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지난 16일 세상을 떠난 허소라(본명 허형석) 시인을 기리는 고별식이 17일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서 전북 문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이날 고별식에는 국중하 곽진구 김계식 김기화 김남곤 김영 박귀덕 서정환 서재균 소재호 양영아 윤석정 정군수 전일환 조미애(가나다순) 등 도내 문화예술인들이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별식은 고인의 아들 허영채 씨가 유족 인사를 하고, 조미애 시인이 고인의 약력을 소개했다. 뒤이어 김남곤 시인의조시 소라여, 소라여! <흐느끼는 목마> 타고 이 추운날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낭독했다. 고인은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태평교회동산에 영면했다.
며칠 전 청와대에서는 한 독지가의 기증을 감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기증한 작품은 국보 제180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로 그가 1840년 세도정치에 휘말려 제주도 귀양살이를 할 당시 청나라에서 유학 중이던 제자 이상적이 많은 책을 보내와 어려운 시절을 이겨냈는데 그러한 자신을 잊지 않고 귀한 서적을 보내준 마음에 감사하며 그린 그림이다. 또한, 장무상망란 단어는 세한도 밑에 찍힌 도장의 내용으로 오래도록 함께하자라는 뜻의 글이다. 세한은 새해 설 전후의 혹독한 추위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생의 시련과 고난을 표현한 단어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는 귀양살이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잊지 않고 책을 선물한 제자가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 당시 중국에서 이상직이 구매한 귀한 책은 보통 집 한 채의 가격으로 쉽게 소유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그러한 책을 구해 개인의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치 않고 외롭고 힘없는 스승을 위해 오로지 전달되었으니 그 신의는 참으로 뜻이 깊고도 고마운 일이었다. 김정희는 그러한 제자 이상직의 사시사철 늘 한결같은 모습을 소나무와 측백나무로 표현하여 세한도로 만들었으며 자신의 마음을 네 글자 장무상망에 담았다.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네.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은가? <세한도> 中 신의(信義)는 믿음과 의리를 아울러 한 말이다. 김정희와 제자 이상직에게는 신의가 있었다. 믿음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을 뜻하며 의리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를 말한다. 신의가 없음에 불신이 생기며 불신은 시기와 논란을 만든다. 시기와 논란이 쌓이면 증오가 되고 증오는 원수(怨讐)를 만들어 낸다. 원수는 결국 한(恨)과 파멸을 자초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행복한 사연과 역사 뒤에는 때론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가 존재했었고 우리는 그러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기증에는 많은 의미와 감사함이 있겠지만 필자에게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의 문화재를 아무런 이익 없이 국가에 기증한 마음의 감사함이요, 둘째, 추사 김정희의 예술적 가치가 후손 대대로 올곧이 간직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감사함이며, 마지막으로 셋째, 선조들의 신의를 생각하며 우리의 마음을 깊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함이다. 세한도의 아름다움은 이제 후손에게 안전하고 바르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함과 더불어 다시금 필자의 바람이라면 오래도록 함께하자란 장무상망의 신의를 내포한 단어가 다시금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교훈을 담아 추사 김정희의 작품과 함께 영원토록 후대에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김남곤 시인전 전북일보 사장 한 잎 낙엽이 지듯 12월을 밀며 떠나가는 이 땅의 시인 소라여! 꽃도 보고 임도 보고 더 살다가 간다면 누가 뭐라 하십니까 그런데도 꼭 가야하는 그 길이 뭐하는 길이기에 도대체 다 뿌리치고 표표히 가시나이까 우리가 더 푸르게 살던 어느 날 당신은 <이 풍진 세상>이라는 시집 한 권을 짊어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지난 폭설에도, 산불에도 온전히 죽지 못하고 썩지 못한 것들 마침표 없이 출렁이는 저 파도 속에 떠밀려 가는데 비로소 그 큰 눈을 감는데 발을 구르는 자 하나 없더라 증언자는 더더욱 없더라라는 구절을 서로서로 소주 찍어 읊으면서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은 세상을 슬퍼했습니다 소라여! 당신은 이 시대의 굴곡진 아픔에 눈물짓는 참으로 순정한 시인이었습니다 겨울 한 밤중 설한풍에 등껍질 벗겨지는 통한도 눈물 한 방울로 웃으며 돌아서는 참으로 다수운 시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굳이 떠밀리지 않아도 겨울이 떠나고 우리가 굳이 손짓하지 않아도 봄은 저렇게 절룩거리며 오는데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팔짱 낀 구경꾼은 없더라고 당신은 <이 풍진 세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또 그렇게 한숨지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이 나라 동량들을 무쇠처럼 키웠고 전북문인들 앞에 큰 깃발 들고 앞장서서 휘날렸고 석정문학관의 주춧돌을 다듬기까지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영혼을 이 땅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그 먼 나라에 가시면 그렇게도 그립던 석정님도 뵈옵고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도 더 고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시겠지요 그리고 더 넓고 크신 당신의 믿음, 절대자의 품에 안겨 빛나는 큰 재목으로 영생을 누리시겠지요 남아 있는 우리들 머나먼 길 잘 가시라고 손을 흔듭니다 부디 소라여!
