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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웅치·이치전투… 임진왜란 승리 교두보 역할

임진왜란당시 전북은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교두보 역할을 한 지역이었다. 특히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는 고개)이치(금산 서평)에서 벌어진 전투는 조선이 왜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이자,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하던 전라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에서 벌어진 이 전투들은 한산행주진주대첩, 명랑해전과 비교해 여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오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음력 기준)한 지 429주년이 되는 해를 맞아, 웅치이치 전투를 중심으로 전북 임진왜란사를 총체적으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북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 있었던 웅치이치전투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계기를 제공했다. 웅치전투는 패배했으나, 왜군의 전라도 진입을 저지하면서 조선의 수군과 전라감영의 병력이 결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이치전투에서는 전라도 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조선관군의 두 배에 달하는 왜군 2000명을 격파했다. 이 때문에 병참기지인 전라도를 지켜냈고, 한양과 평양에 주둔했던 왜군의 철수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밖에도 전북의 관군과 의병은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고창유림이 대거 참여한 장성남문창의(유생의병의 결의)는 1592~1593년 진주성 싸움, 경상도 전투에도 참여했으며, 1593년 행주대첩에서는 1년 전 이치전투에서 활약했던 전북 관군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북 임진왜란사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해, 큰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이미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2017), <경북지역 임진란사>(2018)가,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1990)이 발간됐다. 최근 전남도는 2024년까지 440억원을 들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36만㎡에 건물 연면적 8300㎡규모로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전북에서도 임진왜란사를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북 역사학자들은 △이지웅치, 부안 호벌치, 남원성 전투에서 의병의 역할과 활용에 대한 자료조사 △고창 남당 호남 창의 동맹의 실체 △임진왜란을 기록한 일본, 중국 자료의 수집 △전북 주요 지역별 전투 재정립 등을 주장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기획 연재를 통해 전북의 400여년 전 민관이 하나가 돼 대항일 투쟁을 벌였던 역사를 꼼꼼히 짚어볼 예정이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8 19:16

[임진왜란·정유재란 속의 전북] 프롤로그 - 전북 임진왜란사의 위상

국가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난 이듬해 사헌부 지평 현득승에게 전쟁의 정황을 전하면서 덧붙인 의견이다. 이처럼 전북이 임진왜란정유재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던 고개)이치(금산 서평)전투는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으며, 전북 관군과 의병은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고창과 장성 지역 유림이 일어난 장성남문창의(長城南門倡義)가 대표적인 사례다. 정유재란(1597년) 당시에는 부안 호벌치 전투, 남원성 전투를 치르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양란 당시 전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당히 박하다. 한산도행주진주대첩, 명랑해전에 묻힌 변방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는 13일은 임진왜란이 발발(음력 기준)한 429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란 당시 전북에서 일어난 전투, 전북 의병장과 관군의 활약, 역사적인 의의 등을 전반적으로 조명한다. 조선명일본 동아시아 삼국이 참여한 임진왜란정유재란(1592~1598)은 국제전쟁의 성격을 가진다. 7년에 걸친 전쟁은 삼국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어난 인적 물적 피해는 이들 국가의 격변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정권이 교체됐고,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대두했다. 조선도 국제 정세의 변화에 따라 인조반정(1623년)과 병자호란(1636년)을 겪었다. 그만큼 양란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전북이 겪었던 고초는 컸다. 병참기지라는 이유로 상당히 많은 관군과 의병이 투입됐으며, 이들은 전국 각지를 이동하며 왜적과 싸웠다. 각종 피해도 극심했다. 전쟁과 전염병 등으로 대규모 인력이 사망했고, 왜군은 생존한 포로를 대규모로 연행해갔다. 포로 가운데 포르투갈 노예 상인들에게 다시 전매돼 유럽 등지로 흘러간 이들도 있었다. 왜란당시 전북 대표 전투는 웅치이치전투(1592년)다. 웅치전투는 왜군이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본진과 곡창지대를 공격할 수 없도록 시간을 지연시켜, 조선의 수군과 전라감영의 병력이 결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줬다. 관군과 의병이 처음으로 연합하는 계기를 마련한 전투로 꼽히기도 한다. 전라도절제사 권율과 동복현감 황진이 활약한 이치전투는 일본의 전라도 진격작전을 완전히 저지한 전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전투는 한양과 경기도 전투에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특히 1593년 경기도 행주산성을 막아낸 행주대첩에서도 전국 관군이 활약했다. 권율이 전쟁이 끝난 뒤 군사을 이끌고 북상해 병력 1만여 명을 이곳에 집결시켜서다. 이들 의병은 경상도 지역의 왜군을 막기 위해서도 파견됐다. 의병 역시 전국적으로 많은 전투를 수행했다. 1592년~1593년 고창유림이 대거 참여한 장성남문창의(유생의병)는 웅치전투를 비롯해 진주성 싸움, 경상도 전투 등에도 참여했다. 남원출신 의병장 변사정은 옥천, 상주, 선산, 함안 등지에서 적을 토벌했다. 1597년 정유재란에도 큰 활약을 했다. 당시 고창 의병장 채홍국과 평강 채씨 문중 인사들은 부안 호벌치에서 일대 혈전을 치렀으며, 의병 이복남과 조선명나라 연합군은 남원성에서 크게 전투를 벌였다. 특히 남원전투 이후 전라도민들은 큰 희생을 치렀는데, 2만4394명의 코가 잘려나갔다.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은 전북 의병이 전국적으로 활동했던 이유는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며 다른 지역 의병은 향토수호의 개념이 강한 반면 전북 의병은 국토수호의 개념이 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때문에 전라도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극심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은 부분도 있다고 부연했다. 이처럼 큰 활약에도 전북 관군과 의병의 활약상은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한산도행주진주 3대 대첩과 명랑해전에 조명을 받지 못하는 데다, 경북과 전남 등에 비해 왜란사 자료 정리와 연구가 미비한 상황이다. 연구인력 및 자료 부족이 큰 이유다. 전북의 현황을 살펴보면, 웅치, 이치 등 일부 지역 전투를 제외하고는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는 미비한 실정이다. 정유재란 시기 연구는 공백 상태이며, 일부 의병을 두고는 진위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와 고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찬사찬기록, 각 문중 소장 자료, 일본중국의 고문서 등을 수집한 뒤, 연구를 거쳐 학술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야 한다는 게 도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한문종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왜란 당시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연구 패러다임을 전북 의병에 적용하다보니, 이들의 위상과 활동이 축소되거나 연구에 미진한 부분이 발생했다며 전북에서 활동하거나, 전북출신 문무관, 의병에 대한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해서 정리한 뒤, 새로운 연구검증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후 객관적인 시각으로 양란 당시 전북의 활약상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8 18:16

