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관련상식
▲ NLL, 북방한계선(Northern Limit Line)1953년 정전 직후 클라크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 북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상경계선. 1953년 7월 27일 이루어진 정전협정에서는 남북한 간 육상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양경계선은 설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이던 클라크(Mark Wayne Clark)가 정전협정 직후 북한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하고 북한에 공식 통보도 하지 않은 해양의 한계선이다. 영문 머리글자를 따서 'NLL'로도 부른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북방한계선을 둘러싸고 북한은 여러 차례 일정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해왔으며, 서해에서 일어난 남북 충돌의 빌미가 되고 있다.▲ 7·4 공동성명분단이후 최초의 남북한 합의문서라 할 수 있으며, 이 성명에서 남북한은 '자주·평화·민족 대단결'이라는 통일의 원칙에 합의하였다. 2000년 남북공동선언에서 7·4공동성명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7·7 선언1988년 노태우 정부는 '남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새로운 남북 관계의 정립을 시도하면서, '민족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특별선언'을 발표하였다. 이 선언의 내용은 북한을 대결의 상대가 아니라, '선의의 동반자'로 간주하여 함께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이 선언으로 민족 공동체 형성을 위한 남북간 인적·물적 교류 협력의 기본 방향이 설정되었다.▲ 6·15 남북공동선언6·15 남북 공동 선언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김대중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사이의 회담을 통해 작성되었다. 그 5개 기본 조항은 다음과 같다.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10·4 남북정상선언-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이 합의한 선언이다. 흔히 10·4 남북정상선언 또는 2007 남북정상선언으로 불린다. 이 선언은 남북 정상간의 회담을 통해 작성되었고, 2007년10월 4일 오후 1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 정상이 공동으로 서명했다. 그 8개 기본 조항은 다음과 같다.1. 6·15 남북 공동선언 고수 적극 구현2.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전환3. 군사적 적대관계 종식, 한반도에서 평화 보장 협력4.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관련된 정상들이 만나 종전 선언 추진 협력5. 경제협력사업의 적극 활성화와 지속적 확대 발전6.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빛내기 위해 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발전7. 인도주의 협력사업 적극 추진8. 국제무대에서 민족의 이익과 해외 동포들의 권리와 이익을 위한 협력 강화▲ 개성공단군사분계선 북쪽에선 약 10km쯤 떨어져 있으며, 서울에선 육로로 1시간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다. 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있다. 70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중 공장면적은 800만평이며, 생활, 관광, 상업 구역 등이 1200만평이다. 리빙아트, 신원 등의 기업들이 2004년 말 입주하여 생산을 시작한 이래, 2010년 현재 1단계 100만평의 조성을 완료한 상태이며, 2단계 조성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 2010년 9월 현재 4만4천명의 북한 근로자가 일하고 있으며, 매월 900명 정도 증가되고 있다.개성공단 1단계 사업은 현대아산(개성사업단)과 한국토지주택공사(남북협력사업처)가 남측의 사업 주체로, 지도총국과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가 북측의 사업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금강산관광금강산관광지구는 북한에 속한 특구이다. 2002년금강산 관광을 개방하면서 설치되었다. 1998년부터 남한 관광객들의 금강산 관광이 허용되었다. 처음 금강산 관광은 크루즈를 이용해서 관광하는 것이었지만 육로를 통해 금강산으로도 갈 수 있게 하였다. 빼어난 경관으로 민족의 사랑을 받아온 금강산은 분단으로 인하여 갈 수 없는 산하로 분류되었으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회장의 소떼 방북과 거듭된 남북관계 개선 노력의 첫 결실로 금강산 관광 사업이 시작되었다. 금강산관광은 2005년 6월 100만명을 돌파할 만큼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되었고, 개성관광으로도 확대되었다. 2008년 3월에는 승용차관광의 시대가 열려 남북화해의 상징이자 성과로 인정받았으나, 2008년 7월 11일 박왕자씨 피격사건으로 중단되어 지금까지 계속 중단되고 있다.▲ 대한항공 858편 테러사건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대한항공 보잉 707기가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였고, 이 사건은 1987년10월 7일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서울 올림픽 대회를 방해하고, 대한민국 내 대정부 불신을 조장을 목적으로 실행되었다는 남한 당국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여객기 폭파 후 두 폭파범은 19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조사를 받던 중, 김승일은 독약으로 자살하고, 김현희는 남한으로 압송하였다. 김현희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김현희의 미모에 반한 한국과 일본의 남성들이 러브콜을 보내는 등 숱한 사연을 남겼고, 안보가 선정적으로 이용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