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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 리뷰] 전라감영 선화당에서 전주의 아침을 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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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홍 씨

전주세계소리축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축제이다. 지난 2001년 ‘소리사랑 온누리에’라는 주제로 축제의 문을 연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그동안 전통음악과 현대음악, 월드뮤직과 재즈, 클래식과 즉흥 음악 등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소리를 전하며 축제를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하는 문화 교류의 장으로 성장하였다. 그동안 매년 주제를 정해 전통의 깊은 멋과 고유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선보여 예술 지평을 확장해 왔다. 2024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로컬 프리즘: 시선의 확장’이라는 키워드를 주제로 임실필봉농악을 기반으로 한 개막공연 <잡색X>를 비롯해 다각적이며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이번 축제의 주제 의식을 함축적으로 보여 주었다. 

전주는 전주향교, 경기전, 전동성당 등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국가문화유산과 700여 채의 한옥이 밀집한 전주한옥마을 등 역사적인 건축물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이다. 그간 전주세계소리축제는 공연장뿐 아니라 아름다운 공간에서 원형의 음악부터 경계를 허무는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다. 

2024 전주세계소리축제에서는 전주 전라감영과 익산 나바위성당 두 공간에서 특별한 시간과 경험을 선사했다. 마티네 공연 <전주의 아침>은 전라감영 대청마루 선화당에서 펼쳐졌다. 전라감영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라도와 제주도의 행정, 사법을 관할하던 관찰사의 집무실로 2020년 전주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복원된 문화유산이다. 이 아름다운 전라감영에서 15일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 16일 <랜디 레인 루쉬와 메이 한의 월드뮤직>, 17일 <시대가 전하는 춤 이야기>로 이어진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해설과 함께 공연되었다.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는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 전현호, 그리고 정가 보컬리스트 김나리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새롭게 기획, 제작한 공연이다. 국내에서도 고음악 거장들의 공연이나 고음악과 국악 연주가들이 함께한 협업 무대는 여러 기획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크 리코더와 정가 가객이 담아내는 원전에 가까운 고음악과 풍류 음악을 접할 기회는 많지 않았기에 이번 프로그램이 눈길을 끌었다. 

공연은 친숙한 리코더가 아닌 생경한 중세 더블 리코더(medieval double recorder)를 연주하며 시작되었다. “이 악기는 1200~1300년대,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악기이고, 박물관에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실존하지 않는 악기로 고문헌 그림을 보고 만들어서 연주했다.”는 전현호의 해설이 이어졌는데, 악기를 복원하고 소리를 탐구하며 13세기 중세 음악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그의 설명은 공연에 대한 흥미를 이끌었다. 이어서 구예선, 최경선과 함께 연주한 <빛나는 별> 등 바로크를 대표하는 작곡가들의 작품을 악기와 구성을 바꿔가며 아름다운 하모니로 선사했다. 바로크 리코더의 따듯하고 맑은 소리와 섬세한 앙상블이 고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했으며, 정가보컬리스트 김나리는 1600년대 만들어진 'Upon La Mi Re’선율에 12가사(歌詞) <춘면곡春眠曲>을, 친숙한 캐논 반주에 시창 <관산융마關山戎馬>를 노래했다. 이어서 백석의 시를 가사로 한 <늙은 갈대의 독백>과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돋보이는 김나리의 단상을 담은 <꽃이 있다>는 정가의 서정성과 노랫말의 철학적 깊이를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16세기부터 문화의 흐름을 선도하는 지성인들이 모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토론하고 교류하던 공간이 바로 유럽의 살롱, 조선의 풍류방이었다. <리코더와 정가가 들려주는 노래>에서 살롱음악을 대표하는 고악기 리코더와 풍류방 음악을 대표하는 정가를 선화당 대청마루에서 들으며 동·서양 풍류의 멋을 한껏 즐길 수 있었다. 복원한 악기가 생명력을 갖고 계속 연주되기란 쉽지 않다. 바로크 리코더 연주자 전현호와 정가 가객 김나리는 악기와 노래에 생명력을 찾기 위해 서로 다른 음악과 문화에 귀 기울이며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고음악과 정가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전해진 이번 무대가 매우 인상 깊었다. 

아름다운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전주국악방송이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옥방송국이다. 한옥방송국에서 근무했던 시절, 아름다운 한옥마을을 자주 산책했다. 길을 걷다 보면 경기전, 향교, 전동성당을 비롯한 아름다운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마주할 때가 있다. “옛집(공간)은 과거의 시간을 만나는 일이자 미래를 기억하는 일이다.”라는 임형남 건축가의 말처럼 뜻밖의 순간이 오래도록 그 도시의 흔적으로 기억된다. 전주세계소리축제를 찾은 이들에게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흔적이 깃든 공간에서 접한 음악은 전주세계소리축제와 전주로 기억될 것이다. 

장수홍 피디는 

국악방송 라디오 피디로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며, 변화하는 음악과 공연예술 현장에서 벌어지는 시도와 실천에 관심을 갖고 방송과 현장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석준의 문화시대>를 통해 한국문화의 다양한 시선과 확장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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