확인하면서 여름 나무처럼 언제나 크는 사람을 배우려 합니다.” 슬픔 또한 선생을 좌절시키지 못한다. 극한의 추위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 주체로 남고자 했던 선생에게 어찌해도 지지 않는 의지를 배운다. 세속적⸳물리적 공간에 매인 선생의 환기는 빙광을 통한 무한한 우주로의 사유 확장이었다.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란다”던 내 고장 시인과 달리, 선생은 숙고의 시간을 거쳐 자신과 세상의 관계를 새로이 쓰고자 했다. ‘자기 위안’ 대신 날마다 새로운 성좌를 키웠다. 어떤 이에게 희망은 오래된 고성에서나 피어나는 작은 풀, 납작 찌그러진 채 구르는 페트병 같다. 허리를 숙여야만 겨우 닿는다. 선생이 찾은 혹한의 빙광처럼 절박한 환기다. 그것은 냉철한 예지의 날을 세워 선생의 글을 마음에 새기는 용기다. 머리맡에 두고 날마다 실천적 의지를 다지는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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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7 18: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황보윤 소설가 – 서귀옥 '우주를 따돌릴 것처럼 혼잣말'

올봄 서귀옥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2012년 ‘김유정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니, 무려 13년 만에 선보인 시집이다. 소설책만큼이나 두툼한 시집을 펼쳐 들고 우선 목차부터 훑었다. 쉰여섯 편의 시가 들어있었다. 손가락을 꼽으며 수치로 환산해 보았다. 한 해에 4편씩 쓴 셈이었다. 적어도 너무 적은 과작(寡作)이었다. 한 편 한 편 음미하며 읽다 보니 ‘분홍꽃댕강’처럼 무수히 구겨진 종이의 잔해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것은 시의 탑(塔)이었고,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쓰디쓴 쇄신의 맛’(「리프레시」)이었다. 시인의 시집에서 주목한 것은 법과 시의 만남이었다. 시인은 ‘시인으로 살아보겠다고 법무사 사무장 관두고 만학을 결정’했다고 「유머」에 썼다. 이후로 시인은 법과 담을 쌓고 시와 사귀었다. 시처럼 말랑말랑하고 서정적인 장르에 도끼처럼 쇠붙이 냄새가 나는 법의 접목이 가능할까. 누가 보기에도 시와 법은 어울릴 수 없는 조합 같았다. 시인의 시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줄타기하는 시적 화자들이 등장한다. 법과 무관하게 살고 싶어도 다양한 이유로 법망에 걸려드는 것이 인생이었다. 법 없이 시를 써 보겠다는 무구한 생각을 시인은 일찌감치 접었을지 모른다. 시인의 시는 법의 해석 안에서 웅숭깊어졌다. 「집이 날아갔다는 말을 들었다」에서 경매 법정을 빠져나오던 한 남자는 ‘집이 날아갔어!’라고 중얼거린다. 경매로 넘어간 집이 ‘지번을 가진 새’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집이 새처럼 날아서 새 번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매는 해체가 아니라 재생이었다. 시인은, 한 가족을 낳고 기른 집이 한때 성행했던 시절을 뒤로 하고 날갯짓하는 것을 본다. 또한, 갑자기 날아온 공에 맞아 집을 날려버린 남자의 처지에 공감한다. 시인은 ‘공도 진심에 닿으면 한 번쯤 좋은 곳으로 날아간다’(「공들」)는 믿음에 힘입어 집이 좋은 곳으로 날아갈 수 있도록 바람을 잡는다. 「모자는 많고 죄는 다양해요」와 「법정에 가요, 쇼핑하러」는 연작시처럼 읽힌다. 시인은 ‘죄지은 사람과 죄지을 사람은 모자를 눌러쓰는 버릇’이 있다고 말한다. 모자의 종류만큼이나 범죄가 다양한 것은 물론이다. ‘죄를 덮는 덴 모자만 한 것’이 없기에 모자를 쓴 사람들은 ‘죄를 고르기 위해’ 쇼핑하듯 법정에 간다. 그곳에는 ‘오늘만 사는 이들’이 있다. 시인은 불운을 물려받은 이들에게 법정에 즐비한 죄를 내보이며 ‘살 거야? 말 거야?’라고 다그친다. 살고 싶다는 게 ‘사치의 욕구인 이들’을 막다른 길로 몰아간다. 그러나 막다른 길에도 퇴로는 있다. 「위너」에서 시인은 ‘얼어붙지 않으려고 멍을 옮겨 달고’, ‘좀 더 유연해지려고 구겨지며’ 그저 살기만 하자고 손을 내민다. 루저와 잉여일지라도 가로등 폭죽을 터뜨리면서 자축하며 살자고 한다. ‘제 꿈의 보폭과 속도로 시차를 수련하면서’(「미래는, 내가 이름 붙여준 나의 골든레트리버」) 저마다의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시인은 「좋은 인상」에서 ‘내 시가 곧 죽을 사람의 마지막 한 끼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시인입니다’라고 썼다. 그런 마음으로 쓴 시 쉰여섯 편을 읽고 나니 며칠을 안 먹어도 될 만큼 포만감이 느껴졌다. ‘뻔하고 엽기적이어도 한 번씩 눈물 나게 웃어’ 달라는 당부대로 킥킥대기도 했다. 나도 시인처럼 우주를 따돌리고 혼자가 된 듯 가벼워졌다. 황보윤 소설가는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전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 <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 <광암 이벽>, <신유년에 핀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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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10 18:4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박래빗'i의 예쁨'

박래빗 시인 건강하게 잘 있지요? 살다 보면 불현듯 폭우가 쏟아지고 사방이 캄캄할 때가 있습니다. 와이퍼로 물방울 밀어내듯 가볍게 두려움을 털어내고 자신에게 와줄 문장을 기다리는 박래빗 시인, 그에 대한 기록 『i의 예쁨』을 읽고 덩달아 나는 환해집니다. 글에 자신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지요. 타자의 삶이나 상황맥락을 빌려 시침 떼 보지만 그 배면은 자신일 것이어서 쑥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래빗은 내포하고 있는 자신을 낱낱이 공개함으로써 타자의 억측을 무너뜨리고 순수함은 오히려 정밀해졌습니다. 형식은 신선했으며 나 또한 내용이 닿는 그곳을 가본 적도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자신’을 도구이자 수단으로 사용하는 재기발랄한 책 『i의 예쁨』은 박래빗 시인의 유년에서부터 현재까지 거의 모든 시절이 날것으로 가득하더군요. 장르의 경직성을 털고 시와 수필, 경험과 환상, 유쾌한 수다와 진중한 철학적 성찰로 가득했습니다. 무엇보다 래빗의 문학을 사랑하고 예뻐하는 마음이 울울창창했습니다. 책에서 밝혔듯 “다음날이 오면 또 무슨 문장과 글이 나에게 올지 행복해하며 궁금해하는 날들”로 책의 모든 성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꾸밈없이 써 내려간 글, 때론 나를 거침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혼자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늘 나이며, 나,인 것이 좋”은 박래빗 시인의 솔직함과 다소 과잉된 자의식마저 신선해 보여서 좋았습니다. 집요한 목적성이 오히려 목적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유인 박래빗 시인은 목적을 획득한 거지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주지하다시피 욕망하는 ‘목적성’ 없이 문학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소년기 감수성 도처엔 천진함이, 굳이 세공 하려 들지 않은 원석의 묘미로 가득했지요. 래빗은 체력적 한계와 병약함으로 유년기를 보냈더군요. 