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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운영 지원을"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이 계륵(鷄肋)으로 전락하면서 운영 방식의 전환이 제기되고 있다. 소유기관인 전북대가 재정 부담의 가중으로 시설 개선과 운영비 소요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지역사회의 문화향유를 위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12일 전북대에 따르면 삼성문화회관에 최근 3년간 9억8000만 원을 지원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삼성문화회관 전체 예산 21억8000만 원 중 대관과 임대 등 자체 수입은 12억 원이며, 나머지를 학교에서 메웠다. 하지만 전북대의 재정난이 가중되면서 공연장의 기능 상실이 우려되고 있다. 전북대는 최근 7년간 등록금 인상을 억제한데다 올해 정부에서 받는 지원금이 106억 원 가량 줄었다.이런 가운데 삼성문화회관은 지난 1997년 1월 개관한 뒤 18년이 지나 조명, 음향 등 무대 시설이 노후화돼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1493석의 대공연장 무대뿐 아니라 건지아트홀, 전시실 등 내부 대부분이 안전 부주의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삼성문화회관의 시설 노후화 문제는 지난해 국회의 국정감사에서도 지적됐다. 당시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 정진후 의원(정의당)은 20112013년 지방문예회관 종합컨설팅 지원사업 현황에서 안정적인 공연을 위해서는 전면적인 시설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사정이 이렇다보니 단골로 대관했던 기관단체도 이곳을 기피하고 있다. 매년 행사를 치렀던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삼성문화회관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배급사와 관객의 항의가 급증하면서 장소를 변경했다.영화제 관계자는 1400석이 넘는 객석에도 불구하고 시설이 열악해 해마다 많은 불만을 접수한다며 문화예술의 도시라고 하지만 쓸만한 대형 공연장이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전북대는 삼성문화회관의 시설 개선을 위해서는 20억 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이를 대학과 자치단체 등에서 공동 부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2~2014년 삼성문화회관이 유치한 행사는 모두 725건으로 이중 학내 행사는 68건(9.4%)에 불과한 반면 도민 대상의 일반 행사는 657건(90.6%)으로 단순히 전북대만의 공간이 아닌 도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시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특히 도민의 종합문화공간 확보 요구에 따라 전북도, 전주시의 추진으로 건립된 만큼 사후 운영도 이에 따라야 한다는 논리다. 당시 전북도 20억 원, 전주시 30억 원, 내무부 특별교부금 15억 원, 전북대 37억 원과 전북대 발전지원재단에서 유치한 삼후원금으로 삼성 60억 원, LG 20억 원, 삼양사 4억 원, 기타 기부금 11억 원 등 95억 원을 보태 모두 197억 원이 투입됐다. 대공연장과 224석의 소공연장, 전시실 등을 갖춰 지난 2001년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개관하기 전까지 도내 대표 공연장으로 자리매김했다.전북대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의 형평성을 내세운다. 같은 기능을 하지만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의 경우 연간 운영비 60억 원 가운데 38억5000만 원을 도에서 지원받기 때문이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13 23:02

