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6 05:43 (Thu)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문화 chevron_right 문화일반
외부기고

[안성덕 시인의 '풍경'] 땅거미

image
안성덕 作

 

가을 해는 짧습니다. 반나절 도둑맞은 것만 같습니다. 돌아갈 길이 먼데 땅거미 물렸습니다. 허공에서 내렸는지, 먼 고향 동구 느티나무에서 내렸는지 눈 깜짝할 새 발뒤꿈치를 깨뭅니다. 발목 잡혀 나를 세웁니다. 오늘따라 노을이 유난합니다. “저녁노을을 보면 천 리라도 가라” 했지요, 하늘이 저리 타는 걸 보니 내일은 더 멀리 나가도 될 성싶습니다. 나락 가실 시작한 들판 건너 하나둘 등불이 돋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식구가 있는 거겠지요. 빙 둘러앉아 도란거리는 거겠지요. 등불 아래 가만 끼어들고 싶습니다. 꽁꽁 마음도 묶여 말 섞고 싶습니다. “아무 집이나 대문을 밀면, 막 봐놓은 두레 밥상을 내올 것만 같”(졸시, <저녁연기>)은 저물녘입니다.

 

등대 같은 먼 불빛에 안심했지요. 돌아가 퉁퉁 부은 발을 씻고 달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요. 땅거미 기어간 길을 더듬어 없으나 있는 아득한 고향 집에 찾아듭니다. 아버지 초저녁잠에 살풋 코를 고시고 어머니는 행여 잊어먹을세라 자식들 이름을 하나하나 외우십니다. 그만 땅거미가 둘러친 촘촘한 그물에 걸려 옴짝달싹 못 합니다. 어느새 세상은 먹빛입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땅거미 #안성덕 #시인 #풍경 #노을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