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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입말' 가득, 강 따라 글 따라 '시는 마침내 자사전이 된다'

온유한 시선과 유쾌한 발상이 돋보이는 순박한 시편들로 개성적인 시 세계를 탐독할 수 있는 시집 <시는 마침내 자서전이 된다>(시와 에세이)가 출간됐다.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에서 펴낸 여섯 번째 시집에는 삶의 쓴맛과 단맛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6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공후남, 김옥희, 김용택, 김인상, 박양식, 박희숙, 유갑규, 이은수 등 시모임 회원들이 삶의 체험에서 배운 지혜를 구수한 입말과 활달한 시적 상상력으로 버무렸다. “풀하고 웬수졌냐/마당에 풀은 그렇게 뽑는 것이 아니여//애끼고 애꼈다가 더 이상/속을 달랠 길 없을 때/기도하는 마음으로 뽑는 것이여”( 공후남‘지독한 것’ 전문) “누가 그랬다//양문형 냉장고를 열 때/늘 들여다보는 공간과/가끔 들여다보는 공간 속에서/생각하게 된다고//어쩌다 나오는 공간에 숨겨진 것들은/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고//(…중략…)//용기를 내어 꺼내 본 마음/가벼워진 냉장고 속처럼/자주 여닫으면 좋겠다”( 공후남 ‘꺼내지 못한 마음’ 부분)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은 2017년 시작됐다. 회원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시를 쓰고 일상을 공유하고 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이야기는 한 편의 시로 완성됐다. 2018년 출간한 첫 시집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를 시작으로 매년 1권씩 시집을 펴내고 있다. 회원들은 특별한 존재보다는 사소한 것들에 애정을 쏟고 진솔한 언어로 시를 써내려간다. 특히 시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려는 마음가짐도 엿볼 수 있어 글이 더욱 매력적이다. 강 따라 글 따라 시모임 회원들은 머리말에서“시는 마침내 자서전이 된다”며 “너는 솔직할 수 있는가, 솔직해도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꽃에 대해 사랑과 미움에 대해 써도 결국 그것은 반성문 같은 것”이라고 시집에 대해 소개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4.02 15:04

진솔하고 담박한 표현 가득⋯이경순 작가, 산문집 '봄 돌아오듯' 출간

이경순 작가가 산문집 <봄 돌아오듯>(신아출판사)를 펴내고 봄을 알린다. 총 6부로 구성돼 60여 편의 글이 실린 이번 책 속 작품은 이 작가가 평소 써온 일기 글이다. 실제 책에는 꾸밈없는 성격으로 김제 원불교 원평 교당과 서울 원불교 신길 교당에 다니며 신자들의 본보기가 되기도 했던 그가 틈틈이 일기 형식의 산문으로 메모한 글들이 수록됐다. 특히 이번 책은 3년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작가의 언니, 이금영 수필가의 손길로 탄생됐다고 알려져, 지역 문인들의 눈길을 끈다. “아이를 재워 놓고 어머님과 같이 들에 나가 일하다가 오면 아이가 잠 깨어 혼자 울다가 나를 보고 슬피 울면 같이 운 적이 여러번 있어요./(중략) 달빛 감나무 아래 기죽어 서 있던 그 젊은 여자는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말없이 서 있다. 그 가슴 아프게 혼자 울던 기억을 왜 못 놓아 버리고 이따금 되살아나는가. 왜, 놓지 못하는가.”(‘달빛 감나무 아래’ 중에서) “생채 하는 날은 큰 양푼에 밥 서너 그릇 붓고 밥 비벼 참기름 쳐서 먹으면 꿀맛이었다. 우리는 곧잘 병아리 싸움도 잘하고 토라지고 아버지한테 혼나고 그랬다. 밀 농사해서 밀가루 장만해 어머니가 가마솥 밥 넘으면 호박잎 깔고 반죽 부어 밥 제지면 그 호박잎 냄새난 듯한 그 개떡이 그리 맛있어 그 맛을, 언제 볼거나”(‘가을 무 생채’ 중에서) 이처럼 작가의 산문집에는 진솔하고 담박한 표현으로 가득해 시골 아낙네들의 보편적인 삶이 투영돼, 더욱 구수한 정감을 전한다. 김영 석정문학회장은 이번 책의 감상평을 통해 “산문집 제목처럼 이경순 작가에게도 생의 ‘봄’이 다시 돌아오길 빈다. 활짝 웃는 얼굴은 활짝핀 꽃보다 더 좋은 경전”이라며 “이경순 작가가 비록 지금은 달빛 젖은 감나무 아래에 있지만, 곧 우리에게 봄이오는 소리를 들려줄 것이다. 필자도 이 작가의 활짝 웃는 얼굴이, 작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던, 가족과 친구, 교우에게 기쁨을 주는 ‘경전’이 되는 봄이 꼭 오리라 믿는다”고 전했다. 김제 출생인 작가는 원불교 원평 교당에서 입교해 원불교 서울 신길교당에서 활동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26 18:35