극복할 수 있었던 배경엔 물리화학적 처방이 아닌 종교적인 포용과 엉뚱함과 재기발랄함과 세상 한복판에서 살짝 벗어난 비정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짐작해 볼밖에요. 고백하건대 래빗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 박래빗 시인과 나는 운명의 실타래 한 올쯤 얽혀있지요. 래빗의 사생활에 개입된 적 있으며 공유한 시절을 추억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니 더욱 좋았습니다. 박래빗 시인의 사적인 경험과 감각들이 궁극에는 보편적인 삶의 진리에 다다르게 된다는 점도 밝혀두고 싶군요. 래빗은 글을 맺으며 벌써 글을 쓰는 시간이 그리워진다고 썼더군요. 래빗의 그 ‘시간’을 응원합니다. 최근 고도의 해석 기술을 장착해야 풀리는 난해한 책들 속에서 모처럼 쉽고 천진한 성장 시 혹은 소설을 보는 것 같았어요. 소녀에서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한 지금까지의 일대기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근원이 무얼까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시 산문집에서 일관된 방향으로 흘러가는 긍정의 언어들, 위태로울 만큼 천진하나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래빗의 내면이 상처받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간관계가 절대적이지 않는 부박한 시대, ‘오롯한 나’가 존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지요. 래빗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로고테라피 대명사 빅터 프랭클처럼 앞으로도 세상이 캄캄해지거나 고통스러울 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를 바라요. 선결과제는 우리는 모두 ‘나약한 인간’이고 ‘패잔병’이고 필멸로 향하는 ‘환자’임을 인정해야 하는 거지요. 특히 이 말은 꼭 전하고 싶어요. 래빗 덕분에 글을 쓸 때는 뭐든 써도 된다는 것, 자신을 보여주든 그 반대 값이든 ‘무엇’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써간다는 것을 새삼 알았어요. 개인에서 시작되는 기본값을 자신 감각대로 쓰다 보면 사회병리, 금기, 고통 등은 휘발되고 평화가 찾아온다는 메시지, 잘 받았어요. 박래빗 시인이 표출하는 에너지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때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잘 지내요.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요.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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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9.03 17:3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아들은 방문을 잠갔다. 꼬박꼬박 인사하던 아이가 ‘잘 다녀와’라는 말에 ‘네’라는 대답조차 인색했다. 함께 외출하자고 하면 고개를 젓기 일쑤였고 속 얘기는커녕 일상 속 대화조차 멀어졌다. 꽁꽁 잠긴 방에서 뭘 하는지, 달라진 이유를 몰라서 속이 터졌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게 친구가 던지듯이 말했다. “드디어 시작이다. 사춘기.”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전주에서 동화를 쓰고 있는 다섯 명의 작가가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이라는 책을 펴냈다. 책을 읽으며 그때 아들이 왜 방문을 잠갔는지, 닫힌 방 안에서 어떤 생각 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 속 아이들은 다양한 문제와 고민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가슴이 나오고 생리가 시작된 데다가 또래 여자애들과 못 어울리면 자꾸 불안한 이나, 여드름과 털, 이상한 냄새가 나 스스로 낯설고 못난 아이로 변해가는 것 같아 걱정인 주홍이는 성적인 변화가, 요동치는 감정이 혼란스럽다. 귀엽기만 하던 볼살이 부푼 찐빵처럼 느껴지고 튼튼한 허벅지가 통나무처럼 거대해 보여 고민하는 윤서, 반면에 거식증에 걸린 자신과 다르게 잘 먹고 건강한 윤서가 부러운 소희, 전학 온 친구를 질투하다 나중엔 열등감에 빠진 영서는 친구와 자신을 비교하며 힘겨워한다. 여자친구 윤지가 아끼는 강아지를 질투할 정도로 사랑에 빠진 종범이, 아토피로 고통받는 덕준이, 필리핀 사람인 엄마를 무시하는 말을 참지 못하는 재현이 역시 어쩔 수 없이 일렁이는 감정,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다. 사춘기는, 그 길을 걸어가는 아이들, 그 모든 걸 지켜보며 감내해야 하는 가족, 주변 사람들까지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아이들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 행동이 버겁고, 가족들은 하루아침에 낯선 외계인처럼 변해버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나 역시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수시로 솟구치는 화와 울컥 쏟아지는 눈물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오래전 내가 겪었던 사춘기가 떠올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방문 걸어 잠그고 많이 울었던 그때, 친구가 너무 좋아서, 친구 집까지 데려다주고, 깜깜해져서야 집에 들어와 야단맞곤 했었다. 매사에 서툴러 실수가 잦았고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개지는 부끄러운 행동도 떠오른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이 모든 게 결국엔 다 지나간다’라는 사실이었다. 아들 역시 묵묵히 지켜보면서 기다려주면 분명 제자리를 찾아갈 것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아들은 전자기기에 낯선 엄마를 가르치고 돌봐야 할 존재로 생각하는 듯하다. 나는 그저 순한 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고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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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7 18:52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 멜리사 마인츠 '깃털 달린 여행자'