한국소리문화전당, 고창문화전당, 부안예술회관 공연콘텐츠 공동제작 협약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은 6일 전당 연회장에서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과 공연콘텐츠 공동제작배급을 위한 협약식을 열었다. 이번 협약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의 문예회관-예술단체 공연콘텐츠 공동제작 배급 프로그램선정의 일환으로, 코로나19로 창작활동이 위축되고 있는 시기 문예회관과 지역 예술단체가 예술로 공존 상생하는 생태계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날 협약식에는 각 문예회관 뿐만 아니라 공연에 참여하는 우석대학교 태권도학과, 고창농악보존회, 하이댄스퍼포먼스, 퓨전국악실내악단 소리애도 함께 참여했다. 각 기관은 이번 협약에 따라 △예술단체의 정보공유와 교류 △공동으로 작품 기획제작투자 △공동 명의의 지역별 순회공연 개최 △상호 필요한 벤치마킹 협조 등을 협력할 예정이다. 이번 협약을 계기로 각 기관은 동학농민혁명이라는 전북의 특화된 소재를 가지고 창작 태권소리극 <태권유랑단, 녹두>라는 브랜드 공연을 본격적으로 제작한다. <태권유랑단, 녹두>는 조선시대로 간 태권유랑단이 고창을 시작으로 부안, 전주로 이동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해하고 고군분투한다는 역사 판타지 창작극으로, 국악 기반에 태권도, 농악, 댄스 퍼포먼스 등을 조합해 구성할 계획이다. 공연은 11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시작으로 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에서 총6회 공연하며, 전북 예술인 70여 명이 참여한다. 박홍재 문화사업부장은 이번 업무협약을 계기로 전라북도 각 시군의 균형 있는 문화예술 발전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됐다며 앞으로도 공연 뿐 아니라 다양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지역의 문예회관들과 상호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6 18:09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주구묘(周溝墓)의 발견

1995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보령 관창리에서 대규모 집단으로 확인된 주구묘 (무덤 주위에 도랑을 파서 돌린 분묘)는 한국 고고학사에서 매우 의미 있는 발견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주구묘의 연구결과 마한 성립기 이후 발전기에 마한고지에서 폭넓게 조성되었던 마한의 대표적인 묘제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이러한 주구묘가 관동에서 구주지역까지 분포되어 있어서 야요이시대(B.C 3세기A.D 3세기)의 독자적이며 보편적인 묘제로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관창리 유적이 발견된 이후 일본 학자들 사이에서도 야요이 문화의 원류는 한반도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현장에서 가끔 우스갯소리로 유적의 발견도 유행을 쫓는다라는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면 동일한 성격의 유적이 잇달아 발견되기 때문에 나온 얘기이다. 그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구묘도 예외는 아니어서 익산 영등동과 서천 당정리에서 주구묘가 잇달아 발견되었고, 1999년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에서 다수의 주구묘 유적이 조사되면서 마한의 대표적인 묘제임이 확인되었다. 보령 관창리 유적은 고려대학교 매장문화연구소 주관으로 발굴면적 11만1000㎡에 대한 조사결과, 주구묘 99기와 송국리형 주거지 100여기가 확인되었다. 주구묘의 매장주체부는 거의 모두 삭평되어 결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성격을 알 수 없었지만, 평면형태나 주구의 개방부에 따라 7개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주구 내에서 발견된 토기 가운데 두형토기나 점토대토기를 참고하면 B.C 32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익산 영등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전기의 방형 주거지 4기, 중기의 송국리형 주거지 19기와 더불어 주구묘는 4기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택지개발지역에서 발견되었는데, 조사 이전에 주변지역은 이미 개발이 이루어져 유적의 일부분이 훼손되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특히 영등동 1호 주구묘에서는 토광묘가 매장부로서 확인된 최초의 예가 되는데, 내부에서 철부와 철도자편이 발견되었다. 서천 당정리 유적은 송국리형 주거지 16기와 23기의 주구묘가 확인되었다. 이 유적에서도 관창리나 영등동 주구묘와 같이 주구 내에 청동기시대 주거지 출토 토기들이 혼입된 양상을 보인다. 또한 분포양상에 있어 주구묘는 몇 기씩 인접하여 군집을 이루고 있는 점이 보이는데, 이는 혈연집단의 친연성에 따른 축조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1990년대 중반 한국에서도 주구묘들이 잇달아 발견되는 큰 이유는 그 이전에는 고분 발굴조사에서 주로 매장주체부를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유적 주변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넓은 범위를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 1996년에 호남고고학회 주관으로 「호남지역의 고분의 분구」라는 학술대회를, 그 해 역사학대회 고고학 분과의 주제로 「주구묘의 제문제」를 선정하여 주구묘 연구의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게 되었다. /최완규 전북문화재연구원 이사장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06 18:09

