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정읍문화유산연구회가 정읍시 칠보면의 문화유산을 조사한 책자 <하늘과 땅과 사람과>(소담기획)을 펴냈다. 2023년 정읍시 보조금을 지원받아 실행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완한 이번 책은 정읍시 칠보면의 연혁으로 문을 연다. 칠보는 통일신라 말 태수로 부임에 선정을 베푼 고운(孤雲) 최치원의 생사당에서 시작된 유네스코 등재 세계유산 ‘무성서원’이 있는 곳으로 옛 지명은 고현(古縣)이다. 책은 문화유산의 의미부터 천 년 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칠보에 산재한 유무형 문화유산을 망라하고 있다. 천년 흔적 ‘무성서원’,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의 ‘고현동향약’, 소고당 고단의 ‘고현 팔경’,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행한 박잉걸까지 세계유산부터 이름 없는 산중 암자까지 소개한다. 또 책에는 많은 자료사진과 함께 수필처럼 풀어 쓴 글이 수록돼, 독자들의 이해도를 한층 높였다. 사진은 이흥재 정읍시립미술관장이 글은 안성덕 시인이 맡았다. 안성덕 정읍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은 “이번 책자는 칠보가 왜 ‘태신선비문화’의 중심지인지 보여주는 자료”라며 “현재 거주 주민은 물론 출향민들에게도 자긍심과 애향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리도 중요하지만, 그 고유한 가치를 후대에 온전히 전하는 일 또한 우리의 역할”이라며 “앞으로 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상·추진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전현아 기자
(사)한국문인협회 순창지부(지부장 장교철)는 지난 10일 순창군도시재생지원센터 소회의실에서 ‘권일송 시인 추모 30주년 기념 및 순창문학 제30호 출판기념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순창 출신인 권일송(1933~1995) 시인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고 지역 문학의 저변확대를 위해 마련됐다. 특강에 나선 배종덕 지역주의타파 범국민위원회 위원장은 “권 시인은 목포문학을 꽃피운 인물이지만 문학적 뿌리는 고향인 순창”이라며 “순창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는 사업이 더욱 활발히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유족 대표인 장남 권훈씨는 “아버지의 고향에서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생가 복원과 문학관 건립 등 기념사업에 유족으로서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함께 공개된 <순창문학> 제30호는 ‘권일송 추모 특집’으로 기획돼 제자 최창일 시인의 평론과 유족의 회고록 등을 담았다. 이어진 시상식에서는 김형오 시인과 신인수 순창군 문화관광과장이 각각 공로패와 감사패를 수상했다. 행사에 앞서 이완소 시인이 권일송 시인 대표시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를 임순이 시인이 ‘그리운 가잠’을 낭송하며 추모의 의미를 더했다. 한편, 순창문협은 이날 정기총회를 통해 오는 4월부터 순창군민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창작교실’을 개설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는 신정이·이성용·김정숙 군의원과 김철수 순창예총 회장 등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박은 기자
시는 왜 살아가면서 현실을 잊고 살 수는 없는가. 그것은 삶이 시적이길 기대하는 사람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기도 하고 어쩌면 한 켠으로 대체되지 못하는 철학적 관념을 시가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과 생활을 불러들여 벌이는 시인의 사소하면서도 디테일한 소묘는 우리를 점점 시인의 삶속으로 끌어들인다. “우린 초면 입니까?”(여긴 초면입니다)처럼 당신과 나와 우리를 접목시키는 간결하고도 자연스러운 능청은 읽는 내내 지루함을 지워주기에 충분하다. 여기 현실과 꿈의 경계를 벽 하나, 벽지 한 장으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찾고 있는 시집이 있다.(조금조금 초록벽지. 달을 쏘다. 정선희) 어딘가 있을 벽의 구조물을 통과하면 아이들의 안쪽에 있을 꽃밭을 향해 간다. 벽은 벽과 벽지로 가로 막혀 있다. 가시적 전개로는 벽을 통과해 세상으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벽이라는 가로 막힌 상태를 오랫동안 지지 않는 들꽃으로 이미지를 변환시키며 피어있는 벽지를 사이에 두고 틈을 소환, 벌어지는 환상통을 노래한다. 벽지로 막아놓은 세상입니다 벽을 통과하면 하얀 꽃잎이 휘날립니다 웅성거림을 찾아 아이가 벽 속으로 들어가고 사람으로 매만진 저녁이 반질거립니다 아무도 아이를 찾지 못하네요 아이는 벽 밖으로 나오려다 넘어집니다 초록벽지는 또 한번 답장일까요 초록과 같이 자란 벽이 안을 밖으로 바꿉니다 반쯤 빠져나온, 벽지에서 바라본 옆모습이 들꽃 같습니다 이름을 불러 보지만 입술 밖으로 떨어지는 건 빨간 꽃잎이네요 초록벽지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숨바꼭질이 너무 재밌던 나이,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느라 배가 고픈 줄도 몰랐습니다 벽지가 바래도록 자란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요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입니다 천장과 벽 사이 어딘가 있는 세상 찢어진 벽지를 꽃잎인 양 날려 봅니다 벽을 넘을 땐,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 않습니다 -「조금조금 초록벽지 전문」 벽이라는 경계에서 걸려 넘어지고 바깥세상으로 빠져나오지 못할 때 벽은 꽃잎을 끌어들여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다. 통과할 수 없는 구조물의 탈출을 감수한다. 초록 벽지의 기억을 꽃잎인 양 날리며 아무렇지 않다는 말로 시적 주체를 이미지로 변환하여 우리에게 삶을 설득하고 불가능한 벽의 탈출을 통해 사라진 아이를 뜯어진 벽지에서 발견할 때 비로소 오래된 벽지가 아닌 우리 생이 소환되는 이유다. 벽은 더 이상 벽이 될 수 없음을 제시하며 우리의 선입견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로 기억을 꺼낸다. “사방연속무늬로 뻗어나간 들꽃”에서 우리는 풍성했던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렇게 벽지를 통해 기억을 연결하여 미래를 찾아간다. 벽이라는 일방적 가로막힘의 현실을 타파해가는 시적 이미지의 전개가 매우 흥미롭다. 