97년 전 그날의 함성…임실지역 3·1만세운동 되새긴다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도내와 임실지역의 31 만세 운동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사)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전주문화원, 임실문화원이 주관하고 전북일보와 임실군이 주최한 전북임실 31 만세 운동 전국 학술대회가 17일 오후 1시 임실군청 문화강좌실에서 열린다. 전북도, KBS전주방송총국, JTV전주방송, 전북CBS, 전주보훈지청, 광복회 전라북도지부가 후원해 진행한다.이번 학술대회는 임실 출신으로 민족대표 33명에 속한 박준승 선생을 비롯해 당시 임실지역에서 만세운동을 벌인 선열을 기리고 보통학교로 참여했던 오수초등학생의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개최한다.이날 김진돈 전주문화원 사무국장의 사회로 이명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연구팀장이 광복 70주년과 31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살피며 오정우 광주여대 명예교수가 토론자로 나서 학술적 고찰을 더한다.이어 김종수 군산대 교수가 호남지역 31 만세 운동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밝히며, 이경재 전북일보 수석논설위원이 첨언해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논한다.마지막으로 임실지역 만세 운동의 의미와 영향 등을 나종우 전주문화원장이 설명하며, 최성미 임실문화원장이 이를 덧붙인다. 지난 1919년 임실 오수에 있는 보통학교 학생은 3월10일 만세 시위를 시작했으며, 12일에는 주민 2000여명이 참여해 독립을 외쳤다. 이를 기념해 1977년 동아일보사가 창간 58주년을 맞아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에 있는 31 동산에 3.1운동 기념비 건립하기도 했다.학술대회를 주관하는 (사)소충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64)은 올해가 광복 70주년과 함께 임실 출신으로 호남의병 창의동맹단을 만든 이석용 장군의 서거 100주년이다며 임실은 박준승 선생을 배출하고 운암, 청웅, 오수 등 관내 전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난 충효의 고장이다고 소개했다.그는 이어 임실 지역은 31운동 당시 지역에서 김영원, 한영태, 이기송, 이광수 선생 등이 앞장서고 보통학교를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벌어져 각 면마다 40여명이 투옥된 뒤 석방을 요구하며 1000여명의 주민이 봉기하는 과정에서 남원헌병대의 총에 맞아 사상자가 발생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며 이러한 역사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청소년과 젊은층에게 나라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리겠다고 덧붙였다.한편 이날 발표에 앞서 필봉예술단과 35사단의 공연이 식전 행사로 이뤄진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12 23:02

"지역 주민에 더 가까이…다방면 전통문화 계승 최선"

지난 2일 취임한 최맹식 신임 국립무형유산원장(58)이 지역사회와 융화되고, 다방면의 한국 전통문화 계승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최 원장은 국립무형유산원이 자리잡은 인근의 전주 한옥마을을 찾는 인파가 한국 무형유산에 대해 보다 잘 알고 친숙함을 느끼고, 지역주민들이 자주 찾는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관내에 이정표와 안내도를 배치해 지역주민과 관람객의 편의, 접근성을 향상시키겠다는 계획도 같은 맥락에서다.최 원장은 또 지난 3일 국회에서 무형문화유산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안이 가결됨에 따라 그동안 다소 예능이나 기능에 치우친 감이 있었던 전통문화 전승이 보다 다양한 분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민간에서 행해지던 침술이나 뜸과 같은 한의학이나 대체의학 등의 지식을 조사연구해 후세에 전승하는 방안도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신임 최맹식 원장은 1993년부터 문화재청에서 근무하며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한편,국립무형유산원은 이달 28일부터 6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상설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공연은 매월 한 가지씩 크게 4가지의 주제로 구성된다. 28일 개막특별공연에서는 대취타태평무처용무를, 4월부터는 전국 각 지역의 농악민요탈춤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이후 7~8월은 2015 이수자뎐(기획공연), 9월부터 12월까지는 국내외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강릉단오제플라멩고 등)을 공연할 계획이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3.12 23:02

30년간 죽력고 빚어온 식품명인 송명섭 씨 "자연스럽게 익힌 죽력고…개인소유 아닌 한국의 전통문화"