전북 친일인사 연구 진전될 필요

전북지역 친일파 인사에 대한 연구가 심화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전북 자치단체와 문화기관 등이 협업해 만든 친일잔재 연구용역보고서에 수록된 인물들이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의 인물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전북도와 전북대 산학협력단, 시군 향토연구자, 지역문화원 등은 지난해 12월 전라북도 친일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방안 연구용역 결과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는 1910년(한일합병)~1945년(해방)까지 활동했던 도내 14개 시군출신 친일파 명단 118명을 담았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출신지를 알 수 없는 사람 36명, 전주 24명, 익산 10명, 군산 7명, 고창 6명, 남원 6명, 임실 6명, 정읍 6명, 김제 4명, 금산 3명, 무주 2명, 부안 2명, 완주 2명, 장수 2명, 진안 2명이다. 활동분야도 세분화했는데, 경찰(41명), 관료(31명), 중추원(20명), 사법(7명), 친일단체(7명), 군(5명), 경제(4명), 만주(4명), 문학(3명), 지역유력자(2명), 언론(2명), 교육학술(2명), 개신교(2명), 천도교(1명), 유림(1명), 불교(1명) 순이다. 보고서는 인물이 한 분야에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중첩적으로 활동해서 이 분야 통계는 연인원 133명으로 집계했다고 설명했다. 전북도 등은 이 보고서를 만든 목적에 대해 지역 친일파와 친일잔재에 대한 종합적인 조사와 분석을 통해 체계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완결성 있는 친일잔재 처리방안 강구로 제시하고 있다. 친일파의 규정과 범위를 설정해 기초자치단체별로도 친일청산 기준을 마련할 수 있게 한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그러나 보고서가 완결성 있는 친일잔재 처리방안을 강구할 정도로 친일인사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부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을 중심으로 수록했을 뿐, 자체적으로 새롭게 발굴한 친일인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유력자 같은 경우 알려지지 않은 친일인사가 다수 포진돼 있어, 발굴이 필요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보고서를 펴낼 때 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친일파로 지목된 인사의 후손들이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 훼손 등으로 법적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 새로운 인물을 수록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보고서 간행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이런 한계를 절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인사는 일제 강점기 전횡을 저질렀던 전북 유력 인사에 대한 발굴과 연구가 진전되지 못한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며연구가 왕성하게 진행되서 친일인사로 검증된 인물이 많았다면 자신감 있게 보고서에 반영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북 자치단체와 학계차원에서 연구발굴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민족문제연구소 김재호 전북지부장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파 4000여 명을 수록한 친일인명사전을 펴낼 때, 전국 역사학자들이 오랜 시간 매달려서 연구하고 검증했다며 전북에서도 이번 친일관련 인사 용역보고서로 끝낼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전북도와 각 시군, 역사학자들이 연계해서 충분한 시간을 두고 친일인사들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작업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5 18:01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엄마와 함께하는 아름다움

