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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인생 40여년…이 시대 춤꾼 계현순 "자연스러운 몸짓이 최고의 춤, 관객에게 희로애락 전해줘야"

남원시내에서 장수 방향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15분 가량을 가다보면 식련리라는 곳이 나온다. 마을 어귀로 접어들면 보이는 아름드리 큰 나무를 지나치자마자 새로 다듬어진 길가에 그리 크지도 심하게 아름답지도 않은 집, 무무헌(無舞軒)이 있다. 백구 한 마리가 반기는 이곳은 무용가 계현순 씨(58)의 연습실이자 보금자리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부터 서울에서 성장생활한 그가 남원에 터를 잡은 이유는 자연이 주는 여유 때문이다. 그는 남원 국립민속국악원에 있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느긋하고 넉넉해진 모습이었다.무무헌은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 원장에게서 얻은 이름이다. 그곳에는 그가 진정 원하는 춤을 이 공간에서 이루고 싶은 욕망이 배어 있다. 그는 서울에서는 36시간을 살아야 하는데 이곳에서는 18시간만 살아도 매우 느긋하다며 어디에서도 이만한 공간을 못 구한다고 무무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남원과의 인연은 지난 1998년 국립민속국악원에 안무자로 발령받으면서 시작했다. 서울시립무용단에서 이력을 쌓고, 국립국악원 무용단을 거쳐 온 곳이었다. 2009년에 서울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올라갔다가 2011년에 임기를 마치면서 다시 남원으로 내려왔다.날씨에 따라 상추, 고추, 꽃이 흙에서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스스로 그러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다 갖춰진 무대에서 대접 받으면서 움직이는 춤이 아닌 정말 자연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춤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어느 날 촌부의 움직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그는 지게를 진 할아버지의 아침 인사가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춤사위로 다가오는 감동을 받아 김소희 명창의 8시간 완창을 편집해서 사랑의 메아리 라는 무용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고 했다. 할머니 역할을 하다 농부가에 맞춰 그 때 봤던 할아버지의 몸짓을 표현했던 작품이 가장 아름다운 몸짓이었다고 들려주었다.평소 단원들에게 짓밟는 게 아닌 자기 발전을 위한 경쟁을 해라, 물도 채워서 넘쳐 봐야지 비우는 것도 안다라고 하던 그가 현재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후회하는 점은 여유롭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이다.그는 단체에 있을 때 왜 사람들을 그렇게 다그쳤을까, 좀 더 느긋하게 할 것이라며 회상했다. 춤이 종교였고 남편이었다는 그의 춤꾼 인생은 중학교 때부터였다. 유독 춤을 싫어해 반대하시던 아버지 몰래 시작했다. 대입 때까지 어머니만 아는 비밀로 무용을 했다. 이후 그는 서울예술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시립무용단에 입단했다. 무용단 입단으로 좋은 운은 이미 썼으니 현실적으로 큰 단점인, 남보다 덜한 체격 조건과 떨어지는 외모를 보완해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연습이었다며 조용한 무무헌을 웃음소리로 가득 채웠다.아무리 열심히 해도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잘하는 꼴을 보면 환장할 일이었지만 그 끝에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연습뿐이었다고 덧붙였다.이렇다보니 그에게 연습은 곧 생활이었다. 제자들에게 항상 시집살이도, 부부싸움도, 애 키우는 것도, 먹고 자고 싸는 것, 즉 모든 것이 춤이다고 할 만큼 그의 전부였다.퇴직 뒤에도 마음 속에서 계속 춤을 추고 있다는 그의 마지막 소원은 소리와 함께 하는 무용이다. 자신이 음치, 박치라고 밝히면서도 다듬어 지지 않은 소리가 모여 객석과 함께 하는 소리로 나만의 무대를 이어가고 싶다며 머리를 빡빡 밀고 승무도 하고 싶다고 했다.그는 춤을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숙원 사업이다.춤이란 이런 거 같은데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요라고 객석에 질문을 던집니다. 누구든지 단 한 사람에게라도 희로애락의 감정을 전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춤을 추면서 살았던 인생의 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무대에 올라 살풀이를 추면서 떨어진 수건을 줍기 위해 엎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최후의 순간을 맞는 꿈을 꾼다는 말에서 춤꾼으로서 그의 열정이 얼마나 큰 지를 읽을 수 있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4.07.09 23:02