고 허소라 시인 한평생을 신석정 시인(1907~1974) 연구에 바친 지역문단의 대표적인 원로시인이자 문학연구자 허소라(본명 허형석) 교수가 16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84세. 1936년 진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금산동중, 금산농고를 졸업하고 전북대 국어국문학과,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거쳐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북대 국문과에서 허 시인은 석정 시인을 만나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었다. 1959년부터 그 이듬해까지 〈자유문학〉에 시 지열 피를 말리는, 도정 등 3편의 시를 추천받으면서 등단했다. 당시 시 추천을 해준 사람도 석정 시인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석정 시인의 <촛불>, <슬픈목가> 등을 구해 읽으며 그의 시 세계를 동경해왔던 허 시인은 저평가된 스승의 문학사적 위치를 바로잡고자, 학문의 길에 들어선 이후 줄곧 석정 문학 연구에만 매달려왔다. 석박사 논문도 모두 석정 시인의 문학세계를 주제로 했다. 전주신흥고 교사로 시작해 군산 수산고등전문학교와 수산전문대학을 거쳐 군산대 교수로 정년 퇴임할 때까지 재직했다. 이밖에 대만 국립정치대학 동어계 교류교수, 연변대학 객좌교수,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허 시인은 군산대에서 정년 퇴임 한 이후에도 시 쓰기와 석정 문학 연구로 시간을 보내왔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석정의 문학과 삶을 조명정리하는 일에 바쳐온 셈이다. 살아생전 고인은 석정 시인에 대해 스승과 제자 관계로 뿐 아니라 부모와도 같은 분이셨다. 그만큼 제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제게는 늘 미치지 못하는 거목 같은 존재였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한 허 시인은 활발한 문학 활동으로 후학들에게 모범을 보여왔다. 1964년 첫 시집 <목종>을 낸 이후 <풍장> <겨울나무> <아침 시작> <겨울밤 전라도> <누가 네 문을 두드려> <이 풍진 세상> 등을 출간했다. 산문집 <흐느끼는 목마> <파도에게 묻는 말> <숨기고 싶은 이야기>, 평론집 <못다 부른 목가> 등을 펴냈다. 전라북도문화상, 전북대상, 백양촌문학상, 모악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석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석정의 문학 세계를 조명한 논문 50여 편을 발표했다. 2012년 개관한 부안 석정문학관 조성작업에 참여하는 등 건립을 주도했다. 석정문학관 초대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석정 시인의 수많은 시를 발굴수집했으며 2009년에는 미발표 저항시 11편을 공개해 석정 문학을 새롭게 연구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빈소는 전주예수병원 장례식장 202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18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임실군 임실읍 정월리 태평교회동산.
이상훈 진안 마령고 교사 진안 마령고등학교에서 역사과목을 가르치는 이상훈(56) 교사가 제13회 진안문학상을 수상했다. 진안문학상은 지역 문학의 위상을 높인 작가를 선정, 3년마다 시상한다. 진안문인협회(회장 이병율, 이하 협회)는 지난 15일 오후 문화마실 진안에서 진안문학상 시상식을 열고 이 교사에게 상패와 상금 200만원을 수여했다. 이 교사는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청어람M&A, 2020)>에 자신의 지역사랑 진정성을 녹여내, 이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시상식은 코로나19 감염 차단과 예방을 위해 방역수칙과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엄격히 지키며 최소 인원으로 진행됐다. 수상자인 이 교사는 지난 2003년 <좋은 사람> 가을호에 돌의 생명력, 영험함 인간 속에서 나타나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등단한 문인(수필가)이기도 하다. 교직에 종사하면서도 8년가량 진안문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한 전력이 있는 이 수상자는 진안지역의 마을, 민속신앙, 풍속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출판한 관련 분야 중견 연구가로 통한다. 진안문학상 운영위원회 김영화 위원장은 교사이지만 지역주민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지역사회의 현안 문제를 고민하면서 해법을 찾아내려는 모습은 다른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면서 이 교사의 칼럼집 <진안, 가슴으로 담다>는 단단한 문장력과 필체가 돋보이며 지역사회의 시기별 현안문제에 대해 균형 있는 대안이 제시돼 있다고 수상자 선정 이유를 밝혔다. 이 교사는 귀한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이다. 글을 잘 썼다는 의미보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 교사는 1991년 진안고등학교(진안공고 전신)에 첫 부임해 진안과의 인연을 시작했으며 이후 교편생활의 많은 시기를 진안에서 보냈다. 진안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마령고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완규 원광대학교 교수,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요즘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전시유물의 이해를 돕는 설명 패널과 유물 명패에서 어렵지 않게 마한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나주에 자리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이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를 정리하고 발굴조사에서 수집된 자료를 중심으로 건립된 박물관이라는 점은 격세지감마저 들게 한다. 사실 지금처럼 명쾌하게 역사적 정치체로서 마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영산강 유역의 마한문화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대형 옹관마저도 1990년대 초까지는 광주 박물관 전시유물의 명패에 「백제시대 5~6세기」라 쓰여 있을 정도였다. 그것은 90년대 초반까지 마한과 백제문화를 구분할 수 있는 학계의 연구가 미미한 수준의 현실을 그대로 방증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또한 마한은 백제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병합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마한과 백제의 관계를 대나무와 죽순에 비교될 정도로 두 정치체를 구분하는데 어려움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쯔이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나주 신촌리 9호분에서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등이 발견됨에 따라 이 지역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곧 신공황후의 삼한정벌설에 심취했던 그는 무덤 주위에 들러진 도랑을 근거로 왜인의 무덤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1999년에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주관으로 재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일인 학자들의 발굴에서 소홀히 다루었던 정보를 구체적으로 얻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마한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1970~80년대에 걸쳐 국립광주박물관의 설립과 호남지역 대학교에 고고학 관련 학과가 설립되면서 본격화되게 된다. 