살아가면서 “벽을 넘을 때”처럼 “숟가락 한두 개쯤 없어져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이 미래를 향한 삶을 부축해 주는 이유다. 무의식적 의지가 내보이는 시어의 복귀. 아름다운 시어보다 이미지의 긍정성으로 의미로 틈입해 써 내려간 이미지는 빛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페룰라 꽃”을 불씨로 이미지를 전환시키듯 오래볼수록 꽃은 불이 붙는다는 표현은 지중해에 있는 “에게 식당”에 있고 그 꺼지지 않는 불씨로 미래를 이야기 한다. 불씨가 내는 불빛은 “신전이 아니라 폐허”를 찾는 빛이다. 그럼에도 “아직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다가와 우리를 덥혀준다. 이처럼 시인이 현실 속 가득한 삶의 여정을 재밌고 유쾌하게 이미지를 환기시키는 것은 아직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제시하는 시인의 따듯한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박복영 시인은 1997년 월간문학 등단해, 2014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2015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됐다. 그는 작가의 눈 시 작품상과 여순10.19평화문학상 등 서울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를 받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아무도 없는 바깥> 외 5권과 시조집<그늘의 혼잣말을 들었다>외1권이 있다. 현재 그는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황진숙 수필가가 10년의 응축된 사유를 녹여낸 첫 수필집 <곰보 돌 궤적을 긋다>(수필과비평사)를 펴냈다. 이번 수필집은 작가가 일상의 사물들을 집요하게 마주하며 완성한 44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 제목에 영감을 준 대표작 <곰보 돌>은 바닷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멍 숭숭 뚫린 작은 돌 하나에 주목한 글이다. 작가는 파도와 바람에 깎여 상처투성이가 된 이 돌을 보며 단순히 ‘낡고 못생긴 것’이 아니라 돌이 견뎌온 치열한 시간들의 흔적을 읽어낸다. 시련과 상처로 얼룩진 우리네 인생 역시 나만의 소중한 궤적을 그려가는 과정임을 따뜻한 시선으로 일깨워준다. 작품집 곳곳에는 풀무, 댓돌, 소금, 숯, 종이컵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박한 사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황 작가는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소재들의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안에 담긴 삶의 철학을 끌어낸다. 흔한 종이컵에서 현대인의 고독을 읽어내고, 짠 소금에서 생을 지탱하는 단단한 힘을 발견하는 식의 통찰은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강돈묵 문학평론가는 “황진숙 작가의 시선은 예리하고 날카롭다. 사물이나 개념의 본질을 찾아내는 데 남다른 치밀성이 있다”며 “작가는 찾아낸 본질을 형상화하기 위해 블록을 형성하고 하나로 조립하는 공법을 취한다. 충실한 소재로부터 출발한 블록은 빈틈없이 맞물리며 수필의 형상을 구축한다. 어떤 타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견고하다”고 밝혔다. 충북 옥천 출생인 작가는 2016년 <수필과비평>에 ‘발’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백교문학상, 중봉조헌문학상, 천강문학상 대상, 등대문학상, 수필과 비평 올해의 작품상12 등을 수상했다. 박은 기자
한국디카시학회 전북지부 산하 ‘글벼리디카시문학회’가 동인지 <감정 계약서>(도서출판 실천)를 펴냈다. 글벼리디카시문학회의 두 번째 결실인 이번 시집에는 초대시인 3인(김왕노·복효근·이정록)의 작품 3편과 동인 7인(김애경·김이숙·김혜숙·나병훈·이동욱·조삼현·최장선)의 작품 56편이 수록돼 각기 다른 개성과 미학을 펼쳐 보인다. 시집을 채운 10인의 시선은 자연과 일상, 가족, 관계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마주하는 대상에 닿아 있다. 그러나 꾸준한 습작과 여러 차례 전시회를 통해 다져온 이들의 시적 사유는 익숙한 풍경을 낯설게 전환하며 기발하고 의외적인 장면을 빚어낸다. 이어산 한국디카시학회 회장은 이번 시집에 대해 “인류 역사상 창조적인 성과는 대부분 기존의 틀을 벗어난 사유에서 비롯됐다”며 “디카시 역시 시적 대상에서 떠오른 생각을 전경화한 시문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예술디카시는 창작자의 기준과 시각이 철저히 반영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디지털 시문학”이라며 “기존 시각과 다른 의외성이 없다면 좋은 작품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회장은 “글벼리디카시 동인들의 치열한 창작열이 이러한 단계를 충분히 통과해, 국내 시단을 떠받치는 단단한 모퉁이의 돌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전현아 기자
소설을 사랑하는 독자에게, 잊고 지내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불러내는 깊은 울림과 같은 책이 출판됐다. 한지선 소설가의 신작 중편소설집<오월의 숲>(문예원)이 바로 그것. 작가는 인간의 내면을 통과하는 상실과 그리움, 사랑과 고독, 붕괴와 회복 등을 4편의 중편소설로 정교하게 직조한다. 책에 수록된 네 편의 작품은 서로 다른 인물과 서사를 다루지만, 공통으로 ‘상처 입은 인간이 어떻게 다시 삶 쪽으로 돌아오는가’라는 하나의 중심 질문을 공유하고 있다. 표제작 ‘오월의 숲’은 고립된 스무 살 여성이 숲과 자연, 그리고 상처 입은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삶을 회복해 가는 서정적 성장 서사다. 도심과 학교 그리고 숲이라는 공간의 대비 속 주인공은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미세한 희망의 결을 따라 자기 내면으로 자취를 감춘다. 작품에서 숲은 배경이 아닌 치유의 주체이며, 침묵의 연대는 인간을 다시 살아 있게 하는 힘으로 기능한다. ‘로얄다방을 아세요?’는 대학 시절 한 남자의 한마디가 수십 년 후까지 한 여성의 삶을 지배하는 과정을 따라가는 심리 소설이다. 이 작품은 사랑의 실패보다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형성하는지 집요히 탐색한다. 또 다른 수록 작품 ‘겨울로 가는 길’은 파탄 직전의 결혼 생활 속, 한 남자가 언어와 음악, 상상을 통해 자기 존재를 지탱해 가는 기록으로, 이별 직전의 인간이 겪는 내면의 균열과 공포를 치밀하게 그려낸다. 마지막 ‘일곱 날의 새벽’은 상처 입은 여성이 일곱 날 동안 고요와 수행,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통과하며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치유 서사다. 