진안 출신 전근표 시인, 여섯 번째 시집 '아기새 한 마리' 발간

전근표 시인이 여섯 번째 시집 <아기 새 한 마리>(청어)를 발간했다. 시는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점철된 삶의 역사와 현재의 질곡 된 사회 현상을, 사공을 초월한 자연에 접목해 바람직한 인간성 복원을 위해 미래를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게 하는 한편의 언어적 파노라마’라고 주장하는 시인은 이번 시집 속 그의 일생을 담았다. 시집은 ‘1부 나는 누구인가’와 ‘2부 부모님 은혜’, ‘3부 자연 속으로’, ‘4부 우리 모두 함께’, ‘5부 마음의 고향’, ‘6부 죄와 벌’, ‘7부 꿈은 이루어진다’ 등 총 7부로 구성돼 70편의 신작이 품고 있다. “우르르~쾅, 우르르~쾅쾅…/ 천둥 번개가 진동하니 하늘 열리고/ 땅이 솟구친다/ 안개 자욱한 인기척 없는 새벽에/ 물 폭탄 맞고도 늠름한/ 하늘 향해 우뚝 솟은 마이산/ 암수 한 쌍 시선의 몸이 되어/ 하늘에 열린 파란 창에 흰 구름 내려/ 허리 감싸니 새 몸 단장한 모습이라”(시 ‘내 고향 마이산’ 중 발췌) “부모님께서 세상 떠나신 지 어언 20여 년/ 이 몸 살아 칠순이 지나서야/ 자식 된 도리 알았습니다/ 살아생전 날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 은혜/ 어이 잊겠습니까만/ 자식들 부모님께 생전 효도한다지만/ 그것은 모두가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용서하십시오”(시 ‘부모님 전 상서’ 중 발췌) 이처럼 잠시 들여다본 그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는 등 이번 시집에는 그의 고향인 진안에 대한 이야기부터 부모님을 향한 사랑, 자연에 대한 예찬, 시끄러운 세상사, 시인의 소망 등 지금껏 살아온 작가의 삶의 여정을 함축해 선보인다. 전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이름있는 선남선녀 선배 시인들의 힐책이 나의 머릿속을 뒤흔든다 해도 이를 채찍질 삼아 한 조각 구름처럼, 한 떨기 바람처럼 그냥 지나쳐 버릴 뿐”이라며 “언제나 청량제 같은 향기로움으로 남은 삶은 독자 여러분의 따뜻한 가슴에 다가가는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 해 보면서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르는 이번 여섯 번째 시집이 발간되기까지 육성 지도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밝혔다. 진안 출신인 시인은 육군 제3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중령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하림 상무이사를 지냈다. 2008년 <한국시> 로 등단, 한국시문학대상 등을 수상했다. 2015년 한국문인협회 진안지부 제6대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 <아버님! 하늘나라 그곳에도 꽃은 피었나요> <사랑합니다! 아버지> <꿈의 노래>, <하늘을 머리에 이고>, <별빛 소나타> 등을 발간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26 18:34

삶의 풍경 속에 머무르다…김석천 신작 시집 '궁금증'

선한 눈길과 맑은 언어로 독자들과 호흡하는 김석천 시인의 신작 시집 <궁금증>(신아출판사)이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의 풍경 속에서 기꺼이 머물며 작고 미약한 존재들의 생활과 감정을 촘촘히 기록해나간다. 담백한 시선은 일상의 소소한 장면을 은유적으로 풀어내어 일상 너머로 향하는 길을 열어젖히고, 범상한 매일에서 다른 차원의 정경을 발견해낸다. “잎이 피기도 전에/꽃이 먼저 만발했다//겨우내/뿌리들이 온 힘을 다해/영양과 수분을 밀어 올리고/잎들이 봄을 양보하지 않았다면/저토록 아름다운 벚꽃을/연출해 낼 수 있을까//꽃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뿌리와 잎이다”(‘벚꽃’ 전문) 김석천의 시에는 고독과 슬픔이 드리워진 순간들이 담겨있다. 세상의 관심 밖에서 사라져가기 쉬운 존재들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연민과 공감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다. 시인의 그런 눈길은 주변의 자연환경, 사물과 상황 등으로 이어진다. 어지러운 세상 속 뭇 존재들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들을 만나다보면 한편의 시를 길어 올리는 시인의 예민한 기척에 감탄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시인의 유머와 해학성을 엿볼 수 있는 시들도 다수 수록되어 있다. “모두 평등해서 좋다//모처럼/거추장스런 형식과 예의를/활활 벗어 던지고 나니/홀가분하다”(‘목욕탕에서’)에는 시인의 너스레가 담겨 있어 피식 웃음 짓게 만든다. 또 “신호등이 많다고/짜증내지 마라//( 중략 ) //위반하고 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참는다”(‘신호등’)에는 왠지 모를 공감을 자아내 시집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평범한 상황과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80여 편의 시를 통해 따스한 기운과 뭉클한 감동을 전달한다. 김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미수(米壽) 기념으로 엮어낸 세 번째 시집”이라고 소개하며 “이번에는 뒤 작품 해설도 입히지 않고 그냥 알몸으로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1939년 익산에서 태어나 남성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63년 서라벌 예술대학(현재는 중앙대학교에 통합 편입됨)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평생 교직에 몸담았으며, 2003년 이리중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시집으로 <세상 뱃속에 있다가>와 <시의 유방>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26 18:34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경옥 동화작가-김두를빛'벽을 타는 생쥐, 바타'

얼마 전, ‘과학사’를 다룬 책을 읽었다. 현재의 문명사회를 이룩하기까지 과학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실패의 결과인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도전과 실패의 반복은 단순히 과학사에만 한정되는 건 아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목숨까지 담보로 도전한 결과 지구상에 인간이 출현한 짧은 시간 안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처럼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벽을 타는 생쥐, 바타>이다. 목련 아파트 202동 지하에 사는 생쥐 부부의 열세 번째 아들이 탐험가를 만난 건 그날 내린 눈 때문이었다. 하얀 눈송이가 소복소복 내리는 것을 본 열세 번째 아들의 가슴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뛰었다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지하에 사는 생쥐 가족 중 유일하게 호기심이 많은 열세 번째 아들은 창밖을 바라본다. “세상이 너무나 멋져 보여서.”라는 말과 함께 모두 잠든 새벽, 지하를 나와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로 첫발을 내디딘다. 호기심이 없다면 시도할 수 없는 위험한 외출인 셈이다. 밖으로 나오면 생쥐에게는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지만 엄마마저도 ‘너 자신을 위해서 살라.’며 열세 번째 아들의 모험에 불을 지핀다. 지하가 아닌 아파트 단지 내를 돌아다니며 드르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삿짐을 옮기는 사다리차를 발견한다.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차를 보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던 열세 번째 아들은 지금껏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방향인 ‘위’를 보고 놀란다. 그곳에서 탐험가 쥐를 만난다. 처음 탐험가를 만났을 때 그에게서 먼 길, 바람과 햇살, 촉촉한 새벽 공기와 오후의 마른 대지를 지나, 적막한 밤의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바람 냄새를 맡는다. 작가가 생각하는 탐험가에 대한 묘사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을 탐험하다 보면 끊임없이 낯선 곳을 찾아다니며 고단한 길 위에서 걷고 바람과 햇살과 이슬을 함께 해야 하니 어쩌면 바람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탐험하며 정처 없이 떠도는 게 신기하기만 한 열세 번째 아들은 탐험가 쥐에게 묻는다. “왜 떠돌아다녀요?”라고. 이에 탐험가는 “문득 ‘쥐로 태어난 건 어쩔 수 없지만, 어떻게 사느냐는 내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가 아닌 낯선 곳에 가보고 싶어졌지. 그때부터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며 대답한다. 탐험가 쥐의 대답 속에서 조건보다 선택과 도전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탐험가 쥐의 말을 들은 열세 번째 아들은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호기심을 가지고 사다리차를 타고 오른다. 10층이 넘는 거실에서 바라본 세상은 지하실 안에서는 본 적이 없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비밀스러운 세상을 보게 된다. 경이로움을 느낀 열세 번째 아들은 창문과 현관문이 닫히는 사이에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곳에서 알게 된 햄스터와 며칠을 보내며 결국 인간에 의해 발각되어 쓰레기봉투에 담겨 버려지고, 쓰레기 차에 실려 쓰레기 처리장까지 옮겨진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들이 있는 목련 아파트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떠나고 없었다. 이에 열세 번째 아들은 고양이에게 쫓기면서 나무를 타고 아파트 벽을 오른다. 평상시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벽을 오르는 도전. 그렇게 오른 20층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본 세상은 땅에서만 살았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세상은 이렇게 생겼구나’를 인식하고, 도전하지 않고 지하에 안주하고 살았더라면 결코 알지 못했을 세상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러다 옥상에서 만난 인간 여자는 열세 번째 아들을 바라보고 신기한 듯 먼 곳을 가리킨다. 그곳은 옥상보다도 더 높은 ‘라라타워’다. 열세 번째 아들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며 다시 또 길을 떠난다. 과연 열세 번째 아들이 도전에 성공할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미 그는 도전했고, 자신의 세상과는 다른 낯선 세계를 확인했다. 그리고 또 다른 탐험의 길을 떠난 것으로서 자기 세계의 확장이라는 경험을 선택했기에 여기에 또 다른 평가는 의미가 없다. 이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기 전과 시도한 후의 삶의 변화는 크다. 도전은 자신의 공간을 넓혀가는 작업이기도 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모험은 살아있음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경옥 동화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3.26 18:33