전북을 대표하는 멋 중의 하나가 풍류다. 풍류에서 술이 빠질 수 없다. 전북에는 이강주, 송순주, 과하주, 송죽오곡주 등 전통 명주들이 즐비하다. 명주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이를 지켜온 명인들의 숨은 노력과 열정이 있었다. 죽력고가 오늘날 전북의 대표 명주로 각광받는 데는 송명섭 명인(58)이 있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이며, 전북도 무형문화재인 송 명인은 30연년간 전통주를 빚어온 장인이다. 죽력고(竹瀝膏) 빚는 법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문화로써 체득한 그는 죽력고가 개인의 것이 아닌 한국의 고유문화라고 강조했다.-가문에서 언제부터 죽력고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기자님들이 공통적인 질문을 합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했느냐. 저는 아 이거 언제부터 한 게 아닌데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전 무형문화재 입니다. 문화란 저 혼자 갖고 있는 게 아니고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게 문화입니다. 나 혼자 가지고 있는 것은 기술이죠. 우리 집 대대로 내려왔다 이건 기술입니다. 전 인간문화재이기를 바라지, 기술자이고 싶진 않습니다. 문화는 제 것이 아니며, 저라는 매개체는 문화를 후세에 전달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희 집안에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몇 대에 걸쳐 내려왔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죽력고와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죽력고는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익혔습니다. 김치 담그는 것도 문화여서 아는 것이지,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지는 않지 않습니까. 환경에 따른 자연습득입니다. 김치의 경우, 한국인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김치를 담그니 그것을 어떻게 따로 가치를 표시해 놓지 않잖아요? 또 순창 고추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할머니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고추장을 담근 게 아니란 말이지요. 맛이 좋아서 널리 퍼지다 보니 문화적 차원으로서 어떤 게 나온 것이지 모두 자연습득입니다. 그런 길고 깊은 인과관계가 있는 문화를 줄이고 줄여 내 것인 듯 이야기 할 순 없지요. 죽력고는 민족이 다 같이 가졌던 문화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가진 것은 문화적 가치가 없는 기술입니다.-예부터 죽력고가 민간에 널리 퍼졌다는 말씀이신데.제가 우암 송시열로부터 27대손인데, 송시열 선생이 죽력고를 드시고 진시절미 하다란 표현을 하셨습니다. 또 전북지역이 배경인 춘향전에도 상차림 중 죽력고가 등장합니다. 노래 가락 중 하나인 의부가에도 죽력고가 나오고, 정약용 선생도 죽력고를 너무 많이 만들어 대나무가 부족하니 고관대작들이 좀 자제하란 내용을 남기셨습니다. 녹두장군 전봉준도 죽력고와 관련된 일화가 있고요. 즉, 죽력고는 이미 조선시대에 널리 퍼진 하나의 문화였으며, 정치를 하시는 분도 드셨고, 노랫가락에도 있고, 소설에도 나오고 그랬던 바로 그 술입니다. 지금도 가양주로 죽력고를 빚는 집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전라도에서 특히 죽력고가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재료 확보에 어려움은 없으신지요.전라도에 대나무 없는 마을이 거의 없습니다. 지역적으로 대나무가 자라기 좋은 여건입니다. 주변에 있는 대나무를 활용합니다. 가까운 선산에도 대나무 밭이 있고요. 장작은 구매합니다. 가격의 고하를 떠나서 장작이 있어야 술의 발생 자체가 자연스럽습니다. 인위적으로 특정 온도를 맞춰놓으면 그 온도의 맛이 나오는데 장작을 때면 온도의 기폭이 커져 술로 변해 나왔을 때 모양새가 다양하게 나옵니다. 그래서 일부러 장작을 땝니다. 참나무의 비중이 많고, 일부 잡목이 들어갑니다.-죽력고가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면서 사회적 관심도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일본이나 유럽 쪽은 무형문화재가 사는 곳을 무장경관 2명이 24시간 보호를 해요. 