작품은 인간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김익두 문학평론가는 추천사를 통해 이번 책을 “작가의 소설들은 늘 그리움과 이루지 못한 사랑, 끝끝내 기억에 남아 오히려 고통스런 삶을 맑게 깨어 살아 있게 하는 사랑의 아픈 기억과, 그런 아픔을 되새기며 지새우는 수많은 불면의 밤들로 가득 차 있다”며 “그러면서도 때로는 경쾌하고 부드럽게 추억의 아픔과 지나온 삶의 굴곡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재빠르게 잔잔하고 맑게 굽이쳐 흘러간다”고 평했다. 작가는 “예측할 수 없는 삶 속 회색빛 스무 살에 한 줄기 햇살처럼 스몄던 날들의 이름은 사라졌거나, 어디에 있는지 만날 수 없는 시공간 너머로 가버렸지만, 모두의 가슴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며 “네 편의 소설 중 두 편이 오월의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 같은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가 됐다. 오래전 만들어진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놓는다”고 말했다. 이어 “빠른 위로 대신 오래 남는 문장으로 채운 이번 책이 독자의 삶 속에서 각자의 ‘오월’을 다시 피워 올리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정읍 출생인 그는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해 대학도서관 사서로 일했다. 장편소설<그녀는 강을 따라갔다>를 시작으로 <여름비 지나간 후>, 소설집 <그때 깊은 밤에>, <여섯 달의, 붉은> 등을 발표했으며, 공동집필 테마소설집 <두 번 결혼할 법>, <마지막 식사>에 참여했다. 제1회 전북소설문학상, 제2회 작가의눈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전현아 기자
특유의 위트 있는 선과 날카로운 통찰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이 그래픽 에세이 <외롭꼴>(도서출판 기역)을 출간했다. 작가는 경쟁 사회 속에서 길을 잃은 청년들에게는 생존의 지혜를,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는 중장년에게는 열정을 안내하는 밀도 높은 말과 이미지를 책에 담아냈다. 책의 제목인 ‘외롭꼴’은 외로움을 뜻하는 Lonely와 마음이 움직여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뜻하는 ‘꼴리다(Horny)’의 합성어다. 부모와 사회가 정해준 착한 어른의 틀 안에서 억눌려온 욕망과 감각을 불순한 씨앗이라 명명하며 이를 직시할 때 비로소 고유한 삶의 꼴이 완성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20대까지는 지루할 만큼 정상이었으나, 내 안의 불순한 씨앗이 싹을 틔워 나만의 그림자를 만들었다는 고백, 규격화된 삶을 강요받는 이 시대 모든 세대에게 던지는 파격적이고도 다정한 질문인 셈이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의 모든 고통과 결핍을 ‘놀이’로 치환한다. 사랑과 돈, 장애물, 죽음까지도 열두 가지 놀이의 문법으로 풀어냈다. 각박한 현실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가장 감각적인 처방으로 ‘놀이’를 택한 저자의 새로운 시각은 따뜻하고 신선한 재미를 선물한다. 박은 기자
구한말 격동기를 살다간 유학자 초은 신관열(1827~1904)의 생애와 학문세계를 집대성한 <초은문집>(한국문화사)이 국역 발간됐다. 이번 문집은 한문학 전공자로 향토사와 고전문학 연구에 몰두해온 홍순석 강남대 교수가 번역을 맡아 난해한 한문원전을 독자들이 읽기 쉽게 풀어냈다. 이를 통해 그동안 가려져 있던 지식인들의 내면과 사회적 역할을 조명한다. 특히 국역본은 서지학 측면에서 지방의 출판 정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 <초은문집>의 저자 신관열은 부안의 유서 깊은 가문인 영월 신씨 집안에서 태어난 학자다. 위정척사 정신을 지키며 평생 은거와 학문에 매진한 인물로 그의 호인 초은은 나무를 베어 숨어 산다는 의미로 관직의 길 대신 향촌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선비의 절개를 지켰다. 실제 부안의 유림과 시계를 맺고 부안의 경승지를 탐방하며 시문을 화답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번 국역본에는 신관열의 문집 <초은유고> 4~6권에 수록된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해 담아냈다. 책은 크게 시와 산문으로 나뉜다. 시 부문에서는 부안의 명승을 탐방하며 지은 기행시부터 지방 문인들의 한시, 저자의 신변잡기를 다룬 글들이 담겨 있다. 산문 부문에는 저자 자신과 집안 관련 글과 국가의 운명을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마음까지 폭넓은 감성을 볼 수 있다. 번역자 홍 교수의 꼼꼼한 주석은 한자어의 이면에 숨겨진 역사적 배경과 인물관계를 명확하게 짚어낸다. 또한 지역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지식인의 생활사와 학문을 입체적으로 복원해 신관열이라는 인물을 다각도로 분석해냈다. 영월신씨 일옹공파종회 신이영 회장은 간행사를 통해 “이번 문집에는 후손들이 궁금해 하던 선조의 뿌리와 이력이 남김없이 기록되어 있다”며 “초은공은 영월신씨 일옹공파 후손들의 귀감이시며 특히 선영의 보존과 종인들의 화목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신 분이다”라고 밝혔다. 홍순석 교수는 용인 출신으로 강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며 인문과학연구소장, 인문대학장, 포은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그동안 <성현문학연구>, <양사언 문학연구>, <우리 전통문화와의 만남>, <용인학> 등 80여권의 책을 펴냈으며, 번역서로는 <봉래시집>, <허백당집> 등이 있다. 박은 기자
