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자, 실로 그리다
“실로 그림을 그립니다. 실과 천을 다루는 일은 어릴 적부터 친숙하게 해오던 일이에요. 지난 50년대에는 실과 바늘로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했고, 60년대부터는 염색과 직조를 병행하며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임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가 내년 2월 18일까지, 작품 90여 점을 공개해 1970년대 태피스트리를 국내 처음으로 소개한다.
이신자(李信子, 1930~)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 현대공예를 대표하는 1세대 섬유공예가이자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매진한 헌신적인 교육자이다. 특히 이신자는 우리나라에 섬유예술이라는 개념이 없을 때 일상의 용도로 사용하던 평범한 재료로 새로운 조형적 실험을 하며 ‘실의 예술’로서 섬유예술의 깊이를 확장했다. 창의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갔고 후학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참다운 삶을 끊임없이 탐구해나간 이신자 작가의 작품은 생생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전시는 원형의 전시장 입구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면서 4부로 나뉘어 전시된다. 1부는 ‘새로운 표현과 재료(1955-1969)로 내면화된 자연의 정서와 정경들을 대담하게 단순화하였다. 자유롭고 거칠지만 대담한 시도는 국내 태피스트리의 바탕이 되었다. 2부 ’태피스트리의 등장‘(1970-1983)은 전통적인 태피스트리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올 풀기로 독특한 표면 질감이 두드러지고, 입체감이 뛰어났다. 기하학적인 모티브, 추상적인 도형 상하좌우 대칭적인 구도로 배치, ‘조형적 질서 잡기’를 선보였다. 3부 ‘날실과 씨실의 율동’(1984-1993)에서 작가는 어린 시절 고향의 모습과 기억을 그려냈다. 울진 앞바다에 반사된 일출과 석양을 적색, 노랑과 갈색으로 구사했다. 이 시기 정점을 이룬 작품은 길이 19m에 달하는 ‘한강, 서울의 맥’(1990-1993)으로 한강의 물줄기를 다루면서 서울의 모습을 묘사했다. 4부는 ‘부드러운 섬유-단단한 금속’(1994-2000s)으로 절제된 도상과 화면 분할, 강렬한 선의 반복으로 구상과 비구상이 공존하는 모습을 구사했다. 특히 ‘산의 정기’ 시리즈에서는 “어린 시절 울진 앞바다에서 본 바다 풍경과 아버지 손을 잡고 오르던 산의 정기엔 파도 소리, 빛, 추억, 사랑, 이별, 이 모든 것이 스며있다.”고 작가는 술회한다. 자연은 작가의 삶을 아우르는 가치이다.
이번 전시는 색상의 조화가 특별하고 신선했다. 전시장을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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