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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에 진입을 시도하던 구조대 잠수요원들이 2층 화물칸에 진입했다. 18일 서해해양경찰청 등에 따르면 오후 3시38분께 구조대 잠수요원들이 2층 화물칸 앞에 진입해 문을 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대책본부는 앞서 선체 진입을 '성공'에서 '실패'로 수정했었다. 해경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는 정말 잠수부들이 선체로 들어가 화물칸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아직 생존자는 확인하지 못한 상태다"고 말했다.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가 뱃머리부분만 물 위로 노출돼 있다가 18일 완전히 물에 잠긴 것에 대해 공기가 차 있는 공간인 '에어포켓'이 줄어들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우려했다. 에어포켓이 감소하면 배 안에 살아있을지 모르는 탑승자가 생존할 확률이 그만큼 낮아진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배가 떠있었던 것은 에어포켓이 있어서 부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배의 무게와 부력이 같아서 배가 가만히 있었던 것인데 배가 가라앉았다는 것은 공기가 없어져 부력이 줄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물에 떠 있던 부분과 물속의 객실 일부분에 에어포켓이 있었을 것"이라면서 "물밑에 있지만 완전히 침수되지 않은 공간에 물이 스며든다든지 해서 부력이 감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물에 잠기지 않은 공간이 없어지면서 가라앉기 시작한 것 같다. 조류의 영향으로 배가 가라앉을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직 사고 선박이 밑바닥까지 완전히 가라앉았는지는 알 수 없으므로 에 어포켓이 줄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장범선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공기를 주입해서 배가 떠오르길 바랐는데 더 내려갔다"고 아쉬워하면서 "배가 드러누운 형태라면 에어포켓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선장과 일부 승무원이 승객구조를 팽개치고 서둘러 탈출했다는 학생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안산 단원고 A양은 1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우왕좌왕하는 사이 선장이 혼자 먼저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며 "맨발로 갑판으로 무작정 뛰어나가 공중의 헬기 사다리를 붙잡았다"고 말했다. 단원고 학생 중 최초로 구조된 A양은 그러나 자신보다 먼저 도착해있는 선장을 목격하고 "무책임한 선장 때문에 배에 갇힌 선생님과 친구들이 구조되지 못할 것이 란 생각이 들었다"고 분개했다. 그는 "사고 직전 뭔가에 부딪히듯 '쾅' 소리가 난 뒤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수 초만에 배가 급격히 기울었다"며 "그러나 누구 하나, 어떻게 대피하라고 안내하지 않았다"고 분해했다. 같은 학교 B양은 "배가 갑작스럽게 기울어 극도의 혼란상태에 빠졌을 때 아이들사이에 선장이 혼자 탈출하고 없다는 이야기가 퍼졌다"면서 "탈출은 생각도 못한 채친구들과 방 안팎을 오가며 우왕좌왕했다"고 회고했다. B양은 "당시 학생들을 인솔하는 어른도 없었고 어떤 아저씨는 힘이 약한 여학생들을 손으로 밀치며 먼저 나가기까지 했다"고 흥분했다. 4층 휴게실에서 친구 10여명과 있던 B양은 탈출과정에서 뼈가 골절돼 안산 고대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C군은 "조종실 같은 곳에서 선장인지 승무원인지로 보이는 사람이 사다리 타고 내려왔다"며 "그때 다른 승무원은 방송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나는 4층 갑판에 있었기 때문에 쉽게 나왔는데 방안에 있던 다른 친구들은 어려웠을 것"이라며 "배가 순식간에 넘어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D군은 "헬기가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3층에서 선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밖으로)올라갔다"며 "그때 상황이 무척 안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위쪽에서 어떤 아저씨가 살려달라며 욕을 해댔다"며 "그땐 왜 저러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모든 상황을 알고 그런 거 같다"고 했다. 검찰과 경찰이 세월호 침몰원인에 대해 여러모로 수사 중인 가운데 나온 학생들의 이런 증언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부적절한 처신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월호 탑승자 475명 중 71%인 339명(학생 325명교사 14명)이 단원고 수학여행단이다.