어린 독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단편동화 여섯 편을 엮은 동화집 <대단한 소심이>(청개구리)가 출간됐다. 백명숙 아동문학가의 첫 동화집인 이번 책은 소재와 배경은 서로 다르지만, 따뜻한 감성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자신감을 심어 주며 가족과 주변의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일깨우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동화집은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고 소박한 순간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각 작품마다 아이들이 살아가며 지녀야 할 마음가짐과 가치, 태도를 정감 있는 목소리로 풀어내며 자연스럽게 전한다. 백 작가는 이번 동화집에서 아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고 힘들어하는 ‘관계’에 특히 주목했다. 가정과 학교, 동네에서 만나는 어른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비롯되는 마찰과 갈등, 우정과 선의, 가족애 등 다양한 사건과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집중했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일상 이야기는 생활 체험에서 우러나는 재미와 함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표제작 ‘대단한 소심이’를 비롯해 ‘초록이의 생존기’ 등은 따뜻한 감성으로 마음을 어루만지며 자신감을 키워 주고, 가족과 주변 존재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일깨운다. 이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어떤 일이든 스스로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전한다. 작가는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마음을 만난다. 설레는 마음, 외로운 마음, 때로는 아주 작게 흔들리는 마음까지 그 모든 마음속에는 늘 ‘이야기’가 숨어 있다”며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동화는 그 작고 고요한 마음의 소리를 하나하나 따라가며 써 내려간 나의 첫 동화집”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화는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이야기는 언제나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라며 “이 책을 읽는 어린이들에게는 친구를 만들고 자신을 믿으며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전해지길 바란다. 어른들에게는 잠시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마음과 웃음, 두려움, 투명한 눈빛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부안 출신인 백명숙 작가는 2023년 ‘동화마중’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게으른 뇌를 깨워줄 책 읽기>, <책 쓰기를 위한 글쓰기> 등이 있다. 전현아 기자
숏폼과 알고리즘이 이야기를 소비하는 방식을 바꿔놓은 시대, 오래 남는 서사는 가능한가. 강영준 상산고 국어 교사가 쓴 <최소한의 문학>(두리반)은 이 질문에 한국 소설 100년의 시간으로 답하는 책이다. 이광수의 <무정>에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까지, 교과서에서 익숙하지만 깊이 있게 다뤄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통해 우리 사회와 개인의 삶을 다시 읽어낸다. 이 책은 191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한국문학이 시대를 어떻게 사유해왔는지를 따라간다. 식민지와 근대의 모순, 전쟁과 이념의 상처,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그늘, 민주화 이후의 불평등과 젠더 문제,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서사까지 다섯 개의 부로 구성해 한국 사회의 굴곡진 궤적을 조망한다. 수록된 작품들은 모두 ‘당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문학을 철학과 인문학의 질문과 연결하는 강 교사의 해석 방식이다. 최인훈의 <광장>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김승옥의 <무진기행>은 라캉의 상상계와 상징계 개념을 통해 읽힌다. 황석영의 <삼포 가는 길>은 바우만의 ‘액체 근대’로, 조세희의 <뫼비우스의 띠>는 도시 공간을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문제로 확장된다. 철학이 개념으로 설명한 것을 문학이 삶의 이야기로 먼저 보여주었다는 저자의 관점은 설득력을 얻는다. 저자는 전주 상산고에서 오랜 기간 국어를 가르쳐온 현직 교사다. 책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된 만큼, 실제 수업 현장에서 축적된 질문과 토론이 글의 바탕이 됐다. 문제 풀이 중심의 독해를 넘어, 작품을 시대와 삶의 맥락 속에서 이해하는 읽기 방식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학생과 교사, 학부모 모두에게 실질적인 참고서가 된다. 부록으로 실린 교과 연계표 역시 교육 현장에서의 활용도를 높인다. 김병진 이투스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추천사를 통해 “우리가 세대를 뛰어넘어 옛 음악에 공감하는 것은 그 안에 ‘서사’가 있기 때문이며, 그 서사의 힘이 가장 집약된 매체가 바로 소설”이라며 “이 책은 근대의 태동과 이데올로기, 성장과 자본주의, 경계를 넘는 움직임을 따라가며 한국 사회의 구조를 짚고, 그 서사 속에 자신을 비춰 보게 만든다”고 평했다. 이번 책이 말하는 ‘최소한’은 분량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들이라는 뜻이다. K-팝과 K-드라마를 넘어 K-소설이 주목받는 지금, 이 책은 지극히 한국적인 서사가 어떻게 보편적인 질문으로 확장되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콘텐츠의 흐름 속에서, 한국 소설을 다시 읽어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한다. 전현아 기자
소설 쓰기란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일이라고들 한다. 소설을 쓰다 보면 분명한 문장까지는 아니지만 첫 장면과 끝 장면을 정해놓고 글을 쓰게 된다. 물론 계획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대개 마음에 품었던 결말로 매듭을 짓는다. 그러므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황석영 작가의 『할매』를 읽었다. 첫 문장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고, 마지막 문장은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다. 긴 서사를 걷어내고 두 문장만 남겼을 때 ‘새가 날아오자 어디 갔다 인제 오냐’고 묻는 정황이 눈앞에 그려진다. 새가 어디에서, 얼마나 오랜 기간 날아왔기에 인제 오냐고 묻는 것일까. 양팔 벌려 새를 반기는 화자는 다름 아닌 할매 나무다. 작가는 수수께끼 같은 두 문장을 잇기 위해 육백 년의 시간을 장대하게 풀어놓는다. 짐작하듯 새에게서 나무가 태어났다. 팽나무 열매를 먹은 새가 갯벌에서 죽음을 맞았고, 그 몸에서 싹이 돋았다. 어린 팽나무는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점점 둥치가 굵어진다. 