엄마 류인하의 꽃 어느 날 우연히 자료를 찾다가 어느 여류화가의 도록을 보았다. 딸의 편지를 보며 가슴이 뭉클하면서 이어 엄마의 (작가의 변)을 읽었다. 딸 글을 먼저 보았으니 이른바 하극상의 결례를 범한 셈이다. 아이 엄마라 밝힌 딸의 글이 눈에 먼저 들어와서 그럼 엄마의 마음은?이 된 것이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속삭이는 사람들도 있었구나. 고마웠다. 인간들이 뱉어내는 온갖 악취로 인하여 질식할 것만 같은 세상에서 한 줄기 쏟아지는 산소지대를 지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작가노트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상을 더 곱고 신비롭게 볼 수 있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자연의 모든 사물과 대상을 순한 눈으로 대할 수 있으니 보이는 심연과 보이지 않는 심연이 새삼 보이게 마련이다.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그 꽃들에서도 새로운 의미가 보이듯, 자연이 참 곱다. 이번 전시는 노랫말 엄마의 프로필 사진은 왜 꽃밭일까에 의미를 담아 풀어보고 싶었다. 이른 봄부터 나의 꽃밭에 물들여온 꽃을 나의 페르소나(Persona)로 캔버스에 풀어본다. 딸에게서 온 편지 엄마 예전에 제가 여쭤봤던 적 있지요. 엄마는 왜 늘 꽃을 그리세요. 엄마는 예쁘잖아. 이만큼 예쁜 것도 없지. 그러셨죠. 그 때는 대수롭지 않게 들었던 것 같은데 제가 어느덧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저에게 엄마라고 불러주는 시간에 이르러 다시 보니 꽃이 예쁘네요. 우리는 모두 엄마, 아빠의 나무에서 꽃으로 태어났어요. 나는 꽃이 되어 또 다시 나무가 되고 그 나무가 꽃을 피우네요. 꽃 피운 나무였던 그 때를 기억하고 싶어서 꽃으로 태어난 나를 저장하고 싶어서 엄마는 꽃을 옮겨 담아요. 그 꽃들은 엄마의 어떤 날 일까요. 꽃을 보듯 누구를 보며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계실까요. 무엇보다 꽃은 그냥 예뻐요. 엄마 말씀이 늘 그랬듯. 맞아요. 꿈의 대화가 도록의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이뤄지고 있었다. 저 높은 산봉우리에 부는 산들바람처럼 맑고 향기롭게.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05 17:53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에 들어설 전주시립미술관 ‘윤곽’

2024년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에 들어설 예정인 전주시립미술관의 윤곽이 드러났다. 4일 전주시가 가나문화재단에 용역 의뢰한 전주시립미술관 건립사업 기본방향 연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운영 필요성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500명)의 79%가 필요하다고 답해 시립미술관에 대한 시민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전주시립미술관 건립 이유에 관한 물음에는 응답자의 과반수에 이르는 47.9%가 시민들을 위한 예술휴식 공간으로서라고 답해, 휴식과 함께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필요성과 선호도가 나타났다. 전주종합경기장 야구장 안에 전주시립미술관을 건립하는 데 대한 적절성을 묻는 문항에는 다소 적절하다는 의견이 44%로 가장 많았지만,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35%로 그다음을 차지했다. 야구장 내 건립이 적절하다고 응답한 58%의 응답자들은 그 이유로 접근성이 좋다, 교통이 편리하다, 안 쓰는 부지를 활용하다, 문화생활에 도움이 된다/문화 시설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반면 야구장 내 건립이 부적절하다고 응답한 42%의 응답자들은 야구와 미술은 어울리지 않는다/연관성이 없다, 위치가 적합하지 않다, 자연과 가까운 곳이 적당하다 등의 이유를 내놨다. 이를 토대로 용역을 수행한 가나문화재단은 전면철거에 의한 대규모 사업을 지양하고, 기존 도시공간구조와 기반시설을 최대한 유지하는 점진적인 도시재생형 건립 방식을 제안했다. 또 전주시립미술관의 운영 전략은 현대미술 중심의 미술관으로 설정했다. 현재 전북지역에는 공립미술관 7개와 사립미술관 9개가 있지만, 각 미술관의 소장품과 프로그램 성격을 살펴봤을 때 전통과 근대 미술문화 콘텐츠에 편중돼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미술관 소장품 수집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적절하므로 초기 투자 규모를 줄이고, 일정 기간 수집 예산을 확보해 내실 있게 소장품을 구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주시립미술관의 부지는 1963년 전주 일대에서 열린 전국체전을 위해 건립된 전주종합경기장 내 야구장이다. 전주시는 전주종합경기장을 덕진구 여의동으로 이전하고, 해당 부지에 롯데백화점, 롯데호텔, 전주컨벤션센터, 전주시립미술관, 시민의 숲 1963 등은 조성할 예정이다. 전주시립미술관은 미술관과 어린이미술관, 미술도서관, 다원예술극장, 야외공연장, 시민휴게공간 등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총사업비는 420여 억원이 소요될 전망이다. 연간 운영비는 65억원으로 추산됐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04 17:04