한때 시간이 날 때마다 새를 보러 야외로 나가곤 했다. 가까운 전주천 외에도 만경강과 동진강, 새만금, 유부도, 강원도 철원, 전남 순천, 충남 서천, 경남 우포와 주남 저수지까지 이르는 강행군이었다. 그러다가도 새들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시기가 다가오면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다. 당연히 정해진 자연의 이치인데도 정겨운 모습을 당분간 볼 수 없겠구나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어느 날은 기대하지 않았던 반가운 새를 만난 적도 있고,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기다렸으나 보고 싶던 새를 보지 못하고 오는 날도 있었다. 사실 새를 공부하다 보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일이 너무 많다.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종으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번식 전략인 탁란은 애교에 불과하다. 그중 내가 가장 압도당했던 것은 쉬지 않고 1만 3천 킬로를 날아간다는 새 이야기를 들었을 테다. 공식적인 세계기록은 큰뒷부리도요(Bar-tailed Godwit, Limosa lapponica baueri)가 11일 동안 13,560km를 이동한 게 최고 기록이다. 큰뒷부리도요는 알래스카에서 호주 태즈매니아까지 11일을 쉬지 않고 날아갔던 것이다. 그 경이로움에 나는 말을 잃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추측만 해오던 이 새의 이동 비밀이 풀린 건 새에게 달았던 위성추적기 덕분이었다. 내가 풀리지 않던 숙제는 새는 어떻게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이동하는가였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처럼 쉼 없이 하늘을 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가능한 이유는 새가 뇌의 절반이 최소한의 기능만 하면서 쉬고 나머지 반만 깨어서 활동하는 단일반구서파수면(USWS)이라는 휴식상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깃털 달린 여행자』를 읽으면서 내가 평소 새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철새가 길을 찾는 법, 이주 과정에 도사린 위험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많이 다루고 있다. 살다 보면 가끔 길 잃은 새가 발견되어 화제에 오르는 일이 있다. 우리가 흔히 미조(迷鳥)라고 부르는 길 잃은 새가 여기에 해당한다. 평소 주변에서 볼 수 없었던 새 이야기를 들었을 때, 탐조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하기야 꿈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그런 새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나에게 항상 새는 많은 것을 시사해 주었다. 나는 여전히 새 이름도 모르고 버벅거리지만 그 경이로운 탄생과 장대한 여정을 보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일상에 지친 나에게 생존을 위해 기나긴 여정을 택해야 하는 철새의 운명이나 회귀를 포기하고 텃새로 전락해버린 새 이야기는 여전히 흥미롭다. 과연 우리는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가끔 풀리지 않는 의문이 들 때마다 오늘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늘을 날고 있을 새를 떠올린다. 그들이 긴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기원한다. 우리들도,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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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20 18:5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근혜 작가, 김란희 '금딱지와 다닥이'

SNS에서 우연히 『금딱지와 다닥이』(비공)란 동화책을 접했다. 제목이 특이해서 내용이 궁금했던 차였는데 그 책이 얼마 전 내게 왔다. 인연이란 이렇게 부지불식간에 맺어지는 것이었다. 작가 김란희는 91년도 통일문학상공모전에서 통일상을, 2005년에 <창비어린이>에 「외삼촌과 누렁이」로 등단했다. 지금은 전주에서 동화작가이자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시라니 모르긴 몰라도 오다가다 마주쳤지 싶다. 그래서인지 동화집에 더욱 애정이 간다. 『금딱지와 다닥이』는 ‘글 쓰는 일이 세상에 덜 부끄럽고 사람들에게 조금만 미안하면 좋겠다’라고 말한 김란희 작가의 첫 단편동화집이다. 작가가 긴 시간 가장 정제된 단어로 직조한 아홉 편의 단편은 블링블링한 필터 대신 원본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냈다. 덕분에 동화를 읽는 내내 공포 영화를 보듯 섬뜩하면서도 통쾌했고, 불편하면서도 복숭아 스파클링을 마신 듯 달콤하고 짜릿했다. 김란희 동화의 또 다른 묘미는 사투리 구현에 있다.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지역 사투리를 문장으로 맛깔나게 구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란희 동화에 실린 사투리는 자연스럽다 못해 능청스럽다. 소리 내어 읽으면 더 찰지고 실감 난다. 단편 각각에 등장하는 할머니 캐릭터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외국인들 돌보면 돈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라며 아들만 보면 잔소리를 쏟아붓는 「외삼촌과 누렁이」의 할머니가 외강내유형의 우리네 어머니 모습이라면, 천애고아인 착한 솜이를 위해 새 부모를 점지해 준 「아기가 된 솜이」의 당산나무 할머니는 삼신할머니나 마고할미 같은 여신의 모습이다. 소외된 어린이를 향한 작가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엿볼 수 있는 「엄마 밥 줘」와 「가슴이 자라기 시작할 때」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자신의 결핍을 아이에게 전가하고, 성공을 위한 도구로 여기는 이들이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휘두르는 폭력은 다른 어떤 폭력보다 진한 상흔을 남긴다. 사랑이라는 핑계로 가하는 폭력 앞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김란희 작가는 에둘러 말하기보다 극사실주의적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 책은 어른이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욕망을 좇느라 그간 잊고 있던 진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광재 소설가는 ‘글은 그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재주로 쓰는 게 아니라 문학을 삶의 영역 안에 끈질기게 보듬고 있는 자가 쓰는 것이다. 지금 쓰는 글이 어느 지점에 가 있는지, 과연 무엇이 되기는 하는 것인지 그런 계산 따위 아예 없이 그저 한 발짝 씩 걸음을 떼는 사람(P.188)’이라는 말로 쓰는 김란희 작가를 정의한다. 재주로 글을 쓰기보다 끈기로 글을 쓴 결과가 『금딱지와 다닥이』에서 오롯이 느껴진다. 명징한 문장과 분명한 주제 의식을 겸비한 김란희 작가의 차기작이 무척 기대된다.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동화)에 당선됐다. 장편동화 『나는 나야!』, 『봉주르요리교실 실종사건』, 『다짜고짜 맹탐정』, 『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 『들개들의 숲』,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공저) 과 청소년 소설 『유령이 된 소년』, 『너의 여름이 되어 줄게』(공저), 등이 있다. 동화『베프 떼어 내기 프로젝트』는 2025년 전주올해의 책에 선정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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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8.14 10:1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김경숙 '오늘 또 토요일?'

