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다른 사회의 문화, 어떻게 볼 것인가
■ 쟁점 자료 분석하기<자료 1> 여성 할례의 비극4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이 여성 할례는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 널리 퍼져있는 관습으로, 아프리카 내 28개국에서 흔히 행해지고 있다. 아니, 이 뿌리 깊은 아프리카의 할례 전통은 '흔히'가 아니라 극소수의 상류층을 제외하고 중? 하류층에서는 철저히 고수되고 있다고 봐야한다. 지금까지 전 세계 1억 200만 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았다고 추정되며, 매년 300만 명의 여성이 할례를 받고 있다. 하루로 환산하면 6000명이다. 지금도 1분에 4명꼴로 할례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음란한 여성으로 간주되어 결혼을 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에서 여성 할례는 순결을 지키는 정숙한 여성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당연히 할례를 받지 않은 '음란한' 여성하고는 그 어떤 남자도 결혼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렇게 '할례를 받은 여성만이 결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박혀 있는 아프리카에서는 할례가 일종의 '성인식'이다. 그러나 결혼 자격을 얻고 나아가 여성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공식적인 절차인 할례는 단순한 성인식 그 이상의 의미까지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여성은 결혼 자격이 없어질뿐더러 그들의 소사이어티에서 완전히 소외된다.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할 수 없고 인정도 받을 수 없으며, 선거를 할 권리도 없다. 육아와 생계를 함께 해결하는 전통적인 여성 사회에서, 이렇게 소외된다는 것은 곧 사형 선고와 다름없다. 따라서 여성들은 공동체에 소속되고 결혼이라는 생존 기반을 얻기 위해 할례를 받을 수밖에 없다.이렇게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 사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딸에게 할례를 시키는 것은 부모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할례를 받지 않는 것은 자기 자신도 '더러운 몸'으로 남는 것이고, 부모까지 부끄럽게 하는 일이다. 이만큼 필수불가결한 의식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할례를 받는 초경 전후의 소녀보다 훨씬 어린 5살의 어린 꼬마가 받는 일도 매우 흔하다. 아프리카에서 여성 할례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종교적 전통 때문이다. 이슬람 종교권인 이들 나라는, 여성 할례가 이슬람교의 전통이라고 믿는다. 4천년동안 이어져 내려온 관습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없애기가 쉽지 않다.[출처] 문화 상대주의에 대하여:작성자 다사랑<자료 2>절대론적 윤리설은 보편 타당한 삶의 원리가 인생의 목적 또는 행동의 법칙으로서 절대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고 본다. 이 주장은 윤리의 본질적인 기능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두 손이 앞으로 묶여 있다고 하자. 이들 모두는 등이 지독하게 가려운 증세를 보인다. 천당에 있는 사람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고통스럽고 천당에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가? 이들이 채택한 규칙의 차이 때문이다. 지옥에 간 이기주의자들은 서로 돕지 않고 자기 일만 챙기는 것을 삶의 규칙으로 채택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 등을 긁으려는 부질없는 시도를 되풀이할 뿐 천당에서처럼 동그랗게 앉아 서로 앞 사람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려 하지 않는다. 이 두 종류의 규칙들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 규칙일까? 인간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이타주의 규칙이 타당한 규칙일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인간은 유사한 욕구와 필요를 가졌고 이 욕구와 필요를 조화롭게 만족시키는 윤리 규범을 타당한 윤리 규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절대론적 윤리설의 입장이다.- 이인탁, ?절대적으로 보편 타당한 윤리는 있는가?에서(고등학교 '독서' 교과서)<자료 3>특히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사람들을 원시인이라 하기도 하고 야만인이라 하기도 한다. 원시인은 시간적으로 옛날에 산 사람이란 뜻을 풍기고, 야만인은 시간과 관계없이 문화 생활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행동도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인류의 모든 문화를 같은 표준에 의하여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은연중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문화를 재는 잣대가 문화마다 다르면 어느 문화가 더 선진적이고 어떤 문화가 후진적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모든 문화를 다 재어볼 수 있는 공통의 잣대가 있는가? 