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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번의 거절 뚫었다…학문의 심장 벨기에에 ‘한국학’ 깃발 꽂은 김소이 박사

프랑스계 백인 장벽 깨고 벨기에 루벤대 한국학과 동아시아미술사 전임교수 임용
5년간 매년 80개 원서 던지며 버틴 루틴의 힘…“유럽 중심서 한국학 지평 열 것”

지난 4일 김소이 박사를 김제시 금구면에 위치한 고향집에서 만났다 / 사진=박은 기자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 학문의 심장부, 벨기에 루벤대학교(KU Leuven) 교단에 한국인 학자가 선다. 미술사와 한국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학문적 영토를 개척해온 김소이(39) 박사가 그 주인공이다.

1425년 설립된 루벤대학교는 교황청 승인을 받은 가톨릭 명문 대학으로 유럽 내 학문적 권위가 매우 높다. 김 박사는 오는 9월1일부터 이 대학교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 미술사를 담당한다. 그동안 프랑스계 백인 학자들이 독점하다시피 했던 자리에 한국인 교수가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은 현지 학계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4일 김제시 금구면에 위치한 고향집에서 만난 김 박사는 “임용되고 정말 놀랐다”며 “간헐적으로 교수임용이 이뤄지는 유럽에 자리를 잡게 돼 기쁘고 놀랍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의 이력은 다채롭다. 전주여고 졸업 후 홍익대에서 예술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술실기와 문화이론, 여성학까지 경계 없이 파고들었다. 미술을 사회와 문화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기른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은 올가을 루벤대 대학원에서 선보일 수업에 녹여낼 예정이다. 유럽의 초현실주의 미술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추적하는 커리큘럼이다. 김 박사는 “유럽에서 한국 미술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흐름을 같이 짚어내는 것이 확실한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 대학이 한국인 학자에게 손을 내미는 배경에는 K-콘텐츠의 인기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 북한체제 연구에 머물던 해외 ‘한국학’은 최근 BTS와 넷플릭스 시리즈 등 문화의 힘으로 수요가 폭발했다. 대학들이 앞다투어 한국학 전임교수직을 신설하면서 대중문화가 상아탑의 지형까지 바꾼 셈이다.

그러나 세계무대의 최전선은 여전히 불모지다. 국내 연구들이 영어로 번역조차 안 돼 있어 매 학기 최신 논문을 뒤져 강의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지역학을 깊이 있는 이론이 아닌 신비한 ‘이야기 보따리’로 치부하는 서구 학계의 은밀한 편견도 벽이었다. 그는 이 벽을 깨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공부하며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교수 임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또한 냉혹한 잡마켓(Job Market)과의 사투였다. 5년간 매해 50~80개의 원서를 미국 대학에 던졌고 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마다 깊은 무력감이 밀려왔다. 특히 이민자 장벽이 높아지던 시기에는 절박함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늪에서 그를 건져올린 것은 일상의 단단한 루틴이었다.

김 박사는 “주변의 권유로 조깅과 요가를 시작해 매일 정해진 사이클 안에서 단순한 일상에 집중했다”며 “거절을 당해도 ‘자고 일어나면 또 원서 내지 뭐’라는 마음으로 지냈다”고 회고했다. 이처럼 일상에서의 마음 수렴이 결국 기회를 잡게 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김 박사는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와 인접한 벨기에 브뤼셀의 지리적 이점을 발판 삼아, 앞으로 현대미술 연구를 확장하고 유럽 내 젊은 연구자들을 잇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다는 포부를 전했다.

한때 웹툰 작가를 꿈꿨던 김 박사는 여전히 만화책을 사 모으는 게 가장 즐거운 취미라고 했다. 그는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하며 웃었다. 루벤대 교수 임용도 어쩌면 주변의 우려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다. 수백 번의 거절 앞에서도 중심을 지켜온 고집스러운 몰입이, 이제 유럽의 중심에서 한국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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