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왕도의 중심 익산] ①프롤로그
올해 익산·부여·공주역사유적지구를 통합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칭)'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 대상에 선정되면서, 마한에 뿌리를 둔 백제사의 단층을 재발견하게 됐다. 백제 문화권으로 공주·부여만 떠올리는 역사적 과오(過誤)를 바로잡기 위해 익산역사유적지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본보는 '백제 왕도의 중심, 익산'을 통해 백제 왕도의 저력을 찾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등재 가능성을 검토한다.▲ 백제 왕도 익산의 정체성익산 미륵사지 석탑 기단부에서 발굴된 '금제사리봉안기'로 인해 1400년을 이어온 '서동왕자(무왕)와 선화공주의 로맨스'는 금이 갔다. 여기에는 백제 무왕(600~641)의 왕후(사택씨의 딸)가 재물을 바쳐 절(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했다는 내용이 기록됐다. 학계는 미륵사를 세운 백제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허구의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에 논란을 거듭했다. 반면 이 기록은 백제 무왕의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단서로 주목받았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나온 사리봉안기의 문양이 왕궁리 5층 석탑의 사리함 문양과 일치, 익산을 백제사의 수도로 봐야 한다는 데 무게가 실린 것. 무왕이 익산에 새로운 백제 도읍으로 건설했다는 기록이 담긴 중국 육조시대의 문헌'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로 인한 '익산 천도설'을 재점화시킨 것이다.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최완규 위원장은 백제 왕도 익산의 정체성은 마한의 고도(古都), 백제 왕도(王都)에서 찾을 수 있다고 확언한다. 익산은 마한에 뿌리를 둔 백제문화로 부여·공주와 차별화된다는 것이다. 최완규 위원장은 "이를 통해 무왕 때 마한 고도인 익산으로 천도하면서 이주한 부여계의 백제 왕조와 마한 토착세력의 통합이 이뤄졌다"고 주장해왔다. 여기에 익산 천도는 법왕 때부터 계획됐으며, 마한 세력을 아울러 왕권 강화를 꾀했던 무왕에 의해 실행됐다고 강조했다. 백제 왕실이 불교에 의탁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려고 했다는 것이다.▲ 세계유산 등재 요건 가능성본래 익산역사유적지구는 부여·공주역사유적지구와 별개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선 등재를 추진해왔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백제 고도와 관련한 세 지역을 통합할 것을 제안, 가칭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세계유산 우선 등재 목록에 올랐다.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 진정성, 완전성, 비교유산 등을 갖췄기 때문이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성은 전인류가 공감하면서도 차별화된 문화유산을 뜻한다. 특히 익산역사유적지구는 궁성, 국가사찰, 왕릉, 산성 등 고대 도성과 관련된 유산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어 당시 도성의 모습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 가치를 갖췄다. 우리나라가 왕궁리 유적에서 나온 화장실·정원 유구, 미륵사지 석탑의 건축 양식, 왕궁리 유적과 입점리 고분에서 나온 중국제 사기 등을 통해 중국, 일본과 교류해왔다는 걸 보여준다. 미륵신앙 세계관이 담긴 미륵사의 가람 모형, 동양 최고·최대 목탑의 양식이 표현된 미륵사지 석탑, 왕궁리 5층 석탑과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7세기 전반 백제인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보여준다.상대적으로 보존이 어려운 목조 건물이 상당수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어 진정성과 완전성에도 합격점을 받았다. 또한 익산역사유적지구는 안으로는 왕궁·미륵사지 권역과 입점리 권역으로, 밖으로는 경주역사유적지구, 중국 뤄양·일본 교토와도 비교 가능하다는 평가다.▲ 백제역사유적지구, 해결 과제'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관건은 지자체간 조율, 재원 확보, 통합사무국 마련, 추진 인력 확보, 지역 주민들의 관심 등이다. 특히 전북도와 충남도, 익산시와 공주시, 부여군이 각기 역사유적지구 관련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주·부여역사유적지구가 '백제문화권 = 공주·부여'라는 인식을 선점했다는 이유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주도권을 행사하려 하는 데다, 익산역사유적지구 역시 무왕의 '익산 천도설'이 학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려면 일정 정도 시간이 요구된다. 지난 7월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통합사무국과 준비위원회 마련 과정에서 이같은 갈등의 단면이 연출됐다. 통합사무국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문화재 주변 정비, 주민 홍보, 등재 대상 유적 정리, 등재 신청서 작성 등을 총괄하는 곳으로 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누가 사업의 주도권을 갖느냐가 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사무국 위치는 지자체간 이견으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산이 백제 왕도였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려면 세계유산의 가치 규명과 보존관리계획 수립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학계는 학술 조사, 학술대회 개최, 유적 정비사업 등을 통해 익산 왕도의 가치를 규명해야 하며, 지역 주민·지자체 등은 교육을 통해 문화유산 보존·관리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야 한다. 지난달 익산역사유적지구를 돌아본 이상해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회장이 남긴 말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가 갈수록 까다로워진다. 등재되더라도 보존·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히 해당 유산이 있는 지역 주민들의 열기와 협조가 중요하다. 익산역사유적지구는 주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 곳보다 적극적이다. 나는 여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