임실 출신 이종현 시조 시인, 첫 시조집 '아내, 활을 쏘다' 출간

“연애할 때/ 내 화살/ 과녁으로 받아주고/ 잔 가득/ 삼십 년을/ 웃음 살풋 채워 주던,/ 아내가/ 시위를 당긴다/ 자음 모음 날이 서다”(시‘아내, 활을 쏘다’ 전문) 30여 년 동안 시조에 대한 순애보 사랑을 이어가고 있는 이종현 시조 시인이 첫 시조집<아내, 활을 쏘다>(실천문학)을 펴냈다. 이 시인이 지난 30여 년간 독학으로 터득해 빚어낸 산물인 이번 책은 총 4부로 나뉘어 70편의 시조 작품을 품고 있다. 문학의 여러 장르 중에서도 오로지 우리 문학의 전통성을 지닌 ‘시조’만을 고집해 온 과정을 보면 사소한 일상적인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확장해 삶의 이치와 보편적 진리를 창출해 낸다는 특징을 지닌다. 시인은 “문학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다. 37년여 전 장애의 몸으로 대학을 고학으로 다니던 삶 속에서 문학을 만났다”며 “자취방에서 지친 몸을 뒤쳑이다 일간지에서 마주한 독자 시조, 몇 번의 투고 끝에 활자화되면서 시작했다. 형식도 알지 못한 채 어설픈 형상화로 하루를 옮겨 적으면서 오래도록 이어왔던 시조다”라고 말하며 시조를 사랑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오랜시 간 동안 시조와 함께 살아왔지만, 비로소 첫 시조집을 상재하게 돼 너무 기쁘다”며 “앞으로도 깊고 넓은 세계로 뿌리를 세우며 시조의 지평을 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임실 출생인 이 시조 시인은 현재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다. 그는 현재 대한장애인역도연맹 상임 심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19 18:29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진숙 수필가-송태규 '직진도 충분히 아름답다'

봄이다. 긴 겨울을 지나 땅이 깨어나듯, 우리도 새로운 시작을 꿈꾼다. 땅속에서 움튼 새순은 고요한 인내 끝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고, 들녘의 씨앗은 따스한 햇살을 머금으며 생명의 여정을 시작한다.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계절, 우리의 마음도 봄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직진도 충분히 아름답다>의 저자 송태규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아간다. 그는 스스로 한계를 넘고자 했던 도전을 통해 성장했고, 마침내 활짝 피어났다. 어릴 적 그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아이였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을 넘어서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증명해 보였다. “도전 없이는 성취도 없다.”(프레드 데버)라는 말처럼, 그는 도전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간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도전은 울트라마라톤과 철인 3종 경기다. 마라톤 하나도 버거울 법한데, 그는 교통사고로 무릎 수술을 받은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도전에 나섰다. 철인 3종 경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극한의 인내를 요구하는 경기다. 거친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지칠 대로 지친 몸으로도 자전거 페달을 밟아야 하며, 마지막에는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겨운 마라톤이 기다리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과정을 가족의 응원과 동료들과의 연대의 힘으로 직진하며 이겨냈다. 그의 ‘직진’은 고등학교에 재직할 당시에도 통했다. ‘도전! 골든벨’에 여러 차례 도전하고 등교 시간에 단속 대신 음악으로 맞이하는 등 늘 학생 편에서 발전적인 것을 추구했다. 특히 '500회 헌혈'을 향한 조용한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의 선한 영향력은 가족에게 전해졌다. 아들과 딸, 며느리까지 함께 헌혈을 이어가며 ‘헌혈 명문가’가 되었다. 또 주변의 친구와 지인들도 그의 뜻에 동참하고 있다. 한 사람의 실천이 가족을, 그리고 이웃을 변화시킨 것이다. 그가 흐르게 한 따뜻한 피는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길이 되었고, 사랑의 강물처럼 이웃을 향해 흘러가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강한 자가 버티는 게 아니라, 버티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때때로 강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준 강함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견디는 작은 용기에서 비롯된다. 지치고 힘든 그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임을 그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 이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직진은 무엇인가?”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머뭇거리게 된다. 도전을 망설이거나,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삶은 넘어지고 깨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의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빠르지 않아도,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직진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저자처럼 다시 직진을 선택한다. 아울러 당신도. 봄처럼 다시 피어나길. 이진숙 수필가는 전직 국어교사 출신으로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 부문에 당선됐다. 이후 최명희문학관에서 “혼불” 완독 프로그램 진행하며, <우리, 이제 다시 피어날 시간> 오디오북 출간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3.19 18:26

