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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에서

딸이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니까, 어언 15년 전 일이다. 고만고만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던 친구들이 뭉쳐서 모처럼 여름 여행을 떠났다. 숙소에서 꼬마들이 물놀이를 하는 동안 엄마들은 수박을 쪼개리라! 아이들이 첨벙거리며 놀 수 있는 야트막한 계곡이 있는 펜션을 예약하고 우리는 한 계절의 추억을 장만할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그날 물놀이를 하지 못했다. 폭우 뒤끝이라서 아이들이 첨벙거릴 예정이었던 야트막한 계곡은 지옥같은 굉음을 내는 폭포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물놀이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쉽사리 버리지 못했다. 우리는 그 계곡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오래 서성였다. 여름 내내 이 날을 기다렸는데! 비싼 돈을 주고 이 곳을 예약했는데! 바위에 앉아서 발을 담그는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늘이 개어서 햇빛마저 슬쩍슬쩍 오가는데, 우리에게 설마 정말로 TV에서 보듯 무서운 일이 벌어질까? 돌이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만큼 위태로운 장면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내가 계곡물에 살짝 발을 담그자마자 슬리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졌다. 구명조끼를 챙겨입은 서너 명의 꼬마들을 돌려세운 것은 내가 슬리퍼 한짝을 희생시킨 다음이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저렴한 것으로 일어날 뻔했던 비극을 틀어막았으니 우리는 그 날 행운의 돌봄을 받았다. 하지만 철없었던 나는 슬리퍼 한짝을 분실한 것마저도 꽤나 아깝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어리석다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전까지 익숙했던 ‘집중호우’나 ‘호우경보’라는 표현을 넘어선 ‘극한호우’라는 표현을 처음 듣고 어리둥절했던 그 주에 나는 4개의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강연 장소였던 서울 동작구로 향하면서 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빨리 이해한 1인이 되었다. 폭우 속에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나는 정말로 산사태가 일어나지나 않을지 두려워했다. 그날 동작구에는 극한호우의 경보기준을 가뿐히 뛰어넘는 시간당 76.5mm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본격 극한호우가 한반도를 강타했던 기간에, 나는 호우의 중심지였던 대전과 전북을 오가며 나머지 3개의 강연을 소화했다. 가족의 여름여행 삼아서 맛있는 것을 잔뜩 먹고 오자고 신나게 세웠던 모든 계획들을 떠올릴 틈도 없이, 엄청난 폭우로 눈앞이 보이지도 않았다. 한가롭게 강변 산책로에 서있었을 나무들은 싯누런 강물에 퐁당 잠겼고 저지대 통로의 통행을 제한해 교통혼란이 어마어마했다. 나는 바짝바짝 피가 마르는 기분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연신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날렸다. 어딜 가나 물웅덩이와 손상된 도로와 교통통제와 앞유리창이 보이지 않는 폭우의 연속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골목마다 통행금지를 알리는 노란 가로대가 서있었고 차를 돌이킬 때마다 강연장소까지 도착 예정 시간은 큰 폭으로 푹푹 늘어났다. 폭우와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에서 남편과 나는 다시 신혼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열정적으로 싸웠다. 남편은 이런 폭우 속에 무리하게 운전해서 가느니 조금 비가 멎을 때까지 휴게소나 식당에서 멈추어 기다리는게 낫겠다고 했고, 나는 정체된 장마전선 속에서 비가 멎을 리 없으니 지금 힘들더라도 달려서 비구름을 벗어나는게 낫겠다고 주장했다. 위험과 안전에 대한 여러 상식과 의견들이 있었으나 당장 우리 눈앞에 놓인 것은 ‘지금 저 길로 들어설 것인가’의 선택, 또 선택, 또다시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무엇이 옳은지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행운의 도움을 받아, 폭우가 내내 함께한 이틀 동안 마지막 강연에 10분 늦은 것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무사히 일정을 마쳤다. 그 10분의 지연도 청중들의 너그러움으로 넉넉히 이해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앞창을 두드리는 극한 호우 속에서 비극을 알리는 뉴스를 들었다. 지난 3일간 우리를 돌려세운 수많은 노란 가로대들이 떠올랐고, 내가 행운이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실은 많은 사람들의 묵묵한 보살핌이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그 보살핌의 연결고리가 빠진 틈에 기어이 비극은 일어나고 말았다.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겪으신 유가족들에게 애통한 마음을 전한다. /심윤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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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7 15:35

중소기업 자금지원 한점 의혹도 없어야

전주시가 대출이자의 차액을 일부 보전해주는 특례보증 사업을 펼치자 신청이 폭주했다. 소상공인과 소기업들의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다. ‘전주 희망더드림 특례보증’의 상담·신청을 받은 결과 단 9일 만에 총 1151건의 상담이 접수돼 올해 예정된 480억 원 규모의 자금이 모두 소진됐다고 한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중고'로 인한 민생경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지난 4월 전북경제통상진흥원은 중소기업 육성자금 신청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일처리로 잡음이 일기도 했다. 중소기업 육성자금 신청을 받으면서 신청 하루 전날, 당초 공고에도 없던 대기자 신청을 받은 것이다. 더욱이 접수 기간도 지키지 않아 의문이 일었다. 그 자금은 고금리 시대에도 불구하고 연금리가 1.6%밖에 되지 않았는데 선착순 방문 접수 형식으로 진행됐다. 접수를 시작한지 단 2시간 만에 조기 마감되면서 기업인들의 민원이 제기됐다. 결국 전북도는 융자 재원 약 140억 원을 추가로 확보해 접수 절차상 문제로 피해를 본 기업을 구제했다. 또한 각종 잡음을 불식시키기 위해 접수 방식도 모두 온라인 접수로 바꿨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되지않는 일처리가 우리 주변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결국 전북도는 전북경제통상진흥원 중소기업 육성자금과 관련해 자금 간 중복 지원, 기업당 융자 한도 등에 대한 개선에 나섰다. 창업 및 경쟁력 강화자금과 경영안정자금의 운전자금이 중복 지원되는 경우를 막기위해 제한할 방침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자금 간 중복 지원을 막음으로써 더 많은 중소기업이 자금을 지원받도록 하가 위해서다. 기업당 융자 한도 역시 조정해 다수의 중소기업이 자금 지원을 받는 방안을 마련키로했다. 사실 민생경제의 핵심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살아나는데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 자금지원 전반에 걸쳐 투명하지 못한 업무처리로 인해 의혹을 사는 경우가 종종있다. 정형화 된 시스템에 맞춰 누가보더라도 보편 타당한 원칙이 적용돼야 하는데 지금까지 일부 문제가 있다는 것은 행정에 대한 신뢰를 근본적으로 상실케 하는 일이다. 늦게나마 전북도가 민생경제 사무 전반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마련키로 한 것은 다행이다. 차제에 전북도 출자·출연기관 위탁사무 전반을 잘 살펴서 비효율적인 운영 방식을 확실하게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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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7 14:43