['정읍학'서 정읍문화 길을 찾다] '지역학 열풍' 불어라

지난달 초 〈정읍학〉 창간호가 나왔다. 정읍의 향토사 연구모임이었던 정읍학 연구회의 연구 성과를 모은 결과물이었다. 지방자체제도가 시작된 이후 지역민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던 지역 자긍심의 회복을 위해 민간에서 지역사 연구모임을 만들고 지역학 총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정읍시는 지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본래의 태인 현과 작은 고을 정읍, 그리고 전체의 몸통과 손발을 현재의 부안과 고창으로 다 떼어준, 머리만 남은 고부 지역이 병합됐다. 이 때문인지 어느 지역보다 보수와 진보, 기득특권층과 서민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배타적 성향들이 두드러졌다. 때문에 민선시대의 개막과 함께 지역 간의 화합과 상생을 위한, 보다 큰 틀에서의 행정적 노력이 요구됐다.하지만 그동안 민선 시정에서는 당면한 생계형 지원에만 행정력이 집중됐다. 농업 인구가 전체 인구의 60%이상을 차지하는 정읍에서 민선 단체장의 주요 캐치프레이즈는 민선1~2기 정읍이 살 수 있는 길은 매실이다, 민선 3기는 정읍이 살 길은 녹차다, 민선 4기 정읍이 살길은 생활체육이다등으로 바뀌어 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20여년 동안 지역민을 위한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연구나 행정적 지원은 늘 일부 특권층 사이에서 이어져 왔다. 일부는 큰 틀에서의 화합과 상생을 위해 꾸며지는 지역학 연구회의 추진에도 제동을 걸며 건방진 도전이라거나 지역학에 대한 폄훼도 이뤄졌다.민선시대 지역학에 대한 연구는 각 연구자 사이에서도 의견들이 엇갈려 하나의 주제로 어우러지거나 특별한 성과나 사료적 총서가 만들어 지지 못한 채 분열되는 형태로 흘러왔다. 얼 학회, 동학역사문화연구소, 정읍민족문제연구소, (사)둘레 연구소 등이 있었지만 정작 지역의 미래인 청소년에게 향토사를 기반으로 한 강좌보다 입시위주의 한국사 강좌가 이뤄지며 지역학에 대한 접근이 한계에 다다랐다. 교과서에 수록된 한국사와는 달리 지역학에 대한 연구는 특별한 관심과 계기가 없고서는 일반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민선 3기 당시 유성엽 시장의 주도로 외부에서 바라보는 정읍의 시각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한 설문을 진행했다. 정읍으로 진입하는 나들목 입구의 설문 결과 정읍은 교회가 큰 곳, 특색 없는 곳, 정읍역 인근에서는 택시 기사들의 행포가 매우 심한 곳, 특색 없는 곳이 각각 1~2위를 차지했다.이런 시각을 반영하듯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정읍문화원의 청소년향토사연구동아리의 사전 조사의 결과도 정읍은 특색 없는 곳,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할 곳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향토사연구동아리를 통해 월~금요일의 인문학 강좌와 토요일 현장 답사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생각 없이 천대했던 내 고향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곳인지 몰랐다며 친구들에게 배운 향토사를 전하겠다고 말했다.현재 정읍지역 내 8개 고교에는 정읍문화원이 연례행사로 추진하는 이 동아리의 연구과정을 경험한 학생 200여명이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전하는 향토사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다행스러운 일은 지난 민선 5기 정읍시정에서는 기존 사업에 대한 실태 점검 등을 거쳐 부서별 사업 13개 분야, 40개 사업 약 160억 원에 대한 타당성 분석을 거쳐 경제와 정신사적 측면들이 함께 충족될 수 있는 인문도시로의 출발에 나섰다는 점이다.주목할 만한 내용은 각각의 사업을 해당 부서에서 방만하게 지속 추진할 경우 성공적인 사업으로의 발전이나 성과가 나타날 수 없다고 판단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고 지역공동체지원관으로 기구를 확대했다. 이를 통해 기존 민선시대 사업의 지속적인 추진과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양한 지역학의 연구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행정적 지원을 약속했다.지방자치시대 민관의 협력으로 지역민이 지역학을 통해 지역발전이라는 대의 앞에 뜻을 모은 것이다. 지역학이 세계화 시대의 출발점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점은 고무적인 변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먼저 알아야 이를 국가,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는 인식의 결과가 정읍의 자긍심을 얼마나 키울지 귀추가 주목된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4.07.02 23:02

"전주세계소리축제 성공 기원 소리주 담가요"

