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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세계소리축제 20일 인터파크 · 나루컬쳐 예매 시작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장 김한, 이하 소리축제)가 오는 20일 오후 1시 1차 유료 공연 티켓 판매 및 무료 공연 사전 예약을 시작한다. 유료 공연은 인터파크에서, 유무료 공연은 나루컬쳐에서 티켓 구입과 좌석 예약이 가능하다. 소리축제 홈페이지에서 공연 정보를 확인하고 티켓 구매 사이트로 이동할 수도 있다. 1차 티켓 오픈 프로그램은 전통 공연이 중심이다. 무료로 진행되는 △판소리다섯바탕 춘향가(방수미/박애리/정상희) △흥보가 (김준수/유태평양/정보권)는 사전예약을 통해 좌석을 선점할 수 있다. 유료 공연인 △판소리다섯바탕 김세미/수궁가 △윤진철/적벽가 △송재영, 장문희/심청가 △산조의밤지순자,강정숙 은 티켓(1만원)을 구입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유료 무용 공연도 준비돼 있다. 한국인의 한을 전통소리 품바의 선율에 실어 몸짓으로 재해석한 다크니스 품바(안무 김재덕), 젊은 안무가(김보람, 김설진, 이경은)들이 의기투합한 무대 △국립현대무용단 HIP合의 경우, 공연 두 개를 예약하면 티켓 가격의 40퍼센트를 할인 받을 수 있다.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관람할 수 있는 SNAP meets Sori(미스터리 퍼포먼스 스냅), 올해 소리축제의 유일한 해외공연인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도 티켓 판매를 시작한다. 공연별 티켓 가격 및 정보는 상이하다. 관객들을 위한 다양한 티켓 이벤트도 있다. 예술인을 대상으로는대한민국 예술인을 찾습니다온라인 이벤트를 통해 공연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리축제 관계자는 추후 소상공인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SNS이벤트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연장에서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라 객석의 30퍼센트만 개방한다. 특히 야외공연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은 소수의 좌석만 운영할 예정이다. 자세한 공연 정보 및 티켓 안내는 소리축제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전주세계소리축제는 9월 29일부터 10월 3일까지 열린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19 17:42

(속보) 최시형, 전봉준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촉구 국민연대 구성

속보 = 전국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단체가 지난 13일 충남 온양에 있는 천도교 아산교구에서 연석회의를 열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촉구 국민연대구성에 합의했다. (관련기사 8월 10일 13면, 8월 9일 2면, 7월 23일 13면, 5월 21일 13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립유공자 서훈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날 연석회의에서는 가명현 동학실천시민행동 공동대표, 박용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백선기 동학실천시민행동 상임대표 등 동학관련단체 인사 18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훈연대 구성, 향후 사업계획 등을 논의했다. 회의는 백선기 상임대표가 주도했다. 그 결과, 서훈연대 명칭은 일제와 싸운 최시형, 전봉준 등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촉구 국민연대(약칭: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로 정해졌다. 상임대표, 공동대표, 집행위원장, 집행위원, 자문, 고문 등 조직체계도 마련했다. 상임대표는 박용규 연구위원, 공동대표는 김영진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을 비롯 9명을 선임했다. 집행위원장은 백선기 상임대표, 집행위원은 정해곤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사무총장 등 6명이 맡는다. 자문은 역사학자 및 전문가, 고문은 각계원로에서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참여단체는 고창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고창동학농민혁명유족회,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김제동학농민혁명유족회, 남원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동학기념관(전주) 등 51개로 정해졌다. 향후 사업계획도 수립했다. 8월까지 서울 및 세종시 등 각 지역별로 1인 시위를 지속하고, 범 정부적 차원의 해결을 위해 청와대 앞 시위도 고려하기로 했다. 또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의 면담도 추진한다. 서훈국민연대 발족 및 대국민 기자회견은 오는 27일 오전 11시 국회 앞에서 열 예정이다. 박용규 상임대표는 취임사에서 침략자 일본군과 싸우다가 희생된 2차 동학농민혁명 순국자 서훈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참석한 분들과 함께 힘을 합쳐, 올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안겨 드려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27년 전 자주 국가를 이룩하려 했던 동학 순국선열들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해드리는 일이 보국안민의 나라를 만드는 주춧돌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19 17:38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진도 씻김굿과 산해진미山海珍味