역대급 폭염 대비, 피해 예방 대책에 만전을

전국에 물폭탄을 쏟아부은 긴 장마가 끝났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된다. ‘극한 호우’에 이어 ‘극한 폭염’이 예상된다. 실제 올여름 미국과 중국·남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40도를 웃도는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 그야말로 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전 세계가 비상이다. 우리나라도 올여름 더위가 심상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지구촌을 덮친 역대급 폭염에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전국 곳곳에 폭염경보·폭염주의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온열질환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폭염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심각한 자연재난이다. 피해가 없도록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독거노인과 빈곤층·장애인·야외노동자·만성질환자 등 폭염 취약계층의 건강이 걱정이다. 이들이 불볕더위에 방치돼 불상사로 이어지는 일이 없도록 특별관리대책을 세워 추진해야 한다. 특히 고령의 농업인들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영농철을 맞아 논·밭에 나간 어르신들이 땡볕에 쓰러지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온열질환 예방 요령 알림 서비스와 드론을 활용한 논·밭작업 현장 예찰활동 등 맞춤형 대책을 확대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 폭우로 삶터를 잃고 아직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한 수재민들이 역대급 폭염으로 인해 이중의 고통을 받지 않도록 수해복구 작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 일선 지자체의 촘촘한 대책과 철저한 점검이 요구된다. 우선 폭염기간 중 더위에 취약한 어르신 및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운영하는 무더위 쉼터를 수요에 맞게 늘리고, 기존 무더위 쉼터에 대해서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성이 있다. 무더위 쉼터의 위치를 알리는 안내시스템도 재정비해 어르신들이 뙤약볕에서 쉼터를 찾아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그늘막과 같은 폭염 저감시설 확충 등 피해 예방 대책을 다각도로 추진해야 한다. 농·축산업 및 수산업 분야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이 요구된다. 각 지자체에서는 폭염 종합대책을 착실하게 추진하면서 행여 지역사회에 폭염 대응 사각지대는 없는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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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7 12:30

도의원·체육회 갑질공방, 의정활동 달라져야

전북도체육회 신준섭 사무처장과 윤영숙 도의원(익산3) 간에 예산 증액과 기념품 납품을 둘러싸고 갑질과 외압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상호 법적 대응까지 예고했다. 이번 사안이 그동안 심심치않게 불거졌던 지방의원의 갑질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정당한 의정활동인지는 점차 가려질 것이다. 하지만 예산 증액을 위한 지방의원과 피감기관의 만남이나 식사 대접, 체육회장 취임 시 기념품의 도 예산 사용, 선거를 도와준 업자와의 물품 수의계약, 도의원의 무리한 자료 요구, 인격 침해성 발언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났다. 이 중 핵심은 도의원의 물품 구입 관련 청탁과 자료 요구 및 질의 과정 등에서의 갑질 여부로 모아진다. 이와 관련해 신 처장은 사직 의사를 밝혔고, 1984년 LA 올림픽 복싱 미들급에서 우리나라 복싱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한 유명 선수 출신이어서 파장이 컸다. 우선 도의원의 청탁 여부에 대해 신 처장은 “올 1월 체육회 기본예산을 문제예산으로 삼은 윤 의원을 만나기 위해 윤 의원과 친분이 있는 사업가이자 지인인 A씨를 통해 식사자리를 마련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윤 의원이 ‘A씨를 도와주라’고 말해 A씨에게 1500만 원 상당의 민선2기 체육회장 취임식 기념품으로 체중계 500개(개당 3만 원)를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만남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수의계약을 부탁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도의원의 갑질 여부다. 신 처장은 납품 받은 체중계가 문제가 있어 이를 항의했고 이후 윤 의원이 수차례에 걸쳐 체육회에 자료를 요구하고 도정질문과 업무보고 자리에서 인신공격성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윤 의원은 자료를 3차례 요구했고 신 처장이 업무파악을 제대로 못해 질타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오비이락일지 몰라도 도의원의 갑질행위는 지난 5월에도 터졌다. 모 의원이 지역구 활동에 도의회 사무처 직원을 상습적으로 동원하고, 도청과 교육청에 특정업체의 물품을 구매하라는 압력을 넣은 내용이다. 피감기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을, 도의원의 의정활동을 앞세운 갑질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국민권익위는 2019년 지방의회의원 행동강령에서 갑질을 금지하고 있다. 도민들의 의식이 높아진 만큼 지방의원의 행태도 달라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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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6 18:00

문화예술이 살아야 하는데

우렁찬 노래를 부르며 세상 밖으로 홀로 나왔다.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 사랑받고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과잉보호 속에서 자라, 어느 날 수많은 경쟁을 하면서 넓은 세상으로 나왔다. 상처와 오해와 비난 속에서 우리의 삶이 무척 힘들고 지쳐 때론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포기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으로 덮어주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안 될까? 오랜 해외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타인 인격을 존중하는 것을 배웠다. 남이 잘하면 아낌없는 박수와 함께 칭찬해 준다.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해 주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좋은 습관은 어릴 때부터 칭찬 속에서 자라서일까? 자존심도 강하고 스스로 알아서 행동하며, 타인에 대한 배려심도 강하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필자는 미술에 대하여 필요한 것을 배우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필자는 한마디씩 던지는 전공 하였느냐는 질문에 상처받을 때가 있었다. 필자는 전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뒤 쳐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노력하여 책을 읽고 필요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아 활용한다. 필자는 상처를 극복하기 위하여 '예술인은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끝없이 노력해 왔다. 또한 많은 작가를 만나며 기자로서 SNS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작품의 색깔과 살아온 삶의 냄새가 느껴진다. 어려운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순간을 잘 극복한 작가의 내면에서 우러나온 작품 세계는 겸손과 행복이 성공한 작가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필자는 학연, 지연, 혈연 때문에 예술 분야가 많이 부패하여 있어 서글프다, 가끔은 재벌 작가도 있지만 가난한 작가들도 많고, 요즘은 특히 전공한 30~40대에 대가가 되어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들도 많다. 또한 대부분 삶의 현장에서 물러난 백발이 된 늦깎이 작가들의 노련한 삶이 묻어나 아름다운 그림을 완성하며 어렵고 힘들게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고 슬픈 현실이 피부에 와 닿는다.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하여 공모전에 출품을 하였는데 인맥이 없어 떨어졌다는 출품자의 말을 들을 때마다, 새싹이 자라기도 전에 짓밟혀버리면 저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상처를 받아 꿈을 접어버리는 안타까운 작가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가슴이 답답하다. 필자는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으로 좋은 대학에서 공부는 하지 못하지만 필요한 자료나 정보는 온라인으로 혼자 터득하며 열심히 노력한다. 우리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학연, 지연, 혈연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훈련을 그렇게 받아서인지 자존심이 강하고 남이 부족하면 서로 인정하고 채워주는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맨하튼 미술박물관을 방문하다 보면 유치원생이 끄적거린 것 같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칭찬해 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종종 있었다. 저들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작가들의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하고 평가받는 세상, 다시 말하면, 작가의 표현하고자 하는 있는 그대로의 작품으로 인정받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예술인들 역시 작가들의 작품을 볼 때에 작가의 내면세계를 먼저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인정해 주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종숙 작가 △김종숙 작가는 재경 남원문학협회 이사이며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대외협력위원회 위원장․아트코리아방송 뉴욕뉴저지 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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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6 16:46