酒神님! 올 전주세계소리축제도 무탈하게 잘 치르도록 해주십시오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조직위원장 김한)가 축제 100일을 앞두고 1일 오후 4시 전주한옥마을 소리문화관에서 소리酒 담그기 행사를 열었다. 소리酒 담그기는 올 오는 10월 8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소리축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행사다. 이날 행사에는 김한 조직위원장과 박재천 집행위원장 등 축제 관계자와 김승환 교육감김양원 전북도문화관광국장, 전통공연예술재단 이문태 이사장, 미국 스태포트대 피츠 교수, 프랑스 르몽드 출신 저널리스트 등 국내외 인사, 문화예술계 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흥겨운 풍물놀이로 문을 연 소리酒 담그기 행사는 고천문을 낭독하며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신제를 올린 뒤 전통적인 방식과 절차에 따라 소리주를 빚고 술항아리를 안쳤다. 소리주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가람 이병기 시인의 가양주인 호산춘이며, 100일 동안 숙성된 소리주는 소리축제 개막 리셉션에 사용된다.김한 위원장은 축제 개막을 100일 앞두고 귀한 분들께 정성껏 담아 잘 빚어 내어놓는 술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깊고 진한 소리축제의 향기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4.07.02 23:02

전주세계소리축제, 중국 문화 만난다

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김한)와 우석대학교 공자아카데미(원장 전홍철, 이하 공자아카데미)가 지난 24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공자아카데미는 우석대학교와 중국의 산동사범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비영리 기관으로, 전북지역의 중국 문화 보급과 중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소리축제와 손을 잡고 중국 공연 단체를 초청, 소리축제 무대를 통해 수준 높은 중국 문화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올해는 소리축제와 공자아카데미의 첫 협력 초청으로 중국 사천성 지역 충칭사범대학의 중국 공연예술단이 소리축제를 찾아 수준 높은 중국 문화의 예술적 기량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심층적이고 체계적인 준비과정을 거쳐 실크로드 희곡과 판소리라는 주제로 한중학술회의를 진행할 예정이다.전북일보빌딩 2층 화하관에서 진행된 협약식에는 김승택 전주세계소리축제원회 사무국장, 한지영 전주세계소리축제 프로그램 팀장, 전홍철 공자아카데미 원장, 장홍잉 공자아카데미 중국원장, 중국 온주대학 동아민속문화연구소 왕샤오둔(王小盾) 소장, 왕하오(王皓) 교수 등이 참석했다. 소리축제 김승택 사무국장은 앞으로 공자아카데미와의 협력을 통해 더욱 풍성한 중국 공연 문화를 접하고 전할 수 있게 돼 기대가 크다며 여태껏 시도해보지 않은 참신한 공연들을 기획하고 발전시킬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공자아카데미 전홍철 원장은 국제 민속음악 교류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소리축제에 다양한 중국 전통공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판소리형 실크로드 전통공연을 비교 연구하는 국제학술회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소리축제의 발전과 판소리의 세계화를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4.06.27 23:02

남원 문화예술 명소로 거듭나는 '예가람길' "지속적 발전 위해 시민 참여 유도해야"