새와 나무는 역사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에 하루가 백 년이거나 육백 년이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작가는 새가 겨울철마다 날아들고 나무가 나이테를 늘려가는 자연의 시간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그 세월의 주변인으로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수도승 몽각은 나무 옆에 움막집을 짓고 살다가 바다로 들어가 스스로 칠게의 먹이가 된다. 몽각이 떠난 자리에 당골네가 들어와 자식을 낳고 산다. 자식이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는다. 새의 번식이나 매한가지다. 그렇게 한 집안의 가계가 몇 대를 거치는 동안 세상은 생명을 해치고 빼앗는 역사를 거듭한다. 병인박해와 동학혁명과 일제 징병으로 아까운 목숨 들이 꽃잎처럼 떨어지고, 서해안 간척사업에 의해 수많은 갯벌 생물이 폐사하고, 미군 전투기의 폭음이 할매 나무를 괴롭힌다. 작품의 후반부는 그래서 주먹을 쥐고 읽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으며 작가가 조국 러시아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된 장면이 있다. 로스토프 가족이 사냥에 나서는 장이었는데 자연과 러시아인의 정서를 묘사하는 문장들이 압권이었다. 당당함과 자랑스러움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할매』를 읽으며 같은 느낌을 받았다. 새와 나무, 개똥지빠귀와 갯벌, 조개와 바다, 풀과 바람과 비와 눈과 금강과 만경강과 동진강 … 새가 팽나무와 해후하고자 수없이 명멸하며 생명을 잇는 동안에 조선의 풍광이 세밀화로 펼쳐진다. 덕분에 독자는 멀리서 망원 렌즈를 통해 탐조하듯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를 직관한다. 놀라운 독서의 경험이다. 사랑이 깊으면 자신이 살아가는 땅의 모든 것, 아픔과 고통마저 품어 안게 된다. 오래된 나무처럼, 작가 황석영처럼. 독서란 작가가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수수께끼 같은 첫 문장과 끝 문장의 퍼즐 맞추기 또한 독자의 몫이다. 유방지거 신부가 마침내 나무를 안았을 때 할매 나무는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한다. ‘이놈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가슴에 돌 하나가 얹어진다. 나무람과 안도가 뒤섞인 할매의 탄식은 유신부가 아니라 독자를 향한 방백이기 때문이다. 황석영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군산에 이사 오자마자 팽나무를 지켜드릴 것을 서원했다고 밝혔다. 그 약속으로 『할매』가 탄생했다. 방대한 자료를 응축하여 조선에서 현대에 이르는 유장한 역사를 아리랑 고개로 엮어냈다.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운율에 맞춰 노래하듯 읽는다. 할 일이 하나 남았다. 새만금 생태계 복원 미사가 매주 월요일에 전북도청에서 거행된다. 염두에 두어야겠다. 황보윤 소설가는 부여에서 태어나 우석대 경영행정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전북일보와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소설집 <로키의 거짓말>·<모니카, 모니카>, 장편소설<광암 이벽>·<신유년에 핀 꽃>이 있다.
배순금 수필가가 일상의 소박한 풍경을 서정적인 문체로 엮어낸 수필집 <사랑, 그 보이지 않는>(수필과비평사)을 출간했다. 책에는 교단에 몸담으며 아이들과 소통했던 추억부터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철학을 담은 37편의 수필이 수록됐다. 작가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자연의 변화와 일상의 사물들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하며 그 이면에 숨겨진 사랑과 삶의 의미를 진솔하게 풀어낸다. 특히 자신만의 섬세한 감수성을 투영한 수필은 서사와 서정이 어우러져 더욱 입체적이고 호소력 짙은 여운을 선사한다. 안도 문학평론가는 평설에서 “배 수필가는 가슴으로 수필을 쓴다”라며 “이 수필집은 인생을 관조하는 자세가 잘 드러난 수필이다. 체험에서 우러나온 수필이기 때문에 신선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의 수필을 추억의 강에서 낚아 올린 서정의 탑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수필가 배순금은 계간 한국시와 월간 수필과비평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각지대> <보리수 잎 반지>가 있다. 마한문학상과 전북문학상, 전북여류문학상 등을 받았다. 전북여류문학회 회장과 지초 문예회장을 역임했다. 박은 기자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을 환기하며 작품을 통해 사유와 감성의 확대를 모색하는 책 <시네마로그: 영화를 풀다>(수필과비평사)가 출간됐다. 중국‧한국독립영화 제작에 참여하고 FFF영화제 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해온 저자 하다감은 히든피겨스, 벌새, 소공녀 등 20편의 영화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집요하면서도 자상하게 풀어낸다. ‘영화를 알고, 영화를 보고, 영화를 좋아하게 되길 바란다’는 마음으로 고전영화부터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직관적이고도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분석해 부담 없이 따라갈 수 있다. “찬실이가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가질 때마다 장국영은 답을 알려주는 대신 찾는 방법을 이야기해준다.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결국, 찬실이는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져 자신의 삶을 살기로 한다. 영화의 마지막, 찬실이의 영화를 본 장국영은 박수를 보낸다. 스스로 성장한 찬실이의 인생에 응원과 위로를 보내는 뜻이리라”(p.51)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곁들인 하다감의 입체적인 안내를 통해 독자들은 예술적으로만 여겨졌던 영화의 세계가 격동하는 뜨거운 세계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한다. 저자 하다감은 중국 베이징영화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했고 1997년부터 영화해설과 영화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영화 속 속풀이 1‧2‧3>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이야기> 등이 있다. 박은 기자