지혜로 빚어낸 문장들…이근풍 시집 '새로워진 마음으로' 출간

이근풍 시인은 삶의 슬픔과 쓸쓸함을 끌어안은 시편들을 잔잔한 화법으로 써왔다. 신간 <새로워진 마음으로>(오늘의문학사)에는 그동안 이근풍 시인의 시에 등장했던 삶에 대한 성찰과 시 쓰기에 대한 고민을 비롯해 독특한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시들로 빼곡하다. 기교 없는 시어와 감각적인 정서들을 간결하게 엮어내며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했던 이근풍만의 시풍(詩風)을 확립했다. “잘못한 일 있다면/스스로의 노력으로/바꿀 수 있는데도/팔자타령 미리 한다//어떠한 일 한다 해도/노력 없이 되는 일은/단 하나도 없다는 것/살아가며 깨닫는다”(‘노력 없이 되는 일은’ 전문) 시인은 삶의 근원적 의미를 되새겨보는 시적 성찰과 혜안으로 웅숭깊은 서정의 세계를 펼쳐보인다. 담백한 언어로 표현한 생각들이 시가 되고, 따뜻한 여운을 남긴다. 짜임새 있는 운율은 독자들에게 리듬감을 형성하며 읽는 즐거움을 전달한다. 독자를 배려하며 써내려간 100편의 시들은 한 폭의 수묵 담채화처럼 글을 읽는 동안 서서히 마음에 와 닿는다. 깨끗하고 맑은 언어와 구순(九旬)이라는 시간을 살아낸 시인의 지혜로 빚어낸 문장들 덕분일 것이다. 이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파도처럼 살아온 인생길 어느덧 구순(九旬), 꽃잎 떨어진 뒤에야 봄이었음을 알았고 단풍잎 진 뒤에야 가을이었음을 알았다”며 “고목나무가 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하루의 햇빛 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운 빛이 저녁노을인 것을,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임실에서 태어난 이근풍 시인은 전북대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경찰공무원으로 정년퇴임했다. 계간 <오늘의문학>16집에 ‘할미꽃’ 등 4편의 시를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와 전북문인협회, 전북시인협회, 전북인실문학회 회원이다. 시집 <나에게 쓴 편지> <못다한 말> <둘이서 엮는 사연> 등 다수의 시집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19 16:33

군산에는 특별함이 있다…신정일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군산'

도보답사 선구자 신정일(71)이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군산>(신아출판사)으로 독자를 찾아왔다.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등으로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만, 그는 <섬진강 따라 걷기> <낙동강> <길 위에서 배운 것들> 등 100여권의 책을 펴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서는 금강과 만경강 등 두 강 사이에서 발달한 도시 군산에 대한 역사와 문화, 그리고 도시의 특별함을 소개한다. 신문과 책 등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되어 온 군산 관련 이야기도 엄선해 수록했다. 군산에 대한 저자의 글들은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촌철살인의 메시지가 빛을 발하며, 도보여행가 신정일의 넓은 시야과 특유의 입말을 살린 문체가 글에 윤기를 더한다. 1970년대에 군산 하면 떠오르던 ‘군산상고 야구부'에 대한 흥망성쇠를 풀어낸 글속에는 그 시절 군산에 대한 애틋함과 군산상고에 대한 추억이, 군산 죽성포구 ‘째보선창’의 어제와 오늘을 기록한 문장에는 질곡 많은 포구의 역사 등이 감명 깊게 펼쳐진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 비탈에 게딱지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 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기지 않고 콩나물 길 듯 다닥다닥 주어 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 명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비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대체 이 조그만 군산 바닥이 이러한 바이면 조선 전체는 어떠한 곳인고, 이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의 승재는 기가 탁 질렸다”( 채만식 탁류 중에서) 책 서문에는 채만식이 소설 '탁류'에서 묘사한 군산에 대한 풍경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 군현이었던 '옥구'와 '임피' 고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마을 군산포가 오늘날의 군산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저자 신정일은 서문에서 "지나간 역사와 지금의 현재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는 군산 지역을 흐르는 강이 금강"이라며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에 이른 군산, 먼 훗날에는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또 변해갈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고군산군도를 품고 있는 군산의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보길 바란다"고 책에 대해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문화재위원이자 문화사학자인 저자 신정일은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와 성남대로 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한 도보여행가이기도 하다. 수십년 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력과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전3권),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등 다수의 책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19 15:17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오은숙 작가-에밀 졸라 '돈'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이 상인 안토니오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1파운드의 살을 받겠다고 조건을 단다. 현진건의 단편 <아다다,1921>에서는 사람을 팔고 사는 수단으로써 비정한 돈의 역할이 부여되고 저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벌,1866>에서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도끼를 손에 들고 전당포를 찾는 이유가 된다. 언제나 내 마음속 청춘인 <날개,1936>의 주인공은 아내가 준 돈을 모두 화장실 변기통에 버리기도 하였으나 오늘날 돈은 화폐로서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양심을 소환하던 시대를 넘어 궁극의 목적이 되길 원한다. 어떤 면에서, 최초의 현대인이라는 수사가 어울리는 에밀 졸라. 그는 어떤 눈으로 돈을 바라보았을까. 졸라의 소설 <돈>은 주인공 사카르가 만국 은행을 설립하여 은행장이 되었다가 파산하는 과정을 그리며 다양한 인간 군상이 나온다. 사카르는 돈을 쓰지 않고 모으기만 하는 구두쇠가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의 돈이라도 갖다 쓰고자 한다. 검찰 총장 아내와 여흥을 즐기는 것도 만국 은행 주식을 파는 방식으로 투자를 받으려는 속셈이다. 그는 자신이 싫어하는 증권 거래소의 실세 군데르만을 찾아가 투자하도록 설득하기도 한다. 위장병이 있어 우유로만 생활하며 그마저도 한 모금 들이키는 시간이 길어 지루했던 순간을 견디고 그가 들은 말은 은행장이 되어도 결국은 파산할 것이라고 했다. 돈의 흐름에 예민하고 고집스런 유대인 군데르만은 과도한 열정과 비약적인 상상력, 남의 돈을 가지고 사업하려는 사카르의 자세를 실패의 원인으로 들었다. 그런 식이라면 어떤 일에도 안착하기 힘들겠지, 하고 나는 동의한다. 지참금으로 주식을 산 모녀가 일부를 팔려고 하자 사카르는 반대한다. 오르고 있는데 왜 파느냐고. 돈을 빌려서라도 더 사야 한다고. 마르셀은 기죽은 남편에게 돈을 양동이로 퍼서 안겨주는 방식으로 위로하고 싶다. 그녀가 돈을 빌리러 간 친정에서는 이미 많은 주식을 샀기 때문에 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편, 루공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가 한순간에 유출되는 사정을 비추어 오늘날을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5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이야기에서 눈길이 가는 인물은 단연 카롤린이다. 어린 나이에 이혼한 그녀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사카르의 집무실을 드나들며 일하다 그의 과도한 지출과 횡령을 알아차린다. 그녀의 조언으로 보름 후에 지출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일까. 그는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자신이 두 번째 남자가 되는 게 싫다는 이유를 들어 혼자서 감정을 정리한다. 대부분 인물이 돈을 갈망하는 것과 비교하면 그녀는 오히려 “세상의 모든 돈을 없애 버렸으리라”하고 서술하듯 거리를 둔다. 그럼에도, 사카르조차 알지 못하는 그의 아들을 빈민촌에서 구할 때는 자기 돈을 쓴다. 그러는 과정에서 허황되고 무절제한 사카르에게 연민일지 애정일지 모를 감정이 싹튼다. 1891년에 발간된 이 책은 스무 권으로 된 루공-마카르 총서 중 하나다. 대가의 글이라고 취향을 안 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고발한다>와 같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자들이 백지 위에서 춤춘 탓에 두 달여에 걸쳐 읽었다. 읽다 보니 인물에 애정도 생겼다. 심리묘사가 생각보다 많은 것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 주변을 옮겨 놓은 듯한 이 작품을 익숙하지 않은, 낯선 길을 걷듯 읽었다. 오은숙 작가는 202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납탄의 무게>가 당선됐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3.12 18:46