필자는 우리나라 전통의 굿이 좋아 공부하며 우리 굿의 예술적 가치를 알리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인 남해안별신굿의 이수자이다. 굿을 좋아하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굿이 좋았다. 어릴 적 동네 앞산 굿당에서 굿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옛 속담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처럼 굿을 보며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풍성하게 차려진 떡과 과일 등 맛난 음식을 얻어먹었다. 운이 좋으면 맛난 돼지고기 수육 그리고 당시 무녀, 악사들이 좋아하여 굿 틈틈이 마시던 모 제약회사의 박*스도 손쉽게 얻어먹었다. 필자의 어릴 적 굿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굿은 좋은 기운을 빌고 마음에 편한 말을 해준다. 특히 그 시절 더욱이 좋았던 것은 굿이라는 멋진 볼거리에 먹을거리가 풍성했던 것이다. 어찌 이보다 좋은 볼거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지만 그러한 굿의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가까운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10여 년 전 전라남도하고도 진도에서의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달빛이 밝은 어느 날 나지막이 들려오는 은은한 징 소리에 순간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고, 도착한 그곳에는 병풍에 다소곳이 입혀진 지화와 흐드러진 지전이 마치 산수화를 보듯 단아하게 펼쳐져 있었다. 또한 황제의 백 첩 반상 부럽지 않은 제수 음식들이 오색 빛깔을 품으며 한 상, 두 상, 서너 상에 자태를 뽐내고 빛을 발하고 있었으니 이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다양하고 귀한 먹을거리요. 무녀 양손에 움켜진 신칼과 정주의 영롱한 울림은 이름 모를 망자의 해원을 위한 영험한 소리였으니, 그것은 세습되어 내려온 진도 씻김굿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의 굿에는 참으로 많은 종류의 굿이 있다. 드넓은 바다와 바다로 나간 이들을 위한 별신굿, 지역의 수호신을 모시고 마을의 평안과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대동굿 그리고 돌아가신 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씻겨주는 씻김굿. 모두 각각의 특성과 예술적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되어 그 음악과 행위가 보존하고 있다. 진도의 씻김굿은 특히 돌아가신 분을 위한 굿이다. 씻김굿에는 살아계신 분을 위한 굿도 물론 있지만 돌아가신 분의 액을 풀어주고 축원을 담은 해원의 주술적인 의식이 강한 한국인의 마음, 바로 정(情)의 굿이었다. 씻김굿의 먹을거리에는 항상 다양한 향토음식이 존재한다. 여느 지역의 굿 상차림처럼 다양하고 풍성하다. 진도에도 특별함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뜸북국이었다. 뜸북국은 뜸부기 또는 듬부기라는 진도 조도 일대에 자라는 해초를 잘 건조하여 끓인 국이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푹 고아서 나온 육수에 이 뜸부기를 넣고 갖은양념으로 더욱 감칠맛이 나게 그 국의 진미를 더 했다. 진도의 뜸북국은 밤을 새워가며 진행되는 굿 의식 중에 요깃거리로 먹는 영양 만점의 향토음식이었던 것이다. 일반 톳처럼 생겼지만, 그리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입천장에 부드럽게 닿는 감칠맛이 그만이다. 뜸부기 밑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소고기는 뜸부기를 비웃듯 진한 고소함과 넉넉함으로 화답한다. 춘향가의 이몽룡과 성춘향만이 합이 되란 법이 어디 있던가? 전통예술과 산해진미山海珍味는 이렇듯 빼놓을 수 없는 궁합인 듯하다. 오늘 우리 모두 지역의 맛난 향토음식을 찾아 먹어보자.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게 전라북도의 판소리를 들으며 말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8.19 17:38

풍남춤락 페스티벌 대상 유승관

사단법인 금파춤보존회에서 개최하는 제16회 풍남춤락 페스티벌에서 유승관(서울) 팀이 대상을 받았다. 금파춤보존회가 지난 15일 한국전통문화전당에서 풍남춤락 페스티벌을 비대면 온라인 공연(유튜브)으로 진행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지난 6월19일 20개 팀 영상심사에서 통과한 5개 팀이 무대를 선보였다. 무대에 오른 팀은 권정현(인천)문대하(전북) LiMeiLing(중국 연길)유승관(서울) HongChenChen (중국 장춘)을 중심으로 한 안무단이다. 권정현은 팀원인 이세빈김나라백지수신동혁류일훈과 잃어버린 낙원(lost paradaise)을 선보였다. 이 안무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낙원을 마주하며 유한 가치를 잊지 않고 가꿀 수 있는 바람을 담아 구성했다. 문대하는 최연주정승준김동희강아영정세화와 이중적 감각을 사람과 사람, 즉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는 다른 것의 사이에서의 공간과 간격에 대해 표현했다. LiMeiLing은 팀원인 JIN WU, XIAO XINMIN, LAI XIN, HU LIMIN, LI XIANG과 환오명심을 표현했는데, 마음을 다듬고 깨닫는 방식을 몸짓으로 드러냈다. 유승관은 나명숙, 이이슬, 한예진 내가 만약 죽으면 (if I Die)을 무대에 올렸다. 이들은 무대에서 화려한 의상을 입고 느린 움직임과 얼굴표정으로 사후세계와 불로장생의 의미를 그려냈다. HongChenChen은 팀원인 KIM JEEMIN, BAEK KYOUNGA, WU JIAHUI, OH SOOYEON, NIE TIANYU과 비단길을 선보였다. 이들은 실크로드를 따라 다채로운 문화의 탄생과 교류, 융통의 과정을 춤말로 풀어냈다. 심사위원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안덕기 교수, 한국체육대학 연구원 김기화 교수, 신라대학교 이태상 교수, 전북대학교 한유선 외래교수가 참여했다. 수상결과 유승관 팀이 대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문화체육부 장관상과 안무지원금 200만원을 받는다. 1등은 HongChenChen팀(전북지사상, 안무지원금 100만원), 2등은 문대하팀(전북지사상, 지원금 100만원)이 차지했다. 3등은 권정현 팀(전북지사상, 지원금 100만원)과 LiMeiLing(금파춤보존회 이사장상, 지원금 100만원)이 자리했다. 최우수연기상(전주시장상)은 나명숙의 내가 만약 죽으면-if I Die, 우수연기상(한국무용협회 이사장상)은 JINWU의 환오명심, 정승준의 이중적 감각이 받았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17 18:45