문화를 귀히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한국은 문화가 많다보니 귀중한 것인데도 제 피부로 느끼기에 귀중함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고의성이 없게 홀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문화가 깊고, 속이 차있는 것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문화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지 않으면, 프랑스 와인이 칠레 와인에 뒤처지는 일이 생기듯 자기 것을 뺏길 수도 있습니다. 분명 각 국에는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는데 우리는 그게 무엇인가요. 이것은 사회 지도층이 우리 술을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더구나 일정 때 문화 말살의 일환으로 술 자체도 못 빚게 했습니다. 이제 나라를 찾고 독립을 했으면 문화도 독립을 해야하는데 문화는 여지껏 그대로 있습니다. 문화는 아직도 독립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전통문화에 대한 요즘 젊은이들의 관심이 기성세대보다도 훨씬 크다는 점입니다.-죽력고가 고유문화로서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 하나를 꼽으신다면.국가에서 전수를 하라고 하는데, 조건이 뭐냐면 전수자가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수자에 대한 정부 보조금이 한 달에 10만원 나오고 있어요. 앞으로는 20만원이 된다는데 그 사람이 그거가지고 어찌 생활을 합니까. 지금 3명째 전수 중입니다. 문화 전수자는 무수히 많아야 합니다. 지정을 하는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고작 세 사람 갖고 문화가 이뤄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에서 전수자에 한해 그 사람이 적어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품위유지비는 줘야합니다. 이대로는 문화 전달이 아니라 세습밖에 안 됩니다.● 죽력고는 전봉준 장군도 마셨다는 술, 조선 3대 명주로 전국 명성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는 육당 최남선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관서감홍로, 전주의 이강고(이강주)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은 최상급의 전통술이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당시 전봉준이 일본군에 붙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쇠잔해 있을 때, 죽력고를 세 잔 들이키고 기운을 차려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서울로 압송됐다는 매천 황현의 기록은 유명하다. 죽력은 청죽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사흘에서 닷새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진액이다.한방에서는 죽력고를 어린이가 경풍으로 갑자기 말을 못할 때 구급약으로 사용했고, 생지황계심석장포를 넣어 제조하기도 했다. 또 죽력은 옛 한의서에도 간과 심장위폐 등의 질환에 작용하는 치료제로서 혈압을 다스리고 중풍 등 혈관계 질환에 효과가 있다고 나온다.송명섭 명인은 죽력고를 빚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대나무를 얇게 썰어 항아리에 넣는 것이라며 항아리 안에 빈틈없이 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대나무를 담은 항아리는 땅에 뭍은 단지 위에 거꾸로 얹히게 된다. 그 뒤 항아리 입구를 물 먹인 한지로 감싸고 황토 진흙으로 전체를 덮은 후, 그 주변에 말린 콩대를 두르고 불을 지핀다. 그러면 항아리 아래에 있는 단지에 3리터 정도의 죽력이 고이게 된다. 항아리를 황토 진흙으로 감싸는 이유는 항아리가 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같은 정성을 들여 얻는 죽력에 약재를 넣어 증류해 빚는 술이 바로 죽력고다.진하고 깊은 맛을 품은 죽력고는 현재 국내 유일한 장인이 옛날 방식 그대로 생산해내고 있다. 심지어 과음을 해도 부작용이 없고, 날이 갈수록 몸이 개운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다. 송명섭 명인은 술에 약재를 직접 넣지 않고 맛과 향을 간접적으로 우러나게 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약주로도 알려진 죽력고의 고(膏)는 최고급 약 소주에 붙이는 명칭이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3.11 23:02