막걸리와 원자력 오염수

서민술의 대명사인 막걸리에 빨간불이 켜졌다. 보통 막걸리에 첨가되는 합성 감미료인 아스파탐이 발암 의심물질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마실 수 있는 막걸리는 한때 전주의 대표음식으로 통칭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먹는 것에 매우 민감하다. 정확히 말해서 먹을거리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예민하다. 최근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한다는 계획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인접국가와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일본의 행태도 문제지만, 우리나라 대통령이 일본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에서 더 큰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동네 주민이 함께 음용하는 공동우물에 침만 뱉어도 큰 싸움이 벌어진다. 전 국민의 식탁을 책임지는 해산물을 공급해 주는 바다에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다는 계획을 쉽게 납득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정부와 여당은 ‘과학적’으로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오염수 방류하기도 전에 수산시장을 찾아 수족관 물을 마시는 코미디까지 서슴지 않는다. 정부 여당이 말하는 ‘과학적 안전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원자력 진흥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와 관련해서도 광의의 이해관계인이다. ‘원자력 마피아’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그들의 카르텔은 견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원자력 안전’을 ‘원자력 진흥’과 더불어 같은 부처에서 담당했다. 모순된 형태다. 국회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있었다. 그럴때마다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이유로 조직 분리에 반대했다. 그러다 쓰나미 한방에 무너졌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독립기구인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출범시켰던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 전까지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다고 역설했던 그들이 지금은 원자력 오염수의 ‘과학적 안전성’을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 마피아 세력은 지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탈원전 정책으로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다 정권교체로 기사회생했다. 급기야 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것은 일본 기시다 내각의 원자력 오염수 방류 결정에 대해 이렇다할 반대조차 하지 않는 윤석열 정부다. 오히려 ‘과학적 안전성’ 뒤에 서서 오염수 방류를 방관하고 있다. 최근 최대집 전 의사협회장은 원자력 오염수의 ‘의학적 불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 ‘노출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방사선 원칙을 주장하고 나왔다. 오염수 방류를 대신할 다른 방법이 있다면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안전성'과 '의학생태적 불안전성'이 대립한다. 며칠전부터 ‘아스파탐’의 발암물질 지정에 관한 뉴스들이 나온다. 평생을 마셔온 막걸리에 발암물질로 의심되는 물질이 들어있다는 소식에 애호가들은 벌써 거부감을 보인다. 하물며 과거 체르노빌 방사능 피폭 피해를 접했던 경험에 비춰볼 때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오염수가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먹을거리의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막걸리에 들어있는 한가지 성분에도 긴장하는 국민정서를 충분히 고려해서 일본 원자력 오염수 방류에 대해 충분하고도 납득할 만한 사전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고상진 (사)익산발전연구원장∙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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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6 16:46

전북, 민주당 안방에서 대한민국 중심으로

고향 전북은 늘 자주 내려가지만, 요새처럼 전북이 들썩거린 건 오랜만인 듯 싶다. 민선 8기 전북도정 출범 후 고작 1년 좀 넘었지만 전북발전을 위한 몸부림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새만금 2차전지 특화단지는 그 결실 중 하나일 것이다. 애쓰고 있는 지점 고맙게 생각하며 성과가 있길 바랄 뿐이다. 필자도 더 열심히 뛸 것이다. 다만 전북발전을 위한 그랜드 플랜 실행은 결국 중앙정부, 범정부적인 뒷받침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전북의 변화와 발전을 위한 여러 계기는 전북의 국회의원과 도지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입법부 외에 결국 예산을 집행하는 힘을 가진 것은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작년 4분기 기준, 전북의 청년고용률은 세종을 제외하면 전국 최하위이다.(38.0%) 같은 호남권인 광주와 전남보다도 낮은 상황이다. 실업급여 수급자 수도 전북은 같은 호남권인 광주와 전남보다도 많다. 청년고용률은 전국 최하위인데 실업급여 받는 사람은 더 많은 이상한 상황. 그만큼 전북발전을 위한 중앙정부 차원의 대책은 절박할 따름이다. 전북도와 지역의 국회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지역발전을 위한 대책과 비전을 가져오면 중앙정부는 적극적으로 그 계획을 받아줘야만 한다. 대한민국이 수도권 공화국이나 영남민국인 것도 아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했다. 호남의 발전, 전북의 발전과 성장을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챙겨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중앙정부는 전북을 향한 적극적인 계획을 세우지도, 지자체 단위의 계획을 향한 적극적인 지원도 번번히 하지 않았다. 여기엔 보수 진보 이념이 무관했다. 30년 가까이 새만금만 울궈먹었고, 심지어 직전 문재인 정부에서조차 전북 금융중심지 공약을 지켜내지 못했다. 전북이 민주당의 안방이라고만 생각했지, 민주당의 뿌리이자 근본이란 점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 전북지역 출향민으로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으로서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는 대목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 금융위원회에서 벌여놓은 전북금융중심지 관련 공약파기행위는 그야말로 분노스러운 일이다. 금융중심지 제6차 기본계획에는 오직 서울과 부산만 있을 뿐, 전북은 배제되고 말았다. 심지어 전북도의 자체 여건 조성 계획에 대해 중앙 정부가 미진하다고 판단했다면, 공약 이행에 대한 중앙정부의 계획을 따로 전북과 협의해야할텐데, 그조차도 감감 무소식이다. 정부의 심각한 직무유기이고, 전북 홀대이다. 윤석열 정부에 전북이 분명한 신호를 보내야 한다. 트럼프 당선 당시 “Not my President”캠페인처럼, 전북을 홀대하는 대통령은 우리의 대통령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줘야 한다. 새만금 국제공항도 가덕도 신공항에 밀리고, 전북 금융중심지도 부산 산은이전에 밀렸다. 말로만 전북 챙기겠다고 하면서 예산은 영남에 퍼주는 것이야말로 전북을 민주당의 안방으로만 묶어두고 나몰라라 하겠다는 대통령의 속좁은 정무감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제 전북은 전북의 몫을 찾아야만 한다. “전북 예산폭탄”을 통해 전북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낼 전북의 정치인을 전북이 스스로 점지하고 그와 함께 궐기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전북이 민주당의 안방을 넘어 대한민국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이다. /박용진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구을) △박용진 의원은 장수 출신으로 민주당 대변인을 지냈으며 제21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 위원∙예결특위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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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6 16:46