[전북문학관 지상강좌 - 한국문학의 메카, 전북] (52)“시(詩)를 종교로 시작(詩作)을 신앙”으로 살아온 시인 이기반

이기반 시인 이기반(李基班) 시인은 1931년 5월 25일, 전북 완주군 조촌면 반월리에서 출생하였다. 시인은 전주 농림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문학과에서 공부했고, 1956년 전북대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골든 스테이트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9년 신석정 시인이 『자유문학』에 「설화」, 「가마귀 울어도」, 「말 없는 반항」 등을 추천함으로써 등단하였다. 1961년 『삼남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었다. 시인은 1955년 삼례고등학교에서 근무였고, 전북대 강사를 거쳤으며 1976년부터는 전주대학교 교수로 근무하면서 대학신문?방송주간, 사범대학장 등을 역임하였고, 정년퇴임 후에는 전주대학교 교회 장로로 활동하였다. 시인은 1958년 조재섭 시인과 함께 첫 시집 『두 날개』를 펴낸 후, 『대합실의 얼굴들』, 『내 마음밭의 꽃말』, 『겨울 나그네』 등 20여 권의 시집과 수필집 『은하의 모래알들』, 연구서 『한국현대시연구』, 『언어예술의 시간과 공간』, 『현대시론』 등 수십 편을 펴냈다. 시인은 전북 문학 발전과 작가적 역량이 높이 평가되어 전북문학상과 전북대상, 노산문학상, 백양촌문학상, 한국시문학대상, 목정문화상 한림문학상, 국민훈장동백장, 기독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인은 신석정 시인의 1세대 제자로서 석정문학을 계승하는 데 앞장섰다. 특히 『석정문학』과 『기린문학』을 발간하여 후학들의 문학 활동을 이끌고 지원하였다. 시인이 언제부터 시를 썼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형제를 잃은 슬픔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시인의 수필 「월촌 이야기」에는 열다섯에 누이동생을 잃은 슬픔으로 마을에 뜨는 달을 바라보며 한숨과 슬픔을 날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시인의 나이 오십 즈음에는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장성한 둘째 아들을 잃게 된다. 시인의 표현대로 파랑새로 훌훌 날려 보내는 아픔은 그의 시 여러 편에서 감지된다. 시인이 허무와 생명의 본향을 뼈저리기 느끼면서 기다림으로 일관했던 것은 어쩌면 가슴 한구석에 못이 박히듯 지울 수 없었던 아픔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1980년에 출간한 시집 『아침의 눈망울』에서 시에는 더욱 높은 차원의 약동하는 생명력이 시 속에 투영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아울러 시는 가르치고 즐거움을 주려는 의도를 가진 말하는 그림이기를 추구했다. 최승범(전, 전북대학교 인문대학장)은 시를 종교(宗敎)로, 시작(詩作)을 신앙(信仰)으로 한결같이 정진해 온 시인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 바 있다. 시를 향한 그의 정열(情熱)은 실로 무섭기까지 하다. 어떠한 오브제이거나 그 정열의 도가니를 거쳐 나오기만 하면 바로 우리의 심장과 영혼에 잔잔하고도 해맑은 종소리의 시행(詩行)이 되고 만다. 특히 시인(詩人)의 시는 공해(公害) 속에 사는 현대인에게 「은하(銀河)」 「모래알」 같은 「꿈밭」을 펼쳐주리라 믿는다. 1993년에 출간한 그의 열여섯 번째 시집 『강물로 흐르려네』의 자서(自序)에도 이런 신념은 변함이 없었다. 이 험난한 세상을 시와 함께 산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외로울 때 시를 생각하고, 피곤할 때 시를 읽고, 괴로울 때 시를 쓴다. 그러니까 나에게 시가 있는 한, 외롭지도 피곤하지도 괴롭지도 않다. 이처럼 충만한 내면의 풍요를 행복으로 거둘 수 있는 그 열매가 나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거룩한 것이다. 엉킨 실타래 올올이 풀어내어 한 줄기 강물로 흐르려네. 메마른 땅 촉촉이 적셔 씨 뿌리고 가꾸어서 크낙한 열매 거두게 하려네. 저마다 굽이굽이 막히고 서린 한을 생명의 젖줄로 뚫어서 풀어 보려네. 공해에 시달리는 구석구석 얼룩진 자국을 씻어내며 거침새 없이 맑히려 하네. 온갖 잡소리 다 거두어 버리고 새 소리랑 물소리만 노래하게 하려네. 눈 멀고 귀 먹고 벙어리된 사람들 일깨워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말하게 하려네. 강물로 흐르면서 고향 마을 두루 돌고 돌아 정일랑 사랑으로 물들이게 하려네. -「강물로 흐르려네」(전문) 또한, 이기반의 시에는 전원의 풀 내음과 꽃내음이 있고, 보리밭의 이랑을 나르는 노래가 있다. 그것은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것이 전원(田園)이기에 그런 말을 듣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의 고향 반월리는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운중반월(雲中半月)>의 형상이라고 한다. 구름 가운데 있는 반달의 의미니 그 풀이가 마음에 들어 스스로 호를 월촌(月村)으로 지었으며, 전주 시내로 이사하고서도 고향 마을 같은 느낌이 드는 서학동(棲鶴洞)을 오래도록 떠나지 못했다고 한다. 고향에서 부는 바람은 토끼풀이랑 쑥 내음이 숨어 있어서 순이가 생각나고 복남이가 그립지만, 바람은 색깔이 없어 보이지 않은 얼굴들이 구름 따라 어디론가 날아간 그 자리마다 이야기만 남아서 올봄엔 민들레꽃이 피네 -「고향에서 부는 바람」 한평생 후학의 지도와 창작에 몰입하였던 시인은 많은 시집과 연구서를 남기고, 2015년 11월 18일 영면하였다. 전북문단의 중책을 많으면서 전북문단을 크게 활성화했고, 영생대학과 전주대학교로 이어지는 거대한 문맥(文脈)의 중심이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조명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시인이 집대성한 많은 작품이 재평가되고 조명됨으로써 후학과 독자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읽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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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7 17:21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동진강유역의 마한 소국

