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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문화적 가치 주목해야"

디자인 강국이 되려면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그간 소외됐던 문화적 가치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양우 전 문화관광부 차관은 18일 오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009 디자인 심포지엄'에서 '디자인 한국을 위한 정책적 과제'라는 발제를 통해 정부의 "디자인 정책은 경제적 가치뿐 아니라 문화적 가치까지 포괄하는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박 전 차관은 "21세기는 디자인 자체가 문화현상이다. 이제는 단순히 공산품의 기능을 보강하는 모양내기 디자인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전반에 스며들어 그 삶을 풍요롭게 하고 품격을 높여 주는 삶의 디자인 시대가 됐다"면서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산업디자인 정책만이 아닌 국민의 문화적 창의성을 높이고 문화적인 공간을 조성하려는 총체적인 디자인 정책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위해 ▲공공디자인 등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디자인 영역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관심과 지원 ▲기능에 따라 지식경제부, 문화부 등 정부 각 부처로 나뉜 디자인 관련업무를 통합하는 정부 시스템의 도입 ▲공공디자인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뒷받침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정병규 전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회장은 '디자인은 문화다'라는 발제를 통해 디자인을 산업주의적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인식은 "모든 가치를 수량화할 수 있다는 태도를 전제로 하는데 이는 우리의 디자인 문화와 삶을 억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국현 삼성전자 고문은 '디자인으로 미래를 경영하라'에서 삼성전자의 '햅틱폰'의 성공 사례를 들면서 좋은 산업디자인은 ▲기업의 브랜드 가치 창출하고 ▲소비자의 감동을 이끌어내며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03.19 23:02

서울시 문화재 이름 알기 쉽게 바뀐다

서울시 지정 동산(動産) 문화재의 명칭이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바뀐다. 서울시는 문화재 이름으로 지나치게 전문적인 한자 용어가 사용돼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그림, 도자기, 책 등 시 지정 동산 문화재 222점의 명칭을 간결하고 통일성 있게 바꾸기로 했다고 18일 밝혔다. 시는 우선 불교 미술 문화재 141점 중 98점의 명칭을 변경할 계획이다. 불상의 명칭에는 그동안 '~불(佛)'과 '~여래(如來)'가 함께 사용됐지만 앞으로 '~불(佛)'로 통일하고, 불교 회화를 뜻하는 '~탱', '~탱화', '~불화', '~도(圖)'를 '도(圖)'로 통일해 표기하기로 했다. 또 부처와 보살의 이름을 그동안 '석조미륵불입상'에서처럼 불상의 재질과 형태(좌상, 입상) 사이에 표기했지만 앞으로는 '석불 입상(미륵불)' 식으로 괄호 속에 부기할 방침이다. 사찰에 있는 종(鐘)은 범종(梵鐘), 동종(銅鐘), 청동 범종(靑銅 梵鐘), 소종(小鐘), 대종(大鐘) 등으로 표기됐지만 앞으로는 '청동 종'으로 통일된다. 시는 이밖에 '금동석장두(金銅錫杖頭)'를 '금동 석장 머리장식'으로 표기하는 등 어려운 한문 투의 명칭을 될 수 있는 대로 우리 말로 풀어쓰기로 했다. 시는 불교미술 문화재 98건의 명칭 변경계획을 내달 19일까지 공고해 시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 새 이름을 확정할 예정이다. 시는 나머지 동산 문화재의 이름 바꾸기 사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03.19 23:02