군산상고 3인방의 재회

시간은 항상 동일한 속도로 흘러가지만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모두 어느 특별한 순간은 두고두고 그 운명을 좌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경우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열린 2004년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한 기조 연설이 정치적으로 대성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연설은 ABC, CBS, NBC 등 메이저 TV 방송사에서 중계되지는 않았으나, 무려 910만 시청자들이 오바마의 연설에 탄복하면서 일약 중앙정계의 큰 물건으로 각인됐다고 한다. 군산상고는 ‘역전의 명수’로 일컬어지는데 반세기전인 1972년 황금사자기때 부산고와의 결승전에서 9회말 1대 4로 뒤지다가 5대 4로 대역전극을 펼친게 그 계기가 됐다. 1968년 창단된 군산상고 야구부는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한 팀이자 호남 야구를 대표하는 강호다.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김준환, 김용남, 조계현, 조규제 등 쟁쟁한 야구인들이 바로 군산상고 출신이다. 1982년 프로야구가 태동할 때 해태타이거즈의 주요 멤버 또한 군산상고 출신이 주축을 이룬 바 있다. 그런데 군산상고 출신이자 프로야구 원년멤버였던 김봉연, 김일권, 김성한 등 3인이 오는 8월 2일 전주에서 아주 특별한 만남을 갖기로 해 눈길을 끈다. 이들 3인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레전드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원년에 김봉연은 홈런왕, 김성한은 타점왕, 김일권은 도루왕을 차지한 바 있다. 군산상고와 해태타이거즈 출신 이들 3인방은 8월 2일 전북체육회관에서 유물 기증식을 가질 예정이다. 전북체육역사기념관 건립에 써달라며 각자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야구 용품을 전달하는 행사다. 이들이 걸었던 길은 그 자체로 야구사의 한 페이지인지라 주요 용품은 부산에 건립 예정인 KBO 야구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이미 기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향인 전북에 놓는게 더 의미있을거라는 점에 뜻을 함께하고 KBO에서 돌려받았다고 한다. 한편 일제때인 1941년 전북 최초의 상업계 교육기관인 군산상고가 개교한 이래 금융권 등에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으나 역전의 명수로 대변되는 야구 명문고의 명성은 너무나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지난 3월 2일 전북 초·중·고 입학식이 일제히 열렸을때 서거석 교육감은 상징성이 큰 군산상일고를 찾았다. 서 교육감은 “오늘은 군산상업고등학교가 명문 군산상일고로 거듭 태어난 날”이라며 “그 첫 발걸음의 주인공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보고 싶어서 이른 아침 서둘러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귀띔했다. 군산상일고는 고교야구 ‘역전의 명수’ 군산상고가 일반고로 바뀌면서 얻은 새 이름이다. 서 교육감은 군산상일고 입학식에서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을 언급했다. “어떤 어려운 일에도 가슴 속 불과 같은 뜨거움을 간직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청춘”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 군산상고 출신 3인방의 야구에 대한 열정은 가슴 속 불과같이 뜨겁기만 하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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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3.07.26 14:33

전북순환관광버스·시티투어버스 재정비를

세계의 유명 도시들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도시의 지리와 정보에 어두운 외지 관광객들이 지역의 관광명소를 보다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과 제주를 비롯해 관광도시에서는 대부분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 전라남도의 ‘남도한바퀴’ 등 광역순환버스도 곳곳에서 인기를 끌면서 지자체의 투어버스는 관광도시의 필수 인프라로 여겨졌다. 낯선 도시를 찾은 관광객들이 전담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광명소와 함께 지역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는 투어버스는 분명 매력적인 여행상품이다. 전북도에서도 14개 시·군의 주요 관광지를 한번에 돌아볼 수 있는 전북순환관광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관광객 유치와 함께 도내 관광지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여행상품이다. 이와는 별도로 익산과 임실·순창·김제 등 각 시·군에서도 시티투어버스를 각각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전북순환관광버스 사업을 전면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전북도의회에서 나왔다. 지난 201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 중인 471개 코스 가운데 62%인 290개 코스는 아예 운행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전북순환관광버스를 알리는 홍보비는 6000여만원으로 전년(430여만원)보다 10배 넘게 집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도의회 이수진 의원은 또 민간위탁기관 선정과 운영상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제주 등 전국 상당수 지자체가 코로나19 이후 투어버스 운영체계 개편에 나섰다. 이용객이 크게 줄면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노선과 시간 등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이다. 하지만 전북지역 지자체에서는 여전히 자화자찬식 홍보 뿐이다. 냉정하게 말해 전북순환관광버스나 도내 각 시·군의 시티투어버스가 제주나 부산·전남 등 타 지역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고 볼 수 없다. 수년간 이용자가 한 명도 없는 코스가 수두룩한 상태에서 신규 코스 개발과 홍보에만 몰두할 일이 아니다. 도민의 혈세가 들어가는 사업이다. 이 시점에서 전북순환관광버스와 시·군 시티버스 사업을 냉철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운행노선별 이용현황과 문제점 등을 꼼꼼히 분석하고, 폭넓은 수요조사를 통해 운영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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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6 12:51

군산·김제도 특별재난지역에 추가해야

연일 전국적으로 집중호우가 쏟아져 비상이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지하차도 침수사건을 비롯해 인적 물적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게다가 앞으로도 폭우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 8월 1일부터 열리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도 걱정이다. 지난 13일 이후 전북지역에는 600mm 안팎의 폭우가 쏟아져 논과 밭, 비닐하우스 등의 농작물 1만7000ha가 침수되고 20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폐사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해 정부는 지난 19일 익산시와 김제 죽산면 등 전국 13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물폭탄이 쏟아진 군산시와 죽산면을 제외한 김제시가 빠져 주민들의 실망이 크다. 시의회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전북도에 조사 기간 연장과 함께 이들 지역에 대한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하고 나섰다. 군산시와 김제시는 이번 폭우로 벼와 논콩, 시설원예 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논콩의 경우 도내 전체적으로 5000ha를 넘는 지역이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논콩은 쌀 적정 생산을 위한 벼 재배면적 감축이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재배면적을 크게 늘리면서 피해도 늘었는데 이들 지역이 주산지다. 정부는 지난번 특별재난지역 선포 시 “지속된 호우와 침수로 피해조사가 어려워 이번 선포에서 제외된 지역에 대해서도 피해조사를 신속하게 마무리해 선포기준을 충족하는 즉시, 추가적으로 특별재난지역을 선포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지자체는 해당 지자체의 복구비 중 지방비 부담액의 일부를 국비로 추가 지원해 재정부담을 덜 수 있다. 아울러 일반 재난지역에서 실시하는 국세납부 예외, 지방세 감면 등 18가지 혜택 이외에도 건강보험·전기·통신·도시가스요금·지방난방요금 감면 등 12가지 혜택을 추가로 제공 받는다. 문제는 이들 지역이 특별재난지역 선포 기준을 충족하느냐 여부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는 중앙대책본부장이 건의하고 이를 대통령이 선포한다. 기준은 해당 지자체의 재정력지수를 기반으로 피해액 합산기준에 따르며, 국고지원 기준의 2.5배를 피해액이 초과해야 한다. 전북도와 군산시 김제시 등은 피해액을 면밀하게 산정해 이들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에 포함될 수 있도록 성의를 다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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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5 16:47