전통이 살아 숨쉬는 남원의 중심부에 문화예술의 거리가 조성되고 있다. 이른바 예술이 강물처럼 넘친다는 염원을 담아 거리 이름도 전국 공모를 통해 예가람길로 지었다. 이 사업은 지난 2012년 지역문화와 예술자원을 활용해 과거 남원의 본전통을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구도심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시작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부터 오는 2016년까지 원도심 문화예술상가 집적화를 목표로 한다. 문화적 다양성과 함께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시민문화예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다.예가람길을 조성하기 위해 그동안 남원시는 전북도의 예산지원과 맞물려 지난해부터 남원예가람길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다양한 그룹의 문화예술인이 참여해 민간예술인과 지역의 문화기획자들이 사무국도 설치했다. 남원생활문화예술동호회와 함께 거리조성에 대한 기획과 사업에 대한 집중검토를 마쳤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예가람미술관 조성, 방문자센터와 시민카페테리아 조성, 예술간판 지원, 주말거리축제 운영 및 미술조형물 설치, 시민문화예술대학 시행, 예술인 점포 입점시 점포 리모델링비 지원 사업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남원예가람길 상인협의회도 구성됐다. 문화예술상인 프로젝트를 통해 아트비즈니스모델을 확산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기대도 내비치고 있다. 예가람길은 지난 1980~1990년대 중소형 규모의 의류 점포와 공방, 식당 등이 밀접했던 곳이다. 즐길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했던 옛 남원군청 사거리다. 지금의 남원시의회가 있는 동서길 400m와 과거 남원 본전통으로 남원성 남문 앞 남북길 500m 구간에 도시재생형 T자형구역을 설정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본격적인 거리 바닥공사와 먹거리를 통한 골목투어가 연계되도록 기초 정비작업이 진행 중이다.예가람길 운영위원장인 윤영근 남원예총회장은 남원은 천년고도의 문화예술이 넘쳐나는 고장으로 과거 사통팔달의 접근성과 집중도 높은 지역문화가 있었다며 호남의 대표적인 문화예술도시답게 전국적인 문화예술교류도 많았고 수준 높은 문화예술인들의 쉼터, 삶터, 일터로서 매력있는 고장이었다고 과거의 영광에 대한 자부심을 나타냈다. 현재 퇴색한 예향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비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윤 회장은 지금은 전국적으로 손꼽을 만큼 많이 도심이 낙후돼 도시문화예술을 재생하고 문화예술인이 활동할 기반이 요구되는 실정이다면서 다행히 지금이라도 예가람길이 만들어진 만큼 앞으로도 지속적인 프로젝트 사업으로 행정의 지원과 시민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남원 문화예술의 거리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문제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문화예술인 점포가 늘어남에 따라 여러 지원사업의 한계도 나타나고 있다. 전북도의 지원이 계속 사업으로 이어질지도 지역사회의 관심사항이다. 게다가 문화예술의 거리를 활용한 관광자원화에 대한 소프트웨어도 관건이다. 테마여행 프로그램이 미비해 거리가 활력을 찾기에는 역동성과 시공간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함께 받고 있다. 여기에 시민사회를 향한 홍보와 관심 역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는 일이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남원 문화예술의 거리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민문화예술대학을 활용해 거리상인과 예가람길 운영위원, 남원시가 머리를 맞대는 민관협력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특히 예가람길 서포터즈 개발과 전국적인 문화예술인 교류사업, 상설적인 거리축제를 여는 한편 주말을 이용한 아트마켓 개발, 문화예술박람회 홍보 등이 제시되고 있다. 다양한 문화예술의 사업모델이 발굴돼 남원 문화예술의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는 바람을 해본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4.06.25 23:02

연극인 이도현·이병옥 부부 "인생은 연극, 그리고 가족…무대에 오래오래 설 겁니다"