익산시교향악단 이경호 지휘자 "지역 오케스트라에 국가 지원 필요"

교향악단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연주자. 관객과 단원 사이에서 소통의 다리를 놓는 지휘자다. (사)익산시교향악단, 익산청소년교향악단과 주니어오케스트라, 서동오페라단의 지휘를 맡고 있는 이경호 씨(60)는 지역에서 보다 많은 연주 단체가 생겨나야 한다고 강조한다.즐길거리의 중앙 집중화를 탈피하고 전공자가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기 위해 도내 곳곳에서 교향악단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음악인이 물론 처음에는 좋아서 하지만 음악을 통해서 시민이나 사회에 문화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전주시립교향악단의 초창기 단원으로 활동하다 정읍, 익산지역에서 교향악단을 만들며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에 힘써온 그는 문화예술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아닌 투자다며 도내에서도 전주, 군산 등은 시립예술단이 있지만 그 외에 지역은 이런 단체가 부족해 문화적 격차가 크다고 말했다.아울러 그는 현재 음악학과 학생이 졸업하면 지역에서 갈 곳이 없다며 결국 음악인구도 줄고, 예술인의 서울 중심적 사고와 함께 지역의 열악한 조건 등이 겹쳐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그는 지난 1994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전주에서 전북실내악단을 창단해 활동하다 1998년 정읍시교향악단을 만들었다. 2002년에 자신이 학창시절을 보낸 익산에서 전북교향악단을 거쳐 지역의 음악인을 모아 2010년 (사)익산시교향악단을 창단했다. 자신이 살던 집의 전세금으로 현재 교향악단의 연습실을 구하기도 했다.애초 그는 오보에 연주자였다. 정읍 출신으로 남성고에 진학하면서 악기를 본격적으로 연주했고 원광대 음대를 졸업했다. 전주시립교향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했지만 악기보다는 지휘에 뜻을 품고 1988년도에 사표를 내고 33살에 유학을 감행했다. 프랑스 낭시 국립음악원에서 어학을 수학한 뒤 파리 에콜 노르말에서 오보에와 오케스트라 지휘를 공부했다.그는 음악인이라면 지휘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며 모든 악기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즐거움을 배가한다고 들려주었다.연주자의 길을 접고 후배 연주자의 길잡이로 전환한 그는 현재 다음달 23일 익산예술의전당 개관 연주를 준비하는데 한창이다. 전체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협연자를 섭외하느라 분주했다.그는 음악회라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관객에게 그 에너지가 남아 생활의 활력소가 돼야 한다며 한정된 공간에 관객을 모아놓고 무조건 감동을 받으라고 강요하면 관객이 오지 않는 만큼 함께 호흡하고 공감을 이뤄 다음에 또 오고 싶은 연주회를 만드는데 중점을 둔다고 강조했다.아울러 그는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 먼저 즐겁고 감동을 받아야 관객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그가 소망하는 교향악단은 활동의 안정성이 보장되는 문화단체다.그는 외국에서는 오케스트라를 기초 예술로 보고, 기초 과학처럼 국가에서 지원한다며 프랑스에는 파리, 마르세유, 리옹 등 각 지역에 교향악단이 있지만 국립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이어 단원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연주활동을 지속해 예술단체가 시민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한편 지역민과 예술인이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는 인식이 자리잡길 바란다고 보탰다.