동진강유역이라 하면 정읍시와 부안군의 전역, 김제시의 부량면, 봉남면, 죽산면 일대가 해당되고 있다. 이 지역의 마한 소국을 유추할 수 있는 문헌자료는 『일본서기』 권9 신공기 49년조에서 찾을 수 있다. 자료에는 왜가 신라와 가야 7국을 평정하고 백제를 복속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 작전은 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백제가 근초고왕 대에 가야지역을 비롯하여 영산강과 동진강유역의 서남해안 지역에 진출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윤색된 것으로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백제가 근초고왕 24년(369년) 침미다례(?彌多禮)를 정벌하자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比利?中布彌支半古四邑)이 백제에 자연스럽게 복속됐다는 것이다. 먼저 침미다례의 위치는 남해안의 해남지역이나 강진, 또는 고흥반도로 비정하며, 비리와 벽중은 내륙지역으로 인식하여, 백제가 해로와 육로를 장악하면서 마한을 복속시킨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다음 비리벽중포미지반고사읍에 대한 지명 가운데 비리(比利)는 전주 혹은 부안, 벽중(?中)은 김제, 포미지(布彌支)는 정읍 일대, 반고(半古)는 부안과 태인 일대로 비정되고 있어 4세기 중엽 경에 이르면 전북지역이 백제에 복속되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한편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마한 유적의 밀집도에 따른 마한 소국의 위치를 추정해 보면, 동진강유역에는 3개의 소국이 위치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먼저 부안지역의 마한 소국(Ⅲ-1)은 부곡리, 신리, 대동리, 하입석 등에서 발견된 주구묘 유적이다. 이는 평면이 방형과 제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대체로 1변이 개방되었고, 1,2개의 모서리가 개방된 형태를 띠고 있다. 주매장주체부는 모두 삭평되어 발견되지 않았지만, 대상부나 주구에서 옹관편과 다량의 토기편이 발견되었다. 유구의 평면형태나 출토유물은 김제에서 발견되는 양상과 비슷하며, 마한 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정읍지역의 마한 소국(Ⅲ-2)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영원면의 지사리나 운학리에 남아있는 대형 분구묘의 존재를 들 수 있겠다. 이들 분구묘는 백제의 고분으로 알려져 왔었지만, 최근 마한 분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마한 분묘의 축조전통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운학리 3호분에서 발견된 도금된 용문투조과판(龍紋透彫?板) 등은 피장자의 위계를 살필 수 있고, 고대 한․일간 교류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정읍의 최남단에 위치한 마한 소국(Ⅲ-3) 가운데 신면유적에서는 지점을 달리해서 집자리와 더불어 분구묘 8기가 조사되었다. 신면유적 분구묘 3,4호의 경우, 주매장시설로는 토광이 중앙에 안치되어 있고, 대상부나 주구 또는 인접된 공간에서 옹관이 발견되고 있다. 이 지역은 지정학적으로 영산강유역과 가깝기 때문에 백제의 중앙세력의 주요 거점이 되었을 것이며, 이는 신정동 백제 석실분의 축조에서 뒷받침된다. 동진강유역의 마한 소국은, 마한 전기에 새당하는 주구묘 유적들은 부안지역의 소국(Ⅲ-1)에 분포된 반면, 후기에 해당하는 대형 분구묘들은 정읍 영원면 지사리나 운학리 일대(Ⅲ-2)에 축조된다.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구심점이 형성되어 동진강유역 마한 연맹체의 중심국으로서 백제시대에 중방 고사성이 설치되는 근간이 되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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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7 16:54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모나리자의 스캔들 2

위험 부담이 많은 진짜 모나리자를 간직할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1911년 8월 21일, 루브르박물관에 그림을 그리러 들어갔던 젊은 화가 루이베르에 의하여 모나리자의 실종이 처음 이뤄진 후 프랑스 경찰에 의하여 국경과 항만이 봉쇄되었고 전 세계의 신문은 이 사건을 연일 대서특필하였다. 도저히 분실될 수 없는 장소에서 없어진 이 그림은 프랑스 사람들에 의해 정치적 농간이라는 추측이 높아만 갔다. 그 당시 다른 미술품 도난 사건으로 구속되어져 있던 세기의 시인 아폴리네르를 진범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또는 어느 기자가 특종을 터뜨리기 위하여 그림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르 마탱이라는 신문은 초능력을 써서라도 모나리자를 찾는데 도움을 주는 심리학자에게 5000프랑(당시 시가)을 지불하겠다고 밝혀, 모나리자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무당이나 점쟁이 혹은 점성술가들 까지도 수사에 동원되는 촌극을 빚었다. 온갖 조롱과 빈정거림 속에서 루브르박물관의 학예실장이 해임되고 일부 직원들도 징계를 당했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후인 1913년 12월, 전에 루브르박물관에서 액자 수리공으로 일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인 빈센조 페루치아를 피렌체에서 체포함으로서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철저하게 에두와르도의 하수인이었던 빈센조는 체포된 후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허영심이나 공명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끝내 에드와르도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탈리아 사람의 명작이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껴 나폴레옹이 약탈한 모나리자를 되돌아오게 한 것뿐이다 또는 모나리자와 사랑에 빠져 그녀의 미소로부터 떨어지면 미칠 것 같았다고 말하여 이를 주제로 많은 소설과 영화가 만들어졌는가 하면 모나리자가 하룻밤 묵었던 여관의 이름이 라 조콘다라고 고쳐졌으며 빈센조가 모나리자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모나리자가 조국의 산하를 보고 싶어 빈센조를 데리고 왔다라는 등의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몰랐고 에드와르도는 그럴만한 사람을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원래 모나리자의 작가인 다 빈치에 의하여 프랑수아 1세에게 팔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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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6 17:14

광복 76주년…전북 독립운동가 서훈 필요

1945년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한 지 7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전북의 수많은 독립군과 의병이 여전히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는 재판기록이 있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전북지역 자치단체와 민간단체, 역사 연구자가 서훈대상자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12일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의 독립유공자 출신지역별 현황에 따르면, 전북에서 올해까지 서훈을 받은 독립유공자는 1077명이다. 지역별로 서울수도권과 전국 8도, 북한의 평안도황해도함경도까지 살펴봤을 때, 경상북도(2292명), 충청남도(1480명), 경기도(1401명), 경상남도(1352명), 전라남도(1295명) 다음 순이다. 그러나 전북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규모와 전개양상에 비해 서훈자수가 적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19년 국제연맹에 보고하기 위해 조사 편찬한 자료인 한일관계사료집의 통계수치를 보면, 전북 등 호남지역의 독립운동 참여인원은 대략 27만에 달한다. 경기도, 평안도에 이어 3번째 규모다. 국가보훈처 연구원 출신인 천지명 동국대 학술연구교수는 전북 지역에서 서훈대상 발굴은 다른 지역보다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며 과거에 조선총독부의 조선소요사건 경과표자료에 따라 남한대토벌이후 전북지역 독립운동이 위축됐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일관계사료집을 분석하면 전북지역 독립운동 참여도가 상당히 적극성을 띄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30여년 간 서훈대상 발굴 작업을 해 온 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은 여전히 전북 지역 국립대학이나 연구기관, 자치단체 등은 서훈대상자 발굴 및 의뢰에 소극적이라며 다른 지역과 많이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인천대독립운동사연구소가 최근 3년(2019~2021)간 전북 독립운동가와 의병 400여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서훈을 신청했다. 서훈여부에 대한 결과는 수 년에 걸쳐서 나올 예정이다. 이 소장은 지난 2019년에 신청했던 결과가 올해 통보된다고 결과발표가 늦은 이유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서훈대상자의 광복 이후 행적까지 상세하게 검토한다며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상범으로 활동해 징역을 살았던 사람은 포상을 받지 못한다고 부연했다. 전북 자치단체, 광복회 전북지부 등의 단체가 서훈대상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활발히 벌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가보훈처가 지난 2018년부터 독립유공자 서훈 심사기준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훈처는 수형옥고 기준인 3개월, 태형 90대 등이 기록을 폐지하고, 관련인사의 일기와 회고록 등도 증거로 인정하기로 했다. 천 교수는 기준 완화로 서훈을 받기 수월해진 측면이 있다며전북 지역 독립운동사 연구를 활발히 벌이면서, 서훈 대상자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훈 보상에 대한 속도를 높이기 위해 국가보훈처의 연구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가보훈처에서 서훈대상을 검토하는 연구원은 25명 내외다. 이 소장은 공훈발굴과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적다보니 밀려드는 포상신청 서류를 정리하는 데도 버거워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과를 국으로 승격하고 인원도 지금보다 3배 가량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12 18:11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종지(終止)의 음악