전북일보가 다시 문화전문시민기자단을 꾸려 전북문화예술의 가려운 곳을 긁어드립니다. 문화예술 기획자방송작가문화예술 현장 활동가들로 구성된 문화시민기자단은 도내 시군 곳곳에 문화예술의 숨은 보배를 찾아 지역문화의 희망을 틔우는 작업으로 진행됩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어려운 여건에서도 지역문화를 살찌우는 사람과 단체, 공간들의 이야기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유쾌한 부부의 연극 이야기연극은 우리 인생의 작은 축소판이라 했던가! 배우는 노래하며 춤추고 조명은 배우의 동선을 따라 움직인다. 무대에는 웃음이 퍼지고, 눈물이 흐르고, 사랑을 나눈다. 10대 때 무대를 동경했던 그 시절의 울렁임이 잠시 추억에 잠기게 한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전라북도 연극. 전국 연극제에서 대통령상을 5번씩 수상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며 전성기를 누렸던 그 시절은 이제는 빛바랜 옛 영광이 되어 버렸다. 지역에서 예술은 늘 배고프고 힘들다. 연극은 더 춥고 배고프다. 그러나 이런 고난의 길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극인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전라북도 연극의 미래를 연극인 부부에게서 발견한다. 연극 배우 이도현(47), 이병옥(41) 부부. 연극계 선후배로 만나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연극으로 밥 먹고 사는 이들 부부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연극 가족으로 만나 진짜 가족이 되다어느 나른한 오후. 숏 커트 머리에 시원한 웃음소리, 화장기 없는 모습. 털털하고 건강한 미소년을 연상케 하는 씩씩한 아내 이도현씨(47)를 만났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고 차 한잔을 나눌 무렵, 아이를 안은 남편이 등장. 9개월된 아들 오승이를 가슴에 안고, 기저귀 가방을 들고 등장한 남편 이병옥씨(41).군복 스타일 바지에 티셔츠. 너무나 편해 보이는 스타일에서 그의 성격을 엿본다. 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하면서도 아들의 간식을 챙기고 안고, 달래고, 육아를 책임지는 남편의 자연스런 모습에 살짝 감동을 느끼며, 연극 무대에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두 사람의 달달한 러브 스토리.연극계 선배인 아내 도현씨는 1987년 연극을 시작했다. 극단 토지에서 활동을 하며, 그간길 위에 서다 눈 먼 아버지에게 길을 묻다 경로당 폰팅 사건 등의 작품 활동을 해 왔고, 소극장 아르케 대표이자, 극단 작은 소리와 동작의 대표이다. 남편 이병옥씨는 현재 전주시립극단의 단원으로 2003년부터 연극을 했다. 창작극회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 참여했다가 전주시립극단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실력파 배우다. 남자 충동 하얀 앵두 햄릿 등의 대표작이 있다.두 사람은 2006년 연극 가족에 어머니와 아들로 출연하며 처음 만났다. 그리고 만나지 6개월만에 결혼에 골인하는 초스피드 연애를 한다. 어찌된 일인지 두 사람은 첫인상을 그리 좋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다. 무서운 선배, 버릇없는 후배. 공연 후 쫑파티에서 지금의 아내의 모습에서 후광이 비쳐 반했다는 남편의 고백. 물고기 한 마리 키워 보실래요? 남편은 물고기자리, 아내는 물병자리. 프러포즈 또한 배우답게 이색적으로 전주시립극단의 공연 무대에서 생중계로 진행돼 배우와 관객들 앞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결혼 7년차 부부. 남편은 살림꾼. 아내는 자유로운 영혼.결혼 전에 모악산에 갔는데, 발 마시지를 해 주더라구요. 자상한 남자에요. 결혼 후에도 달라진 게 없어요. 살림도 육아도 남편이 다 알아서 하는 자상한 남편이에요. 저는 결혼 전과 후가 달라진 게 없어요. 여전히 나는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어요. 결혼 후에 저는 주부 우울증, 주부 습진에 시달리고 있어요. 적금 들어야지, 살림해야지, 애 키워야지. 흰머리가 늘었다고 주변에서 얘기해요. 아내는 저랑 결혼 잘 한 거지요.그래도 우리 행복하죠 오승이 아빠?그럼요 선배님 행복하지요. 살림에 취미 있고 잘하는 제가 당연히 해야죠. 제가 외조를 잘 하니까, 아내가 밖에서 기죽지 않고 일을 하죠. 그래서 우리 가족은 모두 만족해요.우리 남편 최고.함박 웃음이 떠나지 않는 부부. 이들 부부에게 결혼 6년만에 새 가족이 생겼다. 작년 가을 아들 오승이를 낳고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무엇보다 4대 독자인 남편이기에 조금이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다는 아내. △가난한 연극인으로 살아가는 법 두 사람은 욕심이 없다. 적게 먹고 적게 쓰자가 이들 부부의 생활 철학. 연극을 하면서 저절로 얻은 경제 관념. 연극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삶을 꾸려가야 하지만 현재의 생활에 만족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립극단에서 고정 월급을 받는 남편의 수입으로 살림을 꾸려 갈 수 있다. 적지만 남편은 아버님 칠순 적금, 아이 돌 잔치 적금, 여름 휴가 적금 등 꽤 규모 있게 살림을 잘 한다. 그래도 우리는 상황이 나은 편이에요. 지역에 젊은 배우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데, 재능 있는 배우들은 다 서울로 가고 고향을 지키는 배우들은 힘이 드는 이유. 다 먹고 살기 힘들어 지기 때문이겠죠. 그러면서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을 언급한다. 연극인들이 공연 수입만으로 생계를 꾸려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연극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부업을 해야 하는 투잡을 뛰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극뿐만 아니라 예술인들에 대한 복지 정책에 기대를 걸어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보이지는 않네요.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다면 연극인들이 무대를 떠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을 텐데요. 현재 전북에는 19개의 극단이 있다. 전국 연극제에서 무려 다섯 번이나 대통령상을 받았던 전북 연극. 전성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답답하기만 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역 극단들이 창작극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지만, 완성도를 높인 화제작으로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역적으로 전주 위주로 편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에요. 군산, 익산, 남원 등 지역에 배우들이 고루 활동을 해야 연극이 발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지원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특히 지역민들이 연극을 사랑하고 봐주셔야 하는데, 지역 연극을 외면하는 게 무엇보다 슬프죠.특히 지역에 작가 구하기가 힘듭니다. 창작물은 검증이 쉽지 않고, 검증된 작품은 사와야 하는데 비싸고, 초연 작품이 지속적으로 나와 줘야 전북 연극이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지역 작가들이 없습니다. 지역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키워주고 밀어줘야 지역색을 가진 지역을 대표하는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는 거 아니겠어요?△한 곳을 바라보는 부부연극 무대가 인생의 전부인 두 사람이 만나서, 연극 같은 결혼을 하고, 연극처럼 자유롭게 살고 있다. 남편 이병옥씨의 꿈은 소박하다. 연극 무대에서 은퇴한 후에는 시골에 가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주민들에게 풍물, 염색, 연극을 가르치며, 아들 오승이와 살고 있으면 바쁜 아내가 가끔씩 들러 주는 거란다.남편의 말처럼 아내는 바쁘다.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아내는 50살에 연극학교를 세우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30세 이전에 극단을 창단하고 40대에 소극장을 마련한 아내이니, 연극학교도 분명히 세울 거라는 남편의 믿음이 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열심히 외조하고 싶다. 이도현, 이병옥 부부. 이들 부부는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 서는 꿈을 꾼다. 그래서 오늘도 달팽이처럼 한걸음 한걸음 인생을 더디게 둘러보고 사뿐 사뿐 걸음을 내디디며 연극 무대에서 광대로 살아가고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14.06.18 23:02