  • 문화일반
  • 이세명
  • 2015.03.10 23:02

조선 왕 일상 체험 …생각 꿈 키워요

박물관은 역사의 산교육장이다. 교과서에서 배운 역사적 사실들을 다양한 유물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박물관이다. 국립전주박물관(관장 유병하)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박물관 내에 어린이 박물관을 별도로 신설, 운영하고 있다.어린이들이 우리 역사와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박물관을 즐거운 문화 공간으로 느낄 수 있도록 나는 조선의 왕이로소이다의 주제의 체험식 박물관으로 꾸렸다.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왕은 무엇이며, 왕실의 절대 권력자인 왕이 어떻게 생활하였는지 왕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 왕실의 문화를 즐겁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테마를 잡은 것이다. 특히 조선 왕조의 본향인 전주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지역에 대한 자긍심과 정체성을 갖게 하고, 가족과 함께 하는 놀이와 체험을 통해 어린이의 생각과 꿈을 키우기 위한 배경도 깔려 있다.조선 왕실의 의례, 복식, 먹거리, 놀이 공간 등으로 구성된 어린이박물관은 예산 등의 문제로 아직 약 30%는 다 채워지지 않은 상태. 국립전주박물관은 올 10월 26일 개관 25주년 기념일에 맞춰 어린이박물관의 콘텐츠를 모두 완비할 계획이다.현재 진행되는 어린이박물관의 체험전시는 △왕세자의 길 △나는 왕이로소이다 △왕을 이야기하다 △왕실의 멋과 맛을 소주제로 총 4부로 구성돼 있다.어린이들은 왕세자의 일과 중 하나인 활쏘기를 체험하고, 서연에 대해 알아볼 수 있다. 또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전주의 특성을 고려, 직접 어진을 모사하고 실록을 포쇄하는 경험도 할 수 있다. 조선의 왕들과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역시 들을 수 있는 체험코너 34개가 운영되고 있다.이와 함께 영유아 대상 병아리 그림자놀이, 유아 및 초등단체 대상 전주 어린이 박물관 나들이(일월오봉도 또는 왕실 복식 종이인형 옷 만들기 등), 주말 어린이 동반 가족 대상 토요일 박물관 가족탐험대가 주말에 운영되고 있다.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 유물이 어려워 대충 둘러보고 지나쳤던 어린이들에게 체험을 통해 흥미를 줄 수 있어 가족단위의 주말 나들이로 꼭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한편, 국립전주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은 어린이 관람층 확대를 위해 3월부터 9월까지 연간회원 모집에 들어갔다. 대상은 3,4세 유아부터 13세까지의 어린이로 어린이 박물관에 관심 있는 누구나 회원으로 등록할 수 있다.연간회원이 되면 어린이박물관 PASSPORT가 지급되며, 매월 1번씩 제시되는 미션을 수행하는 지속적인 활동을 함께 해 나가게 된다. 박물관측은 이런 활동을 통해 어린이들이 생애 처음 접하는 박물관과 역사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와 사고를 지니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연간회원 등록은 무료이며, 어린이박물관 2층 안내데스크에서 현장접수만 가능하다. 문의 063)220-1015 .