'세월호' 침몰 사흘째인 18일 사망자 시신이 속속 인양되는 가운데 사고선박 주변에 안전펜스가 없어 시신 유실이 우려된다. 17일 오후 6시 이후 18일 오후 2시 현재까지 인양된 시신은 모두 19구로, 사망자는 모두 28명으로 늘었다. 현재 조류변화 등의 영향으로 물 위로 떠오르는 시신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다. 사고발생 3일이 지나면서 남은 실종자 260여명 중 상당수가 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시신 인양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수심 35m에 거꾸로 뒤집힌 채 처박혀 있는 세월호에서 흘러나온 시신이 걸릴 안전펜스가 없다는 점이다. 또 사고 지점이 명량대첩 승리로 유명한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 울돌목 다음으로 조류가 센 맹골수도 해역이어서 시신이 물살을 따라 흘러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에서 온 특전동지회 소속 한 민간 다이버는 17일 밤 진도군 팽목항에서 김수현 서해해경청장에게 "침몰 선박 주변에 기본적인 안전펜스도 설치돼 있지 않은 것에 실망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해해경청 관계자는 "사고 초기 세월호 주변에 안전펜스를 설치했지만 해군 특수구조대, 민간 다이버와 구난업체 잠수부들의 수색작업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에 제거했다"고 말했다. 수색작업에 투입된 한 민간 다이버는 "어느 정도 수색이 마무리되면 안전펜스를 설치해 선체 인양전까지 시신 유실을 막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실종자 가족 입장에서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에 승선했던 475명의 명단이 확인됐다. 18일 연합뉴스가 입수한 세월호 승선자 명단을 보면 지난 15일 인천항을 출발한세월호에는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 교사 14명, 인솔자 1명, 일반승객 73명, 화물기사 33명, 승무원 24명, 기타승무원 5명 등 475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승무원 24명에는 이준석(69) 선장을 비롯, 13등 항해사 4명, 조타수 3명, 기관장, 사무장, 매니저 등이 포함됐다. 이 자료에는 승선자 475명의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 등이 정리돼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오전 "선사와 해경에서 작업 중인데 아직 공개할 정도로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승선자 명단은 사건 당일인 지난 16일 오후 8시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작성해 이미 해양경찰에 전달됐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승선자 명단을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초기 구조자 수를 놓고 혼선을 빚어 질타를 받았던 정부가 실종자 현황 파악에 결정적인 정보가 되는 승선자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도 승선자 명단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7일 오후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체육관을 방문, 탑승객 명단을 원하는 가족들에게 신속하게 알릴 것을 당부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전체 명단을 공개하면 충격을 받을 분이 있어서 하지 말아 달라는 가족도 존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많은 분들이 원하고 확실하게 하시니까 이 야기만 한다면 있다든지 없다든지 신속하게 알려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해양경찰청은 지난 17일 당시 생존자로 확인된 174명의 명단만 공개한 바 있다.
18일 오전 10시 5분께 '세월호' 선체 진입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 직후 세월호의 물 위 선수 근처 약 100m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이날 오전부터 선체 진입을 시도하던 잠수대원 속칭 '머구리'가 수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잠수대원은 생명줄이자 산소공급줄인 노란색 줄을 잡고 세월호에 밧줄을 매고 임시 정박한 '한국수중기술 2호'로 느린 속도로 접근했다. 선박 옆면 사다리를 힘겹게 오른 잠수대원은 배 위에 올라 벽에 등을 기댄 채 거센 숨을 몰아 내쉬었다. '머구리'는 장비를 벗어 던지고 곧바로 배 위 다른 동료들을 선수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잠수 상황을 손짓하며 상세히 설명했다. 인근 고속 단정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해군 SSU 잠수대원들도 한국수중기술2호로 바짝 붙어 얘기를 들었다. 바통을 터치하듯 이윽고 한국수중기술2호에서 산소통을 맨 잠수 대원 두 명이 바닷속으로 뛰어내렸다. 이들은 바다에 뛰어내리기 전 산소 공급 호스를 시험했다. 그들이 호스를 들고 버튼을 누를 때마다 '칙칙' 거센 공기바람 소리가 조금 떨어진 인근 선박에까지 들렸다. 잠수 대원 두 명은 공기주입 호스를 들고 확보한 선체진입로 공기를 주입하기 위해 세월호 주변 해상으로 뛰어들었다. 두 잠수대원의 등에는 공기주입호스를 설치한 데다 수중호흡을 위해 산소통을 멘 상태였다. 이날 오전 10시 5분 선체 안 식당까지 진입 통로를 확보한 후 45분 뒤부터 공기주입까지 성공하면서 세월호 주변에는 고무보트와 고속 단정 수십 척이 다시 분주하게 움직였다. 거의 물 밑에 잠겨 언듯언듯 보이는 침몰 세월호 선수를 중심으로 모인 수색대원들은 확보한 선체 통로로 투입돼 내부 수색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18일 3일째를 맞은 실종자 수색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구조요원들이 선체 내 진입에 성공하고 공기주입도 시작됐으며 선체를 인양하기위한 대형 크레인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그러나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과 국민의 바람에도 안타까운 시신 인양 소식은 계속 이어져 전국이 슬픔에 빠졌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는 이날 오후 1시 현재 전체 승선자 475명 가운데 28명이 숨지고 268명이 실종 상태며 179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전날 오후 8시 10번째 사망자가 발견된 이후 하루도 되지 않아 무려 18명의 실종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이날 오전까지 수십 차례 선체 진입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잠수요원 등 구조대원들은 오전 10시 5분 첫 진입에 성공했다. 