국립광주박물관과 각 대학 박물관이 주동이 되어 영산강유역의 영암과 나주일대의 대형 옹관고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의 문화양상이 백제문화는 뚜렷이 구분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영산강유역의 마한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지역별로 역사문화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1990년대에 건설된 서해안고속도로 구간에 대한 문화유적 조사는 비로소 마한문화의 정체성을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곧 마한의 옛 영역에서 서해안을 따라서 이루어진 조사는 마치 마한 전역에 대한 샘플 조사와 같은 효과를 보여 백제문화와 구분되는 마한문화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21년 초 각종 기관들의 인사철을 앞둔 가운데, 전북 내 국립박물관장의 임명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15일 문화체육관광부 등에 따르면 현재 국립박물관 2곳이 이번 인사 대상이다. 국립전주박물관은 관장이 공석이고, 국립익산박물관 신상효 관장이 이달 내 임기를 마치고 내년 1월 1일부터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도내 2곳의 박물관장 인사가 임박한 셈이다. 먼저 전주국립박물관은 지난 6월 30일 천진기 전 관장이 2년의 임기를 마치고 연고지가 있는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발령이 난 이후 공석상태다. 현재 정상기 학예실장이 직무대행을 하고 있다. 천 전 관장이 임기를 마친 후 곧바로 관장인선이 되거나 늦어져도 2~3주 후 내정 또는 인사발령이 나지만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수장이 없는 지역국립박물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때문에 지역 내 거점 박물관의 수장 공백이 장기화 되면서 이를 두고 도내 문화예술계에서는 문체부가 전주박물관장으로 적정한 인물을 찾지 못해 발령이 늦어지고 있다, 인사가 내정되어 있지만 담당 부서에서 일을 마무리 하지 못해 마무리 후에 올 것이라는 등의 추측이 나돌고 있다. 이런 추측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라도 이번 인사에서는 반드시 관장인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지역문화예술계의 말이다. 한 지역 문화예술인은 지역 내 거점 박물관 수장 공백이 장기화되면 문화예술의 중심을 잡아줘야 할 구심점이 없는 것과 같다면서 계속해서 인선이 길어지는 것의 지역에 대한 소홀함으로 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 관계자는 국립전주박물관과 국립익산박물관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해 인사가 늦어질 수 있다며 특히 국립전주박물관(3급 상당)의 경우 인사혁신처의 결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 내에서는 이번 관장인사가 빠르면 이달말, 늦어도 1월에는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점은 국립민속박물관 인사와 함께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인디전주 뮤직 어워드는 전북 최초의 대중음악 시상식입니다. 지역음악의 가치와 위상을 높이고, 지역민들에게 지역음악 문화를 선사하며 함께 호흡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문화기획사 포풀라가 전북 최초 대중음악 시상식 인디전주 뮤직 어워드를 제정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시상식은 오는 27일 유튜브 포풀라 채널을 통해 공개한다. 심사는 2018년 12월 1일부터 2020년 11월 30일까지 전주에서 발표된 대중음악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시상은 종합 부문(음원상, 음반상), 장르 부문(힙합, 재즈, 발라드R&B, 포크블루스, 락메탈) 등 총 7개 부문에 걸쳐 이뤄진다. 제작을 맡은 포풀라 박석영 대표는 이번 시상식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해 얼어붙은 문화예술계에 잠시나마 따뜻한 기운이 돌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종로 감로암에 중광 스님이 계실 때에 가끔씩 양담배 한 보루씩 사가지고 다닌 적이 있었다. 내가 가면 스님은 좋아서 활짝 웃었다. 어느 날 아침 감로암을 찾았을 때에 스님은 기분이 좋아서 법문하기를, 진정한 깨달음은 스승 없이 깨닫는 거야. 그게 진짜지!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느낀 바가 있어서 그것을 글로 써달라고 했다. 그러자 스님은 망설이지 않고 무사독오(無師獨悟)라고 붓을 들어 써주셨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하셨다는 조선시대 진묵스님 일화를 보면 이런 게 있다. 상운암에 계실 때에 모시고 있던 스님들이 약 한달 예정으로 탁발을 나갈 때에 진묵 스님은 창가에 손을 걸치고 앉은 채 작별을 했고 곧 선정에 들었다. 한달 후 탁발을 마치고 돌아 온 스님들이 보니, 진묵 스님은 여전히 그 자세로 앉아 선정에 들어 있는데, 그 사이 바람이 세차게 불어 창가에 걸친 손은 닫히고 열리는 문틀에 망가지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진묵 스님의 얼굴은 거미가 몇 겹으로 집을 지어 더럽혀져 있었다. 스님을 깨우자, 곧 눈을 뜨고, 너희들 벌써 왔느냐?고 했다는 장면이다. 선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선정에 들어야지 하면 그것은 선정이 아니다. 어느 순간 선정에 들어 삼매에 들 수 있어야 선정이다. 그것이 순일하고 전일한 경지이다. 그리고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 깨어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동치기로는 천둥번개가 번쩍일 때처럼 강렬하다가도 고요할 때에는 잔잔한 연못에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순간보다 더 고요한 것이 그 세계이다. 마음의 세계가 미묘해서 그 극단적인 모순을 지니면서도 전혀 불편하지 않게, 순간순간 미묘한 작용을 스스로 하는 것이 또한 그렇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늘 마주치는 마음의 문제는 진정한 깨달음을 추구할 때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이러한 묘미를 터득하지 못하면 그 어떤 옷을 입었든 가짜이다. 공무원이든, 상인이건, 가정주부이건, 사기꾼이건, 스님 또는 목사이건 모두 가짜이다. 가짜가 되지 않으려면 깨달아야 한다. 공중에 걸쳐놓은 줄 위에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떼는 곡예사처럼 모두를 걸고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누가 알겠는가?