즉 문화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있는가?서양에서는 19세기까지 그런 잣대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과학이 어느 정도 발달되었으며, 자연을 어느 정도 더 정복할 수 있는가에 따라 문화의 발전 정도를 측정하려 했던 것이다. 같은 서양에서라도 옛날에는 자연 과학이 덜 발달되었고 사람들의 삶이 자연에 의하여 더 많이 지배되어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는 힘과 자유가 훨씬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과거의 자기들과 비슷한 수준에 있는 문화는 자기들의 문화보다 더 뒤떨어졌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표준에 의하면 말할 것도 없이 서양 문화가 가장 앞서 있고 아프리카의 문화가 가장 후진적인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문화인류학에서는 그런 서양 우월주의 혹은 문화 절대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여러 문화를 연구해 본 결과 문화의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풍부해서 한 가지 잣대로 모든 문화를 다 잰다는 것은 무리란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문화인류학은 전반적으로 문화 상대주의(文化相對主義 : Cultural Relativism)를 받아들이고 있고, 최근에 와서는 이런 생각이 다른 많은 분야에도 다원주의(多元主義 : pluralism)란 이름으로 확산되고 있다.프랑스의 유명한 문화 인류학자인 레비 스트로스(Levi-Strauss)는 아프리카에 연구차 여행하면서 아프리카인의 과학은 서양의 과학과 종류가 다를 뿐 결코 서양 과학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은 과학에 있어서뿐 아니라 예술이나 관습, 제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모두 그 나름대로의 합리성이 있고, 수월성이 있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문화 안에서 선진, 후진이 있을 수 있으나, 다른 문화와의 비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오늘날 지배적인 견해이다.정말 문화는 그렇게 상대적인가? --<후략>--- 손봉호 <문화와 예술>에서 -■ 쟁점 논제1. 논술 논제자료 (1)의 사례를 바탕으로 자료 (2)의 시각에서 비판하고, 자료 (3)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을 비판적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900자 내외)2. 면접 논제지나친 문화상대주의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를 예를 들어 말해 보시오.(면접은 주변 학생들과 6단 논법으로 역할을 나누어 가며 해보세요)■ 쟁점 자료 비판적 읽기<자료 1>태국의 고산족 중에서 카렌족과 이수족, 타이야이족을 만났는데, 우리가 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데는 태국 북부 지방에 살고 있는 고산족의 대부분이 태국 원주민이 아니라 라오스나 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피난 온 난민이라는 데 있다. 이들이 고국을 버리고 태국으로 넘어와 사는 이유는 정치적으로부터 경제적 이유까지 다양하다. 국경을 넘어온 난민들을 태국이 받아들여 일정한 거주지를 주고 그곳에서 살게 하고 있는데, 이들은 제한된 지역에서 살 수는 있지만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어 자기가 사는 마을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들은 태국 정부의 관광 정책에 의존하여 그 부족의 여인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관광객에게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우리가 방문한 카렌족 중에는 여성들의 목이 긴 부족이 있다. 이 부족의 여인들은 한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방영된 적이 있다. 이 부족의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목에 금빛으로 된 굴렁쇠를 감고 산다. 해가 가면서 하나씩 개수를 늘려간다고 하는데, 한 나이 많은 여자는 26개를 하고 있었다. 일정한 굵기의 굴렁쇠를 목에 감고 있으니, 목이 가늘어지면서 길게 늘어났다. 얼마만큼 많은 개수를 하고, 얼마만큼 목이 늘어났느냐가 미의 표준이라고 한다. 목은 길게 늘어날지 모르지만, 일정한 굵기의 굴렁쇠로 목을 고정시키고 있으니, 목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서 이들의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카렌족[Karen] : 미얀마 및 태국에 거주하는 민족 집단. 여인들이 목에 링을 걸고 다니며 링의 수와 종류로 사회적 지위를 나타낸다.이 여인들 중에 그림엽서에 소개된 이를 만날 수 있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렌족 여성들은 다섯 살이 되면 목에 굴렁쇠를 끼기 시작한다. 