전북 문사철 위기

전북 대학가에서 문학사학철학 등 이른바 문사철(文史哲) 학과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취업률을 중시하고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는 시장논리가 대학에 팽배해지면서 이 학과들이 인문사회계열 내에서 통합되거나 폐과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정책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학과들이기도 하고 학과 학생수 감소도 이같은 위기를 부채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원광대학교는 지난 2017년 고고미술사학과와 사학과를 역사문화학부로 통합했다. 정부의 프라임 사업에 따라 학생 선발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프라임 사업은 사회와 산업의 수요에 맞게 정원을 조정하는 대학들에 2016년부터 3년 간 총 6000억 원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인문예체능계를 줄이고 이공계를 늘리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올해 들어 신입생 수도 줄었다. 원광대 관계자는 지난해 충원률을 100%로 볼 때 올해는 70%정도 충원했다고 설명했다. 군산대학교는 지난 2015년부터 사학과와 철학과를 합쳐 역사철학부로 합쳤다. 인문학의 위기에 따른 전략적인 통합이다. 곽장근 교수는 학생들의 취업과 장례, 연구 프로젝트 수행역량을 감안해 전략적으로 합쳤다고 밝혔다. 올해는 학생 모집도 여의치 않았다. 군산대 관계자는 역사철학 등 인문계열이 사회과학계열보다 신입생 모집이 수월하지 않다며 구체적으로 숫자는 말하지 못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학생수가 미달됐다고 밝혔다. 우석대 역사교육과는 지난 2017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상황이다. 교육부가 교원 자격증 축소 방침을 세운 뒤, 사범계 학과 전체 입학 정원을 줄인데 따른 영향이다. 전주대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계속 역사학과를 변형시켜왔다. 지난 1989년은 역사교육과, 1995년 사학과, 1999년 한국학 전공, 2001년 역사문화전공, 2009년 역사문화콘텐츠 전공, 2013년 역사문화콘텐츠학과 순이다. 전주대 관계자는 역사교사 임용수와 사회변화, 학생들 요구에 따라 학과명과 커리큘럼을 계속 변화시켜 미달은 막은 것으로 보인다 면서도 사회적 분위기나 인문계열 취업률, 출산율을 고려할 때 결코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전북거점 국립 대학인 전북대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올해 입시에서 사학과, 고고문화인류학과, 철학과 등 인문계열에서 미달사태가 발생하진 않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하려는 경우가 줄고 있다. 전북대 철학과 출신인 A씨는 대다수 학생들이 취업이 잘 되는 학과와 같이 복수전공을 하고 있으며, 아예 전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인문계열에 재직하고 있는 교수들 사이에서는 안타까운 토로가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A교수는 학교에서 학과 통합이나 폐과를 하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나오는 연구 인력들의 자리를 축소시킨다며문사철 박사출신 실업자들이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고 토로했다. B교수는 안타깝지만 현실을 고려했을 때, 자치단체의 지역사 연구경향이나 기업의 수요에 맞춰 커리큘럼을 실용적으로 개선하는 방향도 필요해 보인다며 취업이 일정부분 안정되면 학생들이 찾는 학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동희 예원예술대 교수(전 전주역사박물관장)는 지방대학 인문학 분야가 무너지고 있을 정도로 어려움에 처해있다며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4.01 18:01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동북공정, 전통예술의 논란

드라마 조선구마사 포스터 지난주 환타지 사극을 표방하던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역사 왜곡 논란 끝에 결국 제작이 중지되고 제작진 사과와 함께 방영이 종영됐다. 단 2회의 드라마로 비추어진 역사와 문화의 문제점은 중국 동북공정의 큰 사회적 모순으로 도출됐으며 그러한 대중문화의 이해가 우리 역사, 문화 전반에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동북공정은 2002년 중국 사회과학원의 중국변방사연구센터가 동북의 3성 즉 헤이룽장성, 지린성, 랴오닝성과 연합해 시작한 지리, 역사, 민족 연구 프로젝트이다. 중국은 그러한 연구를 통해 과거 자국의 영토 내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어가는 것으로 우리 선대의 고구려, 발해까지도 거론하며 주장과 논리를 펴고 있다. 또한, 중국은 대한민국의 아리랑, 농악, 판소리 등 전통예술을 자국의 전통문화라 함께 주장하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의 민족 정서가 가장 잘 내재한 민요 아리랑은 지난 2011년 중국이 조선족 문화유산임을 내세우며 국가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그러한 소식을 들은 우리 전통 예술계로선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정부는 이미 2009년 정선아리랑의 무형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낸 상황이었지만 국가당 신청 건수 제한을 받아 순위에 밀려 심사대상에 오르지 못한 시점이었다. 그러던 중 중국은 조선족 아리랑을 자신들의 전통예술이라 표방하며 국가급 무형문화유산으로 발표하게 되었고, 우리 정부는 다시금 2012년 아리랑을 우선 등재 대상으로 수정, 신청하여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으로 세계에 공포했다. 드라마에 나타났던 농악(지신밟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전라북도 남원농악, 임실필봉농악, 고창농악, 김제농악 등 많은 지역 무형문화재를 가진 우리의 특화된 농악도 2009년 중국 조선족 농악무라는 이름으로 한국보다 중국은 먼저 동북공정을 통해 유네스코 지정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바 드라마 속 연변 말투를 쓰는 놀이패의 지신밟기가 자칫 중국 조선족의 농악무로 보여질까 염려스러운 이유가 바로 그러한 논란의 사유였다. 더욱 큰일은 대한민국하고도 전라북도 본향인 판소리가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란 곳에 의해 중국의 전통문화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바이두는 지난해 자사의 백과사전 서비스 <바이두 백과사전>를 통해 판소리는 지린성과 랴오닝성을 중심으로 퍼진 소리 문화라고 서술하며 지난 2011년 5월 중국 문화유산에 등재됐다라고 명시했다. 또한 19세기 초에 판소리 악보가 만들어졌으며 20세기 중엽 조선족을 중심으로 공연예술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며 판소리를 전승하기 위해 랴오닝성 톄링시에 전문학교를 개원해 학생들을 양성하고 있다는 상황도 밝혔다. 중국 정부는 무형문화 정보 사이트 중국무형문화재망에 판소리를 중국 문화로 현재에도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드라마 조선구마사로 다시 부각된 중국의 동북공정은 대한민국 역사뿐만 아니라 전통예술도 왜곡하는 정책임을 우리는 인지하고 각인해야 할 것이며 상응하는 정책과 연구도 함께 견고히 이어가야 하겠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4.01 18:01