정기석 첫 비평집 '연약을 위한 최저낙원'

정기석의 첫 비평집 <연약을 위한 최저낙원>(파란)에서는 2010년대 이후 붕괴되고 연약해진 시편들을 살핀다. 동시대 시에서 흔하게 목도할 수 있는 개인이 가진 존재론적 불안에 대한 형상화와 기존에 조명 받지 못한 비가시적인 삶을 들여다본다. 또 비평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시각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시는 시대적 저항을 위한 역동성이라기보다, 타자와 세계와 미래에 대한 어두운 전망 속에서 체념과 절망의 외피를 두른 희미함으로 현재의 시간을 만든다”고 밝히며 “여기 작성된 글들은 파열에 대한 함께 있음의 의지이자 동시에 마지막 파열에 함께 한다는 동의”라고 책을 소개했다. 특히 저자는 재테크, 주식, 가성비 등의 경제적 용어 사용의 일반화를 넘어 언어에 기반한 인식적 틀이 자본주의에 맞춤 설정되어 왔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회에서 비평의 경제적 쓸모와 가치에 대해 짚어보고 투자 대비 성과만을 찾는 세태를 비판한다. 비평집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가장 연약한 것이 미래와 세계인 듯 △연약함이 대신 미래를 감싸고 △연약한 것끼리 세계의 진창을 대신하네 △세계의 상처 속에 함께 머물기 위해 △우주의 가장자리에서 시하고 노래하네 등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2년 경상북도 포항 출생인 저자는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4년 ‘문학사상’에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또 2018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문학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비평집 <은유로서의 똥>(공저)을 펴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12 18:46