종합문예지 <새만금문학>(신아출판사) 창간호가 출간됐다. 군산과 익산의 문우들이 의기투합해 시작된 <새만금문학> 창간호는 최근 지역 문예지가 겪고 있는 재정적‧분량적 축소의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시와 소설, 수필과 평론, 대담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며 200여명에 달하는 필진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문예지가 200~300쪽 내외로 발간되는 추세를 감안한다면 650여쪽에 달하는 분량은 파격적이다. 이는 단순히 페이지 수의 확장이 아니라 새만금이라는 거대한 간척지가 품은 문화적 잠재력과 확장성을 문학으로 증명하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러한 지향점은 창간호 특별대담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김철규 발행인과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이 ‘새만금문학과 새만금이야기’라는 주제로 나눈 대담을 보면 새만금이 단순한 산업기지를 넘어 K-문화의 전진기지가 되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새만금문학>을 문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정서는 개척과 상생이다. 바다를 메워 새로운 땅을 열듯, 척박해진 순수 문학의 토양에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전국을 아우르는 필진 구성은 지역 간의 경계를 허물고 ‘문학’으로 뭉치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문학의 둑을 올린 원동력은 ‘사람’이다. 전근표, 김옥중, 김옥녀, 김병옥, 강현녀, 전재복 등 지역의 굵직한 문인들이 발기인으로 참여해 창간의 주춧돌을 놓았다. 이들은 수차례 논의를 거쳐 새만금문화예술협회를 결성하고 전국 각지의 문우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주력했다. 창간호 책표지도 남다르다. 운경 황호철 작가의 작품 ‘새만금의 큰 뜻'으로 장식된 표지는 <새만금문학>이 지향하는 역동성과 생명력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묵직한 두께감과 어우러진 작가의 작품은 독자에게 새만금의 광활한 에너지를 선사한다. 김철규 발행인은 창간사를 통해 “새만금문학은 전국의 문인을 대상으로 원고 청탁을 통해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작품으로 독자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시대적 감각과 삶의 진지한 모습에 자연을 담아 역사를 그려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은 기자
김헌수 시인은 한마디로 아티스트다. 창의적인 표현력이 시와 그림에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첫 동시집 『내 귓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날』은 제목 하나로 매우 은밀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왠지 동시를 읽으면 비밀을 지켜야만 할 것 같다. ‘다정한 동심 곁에 기쁨 한 그루’라고 써준 시인의 사인처럼 동심의 나무 한 그루가 드디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웠다.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을 막 입학했을 때의 일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온 아들은 볼이 붉게 물들어 무언가 한껏 들뜬 얼굴로 말했다. “엄마, 진우랑 두 손을 맞잡고 영원한 친구를 맹세하고 왔어.” 아들은 두근거리는 가슴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숨을 몰아쉬었다. 마치 빨간 머리 앤이 다이애나를 만났을 때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함께 설렜었다. 어느덧 진우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결혼사진을 보여주는 아들은 어린 시절 홍조 띤 추억이 그대로 스며 나왔다. 김헌수 시인 안에는 BTS와 클리프 리차드를 넘나드는 애늙은이 같은 소녀가 있는 듯하다. 바라보는 시각이 독창적이다. 대학원 수업을 함께 받을 때 일이다. 사물을 낯설게 보는 시간이었는데 ‘곤포 사이러지’가 제시어로 나왔다. 잠깐의 주저도 없이 ‘공룡알’이라고 말했던 그녀다. 기껏 해 ‘두루마리 화장지, 마시멜로’가 나오는 마당에 공룡알은 단연코 돋보였다. ‘알바트로스’의 오랜 비행이 ‘삼십 년 노동자인 아버지’의 든든한 등으로 색칠되었다. ‘흰긴수염고래의 귀지’는 일기처럼 귓속에서 굴러 나온 말, 말, 말은 또 다른 서사를 궁금케 한다. 아이의 생각이나 성찰이 점점 커지고 넓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흰긴수염만큼이나 이력을 담은 귀지만큼이나 성장하는 것이다. ‘풍선덩굴 속 씨앗 세 알’은 세탁소 간판을 둘러 빈 곳을 채워주며 따뜻함을 전해준다. ‘세탁 있어, 세탁 있어!’ 외치는 아버지의 말이 허공에 공허한 소리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외침과 함께 구르는 것이다. ‘돌돌돌, 쏘로롱, 쿠르릅’ 소리는 오르골의 감은 태엽이 풀어지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쏟아낸다. 산딸나무 꽃이 가득 피어 하얀 바람개비 같은 웃음을 뿜어주는 호숫가로 이끌어주는 동시, 호수를 닦느라 물 맥질을 하는 오리는 활기차다. 물 밖을 잠망경 끼고 보는 붕어를 떠올리며 가느다랗고 긴 다리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유리창을 닦는 소금쟁이도 함께 보인다. 사물이 보여주는 풍경이 환해진다. 반짝이는 푸른 별을 장미 넝쿨에 걸어두고 쉼 없이 세상을 궁금해하는 동심이다. 돋보기처럼 세상을 작은 것도 크게 보려고 시야를 넓혀가는 아이의 마음에서 희망을 전해준다. 이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아이의 마음으로 성찰하고 무안히 낯설게 보려는 시인의 힘이 분명하다. 바로 동시의 힘을 지니고 있다. 오랜 시간 시인이 동시에 대한 열망과 애정이 얼마나 컸었는지를 알기에 소중한 마음이 든다. 빛나는 언어에 담긴 시인의 번뜩이는 동심의 나무가 또 심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됐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 신인문학상 수상했으며, 2020년 장편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 출간. 2021년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출간했다. 이후 2023년 수필 오디오북 『구멍 난 영주 씨의 알바 보고서』와 『너의 여름이 되어줄게』5人앤솔러지 청소년소설 출간. 『크리스마스에 온 선물』등을 펴냈다.