△전주 마전출신의 신진사대부 이백유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공민왕 1년(1352)에 태어나 정종 1년(1399) 48세로 졸하였다. 그는 본향도 전주이고 살기도 전주에 살았다. 전주이씨는 전주최씨, 전주유씨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3대성씨이다. 전주이씨라고 하면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를 떠올리지만, 이백유 집안은 그의 증조부 이문정을 대표로 하는 가문으로 조선왕실과는 다른 가계이다. 이백유 집안은 전주 효자동 마전(馬田, 마랏)에서 대대로 세거하여 세칭 마랏(말안)이씨라고 한다. 마전이라는 지명은 지세가 달리는 말이 밭에 내리는 형국이라고 하여 붙여졌다. 이백유가 개국공신이 되어 전라감사로 오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삼밭[麻田]이 마소 매는 밭으로 바뀌어 마전(馬田)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의 문학로(文學路)라는 도로명은 그 집안에서 세운 정자 문학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백유의 초명은 재(才)ㆍ자유(子愉)이다. 그의 조부는 정당문학 이문정(李文挺)으로 고려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으며 마랏이씨의 중시조로 받들어지고 있다. 아버지는 검교중추부사 이몽(李蒙)이고, 어머니는 전주최씨로 고려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을 지낸 최용갑(崔用甲)의 딸이다. 부인은 해주 오씨 군수 오사운(吳士雲)의 딸과 파평 윤씨 진사 윤승열(尹承烈)의 딸이다. 마랏이씨의 유적으로 이문정이 낙향하여 건립하였다는 문학대가 있고, 이문정ㆍ이백유ㆍ이경동ㆍ이목 등을 모신 황강서원이 있다. 황강(黃崗)은 이문정의 호이다. 문학대와 황강서원은 도문화재로지정되어 있다. 이백유를 모신 부조묘 양후사(良厚祠)가 그 중심적 위치에 있다. 문학대는 완산동 곤지산 아래에 있다가 마전마을로 옮겼으며, 신도심이 개발되면서 황강서원 뒤 현재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조선 개국공신 책봉과 전라감사 임용 이백유는 이색의 문인으로 공민왕 20년(1371) 문과에 급제하여 공양왕 2년 우상시(右常侍)를 지내고 예조판서에 올랐다. 1392년 7월 배극렴, 남은 등과 함께 태조 이성계의 집으로 찾아가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다. 조선 건국후 개국공신 3등에 책봉되어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완산군)에 봉해졌다. 그가 전라감사로 부임한 것은 44살 때인 태조 4년(1395) 2월 26일이다. 『호남도선생안』에 을해년 2월 26일 하계(下界)로 기록되어 있다. 하계는 전라도로 들어왔다는 것이다. 전라감사 이임에 대해서는 같은 해 8월 30일 한성윤으로 상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6개월간 전라감사로 재임하다가 한성윤이 되어 한양으로 올라간 것이다 <태조실록>에 보면, 그가 전라감사 재임 때 황군서(황희의 부)가 도안문사로 제주에 다녀와 암말이 줄어드는 폐단을 아뢰어 마른 말고기 진상을 그만두게 한 일이 있다. 또 왜구에 항거한 완산의 절부 임씨 정문을 세운 일도 있었다. 상피제로 인해 출신지역의 지방관으로 임용될 수 없는데 이백유는 전라도출신으로 전라도관찰사에 임용되었다. 조선왕조 5백년간 전라도 출신 전라감사는 12명에 불과하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혼맥 이백유는 태조 7년 8월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일파로 지목되어 외방에 부처되었다가 풀려나 이듬해 정종 원년 고향인 전주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의 짧은 생애였다. 후에 양후(良厚)라는 시호가 내렸다. 조선건국후 정국에서 주목되는 것은 이백유 만이 아니라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이 1차 왕자의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는 것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을 꼽으라면 이백유, 심효생, 오몽을 등을 꼽을 수 있고, 장지화와 정용수도 전라도출신으로 추정된다. 심효생은 세자 방석의 장인으로 본향은 순천이지만 그 선대에 전주로 이주하였다. <씨족원류>를 통해 이들의 혼맥을 보면 전주최씨 최용갑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용갑은 전주최씨 최아의 아들로 고려 충숙왕 때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직제학에 올랐으며 그 부인은 우주황씨 황공로의 딸이다. 이백유의 외조부가 최용갑이며, 고모부는 전주유씨의 시조 유습의 아들 유극강이다. 심효생은 유습의 사위이며 최용갑의 처이질(아내 자매의 아들)이다. 오몽을은 최용갑의 조카사위이다.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된 우주황씨 황거중은 최용갑의 처조카이다. 이백유는 또 개국공신 조견과 동서지간으로 조견의 친형이 조선창업의 핵심인물 조준이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의 실각 이렇게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혼맥으로 연결되었고, 이들은 또 전주의 대표적 사족 이씨, 최씨, 유씨 등과 중첩되는 혼인관계를 맺고 있다. 우주황씨 세력도 주목된다. 이들 전라도출신 개국공신들이 1차 왕자의 난 때 대부분 축출되었다. 방석의 장인 심효생과 인친 장지화, 오몽을 등이 죽임을 당하였으며, 이백유는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죽었다. 정용수는 왕자의 난은 피했으나 태조의 측근으로 조사의난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이러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의 실각은 전라도의 운명을 가름하였던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선건국에 전라도세력이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전주의 토착세력들이 혼맥으로 연계되어 조선창업에 적극 참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은 심효생의 사위 방석이 세자로 책봉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정도전세력이 실각하고 방석이 죽임을 당하면서 전라도출신 개국공신세력들은 대대적으로 숙청되었다. 전주와 전라도가 조선왕실의 고향이면서도 조선초 중앙정계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이런 권력재편 과정에서 밀려난 데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성종대이후 사림들이 중용되면서 호남사림들이 중앙에 적극 진출하여 선조대 정국의 주도적 위치에 올랐던 것 같다. /이동희(전주역사박물관 관장)