이어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식당까지 통로를 확보한 가운데 현재 생존자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10시 50분부터는 선체 안으로 공기주입을 시작했다. 모두 물속에 잠긴 선체가 주입한 공기로 다소 떠오르면 수색작업에 더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선체 인양을 위해 인근에 도착했거나 도착 예정인 4대의 대형 해상 크레인을 이용해 선체 일부를 들어 올려 구조활동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사고해역에는 크레인 외에 경비함정 108척, 민간어선과 관공선 61척, 잠수요원 등 구조대원 535명이 투입됐다고 해경은 밝혔다. 높은 파도 등 전날 최악의 상태를 보였던 해상 상황도 어느 정도 좋아져 수색 속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 아직 생존자 발견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당국은 선체 인양 작업은 생존자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는 상황을 고려해 실종자 가족 동의 없이 세월호를 인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인양 과정 중 선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고, 이 때 선체 내부에 공기가 찬 공간 이른바 '에어포켓'으로 해수가 밀려들어 생존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오전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세월호 선장이 침몰전 3등 항해사에게 조타지휘를 맡겼다"고 말했다. 선장이 자리를 떠나 조타실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수사본부는 "침몰 당시 선장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항로 변경 지점('변침점')에서의 급격한 변침(變針) 여부에 대해선 "사고 해역이 선박 변침점인 것은 맞다"며 "매우 급한 선회였는지 통상적인 선회였는지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고 선박에는 50t 규모 대형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과적 의혹도 받고 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부터 목포 서해지방해양경찰청에 상주하며 세월호 침몰사고를 직접 챙기는 등 부처 간 조율을 해 나갈 예정이다. 정부는 전날 서해지방 해양경찰청에 정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범정부 대책본부를 꾸렸다.
세월호가 국제해사기구(IMO)가 의무화한 선박용 블랙박스를 탑재하지 않아 IMO의 안전 규제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세월호는 블랙박스가 없어 배를 인양하고 나서야 사고 당시 선박 내에서 어떤 통신이 이뤄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해양경찰청 관계자가 밝혔다. IMO은 3천t 이상 여객선은 모두 블랙박스를 갖출 것을 규정했지만 이를 국내 선박에도 적용하는 것은 IMO 협약 가입국의 재량에 달렸다. 한국은 IMO 협약 가입국이지만 6천825톤급 세월호는 인천제주 국내 항로를 다니는 배라 이 블랙박스 규제에서 제외됐다. 또 IMO 협약은 차를 싣고 내리는 대형 짐칸을 갖춘 여객선을 단계적으로 폐지키로 했으나 세월호는 국내 선박이라는 이유로 이 규제도 적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차량용 대형 짐칸을 갖춘 여객선은 해당 칸에 물이 들어오면 금세 균형을 잃고 뒤집힐 위험성이 크다. 실제 1994년 발트해에서는 해당 구조의 여객선이 차량용 짐칸 문이 풍랑에 찢기면서 30분 내로 침몰, 800여명이 숨져 IMO 협약 개정의 계기가 됐다. 한편 미국 ABC 방송은 침몰 등 위급 상황에서 선장이 배를 지켜야 하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IMO 법규가 없다고 지적했다. IMO 협약은 '선장이 배를 탄 사람들의 안전에 항상 책임을 진다'는 일반적 원칙만 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일부 국가는 IMO 규제와 별도로 대형 사고 때 배를 버린 선장을 자국법으로 처벌한다. 2012년 1월 좌초한 이탈리아 유람선인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의 선장은 선박과 승객을 놔두고 먼저 대피한 혐의가 적용돼 이탈리아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선장이 급박한 위험 상황에서 인명과 배를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 해야 한다'는 선원법 조항(11조)이 있어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 해경은 승객들을 두고 먼저 구조선을 탄 혐의 등으로 세월호 선장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2012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좌초 이후 세계 각지에서 여객선안전에 대한 개선 작업이 잇따랐지만 세월호 참사는 