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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시인의 '풍경'] 땅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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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덕 作

 

가을 해는 짧습니다. 반나절 도둑맞은 것만 같습니다. 돌아갈 길이 먼데 땅거미 물렸습니다. 허공에서 내렸는지, 먼 고향 동구 느티나무에서 내렸는지 눈 깜짝할 새 발뒤꿈치를 깨뭅니다. 발목 잡혀 나를 세웁니다. 오늘따라 노을이 유난합니다. “저녁노을을 보면 천 리라도 가라” 했지요, 하늘이 저리 타는 걸 보니 내일은 더 멀리 나가도 될 성싶습니다. 나락 가실 시작한 들판 건너 하나둘 등불이 돋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식구가 있는 거겠지요. 빙 둘러앉아 도란거리는 거겠지요. 등불 아래 가만 끼어들고 싶습니다. 꽁꽁 마음도 묶여 말 섞고 싶습니다. “아무 집이나 대문을 밀면, 막 봐놓은 두레 밥상을 내올 것만 같”(졸시, <저녁연기>)은 저물녘입니다.

 

등대 같은 먼 불빛에 안심했지요. 돌아가 퉁퉁 부은 발을 씻고 달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땅거미 기어간 길을 더듬어 없으나 있는 아득한 고향 집에 찾아듭니다. 아버지 초저녁잠에 살풋 코를 고시고 어머니는 행여 잊어먹을세라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십니다. 그만 땅거미가 둘러친 촘촘한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합니다. 어느새 세상은 먹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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