전통예술 기획자 3인 "공연은 관객이 만들어"

내공이 센 전통예술 기획자 3인이 뭉쳤다. 국립무형유산원의 토요상설무대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진옥섭(한국문화의집 예술감독)윤중강(공연기획 및 국악평론가)양정환(음반기획자) 씨가 그 주인공.무형문화재라는 한국 최고의 전통예인들을 자산삼아 연출해낼 3인방의작품에 국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1일부터 연말까지 매주 토요일 국립무형문화유산에서 진행될 상설무대를 앞두고 17일 유산원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연출 혹은 평론 등으로 전통예술계에서 알아주는 이들 3인이 한 무대에서 간담회를 가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들 스스로도 감격(?)해 했다.첫 공연 연출을 맡은 진옥섭 씨는 공연은 관객이 만든다는 말로 관객의 중요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극장은 관객이 꽉찬 극장이란다. 시나위 시대에서 산조시대로 중심이 옮겨진 이유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입니다. 단체활동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이 비극인 것이죠.그는 단체 작업에서 개인이 부각되지 못하고, 관객들도 외면하는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마지막 토종광대라고 할 강준섭 씨의 발걸음 하나에 채플린도 모자를 벗고 절할 것이지만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예도 들었다.巫舞(무무)이름을 걸고 동해안별신굿과 남해안별신굿, 진도씻김굿으로 개막 공연을 기획한 그는 3개의 중요무형문화재가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가슴을 흔들 것이란다. 굿예술의 민낯을 보면 예술의 근육질을 발견하게 될 것이란 자신감도 드러냈다.윤중강 씨는 전통은 고정된 실체가 아닌, 변화되는 유동체로 규정했다. 무속처럼 오래된 것도 있지만, 무형문화재 대부분이 일제식민지 시대 이후 만들어졌다며, 21세기 공연의 새로운 텍스트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통예술의 전승과 발전이라고 말할 때 20세기 키워드가 전승이라면, 21세기는 발전이며, 그 발전은 창작성과 대중성으로 정리했다. 개막 2번째 특별공연 여류명창 3인전을 기획한 그는 소리와 소리, 소리와 춤이 만나고 스토리텔링이 있는 판으로 이끌겠다고 밝혔다.뿌리를 찾아서연출을 맡은 양정환 씨는 국악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운 1세대 음악을 감상하고, 스승의 뒤를 이은 무형문화재가 꽃을 피우기까지 과정을 소개하는 자리로 기획했다. 명인명창의 연주와 함께 만고풍상을 겪은 이들의 입문과정과 수학내력,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싶단다.직계 선생의 음악을 듣고 바로 연주를 한다는 것은 모험일 수 있습니다. 걸출한 제자야 문제가 없지만, 좀 부족하거나 뼈대가 바뀌었다면 연주자에게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몇 시간의 완창을 지켜본 후 아따! 넓적다리 부어서 못 일어나겄다는 옛 전주 귀명창들의 추임새가 공연자들에게 가장 큰 칭찬이었으며, 유산원의 이번 기획공연에 그런 귀명창이 필요하다는 게 3인의 연출가들의 바람이다.

  • 문화일반
  • 김원용
  • 2014.06.18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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