지금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다섯 살에 굴렁쇠를 꼈다고 하더라도 2년 후인 일곱 살이 되면 다시 한 번 의사를 물어 계속 낄지 안 낄지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 여인보고 왜 굴렁쇠를 하겠다고 선택했느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 머리를 장식하고 목에 번쩍거리는 금붙이가 멋있어 보여서"라고 대답했다. 목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익숙해져서 괜찮다. 오히려 편하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길들여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절감할 수 있었고, 전율이 왔다. 익숙해져서 괜찮다? 그러나 이들은 목에 굴렁쇠가 없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에 대해서 경험한 바가 없으니, 진정 무엇이 편한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이다. 막상 이 굴렁쇠를 끼고 있는 사람들은 그 폐해에 대해서 모르지만, 이걸 끼도록 만든 사람들은 그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 여인들 중에 바람을 피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남편이나 가족이 목에서 굴렁쇠를 벗겨내는 벌을 주었기 때문이다. 굴렁쇠를 낀 여인들에게 일정 기간이 지난 뒤 받침대 역할을 하던 굴렁쇠를 벗기면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고통스럽게 지내야 하고 심지어 목이 부러져 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어느 네티즌의 여행기에서<자료 2> 문화상대주의"서로 다른 문화권은 그 나름의 도덕 규범을 가진다"는 생각은 많은 사상가들에게 도덕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어 온 것처럼 여겨진다. 그들은 윤리학에서 보편적 진리(普遍的 眞理)를 찾고자 하는 생각은 신화(神話)에 불과하다고 본다. 즉 모든 사회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윤리 규범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다른 사회에는 서로 다른 관습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관습(慣習)에 대해 "온당하다"거나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렇게 할 경우에 그것은 그러한 관습들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독립적인 표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독립적인 표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표준은 특정한 문화권 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사회학자 숨너(W.G. Sumner)는 1906년에 쓴 글에서 "옳은 길이란 선조들이 사용하였고, 우리들에게 전수해 준 길이다. 전통은 그 자체 타당성을 가진다. 전통은 경험에 의해 증명될 수 없다. 옳음의 개념은 민속(民俗)안에 있다. 그것은 민속 밖에 있지 않고, 그것과 독립된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또 테스트할 수 없다. 민속 안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그대로가 옳다. 그것은 전통적이고, 자체 속에 조상들의 정령의 권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윤리적 규범의 상대성 즉 문화에 따라 윤리적 규범은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 그리고 그것은 그 사회 내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인정되고, 작용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윤리학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갖도록 유도해 왔다.말하자면 문화적 상대주의자는 {도덕적 진리의 객관성(客觀性)과 보편성(普遍性)}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부정하는 것이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윤리학(倫理學, Ethics)에 보편적인 진리 같은 것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여러 가지 문화적 규약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 규범이란 많은 규약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어떤 특별한 지위를 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자료 3> 극단적 상대주의문화 상대주의는 결국 윤리적 상대주의로 귀결된다. 각 사람의 판단이 문화에 매여 있다면 윤리적 판단조차도 마찬가지로 문화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도덕은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문화의 하위 개념(사회 관습에 대한 적응)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타당한 판단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판단은 문화에 따라 상대적일 뿐이다. 만일 그렇다면 과부를 함께 태워 죽이는 풍습에 대해서, 또는 사람을 잡아 먹는 풍속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침묵해야 하는가?