한국의 전통악기 중에 어(한자)라는 악기가 있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서 쓰이는 악기로 그 모양은 흰 호랑이, 즉 백호白虎와 닮은 모습이다. 조선 역대 왕의 제사 음악으로 사용되는 종묘제례악이나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의 악기이다. 이러한 전통악기 어의 음악적 상징과 뜻은 장엄하고 숙연함. 그리고 악곡의 마지막 종지終止를 뜻한다. 악기의 생김새는 백호를 닮아 등에는 27개의 톱날이 있는데 저어齟齬라 쓰고 차아라 읽는다. 또한 대나무 끝을 세 조각으로 세 번 쪼개 아홉 조각으로 갈라서 만든 채를 갖고 백호 모양의 머리를 치며 연주를 하는데 이 채의 명칭은 견이다. 생김새도 이처럼 특별하다 보니 그 역할이 참으로 특이하고 절묘하다. 자고로 어는 연주도 마지막 한 번, 음악의 끝을 알릴 때만 사용하는 단 한 번의 악기이다. 그러므로 이 악기의 연주자는 전체 음악을 모두 알아야 하고 이러한 모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묵묵히 수행하는 완결자 역할을 한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은 자신의 수필집 인연을 통해 서양악기 연주자 플루트 플레이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연주자가 맡은 악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로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서는 한 구성원이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라는 글이었다. 우리가 숨 쉬고 생활하는 사회는 웅장한 연주곡과 같다. 바로 국악의 제례악, 서양 오케스트라의 교향곡과 같은 것이다. 각자의 사명과 역할을 충실히 해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성숙한 모습으로 완성된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몹쓸 병마와 싸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약속인 사회적 거리두기.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 개인의 역할을 충실히 실천할 때 우리의 국가 대한민국은 멋진 하모니를 연출할 것이요, 공동체라는 어울림의 곡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다. 나 하나 괜찮겠지. 나만 그런가? 에이, 다들 그러잖아. 이러한 일부분의 모습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약속과 역할을 저버리는 생각이며 잘못된 판단일 것이다. 전통악기인 어가 곡 중간에 치거나 마지막 연주를 하지 못한다면? 만약 오케스트라 플루트가 아무 곳이나 나와 연주를 진행한다면 어찌 될까? 그 곡은 엉망이 되어 연주곡 전체를 무너트릴 것이요, 연주자 개인도 한 번의 실수에 큰 실망과 잘못으로 힘들어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하는 사회에 대한 규율과 약속을 충실히 지킬 시점에 서 있다. 특히 병마와 불신不信이 넘쳐나는 현 세상에 더욱더 말이다. 우리 모두 전통악기 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종지의 음악이 필요한 시기임을 우리 모두 각인하자. 각자의 사명과 의지를 다 하며 그 뜻을 함께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전통악기 어의 기능과 역할처럼 모든 시작의 끝을 알리며, 병마 없는 아정하고 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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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2 17:29

국립무형유산원 전북도 무형문화재 보이지 않는 갈등

국립무형유산원과 전북도무형문화재 사이 보이지 않은 갈등이 있는 모양새다. 전북도무형문화재는 국가무형문화재에 비해 국립무형유산원 공연 허가와 대관에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립무형유산원은 차별 없이 절차에 따라 진행하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무형유산원이 그 동안 지역문화예술계와 소통이 부족했던 점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전북도 무형문화재연합회 등에 속한 무형문화재 A씨는 무형유산원 공연에 지역무형문화재가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공연장 대관도 어렵다고 주장했다. A씨는 이전에 공연하고 전시할 공간이 없어서 무형유산원에 대관을 의뢰했는데 국가적인 행사 이외에 다른 행사는 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행사는 1년에 몇 차례 정도 하는 데, 행사가 없을 때 (우리한테) 대여하면 되지 않겠는가라며 지역 상생차원에서 다른 지역 무형문화재에게도 대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A씨는 남원에 있는 국립민속국악원은 국가행사나 지역행사를 가리지 않고 연다며 공연장 대관 역시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립민속국악원은 남원농악이나 무용협회, 남원용성중학교 국악 정기연주회 등을 연다. 국악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악과 관련한 공연이라면 국가 지역 상관없이 대관이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무형문화재 B씨는 지역 무형문화재가 그 곳(무형유산원)에서 공연을 하면 위상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지역 문화재나 국가 문화재나 대통령령에 따라 지정받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국가 무형문화재나 지방 무형문화재를 차별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무형유산원 관계자는 국립무형유산원 대관 규정에 의거해 대관업무를 진행한다며 국가나 지방문화재 모두에게 대관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국립무형유산원 대관규정을 보면, △무형문화유산 보존전승진흥 등에 기여할 수 있는 공연 등 문화예술행사 △전통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연 △국제무형문화교류에 기여할 수 있는 국내외 학술대회 △기타 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공연 또는 행사를 대관요건으로 제시한다. 국가 무형문화재와 지역 무형문화재를 구분하는 기준은 없다. 유산원 관계자는 이어 대관료 면제 규정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며 국가나 지역 상관없이 문화재 이수자 기준만 확인되면 면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 19로 외부에 공연장 대관을 진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러 상황이 발생한 원인으로 소통부족이 꼽힌다. 이 문제는 국립무형유산원이 지난 2014년 문을 연 이후부터 줄곧 지역문화예술계에서 제기돼왔다. 전북지역 한 대학의 예술관련 학과에 몸담고 있는 한 교수는 무형유산원이 전북에 유치되면서 지역 문화재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다며그런 기대치에 못 미치다보니 불만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가장 큰 문제는 무형유산원이 지역 문화재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관련 정책에 대한 고민도 없다고 말했다. 지역 문화계 인사는 국악, 문화재 등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지적이 나온다며공통적으로 무형유산원이 전북에 있는 외딴 섬 같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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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세희
  • 2021.08.12 09:43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만경강유역의 마한 소국