똑같은 토요일이 다섯 번 반복되는 판타지 동화다. 주인공 장일주가 겪는 토요일의 반복은 무엇을 말하려하는 걸까 궁금했다. 낯선 동네에 이사 오자마자 벌어지는 일을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본인 말고 다른 등장인물들은 새로운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주에게는 변화무쌍한 토요일이 반복된다, 마주치는 동네 어른들과 또래의 아이들, 문방구에 서있는 블랙이라는 개까지 일주에게 친근한 이는 하나도 없다. 이사 온 첫날부터 다투기 시작하는 엄마와 아빠, 일주는 집에 있지 않고 자기를 배척하는 이들 속으로 매일 나간다, 하지만 날은 변하지 않고 갈수록 태산으로 큰일만 생긴다. 그리고 여전히 토요일이다, 전 동네에서 절친했던 민재에게까지 서운한 마음이 들 정도로 아무도 일주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누구나 오늘을 산다. 아주 만족했던 날, 아주 낭패 본 날, 그저 그런 날 등등 다양한 하루를 산다. 그날을 살았던 감회에 따라 오늘을 만족하고, 후회하고, 그저 밋밋하게 지나간다, 만약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오늘이었다면 다시는 그런 날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주인공 일주는 그런 혼란 속에서 지혜를 배운다, 똑같은 다섯 번의 토요일이지만 엄밀히 보면 하루도 같은 토요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아이 전학경험을 배경으로 하듯 내게도 ‘이제야 말한다.’라는 숨겨둔 비밀이 있다. 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기억 안 나는 이사를 13번을 했다. 그 중에 유일하게 기억나는 사연이다. 아버지가 군대 예편을 하고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막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였다. 그런데 서울로 간 학교 화장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잠깐 다닌 학교의 화장실은 그야말로 화장실이었다. 교장 선생님이 매일 비질을 해서 어디보다 깨끗했다. 짐작되겠지만 서울 학교는 그냥 변소였다. 도저히 갈 수 없었던 나는 ‘싸고 말리고를 반복하다 집으로 탈출한 기억이 난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변하는 건 없었다. 틈틈이 교직원 화장실에 잠입했었다. 작가는 전학시킬 학교에 미리 갔을 때 선선한 날임에도 땀을 흘리는 아이를 봤단다. 누구나 첫 경험은 다 있다. 매일 마주치는 일이 어제와 다른 그리고 같은 오늘이다. 작가의 말에 아이의 걸음마를 인용해 말하는데 비단 그뿐 아니라 어른들도 직장에 나가는 첫날이나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쓰고 있다. 매번 쓰는 서평이지만 ‘나는 왜 여기까지일까?’ 수시로 낯붉히며 원고를 보낸다. 하지만 그만 두지 않는 이유는 서평이 나올 때마다 하나래도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걱정은 커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앞으로 나가야 한다면 부딪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면 장일주처럼 지혜가 생긴다. 낯설음이 농이 짙게 익어가는 날이 온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당선, 2018년 동양일보 동화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레오와 레오 신부>, <가족이되다>, 오디오북 <구멍난 영주씨의 알바보고서>,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공저.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 <사춘기, 우리들은 변신 중>이 있다. 현재 아이들과 동시쓰기를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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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30 19:2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정창근'남사당의 노래'

그를 처음 만난 건 2004년 여름 전북작가회의 사무실에서다. 젊은 작가들과 어울리고 싶다며 입회원서를 쓰겠다고 했다. 한 뼘 높이의 스프링노트를 내밀고, 무작정 한글 워드 작업도 부탁했다. 일흔 중반의 노(老) 작가가 볼펜으로 힘주어 쓴 글자들은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나 6·25전쟁은 뻔한 소재가 아니에요. 그 역사에서 우리는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했잖아요. 더 파고들어야 합니다. 젊은 작가들에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요. 저도 조국 통일에 도움 되는 글을 쓸 겁니다. 내 남은 생을 온통 소설 집필에 바칠 겁니다.” 몇 차례의 만남에서 그는 글쓰기에 대한 당위와 다짐을 들려줬고, 그 후 20여 년 동안 쉬지 않고 소설을 쓰며 약속을 지켰다. 지난봄 작고한 정창근(1930∼2025) 소설가 이야기다. 소설가 정창근은 누구도 넘보기 힘든 수식어가 있다. 첫째는 남과 북에서 자기 뜻으로 소설을 발표한 유일한 국내 소설가다. 독일 국적으로 살던 1989년 북한 문인들의 초청으로 2주간 북한을 방문한 그는 월간지 『통일문학』(조선문인협회)에 ‘동진’이란 필명으로 소설 「들쥐」를 발표했다. 한국전쟁 후 사회개혁을 외치던 지식인들이 변절하는 상황에서 개혁의 뜻을 굽히지 않던 한 젊은이의 방황과 좌절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둘째는 90대까지 왕성한 필력을 보여준 장편소설의 장인이다. 전주 출신인 작가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민주화운동에 몸담았다가 1974년 간호사인 아내와 함께 독일로 갔고, 그곳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솟아난 노래」(1985)를 시작으로 『남산 위의 저 소나무(전 5권)』(1994)와 『포츠담 인터체인지』(1995)를 냈다. 1997년 귀국해 정읍에 터를 내리고는 오직 소설 쓰기만 매달렸다. 고희인 1999년에는 『소설 정여립』을 냈고, 2000년 ‘남북 두 조국에 보내는 독일 망명객의 사랑 이야기’를 부제로 한 『브란덴부르크 비가』, 2013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인 『슬픈 제국의 딸: 데이신다이』, 2014년 임진왜란 때 역관 홍순언의 일대기를 다룬 『마자수의 별이 되어』 등 쉬지 않고 발표했다. 국내외 문예지에 중·장편소설을 연재하고, 퇴고를 거쳐 다시 세상에 내는 일도 반복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쫓기는 심정으로 글쓰기에 몰입했고, 구상이 끊기지 않도록 펜을 잡으면 몇 날 며칠 쉬지 않고 단숨에 써 내려갔다. 심지어 90세를 넘기고도 장편소설 『보복』(2020), 『쪽발이』(2021), 『북소리』(2022)를 발표하며 상상 초월의 필력을 보여주었다. 그의 소설 쓰기가 멈췄다는 비보를 듣고 첫 만남에서 받은 『남사당의 노래』(모시는사람들·2003)를 다시 펼쳤다. 이 작품은 침묵과 인(忍)으로 힘겹고 고달픈 세월을 끌어안고 유랑했던 남사당패의 삶에 동학농민혁명을 녹여낸 그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혁명에 참여한 남사당패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영웅이 아니라, 백성 그 자체임을 역설한다. 정창근 소설가가 평생 숱한 문장으로 전하고자 했던 고단한 삶의 애환과 예인의 혼, 폭압에 대한 항거, 시대의 해학, 따뜻한 위로가 행간 가득 스며있다. 스스로 남사당이 돼 통일의 노래를 불렀던 작가가 뱉어낸 피의 언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이름을 부르는 시간>, 어린이희곡 <뽕뽕뽕 방귀쟁이 뽕 함마니>, <노잣돈 갚기 프로젝트>, <쿵푸 아니고 똥푸>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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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23 18:16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시인 - 유종화 시집 '그만큼 여기'