2년 전 코스타 콩코르디아 사고에서 사람들이 배운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평했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에 선장이 3등 항해사에게 조타지휘를 맡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본부장 이성윤 목포지청장)는 18일 전남 목포시 서해지방 해양경찰청 대강당에서 가진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성윤 수사본부장의 수사 진행 상황 발표 뒤 이어진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박재억 수사팀장은 "세월호 선장이 침몰 전 3등 항해사에게 조타지휘를 맡겼다"며 "침몰 당시 선장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어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이모(69) 선장이 세월호 침몰이 시작되는 시점에 잠시 자리를 비웠다가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올라왔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박재억 수사팀장은 "선장 근무 시간이 딱 정해져 있지는 않으나 사고 시점 당시에는 조타지휘를 직접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재확인했다. '당시 3등 항해사가 배가 기울고 있는 걸 알았는지'에 관해서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박 팀장은 설명했다. 사고 원인으로 무게가 실리는 항로 변경 지점('변침점')에서의 급격한 변침(變針) 여부에 대해선 "사고 해역이 선박 변침점인 것은 맞다"며 "매우 급한 선회였는 지 통상적인 선회였는지에 대해서는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변침(급선회)이 (세월호 침몰의) 유일한 원인인지, 선박의 유지 관리상 하자가 있었는지 여러 면에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변침 지시를 세월호 침몰 전 조타 지휘를 맡은 3등 항해사가 했느냐는 질문에는 "맞다"며 "기본적으로 조타실은 2명이 근무하는데 조타 지휘를 맡은 사람이 지시하면 (실제) 조타를 맡은 사람이 변침을 한다"고 답했다. 대피방송 여부에 관해 박 팀장은 "진술이 정확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구체적인 내용 등 조난 대피방송 조처가 적절했는지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승무원 탈출 시점에 관한 질문에 '영상을 분석해서 파악해봐야 한다'고 답한 그는 "선장 등에 대해 신속히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사고 원인과 관련해 수사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지 않겠다며 사고 후구조과정 등 문제점에 대해서도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 사고와 관련한 괴담을 퍼트리는 행위를 엄단할 방침이다.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 구조탐색지원에 나선 군(軍) 현장구조지원본부는 침몰한 여객선이 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공기주머니)을 설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18일 "수색구조 작전에 투입된 해군 잠수사들이 세월호가 부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리프트 백을 배에 걸어놓았다"며 "추가로 대용량 리프트 백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기주머니인 리프트 백을 배에 걸어놓으면 배가 추가로 가라앉는 것을 방지할 수 있어 수중 작업 환경이 개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침몰 여객선 곳곳에 리프트 백을 설치하면 수중에 있는 공기주머니의 부력이 배를 잡아주는 효과가 있다"며 "수중 수색구조 작업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 해역에 해상크레인이 도착함에 따라 정부가 이를 생존자의 구조수색작업에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8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정부는 해상크레인을 활용해 침몰한 세월호를 일부 들어올려 구조수색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검토하고 있다. 해상크레인은 당초 침몰한 세월호를 인양하기 위한 용도로 투입됐지만 예정보다앞당겨 사고 현장에 도착하면서 이를 활용해 구조수색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인양의 시기와 방법은 물론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생존자 구조수색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게 하는 방법에 대해 해군, 해양경찰, 전문가 등과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선박 인양 전문업체인 국내의 언딘사(社)를 구난업체로 정하고 해상크레인 3척을 세월호 사고 해역에 동원한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만 이틀이 지나 선체로 들어가 는 통로가 확보됐다. 선체 내부로 공기 주입도 시작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관계자는 18일 "오늘 오전 10시 5분 현재 잠수인력이 선체 안 식당까지 진입 통로를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침몰사고 신고가 접수된 지 꼬박 49시간이 지난 시점에 선체 내부로 진입통로가 확보된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해경 상황실을 통해 확인한 바로는 수중구조 작업에 투입된 잠수 인력이 9시 30분부터 진입을 시도했고 10시 5분께 식당까지 진입통로를 확보했다"면 서 "현재 식당까지 통로를 확보했고 10시 50분부터 선체 안으로 공기 주입도 시작됐다"고 확인했다. 