김용택 시인의 3월은?…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

김용택(78) 시인이 3월을 주제로 엮은 책 <사랑 말고는 뛰지 말자>(출판사 난다)를 펴냈다. 매해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출판사 난다의 '시의적절' 시리즈 중 하나다. 3월편의 주인공인 김용택 시인은 매일매일 그러모은 3월의, 3월에 의한, 3월을 위한 읽을거리를 완성했다. 시인은 임실의 진메마을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그곳에 살며 섬진강을 걷고 꽃들을 따라다니며 작은 생명들 곂에 옆드려 시를 쓴다. 시인이 평범한 봄의 일상 속에서 완성한 책에는 11편의 시와 4편의 아포리즘, 일기 등 31편의 글이 담겨 있다. 글을 통해 김 시인의 진지한 문학론과 유쾌한 인생론, 손자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자연에 대한 감사함 등을 느낄 수 있다. “사랑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하며 겁이 없다. 겁 없는 세상,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겁도 없이 사랑을 향해 달려가는 사랑은 강물 위로 사라지는 눈송이들처럼 아름답다. 겁도 없이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강물로 사라지는 저 수많은 눈송이처럼 말이다. 사랑도, 삶도 순식간이다”(‘그러나 사람보다 큰 책은 없다’ 중에서) 평소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인간과 사랑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시인으로 유명한 그는 이번 책에서 기존의 자기 스타일을 모두 담으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선보인다. 김용택의 글을 즐겨 읽는 독자라면 그동안 출간된 시 이면의 문학과 그의 내면을 느껴볼 좋은 기회이다. 시인은 책의 머리말에서 “사실을 쓴다. 사실만이 숨을 쉰다. 사실인지 어떻게 아나. 사실을 어떻게 가려내나”라고 밝히며 “사실은 진실 앞에서 괴롭다. 실은 그것이 인간 고통의 전부다”라고 했다. 1982년 창작과 비평사의 21인 신작 시집에 연작시 ‘섬진강’을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한 김용택 시인은 이후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집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등을 비롯해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에세이 <아침산책> 등을 출간했다. 1982년 발표한 시 ‘섬진강 1’은 7차 교육과정 문학 교과서와 2021 수능특강 문학에 실렸으며, 시들 가운데 ‘우리 아빠 시골 갔다 오면’, ‘방 안의 꽃’ 등에는 곡이 붙여져 동요로 발표되기도 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12 15:45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에 안성덕 시인, 수상 시집 '깜깜'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안성덕 시인의 시집 <깜깜>(걷는사람)이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을 받는다. ‘김구용시문학상’은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가 주최하고 계간 리토피아가 주관한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독창적인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며 새로운 시에 대한 실험정신이 가득한 시인이 발간한 시집 가운데 심사를 거쳐 선정‧시상한다. 김구용시문학상 심사를 맡은 손현숙 시인은 “안성덕의 이번 시집 속 시들은 다양한 주제 의식은 물론 시편마다 각각 다른 스타일을 구사하는 특징이 있다”며 “문학적인 가치와 창의성을 충분하게 내포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며 문학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안성덕 시인은 정읍에서 출생하여 2009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붓> <달달한 쓴맛> <깜깜> 등을 있다. 디카에세이 <손톱 끝 꽃달이 지기 전에>를 펴냈다. 현재 계간 ‘아라쇼츠’ 주간직을 맡고 있다. 안 시인은 “가끔 시가 뭐에요 물어오면 녹음기를 튼다. 사전적 의미나 외운다. 형용사, 부사가 아니라 명사나 동사로 쓰는 것이 시”라며 “그분의 세계도 일천한 주제에 (상을) 주신다니 덥석 받는다”며 진솔한 수상소감을 밝혔다. 제15회 김구용시문학상 시상식은 오는 29일 오후 4시 인천광역시 문학동 소극장 돌체에서 열린다. 시상식에는 리토피아가 그동안 만들어온 창작시 노래를 선보이는 식전 축하공연도 펼쳐질 예정이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11 15:38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K-북 수출 확대 나선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하 출판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런던 도서전에서 한국도서 수출 상담관을 열고, K-북 수출 확대에 나설 것이라고 10일 밝혔다. 올해로 54회를 맞이하는 ‘런던 도서전’은 세계 최대 규모의 기업 간 거래 전문 도서전으로 11일부터 13일까지 올림피아 이벤트에서 개최된다. 출판진흥원은 올해 처음으로 런던도서전에 수출 상담관을 조성해, 국내 참가사 10곳과 위탁 도서 101종에 대한 수출 상담을 집중 지원한다. 수출 상담관에는 문학동네·(주)다락원·도서출판 북극곰 등 10개 참가사의 개별 공간이 마련되며, 수출 전문가가 참여해 국내 위탁도서 101종의 수출 상담을 대행한다. 또 도서 및 출판사 정보가 수록된 영문초록 소개집을 제작 및 배포해 수출 상담을 지원한다. 참가사 주력도서로 지난해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최종후보에 오른 이금이 작가의 <너를 위한 B컷>(문학동네), 위탁 도서로는 2023년 ‘블로냐 라가치상 픽션 부문 스페셜 멘션’을 수상한 <이사가>(이지연, 웃는땅콩어린이재단)이 선정됐다. 이와 더불어 2023년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에서 주관한 ‘소리 없는책 아너리스트’에 선정된 <휴가>(이명애·키다리)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여러 우수한 국내 도서들이 현지 출판 관계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또 도서전 종료 후 전시 도서는 주영국한국문화원에 기증해 영구에 한국어와 한국 출판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데 활용할 계획이다. 출판진흥원 관계자는 “2025년 런던 도서전을 통해 국내 출판 콘텐츠의 국제 경쟁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국내 출판 기업들의 해외 진출 확대를 꾀하고 세계 출판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데 꾸준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10 18:48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박태건 시인-하상욱 '달나라 청소'

‘햇빛 잘 드는 툇마루에 앉아/ 신문지 펴고 손톱이나 깎는/ 오후를 좋아하고’, ‘가끔 지나가는 채소 트럭 확성기 소리를 들으며/ 시장에 장 보러 간 당신을 기다리는’ 것이 소망이었던 시인이 있(었)다. 그의 존재를 과거형으로 말하려니 갑자기 울컥해진다. 그는 이제 죽은 사람, ‘생의 적막한 오후를 견디기 위해서 아직 남아 있는 햇빛을 애인과 나눠 쬐고 싶었던’ 순정한 사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겨울의 끝자리, 전주한옥마을에서 『달나라 청소』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하상욱 시인(1967~2023)은 남원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그가 남긴 『달나라 청소』을 윤동주 시집 이후 가장 순정한 유고시집이라 하겠다. 시인에게 ‘세상은 아름답기만 한 것도, 그렇다고 노엽기만 한’ 것도 아닌 ‘쪽문 앞 개망초 작은 꽃들을/ 쪼그리고 앉아서 보듯’ 사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이 일제 강점기의 비루함을 고결한 영혼으로 이겨냈듯이, 하상욱은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노골적인 인간 소외를 맑고 깨끗한 눈빛으로 견디려 했다. ‘죽음이 삶을 껴안든/ 삶이 그 무엇을 껴안든’ 살기 위해선 얼마나 많은 상처를 여행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은 ‘너무 많이 가지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수학 기호인 루트를 보면 모자를 벗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 그만 하면 됐다고, 모두가 자본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열중할 때 한발 벗어난 고독한 생의 응시를 통과하느라 시인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상욱 시인은 타인의 가쁜 숨소리도 들을 줄 아는 시인이었다. “항아리가 숨을 쉰다는 얘길 들었다/ 항아리가 숨을 쉬니까 그 속에 담긴/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쉴 거다/ 된장도 고추장도 숨을 쉬니까/ 된장을 푼, 고추장을 풀어 끓인 찌개도 보골보골/ 숨을 쉴 거다 /(……)/ 이리저리 치이다 돌아온 당신도/ 숨을 쉬며 살아가는 거다”(‘항아리’ 일부) 시인은 이제 광란의 질주를 멈추자고 한다. 뉴스를 켜면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세상에서 하상욱의 시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무어라고 몇 줄 썼다가 지웠다/ 눈이 내리는데 계속 걸었다/ 뒤돌아보면 내가 함부로 찍어 놓은 발자국들/ 눈이 조용히 덮어 주고 있었다/ 간다고 가는데 언제나 여기였다/ 다시 몇 줄 썼다가 지웠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가 보면 저기가 다시 여기가 되고/ 가다가 멈추면 동그란 무덤이 생겼다…”(‘눈 오는 아침’ 일부) 『달나라 청소』를 읽으며 이 좋은 시들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퍼졌다. ‘그리워도 볼 수 없는 것’ 중에서 그의 이름도 추가되었다. 한밤중에 취한 목소리로 전화하던 하상욱이 없는 이 세계의 ‘눈발 속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 그의 짧은 시를 소개하면 글을 마친다. “기차는 길다/ 괴로움의 증거다// 달려가라/ 달려가라”(‘기차’) 시인을 힘들게 했던 겨울이 지나갔다. 지난 사랑은 언제나 비극이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박태건 시인 1995 전북일보 신춘문예와 시와반시 신인상에 당선됐다. 시집 <이름을 몰랐으면 했다> 로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나바위성당 팔각창문 아래서> , <익산문화예술의 정신> 등을 펴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5.03.05 18:27