“당신의 땅이/ 나의 하늘과 만나고/ 나의 땅이 당신의 하늘과 이어져/ 우리는 우다이푸르에 함께 있습니다/ 피촐라 호수에/ 해가 뜨고 질 때까지/ 나의 사랑이 당신에게 흘러가기를 기원합니다/ 나의 세상은 이제부터 당신과 함께입니다/ 나도 당신의 꿈이 되겠습니다/ 이 아름다운 시간을 당신과 함께할 수 있어/ 내 인생은 더 빛났습니다/ 덕분에 나는 더 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시 ‘눈길 좀 주세요’ 전문) ‘언젠가는 가야겠다고 생각만 했던 곳.’ 장창영 작가에게 인도는 쉽게 발을 내딛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마음에만 머물러 있던 장소였다. 그런 그가 펴낸 신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도>(인간과 문학사)는 조드푸르에서 아그라까지 이어지는 여정을 따라, 그가 몇 년 동안 가슴에 품어왔던 인도를 비로소 세상으로 꺼내놓은 기록이다. ‘1부 당신의 조드푸르’, ‘2부 우다이푸르, 거기’, ‘3부 아, 타지마할’, ‘4부 델리를 만나거든’ 등 총 4부로 구성돼 6편의 작품을 담고 있는 시집은 여행지의 정보나 화려한 풍경보다, 떠나기까지의 망설임과 그곳에서 마주한 감정의 결을 차분히 따라간다. 낯선 땅 앞에서 느낀 두려움과 조심스러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옮기며 조금씩 내려놓게 되는 마음의 무게가 담담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더불어 인도 여행 중 작가가 직접 겪은 시시콜콜한 일화 역시 사진과 글 등을 통해 작품에 녹아있어, 책장을 넘기는 독자로 하여금 뭉근한 미소를 짓게 한다. 장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못난 내게 와주어 고맙고 감사해서 오늘은 찔끔, 눈물이 난다”고 적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도를 ‘정복’하거나 ‘이해’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과정에 가까운 고백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낯선 나라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내면을 통과한 시간의 흔적으로 읽힌다. 이번 시집은 ‘가야만 했던 곳’을 다녀온 뒤에야 비로소 완성된 이야기인 만큼 쉽게 떠날 수 없었던 여행이었기에, 이 책은 더 조심스럽고 진솔한 울림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작가는 전주 출신으로 전북일보·불교신문·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창작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사업과 전주도서관 출판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시집 <동백, 몸이 열릴 때>, <우리 다시 갈 수 있을까>, <여행을 꺼내 읽다>, <나무의 속살을 읽다>가 있으며 인문서로 <나무의 문을 열다>, <디지털문화와 문학교육> 등이 있다. 전현아 기자
차가운 세상의 온기를 불어넣는 책이 나왔다. 시집 <버마재비 사랑> <따뜻한 외면> 등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서정을 전해온 복효근 시인이 산문집 <밑불이라는 밀이 있다>(푸른사상)를 출간했다. 이번 산문집의 부제는 ‘범실잡록’이다. 시인이 둥지를 튼 곳은 지리산 자락의 ‘범실’. 한자로 호곡(虎谷)이라 불리는 곳이다. 예로부터 호랑이가 엎드려 있는 형세이자 아직 쓰지 않은 명당이 숨어 있다는 땅이다. 연고 없는 타향이지만 자연의 품에 안겨 살아가는 그의 삶은 소박하면서도 단단하다. 책 곳곳에는 시인의 질박하고 다정한 마음이 묻어난다. 그는 마당과 농로에서 철따라 피는 들꽃을 따와 돌을 파서 만든 작은 그릇에 띄운다. 마치 여행지 숙소 입구에 놓인 환영 꽃단지처럼 매일 자신의 일상을 환대하는 소소한 의식은 읽는 이에게도 잔잔한 평온을 선물한다. 그러나 책은 단순한 전원생활 예찬에만 그치지 않는다. 표제작 ‘밑불’에 이르면 시인의 사유는 삶의 본질을 향해 깊어진다. 그는 매캐한 새벽 공기 속에 연탄을 갈던 날들과 언어를 찾기 위해 잠 못 이루던 고뇌의 시간을 ‘밑불’로 정의한다. “살아온 날은 살아갈 날의 밑불이다. 이미 쓴 시는 새로이 쓸 시의 씨앗불이어야 한다. 시의 길, 재로 남는 길일지라도 불길 하나 이어놓고 가는.”(p.172) 복 시인은 작가의 말에서 “어떤 시인은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는데 나는 팔할이 실수였다”며 “어쩌면 여기에 실린 글은 수많은 실수의 기록이자 서툰 삶의 기록”이라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내가 살아온 삶의 흔적인지라 몇 조각이나마 편린을 한데 모아서 정리해보고자 했다”고 덧붙였다. 남원 출신인 복효근 시인은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새에 대한 반성문> <목련꽃 브라자> <꽃 아닌 것 없다> 등을 펴냈다. 시와시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재삼문학상, 한국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박은 기자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문명권에서 800년 넘게 사랑받아온 나스레진의 이야기를 담은 <요절복통 중앙아시아 현자 나스레진 일화집>(인간과문학사)이 출간됐다. 김현조 시인이 우리말의 맛을 살려 번역한 이 책은 13세기경 튀르키예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했던 전설적인 재담가 나스레진(Nasreddin)을 주인공으로 한다. 당나귀를 거꾸로 타고 다니는 기행으로 유명한 그는 겉보기에는 어수룩해 보이지만 번뜩이는 기지와 재치로 권위주의를 비꼬고, 삶의 정곡을 찌르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봉이 김선달이나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부조리한 세상에 던지는 통쾌한 풍자로 막힌 속을 뚫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번 일화집에는 나스레진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해학적이고 교훈적인 에피소드를 엮었다. 