전북지역의 마한 소국은 함열함라 일대의 감해국(感奚國), 고창의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김제의 벽비리국(闢卑離國) 등에 대한 의견이 모아지고 있을 뿐, 대부분 연구자 개별 의견만이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문헌자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고학적인 자료를 근간으로 마한 소국의 공간적 범위를 추론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문자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구체적으로 마한 소국명칭을 대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만경강유역에서는 익산시, 완주군, 전주시, 김제시 등을 4개 지역별로 마한 분구묘나 주거 유적의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기 마한 소국의 중심으로 비정할 수 있다. 이러한 구분은 편의상 현재의 행정구역 중심이지만 인접된 지역에서는 중첩되고 있다. 먼저 익산시(Ⅰ-1소국)의 주요유적은 모현동과 영등동 일원에 분포되어 있는 분구묘와 주거유적을 들 수 있다. 모현동 묵동유적의 분구묘는 수평 확장과정 및 출토유물을 보았을 때 5세기 중 후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금강유역의 백제 석축묘에서 출토되는 고배와 직구호 등 동일한 유물이 부장되어 동시대에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금강유역과 달리 마한의 전통적 묘제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완주(Ⅰ-2소국)지역 중심 마한 소국의 주요 유적은 완주 상운리와 수계리 분구묘, 그리고 익산 사덕의 주거유적으로 들 수 있다. 완주 상운리 유적은 완만한 구릉 일원에 위치하며, 전기단계부터 후기단계의 분구묘가 분포하고 있어 그 변화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 가운데 가-1지구의 1호분의 매장주체인 토광에는 점토곽을 시설한 후 목관을 시설한 것으로 규모나 축조방법에서 볼 때 최고 유력자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부장유물인 환두대도, 금동이식, 철정, 철부, 철촉 등의 다양한 철기유물과 옥류, 토기 등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완주 상운리 분구묘는 군집양상과 규모, 출토유물 등에서 마한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던 고도의 철기제작 기술을 소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벽비리국(闢卑離國)으로 비정되는 김제일대(Ⅰ-3)에서 주목되는 유적은 농경수리유적인 벽골제를 들 수 있다. 벽골제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330년에 시축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백제가 김제지역을 영역화하기 이전에 해당한다. 발굴결과 부엽공법과 토낭을 쌓아 제방을 축조하고 있는데, 토낭을 이용한 수법은 마한 분구묘를 성토하는 수법과 같아 벽골제 축조 주체는 마한 세력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전주지역의 소국(Ⅰ-4)은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으로 비정되고 있는데, 주요유적으로는 축조 중심연대가 5세기 중엽에서 6세기 중엽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전 분구묘와 6세기 초에 해당하는 장동 분구묘를 들 수 있다. 그리고 6세기 중엽이후의 주구를 갖춘 석실분이 축조된 안심유적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만경강유역에서 백제 영역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마한 분구묘가 축조되었던 이유는 마한의 성립지로서 강력한 마한문화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이 지역이 마한의 본향이라는 자긍심은 백제 무왕의 익산천도와 견훤의 후백제 건국으로 이어지고 근대에 이르기 까지 면면히 지속되고 있다. /최완규(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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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10 17:41

(속보) “2차동학농민혁명 참가자 서훈대상자 안 되는 것은 불합리”

속보 = 그 이듬해에 있었던 을미의병에 참여했던 분들과 일제 침략에 저항했다는 점에서 똑같은 활동을 했다. 을미의병과 관련된 분들은 서훈 대상자가 되고 2차 동학농민혁명의 참여자분들은 서훈 대상자가 안 되는 것은 불합리하다.(관련기사 8월 9일 2면, 7월 23일 13면, 5월 21일 13면) 지난 5일 늦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동학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는 제목으로 동료 역사학자 7인과 함께 성명을 발표한 고석규 전 목포대 총장은 9일 전북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고 전 총장은 명예회복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여러 기념 행사는 하게 되었지만, 서훈자로 되어야만 진정한 명예회복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성명서 제목을 정했다고 부연했다. 전봉준 장군을 비롯한 2차 동학농민혁명군이 서훈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밝혔다. 현재까지 전 장군뿐 아니라 1894년 일제에 맞서 항거했던 동학농민혁명군 역시 지금까지 독립유공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 전 총장은 (동학농민혁명의 주역이) 그동안 못 받았던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전봉준 장군이 받아야 하는 이유는 충분히 성명서에 나와 있다고 했다. 고 전 총장의 말대로 성명서에는 관련 법령인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규정한 예우가 나와있다. 이 법은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사람의 명예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독립유공자 서훈을 위한 근거법인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과 동일한 내용이다. 또 성명서에는 고등학교 한국사 9종의 교과서에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일제에 항거했다는 내용이 서술된 점, 한국 역사학계가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무장투쟁을 규명한 점 등도 서훈을 해야 할 근거로 들고 있다. 고 전 총장은 보훈처가 2차 동학농민참가자에 대한 서훈을 심사하는 데 문제가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이나 비리가 있어 서훈이 안 된 것은 아니다며 역사 해석에 대한 차이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이어 2차 봉기를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이라는 민족운동 차원으로 보느냐 아니냐라는 역사 해석상의 차이 때문에 현재까지 심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독립유공자 서훈이라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서훈에 대한 요구를 충분히 못한 부분도 있었고, 서훈을 심사하는 측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상황이 못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면서 동학농민 기념일도 생기고, 이런 것들이 서훈을 받아들여도 되겠다는 상황이 된 것이지 않겠냐. 이러한 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심사에서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된다고 부연했다. 이에 국가보훈처의 공훈발굴과는 전북일보에 학계 의견을 듣고 있고, 내용에 대해 충분히 확인하고 있는 중이라면서도 아직 어느 방향으로 할 것인지 맞다아니다결론이 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독립유공자는 개인에 대한 포상이라며 어떤 사건에 대해 평가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어떠한 특정 사건만을 심사하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앞서 고 총장을 비롯한 김봉곤(원광대), 김양식(청주대), 성주현(청암대), 신순철(원광대), 신영우(충북대), 이상식(전남대), 홍성덕(전주대) 등 8명의 역사학자들은 성명서를 내고 동학농민명예회복법과 독립유공자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서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우리 전공 역사학자들의 불찰과 게으름도 없지 않았다면서 이제 우리 역사학자들은 관련 제도와 법령, 연구 성과에 의거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박현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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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1.08.09 18:07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모나리자의 스캔들1