예술공간 ‘동문창창’ 송봉금 대표 “일상처럼 소리 즐기는 공간되길”

4년 전 스페인 세비아를 다녀온 뒤 판소리 극장장이 되고싶다는 꿈을갖게 됐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스페인을 방문하면 플라멩코를 보기 위해 세비아를 들르더군요. 전주에 사는 소리꾼으로서 그게 너무 부러웠어요. 전주에도 일상처럼 소리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공간이 동문창창입니다. 전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리꾼 겸 연출가 송봉금 모던판소리 대표가 전주 동문예술거리에 예술공간 동문창창을 열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4일 공식 개관하는 동문창창은 송 대표의 꿈과 신념이 담긴 공간이다. 판소리 극장장이 되겠다던 그의 꿈은 동문창창 개관으로 실현된 셈. 이제는 그의 신념을 찬찬히 풀어낼 일이 남았다. 이와 관련 첫 번째 시도는 연간 회원제이다. 동문창창에서는 △판소리 차회 △주제가 있는 월간 음악회 △계절 음악회 △동문창창 클래스 △산조 축제 등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를 연간 회원제와 연계해 지속성을 담보한다는 구상이다. 지난해 하반기 창조경제혁신센터 로컬크리에이터 사업을 수행하면서 투자자들이 문화예술 분야 투자를 꺼리는 이유로 문화예술은 이벤트성이 짙어 단발성이란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속성을 가지려면 꾸준히 문화예술을 소비하는 단골이 있어야 합니다. 연간 멤버십을 하게 되면, 자의든 타의든 1년은 문화예술을 누려야 하죠. 그래서 연간 멤버십을 공간의 주요 사업으로 넣었습니다. 특히 동문창창에서 이뤄질 산조 축제는 한옥마을과 동문예술거리를 기반으로 지역 주민들의 삶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데 주안점을 둘 예정이다. 송 대표는 한옥마을이 관광지가 되기 전, 예술가들이 한옥마을에 많이 모여 살 때는 인위적으로 축제를 만들지 않아도 예술가들끼리 놀면 그것이 축제가 됐다며 동문창창에서의 산조 축제도 지역 예술공동체의 자발적인 문화 향유 능력을 토대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더불어 수많은 예술가가 격의 없이 지역 문화판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옛 동문예술거리의 생태계 회복도 그의 관심사다. 동문예술거리는 홍지서림, 삼양다방 등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적 장소가 많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동문창창이 찬란했던 동문예술거리 문화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하고 싶습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4.01 17:58

[신간] 식민지시기~현대 전북 극장 역사 담은 책 <전북의 지역극장>

부경대 김남석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최근 전북 극장의 역사를 상세하게 다룬 저서 <전북의 지역극장>(전북연구원)을 출간했다. 저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시기까지 극장의 변화상을 총체적으로 담아냈다. 시기별 공연 주체와 극장 운영진, 자본 투자자의 변화상 등 다채롭다. 저서에 따르면, 식민지 시기인 1900년대 전북의 극장은 일본인 사주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됐다. 가장 역사가 오래된 군산의 명치좌(군산극장)를 중심으로 전주좌(전주극장), 이리좌(이리극장)로 이어지는 삼각구도를 보였다. 당시 공연은 대중극단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이 세 극장이 핵심루트였다. 전남지역으로 이동하는 극단은 반드시 군산, 익산, 전주를 거쳐야 했다. 일본인 사주에 의해 운영되는 극장이긴 했지만 전북의 관객들은 자신의 도시에 존재하는 극장에 대한 친밀감을 유지했고, 전주극장창립회등을 통해 최대한 극장 운영에 개입했다. 이런 상황은 해방 이후 새롭고 창의적인 극장 판도를 창출했다. 당시에는 식민지 시대 유산으로서의 극장, 1950년대 새롭게 만들어진 극장, 1960년대 기업 출자로 이뤄진 극장의 경쟁체제가 형성됐다. 극장 판도의 변화는 지역 문화와 예술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군산을 중심으로 영화사나 영화인이 탄생했고, 전주에 마련된 영화 집중지역으로 인한 정신적 인프라와 확산이 계승됐다. 특히 군산극장에서 일하던 인물들은 충무로로 입성해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했다. 또 군산, 전주에 극장들이 집중됐던 자리에는 영화의 거리가 형성됐고, 이 지역들은 주변상권과 조화를 이루면서 다수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는 시너지 효과를 주도했다. 김남석 교수는 지역의 영화적 조류를 진단하고 그 의미를 정리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라며 군산과 전주에서 확고하게 확립된 영화적 기반은 한국 영화사의 주요한 일부가 됐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수학했다. 199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여자들이 스러지는 자리-윤대녕 론이 당선돼 문학평론가가 됐고,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경박한 관객들-홍상수 영화를 대하는 관객의 시선들이 당선돼 영화평론가가 됐다. 저서로는 <배우의 거울>, <한국의 연출가들>, <조선이 여배우들>, <조선의 지역극장>, <조선 대중극의 용광로 동양극장> 등이 있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3.31 18:17