전주문화재단이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 보다 체계적인 조직관리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전주문화재단은 그동안 한벽문화관 교육체험 공간을 사용했던 사무공간을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고 14일 밝혔다. 동문시민놀이터에 입주해 있던 생활문화팀을 제외한 4개 팀이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한다. 이에 따라 분산되어 있던 업무와 사무공간이 일원화를 이루게 됐다. 그간 전주문화재단은 한벽문화관 5개팀, 팔복예술공장에 3개팀, 동문문화센터에 1개팀으로 사무공간이 3개 시설에 분리 운영되고 있었다. 백옥선 대표이사는 취임과 동시에 조직의 쇄신과 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조직개편 단행과 사무공간의 일원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 재단이 이전하게 되는 팔복예술공장은 1단지(A동) 지상 3층, 2단지(B동) 지상 2층(연면적 6,001㎡, 대지면적 13,224㎡)으로 전시장 및 작가 스튜디오, 카페 및 그림책방, 예술놀이터 등의 문화시설 및 시민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전국 최초로 꿈꾸는 예술터 전국 1호 공간과 예술교육 체험공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연간 약 4만5000명이 이용하는 등 지역관광거점도시 전주의 자원을 바탕으로 예술가와 시민을 연결하는 예술의 거점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단 사무실이 입주할 공간은 1단지 A동 2층(61평) 전시장 뒷편이다. 1층에는 창작지원팀과 예술놀이팀이 근무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과거 사업공간의 분리로 원활한 소통과 전달체계와 연대의식이 미흡했다면서 이번에 팔복예술공장으로 이전함에 따라 업무의 효율과 안정적 운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 구상화가이자 지역 화단의 거목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이 지병으로 지난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중퇴하고,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 화백(1905~1982) 만나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1960년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전주여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전북의 구상화단을 주도해 온 대표적인 원로 작가이다. 자연과 인물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와 예술정신으로 70년 가까운 화업을 일궈왔다. 전북 출신 화가로는 처음으로 국내 예술분야 중 가장 권위 있는 제58회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970년대의 설경, 雲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 내장산 秘景, 지리산 하경, 성산일출봉, 제주 비자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줬다. 한결같이 자연 풍경과 정물을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강렬하고 자유로운 붓질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각종 대회 수상을 했으며, 초대전과 개인전 등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1년 서울예술의전당에서 그의 60년 화업을 조명하는 초대전을 비롯해 한국의 자연전(국립현대미술관), 대한민국 원로작가전(서울시립미술관) 등 다수의 전시회에 초대 출품했다. 20여 년간 원광대 미술대 교수로 재직하며 숱한 제자를 길러낸 그는 정년 퇴임 후에도 왕성한 창작 활동으로 후배 작가들에게 귀중한 본보기가 됐다. 2016년 말에는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 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섬진강미술관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등 평생 지역 구상화단을 지켜왔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 각종 미술 관련 활동을 해오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비롯해 미술세계상 본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우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2층 VIP실에 마련됐다가 13일 오전 11시 발인이 이뤄졌다. 고인은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에 묻혔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시완, 딸 박지연 1남 1녀가 있다.