세월호의 식당은 선박 3층으로 선미와 선수 중간에 있다. 해당 층에 식당과 함께 객실, 노래방, 편의점 등도 있다. 지금까지 생존자는 발견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대본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25명이고 구조자는 179명이다. 탑승자 475명 중 271명은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8일 서해해경청에서 브리핑을 통해 "수사 대상과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엄정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의혹뿐만 아니라 구조 과정의 문제점은 없었는 지 철저히 조사하겠다"며 "책임소재를 명백히 해 책임자들에게 관련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수사본부는 "SNS 괴담 유포 등 2차 피해 유발도 엄단하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재억 수사본부수사팀장(광주지검 강력부장)과 일문일답. -- 사고 당시 선장은 어디에 있었나. ▲ 침몰이 일어나는 시점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상황이었다가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바로 올라왔다. 그런 게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조타실에 원래 있어야 하는데 거기서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아니고 뒤쪽에 있었다. 사고 당시 조타를 지휘하는 사람은 삼등 항해사였다. -- 당시 선장이 근무시간이 아니었다는 말이 있는데. ▲ 선장이 잠시 삼등 항해사에게 조타 지휘를 맡겼다. -- 선장의 근무시간은. ▲ 근무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고 당시에는 조타 지휘를 직접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 항해사는 배가 기운 것을 언제 처음 알았는가. ▲ 모른다. 그런 디테일한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 -- 배가 급하게 선회를 해 사고가 났다는 보도가 있는데 이 부분은 조사가 되고있는가. ▲ 당시 방향을 변침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은 맞다. 배가 그런 지점이었다. 변침이 유일한 원인인지 선박의 유지 관리상 하자가 있었는지 여러 면에서 조사 중이다. 과실이라는 게 하나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측면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 인재에 무게를 두는 것인가. ▲ (묵묵부답) -- 조난 당시 대피 방송은. ▲ 지금 진술들이 너무 급박한 상황이어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누구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하고 누구는 못 들었다고 하고 조난 방송에 대해서 조치가 적절했는지 수사 중이다. -- 교대 근무 상황은. ▲ 향후 말씀드리겠다.
특별취재팀 =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 구조탐색지원에 나선 군 현장구조지원본부는 실종자를 신속하게 탐색하기 위해 잠수사를 '릴레이식'으로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18일 알려졌다. 군의 한 관계자는 이날 "독도함에 설치된 현장구조지원본부가 오늘 현장에 대기중인 잠수사들을 릴레이식으로 투입하고 있다"며 "잠수사들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수중에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한계치까지 구조와 탐색작업을 실시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수중 탐색 작업 과정은 잠수사 1명이 여객선 선체까지 도발하는데 1520분, 수중 탐색에 1025분, 작업을 마치고 올라오는데 15분가량 각각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해군 구조전대 잠수조 5개조를 각 2명씩 총 10명으로 편성해서 립보트, 고무보트 등에 태워서 지원하고 있다"며 "10명밖에 편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사고발생 우려 때문에) 많은 인원수를 동시에 물속에 투입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세월호에는 '인도색'이라는 생명줄을 잡아야 내려갈 수 있다"며 "물속에 들어가면 전혀 보이지 않고 물살이 매우 세기 때문에 그 생명줄을 놓치면 곧바로 사고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잠수사들은 선실 통로로 원활히 진입할 수 있도록 여러 곳에 생명줄을 설치하거나 통로 개척, 선체 외부 탐색 등 각각 임무를 분담해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 사고 해역의 정조시간은 오전 4시 반, 그리고 오전 10시 20분, 오후 4시 29분, 밤 10시 25분 등 4번에 걸쳐서 있다"며 "이 시간 전후로 약 30분씩, 1시간가량 수중수색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여객선의 선실로 접근하기 위한 통로를 개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조류 흐름이 빠르고 부유물도 있어 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며 이런 문제로 잠수사들의 수중작업 시간도 단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오늘 오전 4시에도 잠수사 2개 팀이 수중에서 인도색 설치 등의 작업을 했다"면서 "현장에 투입되는 함정들도 1선, 2선으로 나눠 실종자가 유실되지않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사고해역에 독도함(1만4천t) 등 함정 26척, 항공기 24대, 해난구조대(SSU), 해군 특수전 전단(UDT/SEAL), 특전사 요원 등 400명을 투입했다. 