바깥이 아득한 것들은 눈 밟는 소리를 냅니다. 건조대에서 나부끼는 옷의 실밥 같죠.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같죠. 만져도 손을 베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갱이는 잘 여물어 있습니다. 그림의 마크 로스코가 그러죠. 색의 면은 힘세고 단순하지만, 가장자리는 숨결같이 나풀거립니다. 시의 유종화가 그러죠. “공황장애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는” 화자와 “할아버진 나만 좋아해 하며 짱짱한 개망초꽃님으로 오시는”(‘얼굴’ 중) 손녀의 메시지는 진하지만, 안으로 팔을 잡아끄는 언어는 연하죠. “좋은 노래는/ 끝으로 갈수록/ 첫 소절 입김이었// 다”(‘짹!’ 전문). 첫 입김을 보면 그 노래를 판가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은 시작을 보여주는 것만은 아닙니다. 나아갈 곳을 가리켜주죠. 왜 거길 가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첫울음, 첫맛, 첫걸음, 첫말, 첫돌, 첫인상, 첫사랑, 첫날, 첫비…… 헤아릴 수 없죠. 순수와 무서움과 설렘이 펄럭이죠. 발끝에 차이는 이슬 소리가 새로이 들리죠. 뇌를 ‘띠옹’하게 하는 냄새가 나죠. 부러져 잔디밭을 뒹구는 햇발 같죠. 은빛 테두리를 뽐내는 구름 같죠. 하지만 끝으로 가는 길은 복숭아씨같이 단단합니다. 그 길은 한걸음 한걸음 따복따복 걷는 것이죠. 온몸이 짜임새 있게 짜여 걷는 것이죠. 가는 곳을 짐작하고 걷는 것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팔과 다리를 한결같이 움직이며 걷는 것이죠. “오른쪽이 내장산이야/ 근데 왼쪽도 내장산이야/ 그 줄기거든”(‘당신’ 전문). 좌우가 다를 바 없습니다. 단풍 빛깔이 무르지 않고 야무지기 때문입니다. 빗발이 그 사이로 발을 쏙 집어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나에게/ 넌 ‘우우’를 잘하는 놈이야,라고 말한다// 이 사람 저 사람을 연결하여 한 판 만드는 일을 잘한다는 말인데/ ……// ‘우우’의 말뜻은 말야/ 함께 가는 거기부터가/ 선물 같은 생의 길이라는 거야”(‘우우’ 중). 사람을 잇는 일을 시인은 ‘조금 심란하고 무책임한’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함께 가면 꽃무릇 같은 것이라 합니다. “하늘이 높은 까닭은/ 땅 위가 편하라고 그랬다는 걸/ 나처럼 철없는 놈도 맘 편하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개울물은 많으나 적으나 흘렀고/ 나도 그만큼 그만큼 여기다”(‘하늘이 높은 것은’ 중). 시인은 철이 없어 날이 서있지 않습니다. 아니, 철이 덜 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중심은 흔들림 없이 강한데 변두리는 헝겊처럼 여립니다. 중심엔 묵직한 한 방이 있죠. 아니, 가운데가 어딘지 모르고 힘차게 날리는 바람 자루 같죠. 아니, 볼 때까지는 보이지 않죠. 하늘엔 천장이 없습니다. 장대를 짚고 날아도 머리를 찧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10km 남짓 상공을 보며 여행해도 콩~ 코를 부딪치지 않죠. 시인은 땅 위가 편하라고 그랬다 합니다. 적으나 많으나 그만큼, 그렇게 ‘아프고, 사랑하고, 살아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아르코 문학창작기금에 선정돼 2023년에 첫 시집 〈오늘의 눈사람이 반짝였다〉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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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16 16:4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아현 소설가-권진희 '언제라도 전주'

서울에서 전주로 다시 내려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혹자는 나를 붙잡으며 내려가면 심심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때는 자신도 떠밀려가는 느낌이 들어 우물쭈물하느라 속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언제고 그때의 선택이 알맞았다고 자부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그에 대한 대답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신변잡기의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할 말은 다음과 같다. 전주에서 사는 일은 꽤 분주하고 바쁘다! 날이 좋으면 천변과 근교의 산책로를 걸어야 하고, 여름이 되면 시원한 도서관으로 피서하러 다니고, 틈틈이 전주국제영화제, 책쾌, 독서대전을 구경하러 나서야 하고, 때때로 무형유산원에서 열리는 공연도 보러 가야만 하고, 온갖 생활체육대회와 축제를 즐기느라 바쁘다고 말이다. 물이 좋은 동네라서 늘 맛이 좋고 신선한 식재료며 제철음식이 눈에 띈다. 그러나 즐길 것이 넘쳐나는 통에 잠시 해찰하면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날짜가 지난 현수막을 보며 바닥에 발을 구르는 일은 매년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항상 고개를 죽 늘이고 두리번거리며 재미와 제철 따위를 찾아다녀야만 한다고. 숨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을 테다. 이런 나의 심정을 한 권으로 정리한 책을 찾았다. 여느 때처럼 콩나물국밥을 시원하게 한 그릇 먹고서 남부시장을 어슬렁거리던 날이었다. 책날개 속 작가 소개가 내 마음을 한 번에 훔쳤다. ‘전주에 살면 무슨 재미냐는 말에 맛집과 책방 이름으로 랩을 하고, 지하철이 없으면 뭘 타고 다니냐는 말에 한옥마을에서 비빔밥을 타서 전북대에서 콩나물국밥으로 환승한다고 농담합니다.’ 작가 소개에서도 느껴지듯이 『언제라도 전주』는 작가가 전주에 가지고 있는 애정뿐만 아니라 그의 취향, 시선, 유머로 가득하다. 겹치는 것이 있으면 반가움에, 새로운 것이 있으면 호기심에 정신없이 책장을 넘겼다. “어떤 사람들은 고작 며칠 머문 다른 나라 다른 도시 전체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머문 시간만큼, 헤맨 땅만큼 겨우 알 뿐이다. 여행지 뿐만 아니라 고향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더 큰 도시, 더 많은 가능성과 더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은 도시를 동경한다. 그러나 짐작뿐이지 않나. (133쪽)” 이 구절이 마음이 콱 박혔다. 언젠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왜 전주에 있으려고 해요?’ 그때 나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전주만큼의 분주함이 좋아요’ ‘도시는 고유한 속력을 갖는다’라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전주만의 고유한 속력이 딱 알맞은 사람인 셈이다. 돌아오는 주말에 건지산 둘레길을 걸어볼 요량이다.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미뤄둔 것이 벌써 수년이 되었다. 작가는 가을의 건지산을 추천했지만 예습하는 셈 치기로 했다. 책 안에는 가까워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다 한 번도 가지 않은 여러 얼굴의 전주가 수두룩하다. 이참에 다같이 『언제라도 전주』의 목차 중 무엇이라도 골라 새삼스레 전주 여행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 최아현 소설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아침대화>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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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9 19: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로이스 로리 '기억전달자'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여름의 태양이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다. 빨간 태양은 불길처럼 타오르고 해가 질 때는 사위어가는 빛깔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뭇잎들은 금방이라도 초록 물이 주르륵 흐를 것 같다. 아무리 바빠도 계절에 따른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여름 한가운데에 놓인 여러 색깔과 형태의 다름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온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 색깔이 사라진다면, 계절이 사라진다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선택하지 않아도 먹는 것과 직업에 대한 고민이 없어지고, 아이를 낳지 않아도 배급받을 수 있다면, 나이가 들어도 질병이나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감정의 동요 없이 일상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다면 어떨까? 무채색의 사회, 변화가 없어서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는 사회라면? 위와 같은 사회를 보여주는 작품이 ‘로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이다. 