역사 유산에 대한 예의

일본 구마모토성은 조선 침략을 이끈 가토 기요마사가 세운 성이다. 일본 내전에서도 활약했던 가토는 구마모토의 세습영주가 되자 성을 쌓기 시작해 7년만인 1607년에 구마모토성을 완성했다. 천수각만 두 개, 마흔 아홉 개의 성루를 가진 구마모토성은 일본의 여러 개 성 중에서도 난공불락, 견고하게 축성돼 좀체 함락하기 어려운 성으로 꼽힌다. 전해지기로는 축성에 탁월한 기량을 가진 가토가 자신의 오랜 전투 경험과 오사카 축성에 참여했던 경험, 거기에 조선의 진주성을 공략했을 때 얻은 새로운 지식을 더해 더 견고하게 성을 쌓았다고 한다. 일본의 근대 사상 최대 내전인 서남 전쟁 때 불에 탔지만 이후 재건했으며 현존하는 천수각도 1959년 다시 세운 것이다. 흥미롭게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인 구마모토성이 새롭게 얻은 이름이 있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지정 건축물’이 그것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은 1988년에 만들어진 일종의 도시 만들기 프로젝트다. 구마모토 현이 ‘아름다운 디자인을 가진 건축물로 도시를 바꾸어 보겠다’는 취지를 내세워 만들어낸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후대에 남길 문화적 자산을 창조해내는 것’이다. 근대 이후 기술적 공법을 주목하고 기능만을 앞세웠던 기존 건축물에 문제를 제기하며 건축의 진정한 가치를 모색하고 실현해나가겠다는 태도와 과정이 바탕에 있다. 과거 유산인 역사건축물을 이 대열에 포함한 배경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구마모토성 외에도 주요한 현대건축물까지 현 안에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 수십 개를 그 대상으로 지정해놓았다. 프로젝트를 시행한 지 4년 후, 역사적인 건물이나 호평을 받는 건축물(전통과 현대)에 대한 인증 사업을 새롭게 더해 1992년 46개의 기존 건축물을 선정한 결과다. 역사적 건축물과 이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전에 지어진 주요건축물까지 아트폴리스 영역으로 들여온 것은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를 좀 더 친밀하게 느끼고 스스로도 자부심을 갖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설명이 더해진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35년. 구마모토 아트폴리스는 지금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다. 한 자치단체가 같은 사업을 이처럼 길게 이어온 사례는 드물다. 세계적으로 도시를 바꾸고 새롭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국가와 도시가 적지 않지만, 그중에서도 구마모토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자치단체장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되는 힘, 역사건축물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예의를 갖춘 구마모토 아트폴리스 사업이 주는 교훈이 크다. 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문화유산을 내세우면서도 그것의 진정한 힘을 의심하는 자치단체장들이 아직 많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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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3.07.25 16:03

에코힐링, 전북 동부권 활성화 해법이다

전북도가 도내 동부권의 풍부한 생태환경자산·역사문화자원 등을 활용해 체류형 생태관광 활성화를 위한 ‘에코힐링 1번지 전라북도’ 프로젝트를 제시한 것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낙후된 동부권 발전의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점으로 분산됐던 생태자원을 선과 면으로 연결하겠다는 것인데, 10년 이나 소요되는 시간 등을 감안하면 너무 속도가 느린게 아닌가 여겨지는데 지향점은 맞다.그동안 전북의 발전축은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서부권에 쏠려있었다. 새만금을 중심으로 한 군산, 김제, 부안 권역이 관심사가 됐을뿐 무주, 진안, 장수, 남원 등의 동부권은 잊혀질만하면 한번씩 개발계획을 발표했을뿐 실제 추진된 것은 전무하다시피했다. 최근 현안이 됐던 새만금특별시나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비롯해서 수소산단, 국가식품클러스터 등등 제법 규모가 있는 것은 대부분 서부권에 치중됐다. 이런 상황속에서 엊그제 김관영 도지사와 이병철 도의회 환경복지위원장, 전춘성 전북동부권시장군수협의회장(진안군수), 동부권 시·군 단체장과 유관기관, 전문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에코힐링 1번지 전라북도’ 프로젝트 선포식을 개최한 것은 하나의 행사에 불과하지만 바야흐로 전북 동부산악권 발전의 지향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그간 ‘점’으로 조성된 생태관광 자원을 ‘선’으로 연결하고 ‘면’으로 확대함으로써 체류형 생태탐방을 활성화시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것인데 핵심은 얼마나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재원을 투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동부산악권을 1단계 대상은 일단 오는 2033년까지 5개 분야 28개 사업에 총 1조 1,344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인데 가능하면 추진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 에코캠핑 삼천리길 조성 355억원, 동부산악권 대표사업 4,100억원, 3대강 발원지 명품화 1,858억원, 생태치유 트래킹 분야 4,988억원, 마을상생 트레일 43억원 등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전북1300km(동부권 591km)를 잇는 에코캠핑 삼천리길이다. 특정시기에 특정 지역에서 삶을 영위하는 이른바, 생활 인구를 백만 명까지 확대한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힌만큼 전북의 동부 산악권이 국내외 치유 관광 중심으로 거듭날수 있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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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5 15:19

새만금 간척지에 그리는 노지 스마트농업의 청사진

정보통신기술, AI, 빅데이터 분석 등 첨단기술을 농업에 접목한 ‘스마트농업’이 대세다. 2022년 OECD는 스마트농업이 기후변화, 노동력 부족, 생태계 파괴, 인구 변화 등 농업이 직면한 문제해결에 이바지할 것임을 전망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세계 스마트농업 시장은 연평균 10%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선진국의 스마트농업은 대규모 농지에서의 생산성 향상과 노동력 절감이 가능한 곡물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발전을 이뤘다. 인공위성과 연결한 자율주행 농기계 활용, 토양‧생산량 데이터를 토대로 한 인공지능 시스템의 최적 의사결정 지원이 생산성 향상과 이윤 증가를 불러왔다. 더불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최소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스마트농업 관련 기술 수준은 최고 기술국 대비 70% 수준으로 낮은 편이다. 특히 스마트 농업기술 보급이 원활하지 않다. 아직은 시설원예와 축산 위주로 스마트 농업기술이 개발·보급되고 있으며, 소규모 다품목 위주인 노지에서의 스마트농업은 상대적으로 더딘 편이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노지작물을 중심으로 스마트농업 목표와 방법을 담은 ‘스마트농업 확산을 통한 농업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자율주행 농기계와 농업용 드론·로봇 등의 상용화를 지원하고, 주산지·품목별 시범단지를 조성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위해 자동 관수 및 관비 시스템, 방제용 드론, 환경 센서 등 즉시 보급이 가능한 기술부터 현장에 적용하겠다는 뜻이다. 노지 스마트농업을 현장에 적용하고, 우리나라의 핵심 현안인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간척지 활용이다. 간척지를 활용하면, 선진 농업국처럼 규모화된 노지 스마트농업을 시연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간척 농지는 11만 2천 헥타르(ha)로 지난해 기준 국내 농경지의 약 7%를 차지한다. 일반 농경지와 달리 국내 간척지는 3~4헥타르로 넓게 조성된 곳이 많아, 규모화 농업이 가능하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도전을 새만금 간척지에서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새만금의 미래 모습을 탄소중립 사회를 선도하는 ‘글로벌 녹색성장의 중심지’로 계획하고 있다. 아울러 농업 분야에서의 목표를 ‘친환경·고품질 첨단농업 거점 육성’으로 내세운 바 있다. 새만금 간척지에서는 토양 센서로 양‧수분 함량 변화를 측정해 관리하는 정밀 양‧수분 관리시스템, 스마트트랩을 이용한 해충 발생 예측과 진단을 통한 해충 관리시스템, 드론을 활용한 농작업과 생육 진단 프로그램, 경운부터 파종, 비료 살포까지 가능한 자율주행 트랙터 등의 기술을 현장 실증 중이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콩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현장 실증을 하고, 내년부터는 밀·콩 이모작까지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풀 사료의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는 이탈리안라이그라스의 종자 생산 현장 실증을 진행하고, 수입 건초를 대체하고 가축 사료비 절감을 위한 알팔파의 간척지 재배 적응성 평가와 무굴착 땅속배수 기술을 도입한 연중 재배 가능성도 검토하여 생산기반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바닷길을 끼고 있는 새만금. 새만금 간척지가 전북의 혁신과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곳을 첨단농업의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각계의 의지도 강하다. 새만금 간척지에서 검증된 노지 스마트 농업기술이 ‘글로벌 생명 환경 도시, 전북’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기술력 확보에 매진할 터이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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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5 15:07

최고의 선(善)이 된 기업유치, 전북의 현실은?