박남재 화백 한국화단의 거장 서양화가 박남재 화백이 지병으로 11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1929년 순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중퇴하고, 한국 인상주의의 거두인 오지호 화백을 만나면서 다시 붓을 잡았다. 1960년 조선대 문리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 화백은 전주여고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술대 교수와 학장을 지냈다. 박 화백은 1970년대의 설경, 雲을 비롯해 1980년대 이후 내장산 秘景, 지리산 하경, 성산일출봉, 제주 비자림 등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생명과 자유라는 가치를 보여줬다. 1958년 제7회 국전 입선(국립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수차례의 각종 대회 수상을 했으며, 초대전과 개인전 등을 꾸준히 펼쳐왔다. 2016년 전주시 금암동에 위치한 자택 겸 작업실을 정리하고, 70여 년 만에 고향 순창으로 돌아가 섬진강미술관에서 지내며 작업을 이어왔다. 박 화백은 대한민국 예술원상 심사위원,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등 각종 미술 관련 활동을 해오며 지역과 한국 화단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로서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비롯해 미술세계상 본상, 목정문화상, 오지호미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우회 최고상 등을 수상했다. 빈소는 전주 뉴타운장례식장 2층 VIP실에 마련됐다. 장례식은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3일 오전 11시, 장지는 익산시 왕궁면 영모묘원. 유족으로는 아들 박시완, 딸 박지연 1남 1녀가 있다.
전북지역 미술관 창작공간(레지던시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참여한 작가들의 결과 발표 전시가 잇따라 열린다. 전주 교동미술관 창작공간 지원사업에 참여한 유시라 작가는 오는 20일까지 그것을 묶음으로 : Who, Where, Why?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한다. 탄생과 죽음의 순간을 묶음의 행위로 담아내었던 유 작가의 지난 제3회 개인전 그것을 묶음으로 : Birth-Death의 연장선에 있는 전시다. 닥 줄기를 사용한 매듭과 묶음 시리즈는 인생과 삶에 관한 철학적 진실을 담고 있다. 우리는 탄생의 시작을 축복하며 기쁨을 채워가기도, 죽음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며 슬픔을 비워가기도 한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탄생과 죽음 사이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지금 어디쯤 와 있으며, 그것을 느끼고 생각하는 순간이 왜 오는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유 작가는 현재 전북대 대학원 미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연석산미술관에서는 허은오 작가의 전시가 한창이다(오는 18일까지). 허 작가는 동양회화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인 화조화를 작업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섬세한 필치와 감각적인 색채 구사를 통해 표출되는 작가의 화면은 성실한 묘사로 보는 재미를 준다. 특히 그의 아크릴 작업은 수용성 안료 특유의 표현력을 십분 보여준다. 수묵을 차용한 새로운 작업은 수묵 특유의 함축과 절제의 화면에 여백이 두드러져 보는 맛과 풍부한 여운을 전해준다. 작가는 숲의 고요한 정취를 수묵으로 더욱 부각하고 평소 창공과 심해로 표현했던 무한한 자연 세계를 수묵과 여백을 통해 서정성을 강조하고자 했다며 생명의 순환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자연스럽게 녹여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작가는 숙명여대와 동 대학원 미술학 석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제45회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수상작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전시가 아닌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대통령상 수상 작가 박봉현 씨의 은제 고부조 타출 봉황문 주전자를 비롯해 수상작 136점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은 지난 7월부터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과 (사)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가 공동으로 전통공예 전 분야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온라인 전시는 오는 14일 무관객 개막식과 시상식을 시작으로 18일부터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 누리집과 유튜브 채널 전승공예 TV에서 열린다. 이번 공예대전 대통령상은 박봉현 씨의 은제 고부조 타출 봉황문 주전자에 돌아갔다. 국무총리상에는 배광우 씨의 건칠상감 포류수금문 정병,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에는 김송희 씨의 팔상도, 문화재청장상에는 손완옥 씨의 남이흥 방령포, 국립무형유산원장상에는 류오형 씨의 길상도 8폭 자수 병풍, 한국문화재재단이사장상에는 노영재 씨의 청화백자 용문호, 국가무형문화재기능협회이사장상에는 김강희 씨의 지승 자라병이 선정돼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이 밖에도 총 12개 종목별 작품의 향연이 펼쳐진다. △1분과(소목, 소반 분야) △2분과(죽, 목조각(각자떡살 등) 분야) △3분과(자수 분야) △4분과(매듭, 염색 분야) △5분과(도자, 옹기 분야) △6분과(지 분야) △7분과(금속 분야) △8분과(단청, 불화, 민화, 무속화 분야) △9분과(악기 분야) △10분과(옥, 초고, 관모 등 기타분야) △11분과(옻칠(나전채화건칠 등)분야) △12분과(직물, 침선 분야)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무형유산원 채수희 원장은 공예대전 온라인 전시는 묵묵히 전통의 길을 고수하고 있는 전통공예 작가들이 장인정신으로 일궈낸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의 무용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무용인들이 우리춤작가전에 출연한다. 