이 제품을 그대로 모사할 수 있겠소? 예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은은한 윤곽과 부드럽게 명암을 조성하는 다빈치의 스푸마토(윤곽을 엷게 하는 기법)입니다. 매우 정교하기 때문에 포착해서 재생하기엔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할 수는 있습니다. 루부르박물관 살롱 카페의 모나리자 그림 앞에서는 어마어마하고도 엉뚱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칭 후작이라는 에두아르도 드 발피에르노(Eduardo de Valfiermo)의 질문에 대한 미술품 위조 전문가 쇼드롱의 대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1910년 가을 드디어 쇼드롱은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배율이 높은 확대경으로 며칠 동안 그림을 살피고 오래된 이탈리아의 침대를 구하여 그 나무판을 원화와 같은 77cm 53cm로 잘랐다. 원화를 촬영한 선명한 사진으로 정확한 구도를 잡고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이 사용하였던 물감으로 빛의 양감을 자아내기 위해 물감을 층층이 겹쳐 바르고 다시 엷은 색의 유약을 발랐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생긴 균열선을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천천히 마르는 기름을 사용하고 그 위에 빨리 마르는 기름을 사용한 다음 바람결에 말렸다. 국내 작가의 작품에서도 선 보여진 바 있는 이 방법은 마르는 속도가 각기 다른 두 종류의 기름이 각기 다른 작용을 일으키면서 감쪽같이 균열을 만들어 냈다. 쇼드롱은 그림이 오래 되었다는 인상을 더욱 강하게 주기 위하여 흑연가루를 여기 저기 묻혀 두었다. 모두 6점을 그리는 것으로 쇼드롱의 임무는 끝나고 이제는 에두아르도의ㅤ활약만 남았다. 1911년 6월 에드와르도는 이 6장의 모나리자 모사품들을 모두 뉴욕의 안전한 곳에 보관시키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두 명의 미술품 전문가까지 동원하여 제물이 될 고객을 찾아 나섰다. 몇 주일 동안의 집요한 활동 끝에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 걸작을 손에 넣겠다는 6명의 고객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그들 6명은 하나같이 자신만이 흥정의 대상인 줄 알았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모나리자를 훔쳐내어 그 6명 모두가 자기가 살 모나리자가 진짜인 것으로 알면 되었다. 애초부터 에두와르도는 위조된 모사품을 비싸게 파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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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9 17:42

(속보)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촉구

속보 = 한국 동학농민혁명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들이 2차 동학농민혁명(이하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관련기사 7월 23일 13면, 5월 21일 13면) 2차 봉기 참여자는 독립군이나 의병과 마찬가지로 항일 활동을 벌였지만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우가 미흡했다는 게 한국 근대사학계의 중론이다. 이로 인해 당초부터 독립유공자로 지정해 역사적 행적에 걸맞게 대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석규(목포대)신영우(충북대) 명예교수와 김봉곤(원광대)김양식(청주대)성주현(청암대)신순철(원광대)이상식(전남대)홍성덕(전주대) 교수는 최근 성명서를 내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동학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이들 8명 학자들은 2차 봉기 참여자가 일제의 국권침탈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사실은 한국 역사학계가 이미 연구성과로 입증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2차 봉기는 1894년 6월 21일 일본이 경복궁을 점령하고 조선군의 무장을 해제시킨데 따른 반발로 일어났다며 즉 일본의 국권침탈에 항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당시는 청일전쟁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며 일본은 이 때부터 조선을 보호국화한 뒤 궁극적으로 식민지화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2차 봉기는 이에 맞선 반일항쟁의 시작점이라며 농민군은 관료와 유생들에게 항일무장투쟁 전선에 합류할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한국사 9종 교과서도 2차 동학농민군을 일제의 국권침탈을 반대하거나 일제에 항거했다고 모두 서술하고 있다며 2차 봉기 참여자들이 독립유공자 예우를 받을 충분한 근거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제도와 법령도 2차 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동학농민명예회복법은 2차 봉기에 참여한 사람들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중심의 혁명 참여자로 규정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 독립유공자법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다가 순국한 분을 순국선열로 정의하고, 이들을 독립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두 법률 모두 서훈 대상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했던 사람 등으로 규정하는데, 동일한 내용이 기재돼 있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차 봉기 참여자에 대한 서훈문제는 수십 년째 미해결로 남아있다며 1977년 손화중 후손이 신청한 서훈은 부결됐고, 최근 전봉준최시형 등 2차 봉기 참자들에 대한 서훈은 현재 재심 중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전공 역사학자들의 불찰과 게으름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이들은 역사학자들은 관련 제도와 법령, 연구 성과에 의거해 2차 봉기 참여자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촉구한다며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는 국가보훈처와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 심사위원들은 서훈심사를 사적 진실에 부합하는 결과로 매듭짓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08 17:28