기업민원을 해소해 유공자 표창을 받은 전북도청의 장인 에너지정책팀장 사례가 눈길을 끈다. 폐 배터리 재활용업체인 군산 (주)성일하이텍은 올해 9월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었지만 전력 사전신청 시기를 놓쳐 내년 6월 이후에나 전력공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장인 팀장은 관련 기관 협의 및 한전 본사 방문, 실무협의 등 갖은 노력 끝에 민원을 해결했다. 성일하이텍은 66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전북일보 7월14일자 14면) 김관영 지사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 만들기’에 주력하는 건 강점이다. 1기업 1공무원전담제, 환경단속 사전예고제, 세무조사 시기 선택제, 노사 상생선언 등이 그것이다. 장인 팀장의 사례는 ‘1기업 1공무원전담제’의 성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시군 감사 결과 드러난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소상공인 영업허가와 관련 법정 처리기한(7일)을 넘겨 95일까지 지연시킨 일도 있다. 공장 임대신고서를 접수 받으면서 법정 구비서류도 아닌 법인등기부등본, 인감증명서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소기업이 공장을 신·증축하는 경우 농지보전부담금과 대체산림자원조성비 등 부담금을 면제 받을 수 있는 데도 이를 알리지 않고 수천만원을 징수했다. 이런 유형의 사례 115건이 적발됐다(7월3일 전북도 감사자료) 마무리된 민원을 처리기한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거나, 민원 담당자가 휴가를 떠나버린다면 민원인은 어떤 심정일까. 여간 짜증 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기업인들은 나아가 규제혁신이 투자의 본령이라고 지적한다. 규제혁신은 박근혜, 문재인 정부 때도 있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업과 국민의 눈높이가 아닌, 중앙정부의 시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기업투자를 막는 결정적 규제, 이른바 ‘킬러 규제’를 지시했지만 시각의 차이를 바꾸지 않으면 이 역시 별무효과일 것이다. 기업유치는 이제 자치단체에겐 최고의 선(善)이 됐다. 일자리, 소득, 세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전북애향본부가 지난 6월27일 발표한 전북도민의식조사에서 ‘기업유치’는 압도적인 기제(機制)였다. ‘전북발전의 핵심 과제’나 ‘인구감소 대책’을 묻는 질문에 모두 ‘기업유치’를 으뜸으로 꼽았다. ‘정치역량 강화’나 ‘저출산 지원확대’ ‘균형발전’ 보다도 두배 이상 높았다 성공적 기업유치 해결 과제로는 ‘도로 항만 공항 등 SOC 구축’ ‘자치단체장의 친기업 마인드’ ‘공무원의 전향적 자세’ ‘노동조합의 상생의지’ 순으로 응답했다. 또 기업유치의 걸림돌로는 ‘부족한 투자 인프라’ ‘소극적인 공무원의식’이 1,2위를 차지했다(전북도민의식조사는 전북애향본부 홈페이지 참조) 기업유치는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긴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전북은 접근성이 취약하고 공항 항만 등 인프라가 열악한 탓이다. 투자환경과 인프라, 규제개혁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기업유치는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산단 지정 사례처럼 전북은 그나마 김관영 지사의 역동성과 친기업 마인드가 이 열악성을 커버하고 있다. ‘전북에 가면 어떤 점이 좋은가? 이 질문에 뚜렷이 응답할 수 있다면 성공이겠다. 전북에 투자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는 게 완결편이다. 단체장과 소속 공무원으로만 될 일이 아니다. 도민 모두의 응집력과 마케팅, 에너지가 필요한 무거운 숙제다. /이경재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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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5 15:07

교사의 죽음, 교육감이 나서야 한다

피다만 꽃이 속절없이 떨어졌다. 비통하다. 학교가, 교육이 무너져 내린다. 늦었다. 이미 늦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라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선생님들이 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지속되는 악성민원에 교권이 침탈되고 아동학대처벌법에 의한 고소 등으로 쌓여온 선생님들의 좌절과 분노가 전국에서 폭발하고 있다. 선생님과 학생·학부모 간 교육적 관계가 무너지고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학부모들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학교교육에 대한 기대조차 사라져 간다. 학교공동체가 무엇은 해도 되고 무엇은 해서 안되는 것인지의 사회규범이 실종된 ‘아노미’ 상태이다. 교사가 무너지면 공교육이 무너진다. 교육이 붕괴하면 불행은 모든 국민에게 눈덩이가 되어 돌아간다. 이제 선생님들도 혼자 속앓이하면서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다. 법적·제도적 정비가 우선되어야 한다. 학생의 수업방해, 폭행, 성희롱 등을 고스란히 당한 뒤 교권보호위원회를 여는 현행 제도는 교권과 수업권 구제에 지극히 제한적이다. 독일에서와 같이 교사는 수업방해에 대한 경고, 수업 배제, 학생·학부모 상담 등 징계권을 즉시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이 행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선생님에게 ‘교사자질이 부족하다’느니 ‘학생지도능력이 없다’느니 하는 막말·폭언을 일삼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악성민원이 학교 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악성민원을 방지하기 위해서 미국에서와 같이 민원관련 학부모 방문일정은 미리 정하도록 하고, 일본에서와 같이 학부모의 위압적인 태도나 무례한 언행에는 시정을 요구하고 경우에 따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도록 관련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아동학대처벌법(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에 의한 부당고소의 남발이 특히 현장 선생님들을 흔들고 있다. 사법기관의 소환·조사·재조사 등이 진행되는 동안 선생님들의 심신은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다. 성장 및 임용 과정에서 모범생활을 해온 선생님들의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아동학대처벌법에 의한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예외규정을 즉각 마련하여야 한다. 교직은 어떤 전문직보다 창조적인 직업이다. 아무리 좋은 지도방법도 각기 다른 모든 아이들에게 최적일 수는 없으며, 항상 시행착오를 수반한다. 언제든 민원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들은 누군가 보호해줘야 한다. 동료교사와 교장·교감 등이 우선 보호해야 하지만 한계가 너무나 뚜렷하다. 누군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스스로를 보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손을 놓게 되고 만다. 교육감이 나서야 한다. 교육감은 ‘나는 우리 선생님들을 믿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의 교육적 판단과 지도를 신뢰합니다. 혹시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교육감인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공언할 수 있어야 한다. 민원이 발생하면 세심한 관심과 함께 직접 나서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교육감이 나서서 선생님들을 지켜주면 학생과 학부모, 언론과 사회가 선생님을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선생님들도 더 많이 연구하고 열성적으로 학생 지도에 임할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학부모 간 신뢰가 쌓이고 교육적 관계는 복원될 것이다. 선생님들은 겪고 있는 아픔을 ‘선생님’이기에 외부로 표현하기도 어려웠다. 이제야 터질 것이 터졌다. 선생님들의 누적된 고통과 분노가 서울 선생님의 죽음을 계기로 폭발한 것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선생님들을 지켜주지 않았기에, 이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의 억울한 죽음은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황호진 (전북대 특임교수∙ 전 전북교육청 부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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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5 13:22