우진문화재단은 2021년 무용분야 초청공연사업인 우리춤작가전에 출연할 6명의 무용가를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이번 공모는 신인춤판과 젊은 춤판 등 2개분야로 나눠서 진행됐다. 먼저 신인 춤판부분에는 윤시내(28), 정민지(29), 정종웅(26)이 뽑혔다. 윤시내 무용가는 아담과 이브라는 주제로 삶을 만끽하기 위해 창조된 낙원에서 사소한 유혹이 화근이 되어 인간을 신을 노하게 했고 낙원은 영원히 닫혀버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는 내용을 선보였다. 정민지 무용가는 항해라는 작품을 통해 인생이라는 바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희노애락을 선보였다. 정종웅 무용가는 Tandem oritur questo라는 작품으로 올가 토카르추크의 방랑자들을 읽고 영감을 받아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우리는 각자 생각하는 방향성은 다르지만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내용을 담았다. 젊은 춤판에는 김슬기(31), 설륜성(39), 윤지아(40) 무용가가 선정됐다. 김슬기 무용가는 당신의 순간들이란 무용을 통해 예상치 못한 순간의 변화 앞으로 마주할 인생의 순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설륜성 무용가는 귀를 기울이면이란 작품으로 ,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귀를 기울이고 자신에 대한 확신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야기를 담았다. 윤지아 무용가는 마르지 않는 샘이란 작품으로 삶을 대한 우리 내면의 이야기를 무용으로 승화시켰다. 이들의 무용은 향후 있을 우리춤작가전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전라북도문화관광재단이 전북 관광콘텐츠 제작과 홍보를 위해 전북관광 유튜브 크리에이터 육성사업에 공모한 우수작을 선정, 비대면 시상식을 지난 9일 개최했다. 대상은 함박TV팀이 차지했고, 최우수상은 우주티비팀, 우수상은 코비가팀과 지평이미디어팀, 특별상 KOREA Travel Guide팀이 받았다. 심사는 영상 조회 수, 관광코스로써 실현 가능성, 전라북도 시군 지역 홍보 기여도 부분 등 전문가를 통해 선정했다.
요사이 뜨겁게 전통문화의 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한국관광공사의 홍보 동영상으로 조선의 아이돌 이날치를 표방하며 부른 범 내려온다란 노래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도시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 영상은 벌써 3억 뷰를 훨씬 넘어 세계인들이 함께 느끼고 즐기는 콘텐츠가 되었다. 전통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로서는 참으로 반갑고 멋진 일이다. 자, 그러면 이날치는 누구일까? 사람 이름인가? 우스갯말로 생선 이름인가? 사뭇 전통예술의 이해가 없으면 그냥 지나칠 명사이다. 이날치는 조선 후기 이름을 날리던 8명의 명창 중 한 분의 예명이다. 이날치(본명 경숙敬淑) 명창은 옛 전통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한 분야의 명인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젊어서 줄을 탔는데 줄타기를 할 때 날치처럼 잘 탄다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후 그는 판소리 북을 치는 고수로 활동하다가 소리에 뜻을 두고 당대 서편제의 명창 박유전과 정창업의 제자로 들어가 계보를 잇게 된다. 이날치의 목소리는 성량이 커 그의 소리가 10리밖에서도 들렸으며 나오는 수리성(쉰 듯한 목소리)도 기교가 넘쳐 많은 청중의 심금을 울렸다고 전한다. 또한 박유전에게 배운 새타령을 부를 때면 새들이 소리를 듣고 날아와 앉을 정도였다 하니 그의 판소리는 과연 자연의 소리였나보다. 이날치 명창은 1870년대 고종 황제의 친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앞에서도 소리를 하게 된다. 당시 대원군의 친형 이최응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지인이 이날치가 명창으로 능히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는 말을 듣고 대장부가 어찌 광대의 재주에 울고 웃나라며 그를 불러 자신을 울리고 웃기면 천금을 주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했다 한다. 이날치는 주저 없이 자신의 장기인 심청가 중 심청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리는 대목을 불렀고 이최응은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이날치 명창에게 큰돈을 하사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온다. 오늘날 이날치 명창의 소리 멋을 이날치라는 이름의 밴드가 맛깔스러운 얼터너티브 (Alternative 비슷한 것 같지만 실험적인 시도를 하는) 소리로 탈바꿈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앰비규어스라는 댄스컴퍼니와 협업하며 판소리의 발림을 외국인까지도 어깨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촌스럽지만 흥겨운 춤사위로 만들었다. 그들은 몇 년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무심코 지나칠 B급 감성을 시대의 주류인 A급 한류로 재탄생시키며 세계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우리 전통예술의 귀한 명창 이날치 이름을 높이면서 말이다. 현재, 이날치 명창의 정통 소리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이시며 필자에게 처음으로 국악을 알려주셨던 이날치의 손녀 이일주 명창이 전주에서 대를 잇고 있다.