작품 속 사회는 모든 것이 규격화되어 있다. 아이를 낳는 산모가 따로 있고, 차이가 가져오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거울도 없는 사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도 정해져 있고, 주머니가 있는 재킷을 입는 것도 선택할 수 없다. 1년에 50명의 아이만 낳을 수 있는 사회, 배우자도 신청해야만 한다. 이곳은 공동체에 적합한 사람이 되도록 표준화된 교육을 받는다. 가정마다 스피커가 있어서 모든 것을 통제한다. 마치 ⟪1984⟫나 ⟪멋진 신세계⟫처럼 암울한 미래 세계를 보여준다.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에 당혹스럽기도 하고, 위험한 일에 직면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인간의 나약함에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끝끝내 이겨내기도 하고, 반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기억 전달자⟫속의 규격화된 사회도 흔하지 않지만 우발적 상황을 맞닥뜨린다. 이에 대처하기 위한 최후의 처방은 ‘기억 전달자’이다. 기억은 과거로부터 모든 어려운 상황을 겪어낸 경험의 축적이다. 이곳에서는 누구도 기억을 가지지 못한다. 즉, 색깔, 계절, 사랑, 할머니, 할아버지, 죽음, 전쟁, 고통, 행복, 크리스마스의 저녁, 썰매, 언덕, 냇가, 초록의 나뭇잎 등을 기억 전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진 도시. 그러나 ‘늘 같음 상태’가 유지되어야 평온하다고 여기는 이곳도 우발적인 현상 앞에서 당혹스러워한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게 과거의 기억이다. 기억은 평안함을 위한 처방전인 셈이다. 과거 선조들이 경험했던 기억들. 그 사회에서 주인공 ‘조너선’이 12살이 되던 해 직업 직위를 받는데 ‘기억 전수자’가 되어 기억 전달자로부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하나씩 전수받는다. 그러면서 자신이 속한 사회가 철저하게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아버지가 산모들이 낳은 아기들을 키우는 보육사이면서도 몸무게가 미달 된 아이들을 임무해제 시키는 것을 목격하고 절망한다. 임무해제는 이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를 죽이는 것이다. 아무런 죄의식 없이 몸무게가 미달 되거나 밤에 우는 아기들은 임무해제 시킨다. 조너선은 기억 전달자로부터 사랑과 기쁨, 고통, 전쟁, 추위, 햇볕의 따스함, 가족의 일상, 하늘에서 내리는 눈에 대한 감촉들을 느끼며 용기라는 감정을 전수받고 자신이 사는 곳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조너선의 집에서 돌보던 가브리엘은 밤에 운다는 이유로 임무해제를 앞두고 있다. 조너선은 어두운 밤, 가브리엘을 자전거에 태우고 마을을 떠난다. 마을을 벗어나자 비를 맞기도 하고, 배가 고파 산딸기나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허기를 채우며, 눈보라 속에서 추위에 떤다. 평온하고 안락한 것을 버리고 오직 기억 전달자가 전해준 따스함과 사랑을 기억해내며 발길을 멈추지 않는다. 조너선이 선택한 삶은 평온을 깨뜨린 것이다. 평온 대신 인간의 희로애락을, 많은 감정을, 자연에 펼쳐진 색깔을, 계절을 얻었다. 이제 일상은 위험과 고통, 인내와 고난과 아픔과 상처, 슬픔, 우울, 연민, 증오, 체념 등을 안고 살아내야 한다. 그러나 조너선의 선택에 위로를 건네지 않으련다. 입체적인 일상 속에서 다양한 삶의 결을 느낄 수 있으니까. 다양한 기억을 소유하고, 자신의 기억까지 만들어가는 삶은 누군가의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힘겨운 시간도 미래의 등불이리라.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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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7.02 18: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소설가-시몬느 드 보부와르 '아주 편안한 죽음'

2025년 5월 8일, 향년 79세로 타계하신 스승께서는 생전에 단언하신 바 있다. 문학의 본령은 깃발을 꽂는 데 있다고. 문학은 모든 예술 활동 중에서도 가장 느리게 도착하는 후발대지만, 그 느림 속에서도 깃발을 꽂는 행위로 인간의 삶 한가운데 종지부를 찍는다고. 이후로도 삶은 이어지지만 그것은 변주일 뿐이라고. 그러니, 느리게 간다고 초조해할 필요 없고 빠르게 간다고 우쭐할 것도 없다고. 스승의 단언에 오독이 없길 바라며, 청년 시절 고향 강릉을 떠나온 스승께서 환갑이 넘어 다시 찾은 뒤에 하신 말 또한 깃발에 관한 것이었다. “마침내, 내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고향 땅에 꽂았다.” 그 한마디가 닫힌 강의실 안을 감돌던 회환과 맞물려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았다. 뚜렷한 인과를 설명할 순 없지만,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의 죽음을 준비했었는지 모른다. 사신의 그림자가 언제쯤 어머니를 덮칠지 몰라, 마음 한구석이 불안으로 젖어 있던 날들이 많았으니. 새 정부 출범의 깃발이 오른 달에 『아주 편안한 죽음』이라는 책을 소개하자니 어딘지 어색하다. 그럼에도 시몬느 드 보부와르의 이 책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면은 이재명 정부와 공명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1963년 10월 24일 목요일 오후 4시.” 저자의 어머니가 집에서 쓰러지고 병원에 옮겨진 다음 날, 대퇴골 골절 소식을 전화로 들은 시각이다. 어머니는 검사 중에 암이 발견되고 한 달여 만에 세상을 떠난다. 그동안, 저자가 병원에서 어머니를 수발하며 느끼고 사유한 것들이 책의 중심을 이룬다. 끝내 타인일 수밖에 없었던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자신을 용서하는 것도 수발의 시간 속에서 비롯된다. 관찰과 사유의 문장이 자주 등장하며 마음과 시선을 붙잡는다. 밑줄을 긋고 그 여백에 저마다의 사유를 뻗어나가게 만드는 책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죽음과 돌봄에 대해 더 깊은 웅덩이를 파는 경험을 하게 된다. 책 후반에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담론이 스민다. 이를테면 192쪽에서 “엄마가 그 수요일 아침에 돌아가셨더라면 ~ 악몽과 슬픔 등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나 역시 치매에 걸린 어머니로 인해 겪은 긴 시간의 감정을 하나씩 떠올리게 한다. 193쪽 “엄마의 임종을 늦춤으로써 ~ ,”는 함께한 시간이 회한 없는 작별로 이어졌음을 드러낸다. 194쪽에서는 “공포와 고통과 싸워 얻은 승리를 통해 ~ 실상 엄마의 죽음은 비교적 편안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의 제목 『아주 편안한 죽음』은 수사적 미화가 아니라 정서적 실체와 가깝다. 집이 아닌 병원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가족의 손길을 느꼈기에 다른 세계로 떠나는 저자의 어머니는 분명, 안도했다. 스승님의 말처럼, 문학은 결국 깃발을 꽂는 행위인지 모르겠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의 죽음 위에 언어의 깃발을 세워 사유를 이끈다. 그것은 인간이 타인의 죽음을 곁에서 바라보며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적 제의다. 전체적으로 소설적 구성을 띠고 있지만, 회환이나 감정의 파동보다는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을 냉철하게 응시하려는 철학적 에세이에 가깝다. 책은 죽음을 대하는 감정의 바닥을 관찰하는 동시에, 독자에게 불편하고 진실한 질문을 던진다. 오은숙 소설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을 계기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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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8 18:4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시인-앤드루 포터 '사라진 것들'