시험 운행 중인 통영함을 제외한 청해진함, 다도해함, 평택함 등 3척의 해군 구조함이 잠수사들을 지원하고 있다. 군 현장구조지원본부장인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은 해난구조대(SSU), 특수전전단(UDT/SEAL), 특전사 소속 잠수사들을 현장에 최대한 대기시키도록 했다. 특히 군은 야간 수색을 위해 육해공군이 보유 중인 조명탄을 최대한 확보할계이다. 김 대변인은 사고해역에서 해군 함정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해경이 내부에 있고, 해군은 외곽에서 대기하면서 계속 지원작업을 하고 있다"며 "필요한 수색작업을 할 때는 단정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서 구조작전, 수색작전을 수행하는 그런 개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뜻 보면 눈에 띄진 않지만 외곽에 다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함인 평택함과 청해진함이 출동시간이 지연됐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청해진함은 (사고 다음날인) 17일 0시26분, 평택함은 오전 1시49분에 각각 도착했다"며 "구조함은 전투함이 아니기 때문에 시속 18.5㎞로 속도가 매우 느리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미 해병대의 본험리처드호에 탑재된 헬기가 구조지원차 출동했다가 우리 해군이 거부해 복귀했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서는 "본험리처드호는 (사고 당일)오전 11시 58분 MH-60 헬기 2대를 사고 해역에 보냈다"며 "그 당시는 다수의 구조헬기가 집중 운영되고 있어 MH-60 헬기는 역할이 많지 않아서 일단 복귀시키고 추가 임무를 주겠다고 지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 3일째인 18일에도 빠른 유속 등으로 배에 갇힌 것으로 보이는 승객 구조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이를 지켜본 많은 국민과 해외 동포들이 답답한 마음에 다양한 구조 아이디어를 연합뉴스로 보내왔다. 현실성이 낮은 아이디어도 있지만 온 국민이 기적 같은 구조를 기다리는 애절한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독자 김대종씨는 도면까지 그려 독특한 아이디어를 보냈다. 김씨는 "지름 1.5m 이상, 길이 40m짜리 원통과 그 안에 네온 불빛이 장착된 밧줄을 설치하면 구조대가 조류나 날씨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배 4층까지 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안동훈씨는 "현재 동원된 3천600t짜리 해상크레인 3대로는 세월호를 인양하지 못한다"며 "10만t급 이상 선박을 부양할 수 있는 플로팅도크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플로팅도크는 선박을 건조할 수 있도록 고안된 바지선 형태의 대형 구조물이다. 일단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배를 살짝 들어올린 뒤 그 아래 플로팅도크를 넣어 세월호를 띄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플로팅도크 공법을 검토 중이다. 해외에서도 많은 의견을 보내왔다. 미국에 산다는 아이디 'fyun89'는 "군함 등 큰 배를 일정하게 나열하면 유속을 줄일 수 있고 물이 탁해서 안 보이면 서모그래피(빛 대신 열로 볼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구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페루에 있는 이진석씨는 "배 안에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승객들이 존재를 알리기 위해 충격음을 발생시킬 것"이라며 "이를 감지하는 수신장치를 즉각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항공모함을 투입, 세월호 양쪽에 쇠사슬을 연결해 양쪽으로 끌어 수면 위로 나오게 하거나 이른바 '정주영 공법'(유조선공법)을 사용해 물 흐름을 막으면 진입이 수월할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정주영 공법이란 1984년 2월 서산 간척사업 때 밀물과 썰물의 빠른 물살을 폐유조선으로 막은 기술을 이르며 당시 정 회장이 유조선에 올라 물막이 공사를 직접 지휘한 데서 유래했다. 1990년 9월 경기도 고양시 한강 둑이 붕괴한 수해 때도 급류가 무너진 둑으로 밀려나와 이를 막기 어려울 때 정주영 공법을 응용, 돌을 넣은 컨테이너를 쌓아 응급 복구했다. 이밖에 세월호 근처에 기지국과 와이파이 설치, 잠수함으로 견인 등 다양한 의 견이 이어졌다.