전북 친일잔재 용역…보완사항 산재

815광복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친일잔재 청산작업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전북 자치단체와 문화기관 등은 협업을 통해 친일파 생가터 등 각종 시설을 대상으로 추진하는 친일잔재 청산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친일 잔재로 판단하기 어려운 시설과 사실관계 오류, 개인이 설치하거나 주거로 활용되는 상황까지 다양한 문제가 쌓여있어 갈길이 멀다. 전북도는 지난 3월 도내 14개 시군에서 친일잔재 전수조사 용역 후속조치 계획을 받았다. 지난해 12월 전북대 산학협력단, 시군 향토연구자, 지역문화원 등과 펴낸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에 나온 보완의견이다. 이 보고서에는 친일잔재 시설 등 134건이 제시돼 있다. 이들 가운데 청산이 완결된 경우는 48건, 추진 중인 경우 9건, 단기 검토 중인 경우 13건, 중장기 검토는 64건으로 집계됐다. 문제는 중장기 검토 항목이다. 이들 가운데 사실관계에 오류가 발견되는 곳들이 보인다. 일례로 진안군에 있는 풍혈냉천이 대표적이다. 풍혈냉천은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솟는 곳을 의미하는 데, 용역보고서에도 조성시기가 조선후기로 돼 있다. 1780년대에 처음 발견됐으며 일제 강점기에 하천공장과 잠종 보관소로 잠시 이용됐을 뿐이다. 최규영 진안향토문화연구소장은 일제시기 잠종 보관장으로 일시 이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잔재라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진안 강정리 전영표 가옥도 사실관계 확인이 다시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용역보고서에는 일제 강점기 목수가 일본식으로 지었다는 이유로 친일잔재로 분류했지만, 최규영 소장은 전체 구조가 얼핏 일본식으로 보이나 한옥장이 한식으로 지은 집이다. 조사단이 오해한 듯 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이 설치하거나 각종 이해관계로 청산에 난항을 겪는 경우도 있다. 1880년 마스토미야스자에몬이 세운 고창 홍해 농장이다. 이 농장은 러일전쟁 당시 수탈현장으로 활용됐다는 이유로 친일잔재로 분류됐는데, 사유지로 방치돼 있다. 이 때문에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까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 주거시설이나 농장으로 활용되서 조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익산시 (구) 동양척식 주식회사 이리지점은 개인소유 주거로 활용되고 있으며, 고창군 삼양사 염전(고전리 염전참고)은 현재 소금생산시설로 염전농가에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소금생산의 특성상 현재 구조물에 어떤 조치를 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전북도 관계자는 친일잔재 청산에 돌입한 첫 단계라 부족한 부분이 다소 있다며 계속 시군과 함께 추진상황을 점검하고 후속 조치를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8.05 17:40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전통문화바라보기] 판소리 독공獨工

판소리는 참으로 어려운 예술이다. 평생을 해도 마음대로 나오지 않은 것이 소리이다. 판소리는 입문하여 먼저 스승에게 소리를 익히고 많은 복습과 철저한 다듬어진 소리가 될 무렵 혼자서 오랜 수련 시간을 갖는다. 이것을 보통 독공獨工이라 하고 혼자서 소리 공부의 길을 떠나기도 한다. 소리의 길을 험난하다. 그래서 홀로 많은 시간을 자신과의 싸움에 보낸다. 우리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리꾼 홀로 폭포수 아래 정좌하고 소리하는 모습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소리에 입문하여 어느 정도의 시간과 습득의 시간을 가진 후 찾아오는 자신만의 독공으로 이러한 수련은 보통 보름, 100일 등의 기한을 정한 후 깊은 산이나 절에 들어가 집중적으로 소리 공부하는 것을 말한다. 근대 5명창으로 불리던 송만갑은 100일 공부를 할 때 하루에 춘향가를 세 바탕씩이나 불렀다고 한다. 이는 춘향가 한바탕 보통 6시간 소리 합해서 자그마치 18시간 이상의 소리 공부로 참으로 엄청난 분량의 연습 시간이었다. 이렇듯 소리꾼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자신의 성음을 갈고 닦아 스스로가 생각하고 소원했던 명창으로 새롭게 탄생한다. 소리꾼이 계곡이나 절에 들어가 100일 독공하는 궁극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그것은 첫째 득음을 하기 위해서이다. 득음이란 판소리에서 필요로 하는 쉰 듯한 목소리 즉 수리성을 찾아내어 자신만의 음색을 만들어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기능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의 노력이 필요한데 소리꾼은 단기간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많은 양의 연습을 통해 이러한 효과를 얻어냈으며 현시대에도 많은 소리꾼이 그러한 방법을 이용하여 실력을 연마하고 있다. 두 번째 자기만의 소리를 찾기 위해서이다. 이는 독공으로 통해 얻은 득음이 자신만의 특별한 소리로 재탄생하여 세상 어디에도 찾아 들을 수 없는 목구성으로 존재성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한 독공은 어느 계곡의 폭포수 아래에서, 어느 깊은 굴속에서, 어느 시골 암자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완성된다. 조선 후기 많은 전승의 어려움 속에 이어온 판소리. 이러한 판소리는 수많은 사람에 의해 창작되어 스승에서 제자로 구전심수口傳心授<입으로 전해주고 마음으로 가르침>되어 전해진 우리 전통예술의 꽃이다. 서양음악처럼 악보가 존재하여 쉽게 접할 수도 없었고 득음이란 어려움에 가까이 두고도 범접할 수 없었던 우리의 판소리. 하지만 우리 서민의 정신과 애환을 담고 있기에 이제는 우리 삶에 가까이 있으며 어느 곳에 가도 한 대목, 단가 한 곡 부를 수 있는 곳이 많이 갖춰진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무더운 2021년 8월. 많은 판소리 학도들과 명창의 길을 원하는 소리꾼이 폭포와 절을 찾아 독공이 행해지고 있다. 여름날 모두의 건강과 득음이 함께 하기를 소원하며 그러한 우리의 판소리가 세계 속의 성악으로 재탄생하기를 다시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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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8.0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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