웅치전적지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위한 전북도 차원의 TF가 구성돼 본격활동에 들어간 가운데, 국가사적 신청을 위한 대상 구역 최종안이 나왔다. 전북도는 9일 오후 2시 전주비전대학교 비전관에서 전북도청 문화유산과 국철인 과장과 도 관계자, 하태규 전북대학교 교수, 완주군과 진안군 문화재 업무 담당자, 학계 관계자 등 10명이 참석한 가운데 웅치전적지 문화재보호구역 재설정 TF 회의를 가졌다. 이날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웅치지전적지 문화재구역 지정안 4개를 검토하고 해당 지역 주민 의견을 듣는 등 사적지정 연구용역 추진상황을 검토하는 한편, 신속한 국가지정 문화재(문화재 보호구역) 지정 노력을 위한 토론을 벌였다. 회의 결과 덕봉길 지구와 웅치길 지구를 포함한 연계 보호구역 지정 안(지적과 지형고려)이 최종 안으로 도출됐다. 이 안은 전체면적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아닌, 주민재산권 문제 등 감안해 역사적 상징성, 진정성이 있는 주요 지점(포인트) 형태로 선 지정 신청을 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면적은 38만여㎡로, 기존 도 사적 면적 360만 여㎡보다 1/10가량 줄어든 면적이다. TF 총괄책임관은 윤여일 도 문화체육관광 국장이 맡으며, 학술조사팀과 행정지원팀, 현지 대응팀 3개팀으로 나뉜다. 학술조사팀은 심정민 전주비전대교수가, 행정지원팀은 전북도 학예연구관이, 현지대응팀은 완주군과 진안군의 학예연구사들이 맡았다. TF는 사적지정을 위한 도와 시군의 유기적인 업무추진과 기관과 학계, 언론 관련 전문가의 효율적 협력체계 마련을 위해 구성됐다. 향후 추진상황 등을 공유하고 논의한 뒤 최종안을 골자로한 주민 공청회를 내년 1월 중으로 연후 3월 예정된 문화재청 지정위원회에 최종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하태규 교수는 문화재 보호법에 정한, 지정위원회에서 지정할 수 밖에 없는 사적요건을 맞춰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도 국철인 과장은 되도록이면 완주와 진안군 의견을 수렴해 하나의 안을 만들고 문화재청 지정위원회에 신속히 상정해야한다. 지자체들 주민 설득과 합의가 신속히 이뤄져 국가 사적 지정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국 공립미술관들이 사상 처음으로 정부평가를 받는 가운데, 도내 공립미술관들에 대한 평가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문화계 등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공립미술관의 질을 높이고 그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올해부터 평가인증제도를 시행 중이다. 공립 박물관 평가는 2017년도부터 진행됐고, 미술관 평가는 올해가 처음이다. 문체부는 7월 평가기관 대상 사업 설명회를 시작으로 8월부터 11월까지 서면 평가와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최종결과는 오는 31일 나올 예정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우수한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인증서(인증기간 2년)가 발급된다. 인증 박물관과 미술관은 해당 사실과 내용을 표시할 수 있다. 평가대상은 전북의 공립미술관인 전북도립미술관, 익산예술의 전당 미술관, 무주 최북미술관 3곳이다. 주요평가기준은 △설립 목적의 달성도 △조직인력시설 및 재정 관리의 적정성 △자료의 수집 및 관리의 충실성 △전시 개최 및 교육프로그램 실시 실적 △공적 책임 등 5개 항목이다. 먼저 전북미술계의 중심축인 도립미술관은 최근 타 기관 공모사실로 물의를 빚었던 김은영 관장의 리더십과 교육 기획, 교육 운영 전문성, 취약계층의 문화향유 기회 확대에 대한 평가가 집중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익산 예술의 전당 미술관은 전시공간으로서의 노력, 미술관만의 독창적인 역할이, 최북미술관은 앞으로의 운영계획 등이 평가 관심사다. 도립미술관 관계자는 지난달 문체부 현장심사에서 미술관의 역할과 적극적인 실험, 전시기회 등 전반적인 부분을 적극 어필했다면서 좋은 점수가 나올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익산예술의전당 관계자는 현장심사에서 공연과 미술을 함께 운영하다보니 미술관의 독창적인 운영방법과 비전을 많이 물어봤다면서 지표에 맞는 노력을 하겠다고 답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공개에서 공립미술관 외에도 전북에 자리를 잡고있는 무주 국립태권도박물관, 익산 전사박물관, 전주국립전주박물관 등 3곳 국립박물관에 대한 평가도 함께 공개된다.
'작지만 강한' 전북도립미술관의 반란
전북 평생교육장학진흥원, 임대주택 입주민 자녀 장학금 지원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희망 장학생 선발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행복장학금 전달식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지역정착 장학생 선발 공모
전라북도평생교육장학진흥원, 꿈키움장학금 전달식 첫 개최
[짤막]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 향토인재 장학생 선발
[TV 하이라이트] '현장르포 동행' 고시원에 보금자리 튼 4남매
김학권 전북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 “전북의 미래인 인재 육성 앞장”
빅마마 데뷔앨범 깜짝 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