"승객들을 구하려고 끝까지 배속에 남아 사투를 벌였던 서헤훼리호 백 선장의 숭고한 죽음이 떠오르네요." 전북 부안군 위도면 주민들은 21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배 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백운두(당시 56세) 선장을 '진정한 뱃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1993년 10월10일 오전 10시20분께 부안군 위도면을 떠나격포항으로 가던 중 침몰, 362명의 승객 중 292명이 숨진 사상 최악의 해상 참사다. 당시 백 선장은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홀로 탈출해 인근 섬이나 뭍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구조작업에 나섰던 민간인들과 생존자 중 누구도 배에서 백 선장을 보지 못했다는 진술이 나오고, 사고 후 인근 항구에서 백 선장과 비슷한 사람을 봤다는 제보까지 이어져 검찰은 그를 지명수배하는 촌극을 벌였다. 당시 사법당국은 백 선장이 살아있을 확률이 98%라고 단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백 선장의 가족은 가슴에 대못이 박히는 고통 속에서 죄인처럼 숨죽여야 했다. 그러나 백 선장은 사고 닷새 만에 침몰 선박 2층 조타실 뒤편 통신실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순간 선장실에 있었던 백 선장은 황급히 조타실 뒤 통신실로 뛰어들었으나 순식간에 휩쓸려 들어온 물살에 출입문이 막혀 탈출하지 못하고 희생됐다. 해경에 '구조 요청'을 하려고 통신실로 뛰어든 것이다. 위급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을 지키고자 그는 숭고한 죽음을 택했다. 서해훼리호는 출항 당시 북서풍이 초당 1014m, 파고 23m로 해상 기상이 좋지 않았다. 폭풍주의보 등 기상특보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여객선이 출항하기에는 악천후였다. 백 선장은 결국 높은 파도 때문에 운항이 어렵게 되자 무리한 운항보다는 회항을 결정, 선수를 돌리려다 사고와 맞닥뜨렸다. 극도의 불안 속에서 무서운 죽음을 직감했을 그였지만 선장으로서 자세와 의무,책임을 저버리지 않았다. 부안군 위도면의 한 선장은 "선장은 승객은 물론 배와 함께 하는 공동운명체"라며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자신의 직업에 충실했던 백 선장의 숭고한 죽음이 다시생각난다"고 말했다. 서해훼리호 참사가 어느새 20년을 넘겼지만, 사망자들의 넋과 선장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추모제는 위도 앞바다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
해경 조사 결과 사고 여객선 세월호(6천825t급)가 침몰 직전 급격하게 방향을 튼 사실이 확인된 가운데 당시 적재 화물의 과적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객선이 순식간에 침몰했다는 생존자 진술로 미뤄 급회전 과정에서 쏠린 화물 탓에 좌초 후 침몰까지 걸린 시간이 빨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18일 사고 여객선 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따르면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승용차 124대, 1t(적재가능 중량 기준) 화물차량 22대, 2.5t 이상 화물차량 34대 등 차량 180대와 화물 1천157t 등 총 3천608t의 화물과 차량이 적재됐다. 이는 승객 457명의 체중은 뺀 무게다. 2.5t 이상 화물차량 34대 중 2.5t 차량은 1대뿐이었으며 4.5t 이상 중형 화물차량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승용차 1대 무게가 보통 2t이고 4.5t 화물차량 1대 무게는 8t으로 여기에 화물까지 실으면 무게는 더 늘어난다. 특히 당시 세월호에는 최소 무게 50t 이상의 대형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트레일러 뒤에는 무게 20t 가량 되는 대형 철제 탱크가 달려 있었다.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생존한 트레일러 기사 A씨는 "트레일러 3대가 실려 있었는 데 사고 당시 여객선이 급회전하면서 트레일러가 쓰러졌다"며 "트레일러와 화물들이 쏟아지면서 여객선이 짧은 시간에 침몰했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적재 한도는 여객 정원 921명, 차량 150대,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52개다. 사고 당시 차량은 적재 한도보다 30대를 초과했다. 승선 인원이 정원의 절반가 량에 그쳤지만, 차량 무게를 사람 몸무게와 비교할 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총적재 한도보다 초과됐을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의 적재 한도는 3천794t으로 사고 당시 적재량보다 100t가량 적었지만, 해운 업계 관계자들은 사실상 과적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선사측이 밝힌 화물 적재량은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선사는 항해시간, 화물 적재 상태, 화물량 등이 포함된 출항 전 점검보고서를 작성해 선사 단체인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실에 통보하지만 제대로 된 과적 단속은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청해진해운의 한 관계자는 "만재홀수선이라고 배에 표시된 선이 물에 잠기는지를 확인해 과적 여부를 단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사가 임의로 보고서를 작성해도 운항관리실에서 과 적 여부를 사실상 알 수 없다"며 "배 출발 시간이 임박하면 대충 확인하고 출항시킨다"고 말했다.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18일 오전 정부의 부실한 대처를 성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실종자 가족들이 이날 오전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발표한 호소문 전문이다.