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문화와 문화 사이의 교류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 상대주의와 윤리 상대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윤리 상대주의를 일관되게 주장한다면, 사실은 타인에 대한 존경과 인정보다는 오히려 제 3자적 관점에서 방관과 무관심을 초래할 수 있을 뿐, 실제로 다른 문화와 상호 교류가 불가능할 수 있다. 다른 문화의 인정과 존경, 그리고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인정과 존경은 그와 같은 문화의 삶의 방식과의 만남을 통해 내 자신이 변화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진정한 인정과 존경의 의미가 있다. 제 3자적 관점에서의 인정과 존경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에 대한 존경과 인정을 위해서 반드시 문화 상대주의와 윤리 상대주의를 지지해야 할 필요는 없다. 문화의 상대성에 대한 인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성에 대한 추구는 양립 불가능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문화를 한 사회 집단 구성원들이 지닌 독특한 생활 양식, 혹은 생활의 총체로서 이해한다면 어떤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처해 있는 독특한 자연적/사회적 상황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문화를 이해하는데 있어 상대론적 관점은 매우 유용하다.그러나 이러한 문화 상대주의를 극단으로 밀고 갈 경우 위에서 언급된 것처럼 다른 문화와의 상호 교류 자체가 불가능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같은 기본적인 윤리적 가치마저 훼손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 상대주의가 유의미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의 바탕에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쟁점 확대하기1. 문화상대주의 관점가. 각기 다른 사회는 서로 다른 도덕적 규범들을 가지고 있다.나. 하나의 사회적 규범을 다른 사회의 규범보다 낫다고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객관적 표준이란 없다.다. 우리 자신의 사회의 도덕적 규범은 어떤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규범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라. 윤리학에서 {보편적 진리}란 없다. 다시 말해, 모든 시대(時代), 모든 사회(社會),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게 적용될 수 있는 어떠한 도덕적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마. 한 사회의 도덕적 규범은 그 사회 안에서 무엇이 옳은 가를 결정해 준다. 다시 말하면, 만일 어떤 사회의 도덕적 규범이 어떤 행동을 옳다고 말하면, 그 행동은 적어도 그 사회 안에서는 옳은 행동이 된다.바. 따라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우리는 {타 문화권(文化圈) 사람들의 행위에 대해 관용(寬容)}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2. 문화절대주의 관점가.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것으로 자문화중심주의 또는 자민족중심주의로 볼 수 있다. 자민족 중심 또는 자민족 우월의 사상인 에스노센트리즘(ethnocentrism)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나. 자기 문화만을 우수한 것으로 믿고, 다른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나 ?다른 문화를 자기 문화의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고정관념)를 지닌다.다. 장점으로는 문화의 주체성 유지, 사회통합의 수단에 용이하다.라. 단점으로는 배타적 국수주의, 국제적 고립, 문화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마. 사례로는 중국의 '천하도', 한국인의 개고기 식용을 부정하는 태도 등을 들 수 있다.바. 자신이 속한 사회집단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적극적인 참여와 복종적 태도를 취하고,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로 배척하는 것도 에스노센트리즘에 포함된다. 나치의 유대인 박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쟁점 기출문제1. 논술 : 2003학년도 서울교대 정시 논술 문제다음 예시문은 문화 상대주의와 관련된 논의이다. 이에 대한, 자신의 찬성 또는 반대의 견해를 논리적으로 진술해 보시오.(1,400자 내외)2. 논술 : 2008학년도 건국대학교 수시2차 논술 문제[문제 1] 제시문 [A]와 [C]를 연관 지어서 문화의 속성에 대하여 논하시오.(501-600자)[문제 2] 제시문 [D]의 두 표를 분석하여 아래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검증하시오. 단, 내용을 서술함에 있어 제시문 [A] 또는 [B]에 나온 개념어를 두 개 이상 사용할 것.(501-600자)2. 면접 : 2002학년도 부산대대 정시 문제[문제] 우리나라 개고기 문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문제] 개고기와 문화상대주의를 말해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