전북 9개 문화예술회관, 지역 문화예술 진흥 ‘맞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비롯해 전북지역 9개 문화예술회관이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31일 전당 연회장에는 고창문화의전당, 김제예술회관, 부안예술회관,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익산예술의전당, 전주한벽문화관, 정읍사예술회관, 춘향문화예술회관, 한국소리문화의전당(가나다순) 대표자들이 업무협약을 위해 모였다. 업무협약에 참여한 기관들은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전북지회 회원기관이다. 이들은 어려운 지역 문화예술 환경을 극복하고자 지난해부터 전북지역이라도 하나로 힘을 합쳐보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임직원들이 지역별로 찾아가 1대1 미팅을 추진해 지역이 예술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총 9개 기관이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됐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윤여일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지역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각 시군 문예회관들이 서로 힘을 합치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이번 협약이 도민들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와 삶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지역 문화예술 정보 공유와 교류 협력 △공동 작품 기획제작투자 △우수공연에 대한 지역별 순회공연 △지역 대표 예술가예술단체 교류 공연 △운영 방식과 사업에 대한 벤치마킹 협조 등이다. 이러한 문예회관들의 교류 사업은 벌써 성과를 내고 있다. 그 첫 사례로 한국소리문화의전당, 고창문화의전당, 부안예술회관이 공동 제작하는 태권유랑단, 녹두가 한문연 주관 문예회관예술단체 공연콘텐츠 공동제작 배급 프로그램에 선정돼 국비 1억300만 원을 확보했다. 태권유랑단, 녹두는 조선시대로 간 태권유랑단이 고창, 부안, 전주로 이동하며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을 이해하고 고군분투한다는 역사 판타지 창작극이다. 각 지역 예술인들이 참여하는 이 작품은 국악과 태권도를 결합한 퍼포먼스로 치열한 전투를 역동적으로 표현해 관객들에게 역사적 정보와 흥미를 동시에 만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서현석 대표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문화예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 의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공연 콘텐츠의 공동 창작, 우수공연에 대한 지역별 순회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교류 사업들을 지역 문예회관들과 함께 이뤄갈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3.31 18:13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 성립기의 대외교류

마한은 기원전 32세기경에 익산을 중심으로 만경강유역에서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되었음이 문헌과 고고학적인 자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무렵 중국 중원지방에서는 진나라가 패권을 잡았던 전국시대가 끝나고 오늘날 중화민족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한나라가 유방에 의해 서안지역 일대에 건국되었다. 그런데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정치체인 마한이 성립, 성장하는 시기에 중국 중원의 한나라와 교류의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어 두 중심 지역 간의 교류를 살필 수 있게 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진한조에 보면, 진한은 마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노인들이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우리들은 옛날 진나라의 고역을 피하여 한(韓)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동쪽 땅을 분할하여 우리에게 주었다 그들의 말은 마한과 다르다 ....(후략) 라고 적고 있다. 또한 한조에는 후한(後漢)의 환제영제 말기에는 한(韓)과 예(濊)가 강성하여 한(漢)의 군현이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군현의 백성들이 한(韓)으로 유입되었다라 적고 있다. 이 기록을 통해 중국 전국시대부터 한나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이민들이 마한 지역으로 이주해 왔으며, 간접적으로는 교류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고고학적인 유물에서도 교류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75년, 전주에서 김제로 넘어가는 도로변 완주군 상림리(현 전주시 완산구 상림동)에서 묘목을 캐다가 26자루의 중국식 동검이 발견되었다. 이 동검은 비파형이나 세형동검과 달리 칼날이 직선적이며, 칼날과 함께 일체형으로 주조된 손잡이의 중간에는 마디모양의 돌기가 있는 점이 특징이다. 검의 길이는 45cm47cm로 다양하기 때문에 동일한 용범(거푸집)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히 사용흔이 없기 때문에 아직 유통 이전에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근 자연과학적 분석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한반도산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어 중국에서 건너온 장인에 의해 제작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987년에는 익산 평장리에서 농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세형동검 2점, 동모, 동과, 동경 파편이 발견되었는데, 토광묘로 추정되는 유구는 이미 완전하게 파괴된 상태였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주변을 정리한 결과, 구름무늬 바탕에 풀잎과 이무기로 장식한 청동거울 곧 「雲地四葉四?銅鏡」이 작은 파편으로 수습되었다. 이 동경은 복원 결과, 직경 13.4cm 정도이며 전한(前漢)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최근 익산 신흥정수장의 북서쪽에 형성된 장자산의 서쪽과 남쪽 능선 일원의 지표조사 과정에서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전한시대(기원전 118년)까지 주조된 동전인 반량전(半兩錢) 2점이 발견되었다. 동전의 전체적인 형태는 원형의 외격에 살짝 둥근 테두리가 형성되어 있으며, 방형의 내곽이 뚫려있다. 부식이 심한 편이이어서 半자의 일부는 부식으로 훼손되었으나 兩자는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된다. 반량전의 외곽 직경은 각각 2.35cm, 2.45㎝, 내곽 폭은 각각 0.8cm, 0.85㎝로서 거의 같은 크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중국이나 일본제 유물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이들 자료를 통해 마한은 성립 이후 성장과정에서 활발하게 대외교류 활동을 해 왔음을 읽어낼 수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3.30 19:43