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 4월 16일 오전 9시께 사고가 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낮 12시쯤 모두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존자 82명, 학생 74명, 교사 3명, 일반인 5명이 도착한 시각인 오후 5시 30분께 실내체육관 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 무도 없고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현재 진행되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학부모 대책위를 꾸려 오후 7시쯤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2곳으로 나누어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민간 잠수부를 동행해 자원을 요청했지만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우고 난리를 피워서 책임지는 사람을 보내달고 했는 데 대답이 없었다. 오후 10시 넘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구조는 없었다. 계속된 요청에도 17일 오전 1시께 다시 한다고 전달받았지만 조류가 심하다,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얼버무렸다. 군과 경찰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학부모와 민간 잠수부는 오열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인원은 200명도 안 됐다. 헬기는 단 2대, 배는 군함 2척, 해양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오전 9시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여객선 세월호 침몰사고현장에서 구조활동에 나섰던 민간 잠수부들이 해경해경과의 공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18일 오전 전남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의 회의에 참석한 한 민간 잠수부는 "해군해경의 잠수부들이 누구보다 고생하고 있는 점을 잘 알지만 민간 잠수부와의 공조부분이 아쉽다"고 말했다. 민간 잠수부 10여 명과 함께 참석한 한 단체 대표는 "민간 잠수부들이 어제는 수색 작업에 투입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안전을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보다는 일단 민관 모든 잠수부들이 함께 수색 작업을 해보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면서 "민간 잠수부가 장비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있어 지원을 요청하면 적극 응해달라"고 의견을 냈다. 이에 대해 해경의 한 관계자는 "공조부분에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진도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사고원인을 두고 여러 개연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생한 대형 해난사고들의 사고원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우선 296명의 사망실종자를 낸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해경 수사본부는 '급격한 변침'(變針배의 항로를 바꿈)을 사고 원인으로 잠정 결론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배가 급하게 방향을 전환하면서 배에 실려 있던 화물과 트럭 등이 한쪽으로 쏠렸고 결국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침몰했다는 설명이다. 세월호가 일본에서 도입되면서 구조를 변경하면서 무게중심이 높아진 것도 사고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음으로는 좌초설이다. 배가 암초에 부딪치는 바람에 배 밑부분에 '길게 찢어진' 형태의 파공이 나면서 침수가 되는 바람에 침몰했다는 분석이다. 이밖에 선박에 실려 있던 화물이나 차량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침수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해난사고 전문가들은 침몰한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 조사하고 선장과 항해사 등을 조사해봐야 정확한 사고원인을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많은 인명피해를 낸 다른 해난사고도 대부분 인재(人災)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1953년 부산 다대포 앞바다에서 발생, 330명이 사망하고 32명이 실종돼 최대의 해상침몰 사고로 꼽히고 있는 창경호 침몰사고의 경우 1차 사고원인으로는 풍랑이 꼽혔지만 지은 지 20년 넘은 화물선을 여객선으로 개조했다는 점도 사고원인으로 부각됐다. 323명이 숨진 남영호 침몰사고는 1970년 12월 15일 새벽 1시 30분께 여수 소리도 26마일 해상에서 발생했다. 서귀포부산항로의 362t급 정기여객선인 남영호는 승선인원 338명 중 323명이 숨졌다. 당시 기록을 보면 남영호는 선체가 갑자기 기울어지면서 전복된 것으로 돼 있다. 탑승 가능인원(302명)보다 많은 338명이 탔고 적재 가능 화물(130t)보다 많은 230t을 싣고 가다 변을 당했다. 1993년 10월 10일에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 앞바다를 운항하던 서해 페리호가 침몰, 292명이 사망했다. 당시 정원(221명)을 훨씬 넘은 362명을 태우고 출항해 사고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높았다. 또 당시 바다날씨가 나빴지만 출항을 강행했던 점도 사고원인으로 지적됐다. 서해 페리호는 바다날씨가 나빠지자 회항하려고 배를 돌리다가 침몰한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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