순수한 동심의 세계, 송경자 동시집 '바람 타는 우산'

개학 첫날 새 교실로 들어선 어린이가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새로워 두리번거리며 교실을 둘러봤다. 어엿한 2학년이 되었으니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교실과 복도를 머릿속에 그리며 화장실도 가지 않고 기억했는데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1학년 교실로 돌아갔다. 어린이는 ‘아차, 나 2학년이지!’ 화들짝 놀란다. “두리번두리번 새 교실/선생님과 친구들도 새롭다//이제 나는 2학년/실수하면 안 되지//교실과 복도를 머릿속에 그리며/화장실도 안 가고 기억했는데//급식 먹고 오다가/나도 모르게 들어갔다/1학년 교실로 쏘옥//아차, 나 2학년이지!” 송경자 시인의 동시 ‘개학 첫날’의 전문이다. 사실 개학 첫날에는 고학년 어린이나 청소년도 교실을 곧잘 헷갈리곤 한다. 시인은 주인공 어린이의 서툴지만, 순수한 마음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냈다. ‘이제 나는 2학년, 실수하면 안 되지’란 다짐에 흐뭇함을 느끼며 어린 시절을 떠올릴 어른 독자들도 많을 듯하다. 송경자 동시집 <바람 타는 우산>(책고래)에는 자연과 계절, 학교생활과 가정생활 등을 창의적인 생각과 참신한 비유로 엮은 55편의 동시가 독자들을 동심의 세계로 안내한다. “분홍 벚꽃잎이/봄바람에 흩날린다//하늘하늘 날리는 꽃잎 잡으러/폴짝폴짝 휙휙//손바닥에 살포시 앉은/작은 꽃잎 하나//내 소원 담아 훨훨 날아간다”(‘나비가 되어’ 전문) 나비처럼 귀엽고 예쁜 동시 ‘나비가 되어’는 벚꽃잎을 잡으러 폴짝폴짝 뛰는 모습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표현했다. 벚꽃잎이 흩날리는 봄의 정경이 눈에 선하게 떠오르면서 피식 웃음이 나거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이준관 시인은 서평에서 “송경자 시인의 동시는 어린이들에게 행복을 나누어 주는 시”라며 “동시들이 따스하고 온유하고 포근해서 그의 동시를 읽으면 행복하다”고 했다. 저자는 아동복지 교사로 아이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다. 그동안 동시집 <똥방귀도 좋대>(공저) 그림책 <마술떡>, 수필집 <좋은 하루 되세요>(공저) 등을 출간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05 17:09

담담함과 허허로움으로 채운 송하선 시인의 아흔 무렵의 이야기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노래하는 시인, 송하선 시인이 시선집<아흔 무렵의 이야기>(푸른사상)를 펴냈다. 현실에 대한 민감한 반응, 예리한 관찰과 비판, 불의와 부정을 고발하고 저항하는 개결한 정신의 발로가 시 또는 시인의 한 역할일 수 있다면, 송 시인과 같은 애정과 연민, 동정과 포용으로 인간과 사물을 바라보고 긍정하는 자세 또한 중요한 한 기능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시인의 작품에서는 시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아름다운 정서를 만날 수 있으며, 인간과 사물을 관조하는 따사롭고도 맑은 눈을 마주할 수 있다.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조금은 먼 거리에서 보면,/ 예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아름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시 ‘꽃’ 전문) “지금은 시인이 되어 있다지만/ 문단의 말석에 있는 시인이다,/ 그러나, 누구처럼 막걸리 마시며/ 떠도는 시인이 아니라/ 정직한 시인이 되어야지”(시 ‘어떤 시인이 될까’ 전문) 이처럼 잠시 들여다본 송 시인의 작품에서도 보이듯 그의 시에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개안, 삶에 대한 통찰과 관용의 정신, 깊고 그윽한 명상과 관조를 통해 시인은 마침내 자연과 삶과 죽음을 통합적으로 인식하는 현자의 세계에 이르러 있음을 넉넉하게 알려주고 있다. 장석주 문학평론가는 송 시인의 작품을 “송하선의 시들은 우리 시를 휩쓸고 지나간 민중 시도 아니요, 해체 시도 아니요, 생태 시도 아니다. ‘나’의 개체적 삶의 경험에서 길어내는 소박하고 조촐한 서정시의 세계다”며 “개체의 경험 중에서도 숭고하고 장엄한 것보다는 자연이나 가족, 이웃, 나날이 일상과의 교섭에서 이뤄지는 하찮고 사적인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고 평하며 그의 시세계에 대해 설명했다. 송 시인은 시인의 말을 통해 “아흔 무렵에 으르러 아내와 결혼 62년을 기념하기 위해 단시 62편을 모았다”며 “시집 제목을 아흔 무렵의 이야기로 정했다. 이야기는 소설을 흔히 말하지만, 굳이 이야기라 한 것은 이제 90의 나이가 돼가니, 간디가 물레를 잣듯 말들을 풀어가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13권 시집에다 펴낸 시편들이 700여 편의 범작일 뿐, 명작이 없다. 그러나 오직 한길로 한 걸음으로 걸어온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제 출생인 그는 전북대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등을 졸업했고, 중국문화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대문학>에 작품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1980년 우석대 교수로 부임해 도서관장, 인문사회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우석대 명예교수인 그는 전북문화상, 전북 대상, 목정문화상, 한국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다시 長江처럼>, <몽유록>, <시인과의 진정한 만남>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전현아
  • 2025.03.05 17:01

소멸해가는 시간과 사랑의 마음 담아, 유대준 시집 '기억의 그늘을 품다'