여성 초헌관, 정읍 무성서원 역사 최초 ‘첫 술잔’ 올렸다

정읍 무성서원 역사상 처음으로 향사(서원 제사)에서 여성이 초헌관을 맡아 첫 술잔을 올렸다. 한국의 서원 역사 600여 년 동안 여성이 초헌관으로 임명된 것은 지난해 안동 도산서원 이후 두 번째다. 여성 초헌관은 그동안 남성이 중심이 돼 제례를 올렸던 전통에서 금녀의 벽을 허문 일로 평가받는다. 종묘제례에서는 초헌관을 임금이 맡을 정도로 중요하고 상징적인 역할이기 때문이다. 30일 오전 11시 정읍시 칠보면 무성서원 태산사에서는 최치원 등 7현을 추모하는 춘계 향사가 봉행됐다. 이날 초헌관은 이배용(74)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이 맡았다. 이 사장은 지난해 서원 역사 최초로 여성 초헌관으로 임명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한국의 서원 9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이끈 인물이다. 20062010년 이화여대 총장을 지냈고, 2017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위원장을 했다. 이날 초헌관을 맡은 이 이사장은 향사가 시작되자 유사를 따라 태산사에 입장했다. 그는 초헌관으로서 첫 술잔을 올린 뒤 아헌관, 종헌관이 차례로 술잔을 올렸다. 특히 무성서원은 여성 초헌관 임명 외에도 한문으로만 읽어온 축문을 국한문 혼용으로 대체해 시대 변화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도산서원과 무성서원에서 첫 여성 초헌관으로 기록된 이 이사장은 여성 초헌관은 강요와 투쟁이 아닌, 인정과 존중의 결과이다. 이는 서로 존중하는 상생의 시대를 향한 주춧돌을 놓았다는 뜻이라며 지난해는 동쪽(도산서원), 올해는 서쪽(무성서원)에서 초헌관으로 참여함으로써 양성 화합뿐만 아니라 동서 화합의 의미를 더하게 됐다고 그 의미를 밝혔다. 그는 이어 서원의 보편적인 가치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인성 교육의 본산이라는 데 있다. 특히 인격 수양에 있어 인간의 이치인 인의예지신은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가치이자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이라며 이러한 서원의 가치는 미래를 향한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3.30 19:24

전북문화관광재단 사태, 기성예술인들도 ‘목소리’

지난 29일 전북문화관광재단 앞에서 전북문화예술인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전북지역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전북문화관광재단의 중앙 공모사업 이의제기 사태와 관련해 공개 사과를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기성 문화예술인들이 힘을 보태겠다며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한국예총 전북연합회(이하 전북예총) 대외정책위원회는 30일 지난 29일 도내 청년 문화예술단체 30곳이 전북문화관광재단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를 보며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원로이자 선배 단체로서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이번 일을 포함해 재단의 각종 지원금 심사 문제 등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예총 대외정책위원회 이석규 회장은 전북예총에서는 재단의 각종 지원금 심사 불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으나, 개선이나 시정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전북예총은 집회 신고까지 할 정도로 사안을 엄중히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전북예총은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옛 문진금)과 관련해 지원단체에 대한 유사단체 검증, 단체와 개인간 이중구조 파악, 심사위원 선정 공정성 확보 등을 요구해왔다. 또 전북예총은 문화예술단체와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올해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 선정 규정 변경을 시도한 일에 대해서도 밀실 행정이라며 비판했다. 이 회장은 재단은 예술인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일련의 상황은 재단이 설립되기 이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며 이제라도 재단이 설립 취지와 본질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전북작가회의도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의 심사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며 지원금 수령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전북작가회의는 재단은 도 예산과 공적 기금을 집행하는 기관으로 그 집행 대상을 선정하는 데 있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절차는 기본적인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이번 선정 결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며 사업의 지원 금액 결정, 심사위원 선정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우수한 평점에도 예산이 70% 감액된 것을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지원 금액 결정에 대한 심사 기준은 공모 요강에 따로 적시되지 않았다. 또 심사위원 구성과 관련해 진보문학계 인사가 배제됐다는 것도 언급했다. 이와 관련 전북작가회의는 재단의 사과와 지원금 수령 거부에 대한 해결책 제시, 재발 방지를 위한 심사 규정과 심사위원 배정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 마련을 요구했다.

  • 문화일반
  • 문민주
  • 2021.03.3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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