지난 주말 무주산골영화제에 다녀왔다. 깊디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그 느낌이 좋아서 무주를 남몰래 애틋해 했고, 작은 영화관 하나 없는 곳에서 영화제를 연다는 그 무모함이 멋져서 매년 응원하는 마음으로 영화제 기간에 무주를 찾곤 했다. 덕유산에서 별 반짝이는 밤하늘을 처마 삼아 피크닉 매트에 앉거나 누운 사람들과 섞여 영화를 봤다. 상영작은 마지막까지 흥미로웠고, 숲을 통과하는 바람에선 서늘하고 알싸한 맛이 났다. “아까 별똥별 봤어?” 하는 웅성거림을 바람결에 들었다. 여행 가방을 끌고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지는 사람들. 체력을 다 소진한 지인과 나는 이른 새벽, 굽은 길을 더듬어 집으로 돌아왔다. 조금 전까지 축제 한복판에 있었음에도 어쩐지 그 중심에서 비켜난 듯한 느낌이 선명해서 앤드루 포터의 <사라진 것들>이 떠올랐다. 이 책에는 서너 페이지 분량의 초단편을 포함해 소설 열다섯 편이 수록돼 있다. 각각 다른 인물들의 독립적인 이야기이지만, 마치 모든 작품이 연결된 연작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화자가 모두 40대의 중년 남성이라는 점과 주인공이나 주변 사람이 예술계에 몸담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일 수 있겠다. “참 이상한 일이다. 마흔세 살이 되었는데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다니, 삶의 어느 시점에서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는 걸 깨닫다니. - ‘라인벡’ 부분 <사라진 것들>은 ‘잃어버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첼로 연주자가 희소 질환으로 한순간에 재능을 잃어버리고(‘첼로’), 부를 거머쥔 절친한 친구가 갑자기 실종된다거나(‘사라진 것들’), 한 소녀가 부부의 관계를 영영 바꿔놓고 무성한 소문들 속으로 자취를 감춰 버린다든가(‘히메나’) 하는 사건들 말고도 일상의 작은 틈새로 조금씩 빠져나간 것들도 있다. 부모가 되기 전과 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에 대해 다루는 ‘담배’는 아이가 생겨남으로써 변한 일상을 그린다. “그때 우리가 어떻게 알았겠어? 그 모든 게 변한다는 것을. 그런 우리가 영원할 순 없다는 것을, 첫아이가 태어나면 담배가 영원히 사라지고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 와인과 심야의 여유도 사라진다는 것을. 이제 우리가 함께하는 인생은 더욱 풍부해지고, 사랑과 선의는 두 배가 되고, 집안에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웃음과 더 많은 재미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는 줄어들겠지.” - ‘담배’ 부분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이 사라진다. ‘한때’라고 부르는 다정함에 속해 있던 것들이 흩어지고, 흘러가고, 흐릿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과 ‘존재함’ 사이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 나는 ‘상실’을 감당해야 한다. “밖에서는 가끔 자동차가 지나가는 소리, 젊은이들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 나는 그런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된 것일까?” (‘오스틴’) 낭만이 넘쳐흐르는 무주를 떠나오면서 나는 정확히 이 문장과 하나가 됐다. 술 대신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거실의 1인 소파에 앉아 평안을 느꼈다. 때때로 “예전에 지녔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혹은 버려두고 떠나왔다는 느낌”(오스틴)이 들고는 했지만, 그 서운함에서 한 발 비켜나면 새로운 발견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 밤의 잔디밭 위에서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과 셔틀버스 기사가 틀어놓은 트로트와 어둠의 종아리를 씻기는 계곡의 물소리 같은 것. 부재를 채우는 것 역시 시간이 우리 삶 속에 일찌감치 파종해 놓았음을 <사라진 것들>을 읽으며 깨닫게 된다.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자칭 ‘산책중독자’. 오래된 골목을 유람하며 채집한 이야기로 시도 쓰고, 산문도 쓰며 살고 있다. 현재 전주문화재단 문예진흥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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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11 19: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정양 '나그네는 지금도'

낭떠러지 같은 이별을 하고 돌아와 이 글을 쓴다. 문학의 숲, 그 박질의 땅을 뚫고 뿌리내린 커다란 나무이며 평생의 스승이셨던 정양 시인(1942~2025.5.31.)이 영면에 드셨다. 강의실에서 처음 선생님의 시를 낭송했을 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던 봄이었다. 그때 나에게 자의식이란 게 있었던가. 노년의 시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시론을 펼칠 때 문학판 사이를 겉돌던 나는 검은 휘장처럼 무거웠으며 자의식은 빈약했다. 부조화의 세계였으나 시간의 균열과 주름 사이 늘 선생님의 존재는 확고부동했다. 공전하는 계절을 뒤로 총총히 사라진 선생님을 애도하며 수많은 저서 중 첫 번째 시선집 『나그네는 지금도』(2006,생각의 나무)를 다시 읽는다. 시인이 직접 고른 시선집은 연대기에 따라 엮어졌다. 1980년에 출간한 첫시집 『까마귀떼』로부터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등 여섯 권의 시집에서 총 90편을 추렸으니 해학과 초절정의 언어미학에 편편이 충격과 경이감이 사무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욱한 제자가 자칫 스승의 그림자라도 밟을까 두렵다. 하여 시선집에 대해 문단의 정통한 이들의 평가로 대신해야겠다. “언어적인 기교와 관념의 교감 없이 독자를 감동시킨다”라고 오세영은 평하였고 오랜 벗이었던 오하근은 “이 시대를 사는 방법과 진리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하였으며 박태건은 “절실한 감성과 소박한 언어 의식이 감동의 근거가 된다. 즉 직선적이고 솔직한 언어로 독자와 소통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슬픔, 그것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큰 슬픔에서 기인한 것이기에 어렵고 현학적인 말장난이 들어갈 겨를이 없다. 심장에서 곧바로 튀어나오는, 슬픔의 최상급에서 느껴지는 극한의 아름다움을 갖는다”라고 정의했다. 문학의 미적 체험과 별도로 선생님과의 정서적 교류가 압도적이었던 나는 해학의 정신을 품격있게 풀어내셨던 당시를 떠올리며 새삼 곡진한 슬픔에 잠긴다. 정량화할 수 없는 그리움의 밀도를 가장 가까이 지켜봤던 김병용 소설가의 말로 갈음하고자 한다. “정양 시인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호칭을 사용할 수 없는,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최소한 술자리의 삼 분의 일쯤은 소집되지 않았거나, 미국이나 총칼로 집권한 군인들을 덜 미워했을지도 모른다. 육회나 바지락죽의 깊은 맛도 몰랐을 것이고 이병천 형이 수도 없이 막걸리값을 치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늘 바쁜 안도현 형이 집에 들르지 않고 ‘새벽강’으로 달려오는 일도, 정양 선생이 안 계셨다면 정양 선생이 아니었다면...”. 선생님은 언젠가 나와의 인터뷰에서 “한때는 시 쓰는 걸 그만두고 암실에 처박혀 지낸 적 있어요. 정치적으로 암울한 시기였는데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이 안쓰러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카메라를 둘러메고 참 많이도 헤매고 다녔어요. 인간의 불행과 고통을 사진 속에 담아서 그 삶의 음영들을 재현하는 일에 심취했었다고 할까요” 또 선생님은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문학적 상상력도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래도 시인은 문제의식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고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내가 늙어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니 아무렇지 않은데 제자들도 나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깝고 서글퍼요” 이제 더는 선생님께 늙어버린 제자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 속으로 들어간 선생님이 벌써 그리워 나는 한동안 환상통을 앓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우리는 선생님이 걸었던 그 길을 갈 것이다. 본디 길이란 우회와 잃음을 본질로 하지 않겠는가. 늘 그랬듯이 정양 선생님은 고독의 유배지와 다름없는 구불구불한 이 길의 배경이 돼 주실 것이라 믿는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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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6.04 18:4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은영 작가-티나 오지에비츠 '도시의 불이 꺼진 밤'