이웃에게 던지는 촌철살인과 같은 한마디, 권력자를 골탕 먹이는 지혜, 삶의 모순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이야기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웃음을 선사한다. 번역을 맡은 김현조 시인은 2000년부터 2015년까지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며 중앙아시아의 문화적 정서를 연구해온 전문가다. 그는 낯선 이슬람 문화권의 유머 코드를 한국 정서에 맞게 의역했다. 단순한 직역이 아닌 문학적 감수성을 더한 번역은 독자들이 13세기 실크로드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김 시인은 역자 서문에서 “타종교와 타문화를 이해한다는 취지에서 문학적으로 우리가 이해하고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내용을 선택해 소개한다”며 “청소년에게는 해학과 지혜로움을 어른들에게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일화를 골라 실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책을 만나는 독자에게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유머와 감동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고 덧붙였다. 정읍 출생인 김현조 시인은 (사)한국문인협회 우즈베키스탄지부 활동을 통해 양국 문학 교류에 힘써왔다. 전북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제펜(PEN) 한국본부 이사로 활동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우즈베키스탄을 배경으로 한 시집 <사막풀>, <당나귀를 만난 목화밭> 등이 있다. 박은 기자
익산의 2000년 역사를 집대성한 인문여행서 <역사와 문화로 보는 도시 이야기-익산>(현북스)이 출간됐다. 전은희 동화작가가 3년의 집필 기간을 거쳐 완성한 이 책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딱딱한 교양서가 아니다. 작가가 익산 구석구석을 직접 누비며 담은 사진과 함께 다정한 입담으로 풀어낸 친절한 답사기에 가깝다. 청동기 시대부터 마한과 백제를 거쳐 항일 의병 활동에 이르기까지 익산이라는 공간에 축적된 시간의 층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익산에서 만나는 백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시로서의 면모를 다룬다. 동양 최대 규모의 미륵사지와 석탑, 왕궁리 유적에 담긴 백제인의 꿈과 서동‧선화공주 설화 등 익산에 깃든 백제의 숨결을 기록했다. 2부 ‘익산에서 만나는 인물들’은 역사적 사건보다 시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구한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의병장과 판소리의 맥을 이은 명창 정정렬. 가람 이병기까지 익산이 배출한 인물들의 삶을 추적했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이웃과 나눈 함라마을 삼부자의 일화를 소개해 지역공동체의 정신적 뿌리를 탐색한다. 마지막 3부 ‘익산의 현재’에서는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라는 비극을 딛고 일어선 도시의 회복력에 주목한다. 풍요로운 만경평야와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성지로서의 특징 등 현대 익산의 역동성을 기술했다. 각 장 말미에 배치한 ‘지금 익산에서는’과 ‘그림 지도’ 부록은 익산의 박물관과 유적지, 축제 정보 등이 기재되어 있어 독자들이 책을 덮고 당장 떠날 수 있도록 돕는다. 작가는 머리글에서 “책에 실린 사진들은 독자가 마치 그 자리에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길 바라며 직접 촬영한 것”이라며 “어린이와 독자들이 익산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장수 출신인 전은희 작가는 2012년 샘터문학상, 2017년 한국안데르센상 동화 대상, 제11회 작가의 눈 작품상 등을 수상했으며 <벨루가의 바다>, <평범한 천재> 등 다수의 동화를 집필했다. 박은 기자
2026 밀라노 동계 올림픽은 즐기고 싶지만, 겨울 스포츠를 모르는 모든 이를 위한 대비 필수 가이드북이 발간됐다. ‘어려울 줄 알았는데 재밌어! 야구 만화 도감’을 시작으로 어린이 스포츠 도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반전 도감’ 시리즈의 겨울 테마 <넘어질 줄 알았는데 해냈어! 갸울 스포츠 도감>(Who’s Got My Tail)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익뚜 작가의 신작인 이번 책은 스피드 스케이팅과 쇼트트랙, 피겨 스케이팅을 비롯해 아이스하키, 컬링, 스키, 스노보드, 스키 점프, 썰매 종목까지 동계 올림픽의 핵심 9개 종목을 담았다. 자신감 넘치는 ‘주니’와 호기심 많은 ‘베비’, 새롭게 등장한 라이벌 ‘겨운’이가 멘토 ‘할아버지’에게 스포츠를 배우는 이야기 구조는 자연스럽게 종목의 규칙과 특징을 익히도록 돕는다. 김연아, 이상화, 윤성빈, ‘팀 킴’ 컬링 대표팀 등 한국 동계 스포츠의 영웅들은 물론, 숀 화이트와 에릭 하이든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정보도 함께 수록됐다. 미로 찾기와 숨은 그림 찾기 등 놀이 요소를 더해 읽는 재미를 높였으며, 실패보다 과정의 가치를 전하는 메시지로 도전의 의미를 전한다. 전현아 기자
박보검이 무주에 떴다⋯상점 하나 없는 곳에 왜?
[한자교실] 결
전주문화재단 정정숙 신임 대표이사 16일 취임식
[한자교실] 긍지(矜持)
[한자교실] 죄송(罪悚)
제1기 유스오케스트라 단원 54명 확정
[추석특집] 달라진 명절 풍속도…"이젠 추석 때 여행간다"
540억 투입 전주시립미술관, 소장품 예산은 1억...내실 부족 우려
땅보다 더 낮게 낮은 자세로…
[며느리] 남성에 붙어 기생하는 존재…남녀차별 드러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