호남·충청·제주권 고택 주인들 뭉친다

전통문화의 정수인 고택문화재를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서부지회가 전주에서 창립된다.사단법인 한국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회장 이강백·강릉 선교장)는 호남권·충청권·제주권을 아우르는 서부지회 창립식을 27일 오전 11시 전주전통문화센터 경업당 전통마당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이날 창립식에는 전국에서 150여명의 고택문화재 소유자들이 참석할 예정. 서부지회 지회장에는 박경중씨(나주 박경중가옥)가 임명될 예정이다. 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소속 전통예술단인 '큰댁여울'도 이날 창단공연을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는 2007년 전국의 고택문화재 소유자들이 모여 창립했다. 2008년 전통가옥 관리실태 및 민속유물 기록화 용역사업, 전국민속마을 및 고택문화재 소방방재 워크샵, 한스타일 콘텐츠 산업화 MOU체결,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고택 콘텐츠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올해는 '지방문화재 보존관리 활성화 총력 집중의 해'로 설정하고 지난달 경북 안동에서 경남·북지역 동부지회 창립식을 갖는 등 지역 조직을 체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곧 문화재기동보수반도 꾸릴 예정.도내에서 유일하게 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전주 학인당 백광제씨는 "고택문화재의 보존관리와 활용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소유자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했다"며 "고택문화재를 통해 가승 전통문화를 발굴·계승·발전시킨다면 관광자원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3.18 23:02

"미륵사 금제 소형판은 백제 금화…화폐 구실"

미륵사 서탑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봉안기와 함께 발견된 작은 판 모양 금제품은 백제인들이 화폐처럼 사용한 금화(金貨)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한국서예사 전공인 손환일 박사는 21일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가 국민대 경상관 B동 학술회의장에서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에 대한 종합적 검토'를 주제로 개최하는 춘계학술대회를 통해 이런 파격적인 견해를 담은 연구성과를 발표한다.한국 고대사회에서 금화가 통용되었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다.16일 주최측이 미리 배포한 '익산 미륵사지 서원석탑(西院石塔) 금제 사리봉안기와 금정명문(金丁銘文)의 서체(書體)'라는 논문에서 손 박사는 금을 두드려 펴서 만든 '금제소형판(金製小形板) 18점'으로 발표된 금 덩어리 유물들은 "크기와 형식이 일정하게 분류되므로 백제시대 금화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같은 학술대회 발표자인 대전대 이한상 교수도 "금제소형판은 아무래도 그 기능을 화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면서 "그 기원을 한반도에서 추적하면 기원 전후 무렵 신라와 가야가 태동한 진한과 변한 문화권의 목관묘에서 자주 출토되는 판상철부(板狀鐵斧)라는 철 덩어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미륵사지 출토 금제 소형판 중 3점에서는 시주자가 누구인지를 적은 명문(銘文)이 발견됐다.이 중 한 점에는 "중부(中部)의 덕솔(德率ㆍ백제 16관등 중 제4품) 사람인 지율(支栗)이 금 1량을 보시한다(中部德率支栗施金壹兩)"는 내용이 적혀 있고, 또 다른 한 점에는 앞ㆍ뒷면에다가 각각 "하부의 비치부와 그의 부모 처자(下部非致夫及父母妻子)" "함께 보시한다(同布施)"라는 구절을 적었다.나머지 한 점에서는 정확한 판독이 어렵지만 사람 이름으로 생각되는 "恒"(항)과 같은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고 손 박사는 말했다.손 박사는 "이들 금 덩어리 시주품 중 하나에 그 단위를 '금 1량'(金壹兩)으로 표시한 자체가 이것이 금화임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고 주장했다.그는 나아가 이 금제품들에 적힌 글씨는 "사리를 봉안할 때 이 금 덩어리들을 시주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급하게 쓴 즉각(卽刻)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손 박사는 이번 미륵사지 석탑에서 수습한 금 덩어리와 같은 금화, 혹은 은화(銀貨)나 철화(鐵貨) 등이 "조선시대에도 금정(金丁)이나 은정(銀丁), 혹은 철정(鐵丁)이라는 이름으로 화폐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03.17 23:02