솔직한 언어로 평단과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유대준 시인이 시집 <기억의 그늘을 품다>(현대시학사)를 펴냈다. 시인은 한층 선명해진 주제의식과 깊은 사유로 매혹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 자신만의 화법과 심안을 갈고 닦은 그는 이번 시집에서 천천히 소멸해가는 시간과 사랑의 마음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늦은 귀가를 기다리다/이불 돌돌 말아 고치 집 지은 그녀를 본다/머리 쪽에 숨구명 하나 나 있다/처마 낮은 방에 엎드려/등이 가렵다고 피 나도록 긁으며/삶이 쓴 약 같다던 그녀가/(…중략…)/손에 단단한 각질을 새긴 그녀는/깨워도 깨워도 꿈쩍하지 않는다//우화등선의 꿈을 꾸는지”(‘아내의 잠’ 중에서) 시인은 원시적인 감각으로 자신의 삶을 끌어안고 사랑에 투신한다. 연민을 앞세우지 않은 담백한 시선과 흘러간 세월을 묵직하게 녹여낸 시편들은 서늘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유성호 문학평론가는 시 해설을 통해 “특별히 이번 시집에는 삶과 사물을 향한 투명한 시선과 그 시선을 통한 섬세한 기억의 매무새가 견고하게 결속되어 있다”며 “남다른 기억의 힘으로 지난날을 재현하면서 그 시간을 항구적으로 긴직하려는 꿈의 세계에서 발원하고 완성되는 언어예술”이라고 밝혔다. 삶과 시를 대하는 시인의 진실한 마음과 진지하면서 겸허한 태도가 깊이 와닿는 시편들은 그가 30년 동안 쌓아 올린 서정과 서사가 어우러져 '이야기 시'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시집에는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53편의 시가 담겨있다. 완주 고산에서 태어난 유대준 시인은 1993년 ‘문학세계’로 등단했다. 원광대 문예창작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전북시인협회장과 전주문인협회장을 역임했다. 전북시인해양문학상 대상과 전북문학상‧전주문학상‧여산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박은
  • 2025.03.05 15:00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기명숙 작가- 임후남'나를 아껴준 당신에게'

임후남 선생님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 북토크에 참여했다. 책갈피처럼 가지런히 접혀있던 독자들이 시를 낭송하고 작가와의 인연과 작품에 대해 말하는 연대의 장이었다. 선생은 용인에서 ‘생각을 담는 집’이라는 시골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전주를 떠나 타향에서의 객창감이 잦아들지 않을 무렵 찾아간 곳이었다. 고요의 질감 속 책과 식물에 둘러싸인 맑고 단정한 사람, 그렇게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임후남 선생의 작품들은 장르를 불문 삶의 양식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느린 여백의 시간과 필요한 만큼의 적요, 자연 친화적인 공간에서의 작고 연약한 것들과의 상호 작용이 그것이다. 그녀의 처소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아니어서 위계 없이 평화롭다. 선생은 언뜻 시골 후미진 책방에서 고립된 존재처럼 보이지만 꽃나무 풀들의 뿌리가 땅속에서 엉켜있듯 수많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오랜 도시 생활에서 체득한 방식을 버리고 동안 꿈꿔왔다던 ‘나만의 방’에서 타자의 삶을 보듬는 플랫폼으로 기인한다. 책방에 들르는 사람, 꽃나무와 보리와 들깨와 낡아가는 책들에 귀를 기울인다. 『나를 아껴준 당신에게』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다. 작품들에서 상실한 자의 목소리, 떠나온 자의 슬픔을 발견하곤 한다. 인간 실존에서 상실과 분리는 시 공간의 이격에서 오는 당면과제다. 그런데 이 시집은 쇠락의 운명일 게 분명한 자연과 인간을 슬픔과 상실로만 규정하지 않는다. 시 전편을 관통하는 실존방식과 무한 애정은 ‘상처와 실패’를 곱씹는 자에게 존엄성 회복에 도달하기 위한 연료 공급처로 기능한다. 누군가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목수가 된다”라고 하였다. 자연 기호에 매혹되고 예민한, 직접 체득에서 나오는 선생의 감응 능력이 시적 언술로 그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나 또한 균열 된 세계로부터 위로를 찾아 숲속 책방을 찾아간 것이었으니 돌올한 선생의 ‘덕목’임이 분명하다. 한편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고통의 복판에서 죽음이 코앞에 다가온 노인과 실직자와 쇠락한 집과 희미한 유년기의 기억 등을 현학과 자의식 과잉 없이 드러낸다. 언어실험이니 한방에 녹다운시키려는 언어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매화 꽃망울이 터지듯 툭툭, 던지는 말의 오묘함이 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선생의 관계망 속에 긴밀히 연결됐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들켜도 부끄럽지 않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처럼 “삶의 풍경은 저마다의 계절이 있고” 아픔은 균등 배분되지 않고 각자 몫으로 견뎌내야지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다시 봄이 올 것”이니까. 북토크에서 나는 「시인」을 낭송했다. 삶의 전장에서 “김밥을 말고 소주를 마시며 그냥 아줌마로 불리는” 시를 접어버린 이와 반대 값인 “쉰에 시인이 된 그는 육십 넘은 지금 김밥집에서 김밥을 말고 있다 (중략) 김밥을 말다 시가 튀어나오면 얼른 볼펜을 집어 들었다 (중략) 사람들은 그를 시인이라고 불렀다.” 시인으로 산다는 것이 불균형적이고 도구적 측면에서 무용하대도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추동 방식은 다르다. 이질적인 두 사례의 향방에서 나는 어디쯤 있는 것이냐! 힘든 사연도 말하고 나면 고통이 줄어든다. 선생은 아픔과 슬픔 견딜 수 없는 그리움까지 털어놓게 한다. 선생의 수필집 『책방 시절』과 『나는 괜찮아지고 있습니다』에서도 일관된 메시지가 있다. “나와 이웃한 삶에 자꾸 귀 기울이”는 선생이 넌지시 묻고 선생에게 위로받았던 나는 대답한다. “나는 이제 괜찮아지고 있습니다.” 기명숙 작가는 전남 목포 출신이며, 2006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몸 밖의 안부를 묻다>가 있다. 현재 강의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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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5.02.26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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