지난달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비행기, 철도, 지하철의 운영이 중단되었고 전화, 인터넷이 끊겼다. 신호등이 꺼진 도로에서 차들은 우왕좌왕했고 멈춰 선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은 구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정적과 어둠으로 뒤덮인 도시는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로 다가왔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을까? 사실 도시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고 있다. 문득 전기가 사라진 도시를 보며 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림책 『도시에 불이 꺼진 밤』에는 발전소가 고장이 나 깜깜해진 도시에서 비로소 제 존재를 드러내는 생물들이 나온다. 가재는 해가 진 뒤에도 대낮처럼 환한 호수를 견디지 못해 호수 끄트머리로 밀려났다.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살았던 곳을 떠나 불빛이 비치지 않는 조그만 땅으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 어둠이 호수 전체를 감싸자 어릴 때 잠을 자던 호숫가의 익숙한 나무 기둥까지 가본다. 가로등 밑에 사는 분꽃은 불빛 때문에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해가 지면 꽃받침을 펼치고 다채로운 모습을 드러내는 다른 꽃을 보며 ‘나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걸까?’ 고민한다. 하지만 가로등 불빛이 꺼지자 비로소 꽃잎을 활짝 펼친다. 주차장 덤불 속에 사는 고슴도치 역시 밖으로 천천히 나와 밤새 돌아다닌다. 그동안 밖은 밤낮으로 시끄럽고, 밝아서, 먹이를 찾기도 힘들었다. 다른 고슴도치를 만난 지도 너무 오래라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풀밭으로 올라온 개구리는 목청껏 울어대고 날개를 활짝 펼친 나방은 곧장 어둠 속으로, 꽃들의 품 안으로 날아간다. 오소리는 새끼 오소리들에게 처음으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굴 밖으로 나오고, 올빼미는 날개를 쫙 펼치며 날아오른다. 도시의 난개발에 밀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던 생물들은 불이 꺼진 도시에서 당당하고 아름답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간다. 이상기후로 지구 곳곳에서 재난이 발생하고, 신종 바이러스가 발생해 생존을 위협받는 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이미 늦어버린 건 아닐까 조바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 희망은 있다. 오직 인간의 편리만을 위한 개발을 멈추고, 다른 생명과의 공존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지구는 우리가 꿈꾸는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숨 쉬고 있는 생물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도시 역시 평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 2024 남도의병 콘텐츠 공모전 스토리 부분 대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광대특공대』,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 전주』,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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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8 18:3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장창영 작가-고대현 '어쩌다 환경인'

어떤 책은 가볍게 세상에 나오고 어떤 책은 긴 시간 숙성되어 독자들과 만난다. 『어쩌다 환경인』, 이 책은 후자에 속한다. 그만큼 이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환경교육’이라는 다소 생소한 단어가 등장한 이후 지자체나 교육기관 등에서 환경의 중요성과 대응 전략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최근 들어 기후 위기, 지구 온난화 등 환경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실제로 이른 더위가 일상화되며 5월임에도 한여름 같은 기온이 이어지고 있다. 그 중심에 환경이 있음은 물론이다. 환경교육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처한 삶과 미래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직면하고 있는 실체이다. 환경을 언급하면서 올해는 얼마나 더우려나, 또 추우려나와 같은 단편적인 감상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환경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형태의 연수도 이루어지고 있고 양질의 자료도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 교사나 일반인에게 환경교육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당연히 학생들의 진로교육 등에서 다루는 환경 관련 비중도 미미하다. 가장 큰 이유는 교육현장에서 환경문제 전문적으로 다룰 만한 교사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기도 교육청에도 환경을 전공한 교사가 손에 꼽는다고 할 정도이니 다른 시군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환경에 대한 현장의 현실적인 수요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 끝에 만들어졌다. 일선 현장에서 환경을 담당하는 시민과학자, 도예가, 환경교사 등 13명의 저자는 자신들이 왜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일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풀어놓는다. 거창한 소명의식이나 사명감보다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 우리가 처한 환경의 현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들을 환경인의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제목이 ‘어쩌다 환경인’인 이유이기도 하다. 저자가 학생들과 함께 지역 환경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그 안에서 새롭게 배우고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읽다 보면 우리 지역의 현실은 어떤가 의문이 저절로 생긴다. 말로만 듣던 공정여행이 어떤 식으로 현지인들과 공생의 방식을 찾아가는가를 알아보는 일도 즐겁다. 유약의 중금속이 환경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안을 마련해가는 도예가의 모습에서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우리 주변에서 환경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는 13명의 목소리이자 우리 삶에 대한 진솔한 고백이다. 더 늦기 전에 오늘이라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언제나 그렇듯이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때로는 가장 빠른 법이다. 장창영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2003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도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시집으로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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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5.2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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