전북갈등관리심의위, 타이밍 놓치지 말라

전북갈등관리심의위원회가 공식 출범했다. 이에 앞서 지난 5월에는 도의회에서 ‘전라북도 공공갈등 예방 및 조정·해결에 관한 조례’가 개정돼 위원회 설립의 근거를 마련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위원회의 출범을 축하하며 기대와 우려를 표하고자 한다. 기대는 그동안 전북발전에 발목을 잡아온 각종 사안에 대해 조금이나마 개선 기미가 보였으면 하는 것이요, 우려는 과연 위원회나 사업별 갈등조정협의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갈등은 ‘개인과 집단 사이의 목표나 이해관계의 차이로 서로 적대시 하거나 충돌하는 상태’를 말한다.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 갈등을 통해 개인과 조직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이를 통합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침체된 조직이나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갈등을 완화하고 컨센서스를 모으는 게 민주주의 기본 원리다. 문제는 위원회나 협의회가 첨예하고 고질화된 갈등 사안에 대해 협상·중재·조정을 통해 과연 문제를 풀 수 있느냐 여부다. 그러기 위해선 갈등 조정에 대한 시간적 여유와 함께 전문성·중립성을 갖춘 인적 구성과 강제력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모두가 쉽지 않은 일이다. 대개 지역의 명망가로 구성되는데다 법적 구속력도 없어 자칫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북도가 2007년 민관공동의 전북갈등조정협의회를 구성해 활동했으나 큰 성과 없이 끝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도내의 경우 가장 큰 갈등문제로 새만금 관할권 다툼과 전주 항공대대 이전, 옥정호 개발 등을 꼽는다. 이중 군산 김제 부안 간에 벌어지고 있는 새만금 관할권 다툼의 경우 위원회나 협의화 차원의 수준을 훨씬 넘어버렸다. 이미 중앙분쟁조정위원회를 거쳐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를 오간데 이어 또 다시 신항만을 둘러싸고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다. 초기에 진화했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이러한 갈등을 상시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는 5명의 갈등조정관을 두고, 인천시는 공론화·갈등관리위원회와 함께 500명의 숙의시민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갈등관리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갈등은 오래 끌수록 해결이 어렵고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위원회가 출범한 만큼 민관의 지혜를 모아 성과를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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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3.07.24 16:53

꿀과 마약

꿀사과‧꿀참외‧꿀잠‧꿀팁‧꿀재미⋯. 한동안 ‘꿀’이 들어간 말이 크게 유행했다. ‘꿀처럼 아주 달콤하고 맛있는’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합성어가 넘쳐났다. 여기에 꿀이 ‘매우 좋은, 유용한’이라는 뜻으로 확장되면서 꿀팁‧꿀피부‧꿀직장과 같은 신조어들이 쏟아졌다. 또 ‘경치가 꿀이다’, ‘취사병은 꿀이다’처럼 ‘매우 좋다’라는 의미의 서술적 표현도 나왔다. 애정이 넘치는 신혼부부나 연인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관용구 ‘깨가 쏟아진다’는 ‘꿀이 떨어진다’로 바뀌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훨씬 ‘센 놈’이 불쑥 등장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놈이다. 바로 ‘마약’이다. 마약김밥‧마약치킨‧마약만두‧마약베개‧마약바지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꿀사과에 꿀이 없는 것처럼 마약김밥에도 물론 마약 성분은 들어가지 않는다. ‘한번 맛보거나 사용해보면 절대 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있거나 좋다’는 의미를 강조한 표현이다. 웬만한 자극과 충격에는 끄떡도 않는 이 시대의 소비자들을 흔들기 위해 ‘더 센 놈’, ‘극단의 용어’를 찾았을 것이다. 맛의 최고봉인 꿀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 놈은 자극성과 중독성을 무기로 빠르게 번져나갔다. 제품명과 음식점 상호에 버젓이 표기되면서 단박에 세간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업계의 상술에 편승해 우후죽순 확산하면서 점차 익숙한 일상용어로 다가왔다. 게다가 꼭 단맛이 아니어도 되니 음식명 앞에 붙여 새로 만드는 합성어에서는 꿀보다 확장성이 크다. 괜찮을까? 그럴 리 없다. 마약은 해악이 너무 크다. 우리 일상에 파고든 이 자극적인 신조어들이 마약의 위험성과 심각성을 희석시켜 마약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지난달에는 식품이나 음식점 이름에 ‘마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법안(‘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전면 금지가 아닌 권고에 그쳐 실효성 면에서 큰 아쉬움을 남긴다. ‘마약○○이 아닌, 소문난○○이나 꿀맛○○으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전주 풍남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지난달 말 ‘마약○○’ 간판을 단 학교 인근 한옥마을 유명 음식점 두 곳을 방문해 전달한 손편지의 내용이다. 아이들은 편지에서 ‘마약을 주제로 토론수업을 했는데 한옥마을 곳곳에 ‘마약○○’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마약이라는 문구가 불러일으킬 사회적 문제점을 열거하고, 마약을 대체할 용어까지 제안했다. 편지를 받은 상인들은 아이들의 제안을 흘려버리지 않았다. 한 상인은 간판 문구를 바꾸겠다고 약속했고, 곧바로 ‘마약○○’을 ‘원조○○’으로 변경했다. 오죽하면 초등학생들이 초면의 업주들을 찾아가 상호 변경을 요청했을까. ‘마약(痲藥)’은 ‘마약(魔藥)’이다. 절대로 꿀이 될 수 없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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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표
  • 2023.07.24 16:53

애덤 스미스 탄생 300주년, 유능한 국가의 역할을 요구한다.