  • 문화일반
  • 이영준
  • 2015.03.06 23:02

[③경칩] 겨울잠 자던 동·식물 기지개

경칩은 양력 3월 6일경으로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다. 오늘이 경칩이므로 올 해는 적정(適正)하게 들어있는 셈이다.이 무렵은 태양의 황경(黃經)이 345로서 겨우내 땅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가 바깥으로 나오고, 땅 속에 웅크리고 있던 벌레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절기다.잠에서 깨어나는 것은 동물들 뿐 만 아니다. 겨울 보리밀시금치우엉등과 같은 식물들도 모두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와 같이 식물들도 겨울잠을 깨는데, 이를 식물기간이라 한다. 월동에 들어갔던 농작물들도 생육을 개시한다. 이렇듯 겨울 내내 잠을 자던 동식물들이 모두 잠에서 깨어나면, 비로소 봄의 소리! 봄의 몸짓으로 알린다.농가월령가 2월령에는 경칩 춘분에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월은 한창 봄이라 경칩 춘분 절기로다. /초엿샛날 좀생이는 풍년 흉년을 안다 하며, /스무날 맑고 흐림으로 풍년 흉년, 짐작하니, /반갑다 봄바람이 변함없이 문을 여니, / 말랐던 풀뿌리는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르도다, / 산비둘기 소리 나니 버드나무 빛이 새로워라. (중략)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농가에서는 겨우내 쌓아두었던 거름(인분과 두엄)을 논밭에 뿌려 땅의 기운을 회복시킨 뒤, 경칩 절내(節內)에 봄보리콩들깨수수삼 등의 씨를 뿌렸다. 이것은 모두 풍성한 가을을 맞기 위한 준비였다.조선시대에는 해마다 농신(農神)인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후(后稷氏)에게 소를 바쳐 제사를 올렸다. 이 제단을 선농단(先農壇)이라 하였으며, 해마다 풍년을 빌기 위하여 경칩 후 첫 해일(亥日)에 임금이 친히 제사를 지냈던 풍속이 있었다.해마다 경칩 무렵은 날씨가 따뜻해져 초목(草木)의 싹이 돋고 동면(冬眠)하던 동물들이 깨어 꿈틀대기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명칭이 정해졌다. 이때 풍속에는 개구리 정충(精蟲)이 몸을 보호한다고 해서 개구리 알을 잡아먹었으며, 지역에 따라서는 도룡뇽 알을 먹기고 했다.고전 예기 월령(고전(古典 禮記 月令)에는 경칩에 식물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고, 고아들을 보살펴 기른다고 되어 있다. 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을 이름이니 주변의 움직이는 생명들을 꼼꼼히 보살필 일이다.경칩 무렵에 오는 음력 행사로 재미있는 것은 좀생이별 보기다. 음력 2월 6일 저녁 초승달과 함께 뜨는데 맑은 날 육안으로 보면 6~7개의 별로 보인다. 초승달과 좀생이별의 간격을 보면서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는데, 달과 가까이 있으면 흉년, 멀리 있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또한 좀생이의 빛깔이 붉으면 가뭄이 들고, 반대로 투명하면 비가 적당히 내려 풍년이 든다고 했다.옛날에는 경칩 무렵에 행해졌던 풍습으로는 여려가지가 있다.경칩 당일에는 벽을 새로 바르거나 담을 쌓는 집들이 많았다. 경칩에 흙일(土役)을 하면 한 해 동안 뜻밖의 사고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다. 또한 경칩 때 벽을 바르면 빈대가 없어진다고 하여 흙벽을 바르기도 했다. 일부 지방에서는 이 날, 단풍나무고로쇠나무어름넝쿨을 베어 나무의 수액을 마시기도 했다. 이것을 먹으면 위가 튼튼해지고 성병에 효과가 있다고 했다.한국세시풍속 한서(漢書)에는 계칩(啓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뒤에 한 무제(漢武帝)의 이름인 계(啓)자를 피휘(避諱)하여 놀랠 경자를 써서 경칩이라 하였다. 옛사람들은 이 무렵에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를 들은 벌레들이 땅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천둥소리와 무관하게 따뜻해진 날로 벌레들이 깨어나고 덩달아 함께 농부도, 머슴도 깨어나 바쁜 한 해 살림살이에 들어가는 때다.요즘은 해마다 2월14일은 밸런타인데이, 3월14일은 화이트데이라 하여 젊은이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법석을 떤다.우리나라에서는 바로 경칩이 연인의 날이었다. 서양 사람들이 초콜릿으로 달콤한 사랑을 표현했다면 우리 조상들은 천년을 산다는 은행나무의 열매를 서로 입에 넣어 주며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서양의 사고가 물질적인데 반하여 동양적 표현방식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정신적이다. 은행나무는 암수가 구별이 있어 서로 마주 보고 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그저 마주 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가고 결실을 맺으니 은행나무는 순결한 사랑의 상징이 된 것이다.예부터 경칩 때에는 각기 지방마다 흥미롭고 다채로운 풍속들이 많이 행해졌다. 본격적인 농사일의 시작으로 매우 바쁜 절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해의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다양한 풍속들이 행해진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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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6 23:02

전북 공공도서관 친일인명사전 비치율 '미미'

전북도내 공공도서관의 친일인명사전 비치율이 매우 저조해 학생들의 역사교육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전북도의회 최은희(비례대표) 의원은 5일 전북도의회 임시회에서 "최근 31절을 맞아 친일행적에 대한 논란이 많이 대두됐지만 정작 도내 공공도서관 대부분이 이들의 행적 등을 찾아볼 수 있는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주장했다.최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도내 180개 공공도서관(작은도서관 포함) 가운데 25곳 만이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해 보급률이 13.9%에 불과했다.각급 학교도서관도 마찬가지로 총 766개교 중 8.7%에 해당하는 67개교 만이 친일인명사전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최 의원은 "아직도 친일행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친일의 족적을 명명백백하게 적시하고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어렵사리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을 널리 보급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일에 공공기관이 앞장서야 한다"며 전북도와 전북도교육청에 개선을 촉구했다.'친일인명사전'은 구한말 이래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지지 또는 찬양하거나 독립을 방해하고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선 4천389명의 친일행적을 기록한 인물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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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5 23:02