보통 애덤 스미스를 강의하는 시간이면 할 말이 많아진다. 그가 경제학의 아버지인 까닭은 부의 근원을 딱딱한 금과 은의 보유량(중상주의)이 아니라 “여러분과 같이 지식과 기술로 발휘되는 인간의 생생한 노동생산력에서 최초로 찾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부의 주체”라고 말하면 학생들도 신난다. 때마침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아 애덤 스미스(1723~1790)가 호사를 누리고 있다. 고향 스코틀랜드와 영국에서 얼굴을 그린 스카프와 테디 곰 인형으로도 대중적 인기가 높다. 진즉부터 애덤 스미스는 작은 정부와 자유를 외치는 시장 자유론자들에게 유난히도 자주 소환되곤 했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자유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치켜세워도 될까? 위험하기 짝이 없다.「국부론」(1776)은 시장의 자유를 식량이 부족해서 굶어 죽어가는 기근 사태로 설명한다. 오늘날 가뭄으로 식량이 모자라면 정부는 곡물시장에 적극 개입하거나 당연히 매점매석을 단속해야 한다. 애덤 스미스의 생각은 달랐다. 정부 개입을 오히려 기근의 주범으로 지목한다. 정부가 흉년으로 치솟은 곡물가격을 합리적 가격에 맞춰서 팔도록 강요하면 상인들은 창고의 문을 꽁꽁 닫을 것이다. 그럴 경우 곡물 시장이 얼어붙어 가뭄 초기부터 기근이 일어난다. 정부가 억지로 곡물창고를 열어 제치면 앞 다퉈 소비가 늘어나게 되고 식량도 곧 떨어져서 가뭄이 끝나기도 전에 기근이 터진다. 기근의 해결책은 한가지였다. 곡물거래를 시장경제에 맡겨서 자유방임시키는 것이었다. 식량은 수요와 공급의 시장법칙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절된다지만 누군가는 배고파서 죽어가야 한다. 부자는 괜찮지만 빈자들은 뼈저리게 고통을 겪는다. 아껴먹거나 굶주리지 않으면 안 된다. 덕택에 전체적으로 급작스런 기근은 피할 수 있게 된다. 애덤 스미스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시장의 자유는 가혹한 채찍질까지 휘두른다. “굶주림(이라는 폭력)은 제아무리 흉맹한 동물이라도 순하게 길들이고 …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며 … 타인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을 우러나오게 한다.”(칼 폴라니,「거대한 전환」) 최근 시장자유를 외치는 정부여당이 왜 조롱까지 해대며 실업급여를 줄이거나 폐지하려는지 가닥이 잡힌다. 제대로 굶주려봐야 초라하고 착하며 열심히 일하고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 시장은 어떤 처벌보다 더 교묘하고 반항도 못하게 사람을 길들인다. 아무 때나 애덤스미스를 끌어들이면 안 된다. 그는 당시 국가가 무능하고 부패했고 독점세력에 치우쳤기 때문에 정부 역할을 줄이고 민간부문을 자유로운 시장에 맡기고자 했었다. 지금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념 세미나에서 나왔던 질문처럼 애덤 스미스가 다시 살아난다면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노동 가치에 주목했던 그는 개인의 ‘지식, 기술, 판단력’을 기르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불평등한 양극화 구조부터 제거하자고 국가에 주문했으리라.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인간과 자연의 생태적 통합도 큰 정부의 역할로 올렸겠다. 지역 소멸과 불균형을 타파하고 새로운 국가의 성장 동력을 지역의 균형발전에서 찾자고 강조했을 것이다. 탄생 300주년에 개인의 노동과 지적 창의, 시장의 자유와 정의, 따뜻한 인간과 타인을 배려하는 공감(「도덕감정론」)에 더해진 유능한 국가와 보이는 손(the visible hand)이 뉴애덤 스미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원용찬 전북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원용찬 교수는 <빵을 위한 경제학> <앞으로의 경제학:칼 폴라니와 스피노자로 읽는 경제학 에세이>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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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4 16:22

여기, 신흥계곡에서

그걸 한번은 봤어야 한다. 수백 마리의 나비 떼가 현관 앞을 마치 자기 집인 양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그 나비들이 추는 춤을 적어도 일생에 한 번은 봤어야 한다. 어느 봄날 현관을 나서는데, 수백 마리의 뿔나비 떼가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은 검은 눈이 휘날리는 사위로 분분히 털어내며 흩어지는 형국이었다. 그 기세가 자못 하늘과 땅을 뒤덮을 정도였다. 나는 모종의 두려움 섞인 경이로움에 꼼짝 못 하고 서 있었다. 그 검은 눈에 현기증 났던 감동을 몇몇 마을분과 나누니, 한 어르신이 그러신다. “나는 어떨 때는 유리창에 나비가 커튼처럼 달라붙어서 빗자루로 쓸어내려”.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길게 돌아오던 산책길 천변에 마치 카펫처럼 새까맣게 펼쳐져 있는 나비들을 보았다. 그러다 나비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6~7년 전부터는 뿔나비를 한두 마리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대체 이게 무슨 경우란 말인가? 하늘을 뒤덮을 듯 흩날리던 나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사라져버린 나비에 대한 부채감을 눈곱만큼이나마 가지게 되면서 나비가 살던 이 신흥계곡이라는 장소는 단지 물리적 입지도 추상적 개념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이 장소는 인간과 나비가 생활하는 ‘생활세계’임을 깨달았다. 인간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나비가 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가, 나비를 떠나게 하는 장소상실의 곳이 되기도 한다. 아무리 장소상실이 우리의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 하더라도 인간과 나비는 장소와 별개가 아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저마다 주변의 장소와 오랜 시간을 통해서 얻은 친밀감으로 긴밀하게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장소를 자본제로 여기면서 단순한 위치로 환원시켜버린 이곳 어디에선가 지금도 장소를 빼앗기거나 장소에서 뿌리 뽑힌 뭇생물들이 항의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항의를 외면한다. 장소가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무지하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산다는 것이 존재들로 가득 찬 실재임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의 존재 자체가 ‘생활세계’인 장소를 훼손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학교에서 오는데, 나비들이 내 앞에 양탄자처럼 깔려 있어서 내가 공주가 된 기분이었어요.”라며 마치 꿈으로부터 끌려 나온 모습으로 재잘거리던 아이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되어 떠돈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나비골로 불리고 있다. 무언가 해야 했다. 인간 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난 다른 세계를 보여준 나비를 떠올렸다. 꼬리명주나비를 선택했다. 아주 우연한 선택이었다. 그 우연성은 차라리 운명적이었다. 어떤 필연적인 선택보다 강렬하게 하나의 목적을 세우기에 충분했다. 닭울음과 산그늘로 이어지던 시골의 시간은 아니더라도, 여기 신흥계곡에 나비만큼은 예전의 모습으로 돌이키겠다는 위험한 희망을 품었다. 꼬리명주나비의 유일한 식생인 쥐방울덩굴을 심고, 열심히 가꾸었다. 이제 쥐방울덩굴이 어느정도 무성해졌다. 며칠 전 애벌레를 이주시켰다. 굼뜨게 움직이던 애벌레를 손가락으로 잡으니 그 말랑거리면서 부드러운 벨벳 같은 촉감이 낯설었다. 이 낯선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희망을 품고 쥐방울덩굴잎에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붙여놓고, 매달아 놓았다. 애벌레의 이주는 단순한 재배치만이 아니라 재구성이다. 어렵게 배운 희망을 향해, 꿈틀거리는 애벌레와 함께 느리게 걸어가련다. /이선애 농부∙완주자연지킴이연대 활동가 △이선애 활동가는 젊은 날 '사진가'로 살겠다며 세상을 카메라 렌즈로 바라보던 일을 접고, 지금은 자신이 밟고 있는 땅으로 시선을 두며 완주 신흥계곡 안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고 열심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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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7.24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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