[정월대보름] 풍년 기원…모두 흥겹게 어울리는 명절

음력 1월 15일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보름달을 보는 날로 ‘정월 대보름’ 또는 큰 보름, 원소절(元宵節),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상원이란 중원(中元:음력 7월 15일, 백중날)과 하원(下元: 음력 10월 15일)에 대칭이 되는 말로서 모두 교도적인 명칭이다. 이날은 우리 세시풍속에서는 가장 중요한 날로, 설날 버금갈 만큼 비중이 크다.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서 그 해를 설계하고, 일 년의 운세를 점쳐 보는 달이다. 율력서(律曆書)에 의하면 정월은 천·지·인(天·地·人) 삼자가 합일하고 사람을 받들어 일을 이루며, 모든 부족이 하늘의 뜻에 따라 화합하는 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정월은 사람과 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화합하고 한 해 동안 이루어야 할 일을 계획하고 기원하며 점쳐보는 달이다.정월 대보름날, 우리 조상들은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농부들은 달을 보며 풍년이 들기를, 과거를 준비하는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기를, 아들을 얻고자하는 사람은 아들 낳기를 기원했다.달은 실생활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농부들은 초승달이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었다가 다시 기우는 것을 보면서 그 변화에 맞추어 농사일을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달은 우리 조상들에게 신비롭고 귀한 존재다. 때문에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정월 대보름달을 매우 경사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세시풍속’에는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여러 가지 풍습이 있다.보름날 아침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이른 아침부터 더위를 팔았다. 아무나 눈에 띄는 사람을 부른 뒤, 그 사람이 대답을 하면, 냉큼 “내 더위 사 가게”하고 외쳤다. 그러면, 그 해 여름은 더위를 타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보름날 이른 아침, 밤·잣·호두·땅콩 등을 깨무는, ‘부럼 깨물기’를 했다. 이것을 부럼(腫果)이라고 한다. 부럼이란 일 년 내내 부스럼이 나지 않게 된다해 정월 대보름날에 먹는, 껍질이 딱딱한 과일을 이르는 말이다. 정월 보름날 새벽에 술을 조금씩 마시는데, 이 술을 ‘이명주·이롱주·치롱주· 귀밝이술’이라고 한다. 귀밝이술을 마시면 귀앓이 병에 걸리지 않고, 귀가 밝아지며 좋은 소식만 듣는다고 한다.정월 대보름 아침에는 약식·약밥·오곡밥을 지어 먹는데 이 풍속은 우리나라 모든 지방에 지금도 남아, 많이 만들어 먹고 있다. 찹쌀·찰수수·콩·팥·기장 등 5곡과, 밤·대추·은행·잣 등의 과일과, 참기름·꿀·진간장 등을 재료로 해 오곡밥을 만들어 먹는 풍습을 행한다.대보름날 밤에는 달을 보면서 그 해의 농사를 점치곤 했다. 이 때, 달빛이 밝고 환하면 그 해 농사는 풍년, 그렇지 않으면 흉년이 든다고 여겼다.달맞이를 마치고 나면 횃불을 들고 나가, 논밭두렁에 불을 질러 쥐불놀이를 했다. 쥐불놀이는 논과 밭에 사는 쥐, 마른 풀에 붙어 있는 해충, 잡초의 씨앗 등 해로운 것들이 불에 타 없어져서, 농사에 큰 도움을 주었다. 또한 사람들은 쥐불놀이를 통해 마을에 있는 잡귀(雜鬼)들까지 모두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 풍속들을 통해 우리는 정월 대보름이 우리 고유의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풍을 기원하는 축제의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힘든 농사일을 서로 돕듯이 모두가 흥겹게 어울리는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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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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