유인촌 장관, 어진 구본발굴 적극 검토

경기전에 묻혀져 있는 것으로 알려진 태조 이성계 어진 구본을 발굴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에대해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10일 전북도를 방문한 유장관은 도내 언론사 편집국장 및 보도국장과의 오찬에서 "어진 구본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고증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다면 발굴 작업에 들어갈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며 "조선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로 대표되는 전주가 왕조 도시로서 이미지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장관은 "서울에 올라가는 즉시 문화재청을 통해 어진 구본 발굴 작업을 점검해 보겠다"며 관심을 내비쳤다.전북의 문화예술 자원에도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다. 오랜 역사성과 정통성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회 수준과 예산 확보 등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에 대해서는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의 국악인들이 서울대사습놀이를 만들자고 했지만, 전주대사습놀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했었다"고 밝혔다.익산미륵사지 역사지구의 유네스코 등재와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의 국립 승격에 대해서도 지원의사를 밝히며, "전통문화도시 전주와 연계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또 전주한옥마을의 브랜드화를 주문하며 전주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잘 가꿔나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서는 "전국적으로 영화제가 많지만 전주와 부산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러나 "광주하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가 떠오르지만, 전북이나 전주는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없다"며 "자원들이 많지만 정리되지 않고 흩어진 느낌이며, 이를 통일된 이미지로 가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3.11 23:02

전주성 서벽 철거시기 '어떤 자료가 맞나'

「전주부사」냐, 「완산지」냐.최근 전주성 철거 시기가 기록돼 있는 옛 문헌들이 다양한 경로로 주목받으면서 전주성 서벽 철거 시기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전주성 철거 시기가 남아있는 문헌들이 모두 근거로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유독 서벽 철거 시기만 다르게 적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전주성 철거시기가 기록돼 있는 문헌은 1943년 일본에 의해 일본어로 쓰여진 「전주부사」와 1911년 전주향노재에서 중간한 「완산지」. 「전주부사」에는 1907년, 「완산지」에는 1909년 전주성 서벽이 헐린 것으로 나와있다.1994년 발간된 「성곽발달과 도시계획 연구-전주부성을 중심으로」에 전주성 서벽 철거시기가 1907년이라고 기술한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은 "당시 「전주부사」와 '조선총독부시정연보'를 근거로 전주성이 1907년에 철거됐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두 자료 모두 전주성을 철거한 일본인들에 의해 쓰여진 기록물인 만큼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전주부사」 92쪽, 103쪽, 666쪽 등을 보면, '1906년 통감부 시대에 들어가서 다음해인 1907년 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전주성벽을 점진적으로 파괴해 오늘날 시가지에 이르렀다'는 내용과 '1907년 군전도로의 개수공사에 뒤이어 남문에서 북문에 이르는 서쪽의 성벽을 헐고 평탄한 대도를 만들어 반원형을 그리며 시가지의 서쪽을 감쌌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한편, 「완산지」에는 1909년 전주성 성벽이 훼철됐고 1911년 동문·서문·북문 3문이 철거된 것으로 적혀있다. 「완산지」는 성벽 철거 당시의 자료로, 전주성 서벽과 동·서·북문 3문은 철거되고 동벽과 풍남문만이 남아있는 지도도 첨부돼 있어 철거 시기를 따져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받고 있다.이에 대해 학계 연구자들은 "전주성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성으로,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며 "좀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3.05 23:02

'조선정조 전라도 군현'의 생생한 역사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정조대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호남읍지」 전라도·전주부편을 영인(影印, 인쇄물의 원본을 사진으로 복사해 인쇄하는 일)해 「전주학연구」 2집에 수록했다.이 「호남읍지」는 기존에 영인돼 간행된 영조대 「여지도서」 전라도편, 1871년 「호남읍지」, 1895년 「호남읍지」와는 다른 책으로, 개인 소장본이다. 특히 「여지도서」에는 빠져있는 16개 군현, 전주·제주·남원·담양·여산·익산·고부·금산·진산·김제·대정·정의·임피·만경·금구·정읍 등의 읍지가 모두 실려있어 기존 읍지를 보완하고 정조대 전라도 상황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18세기 군현상황을 보다 풍부하게 볼 수 있다는 가치도 지니고 있다.「전주학연구」는 역사박물관이 전주시의 지원을 받아 2007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연 1회 발간하고 있는 지역학 전문학술지. '전주학에 관한 연구논문집'이라고 할 수 있다.2집에는 「호남읍지」 영인본 이외에도 지난해 진행된 제8회 전주학 학술대회 '금재 최병심의 삶과 학문'에서 발표된 논문 5편을 수정·보완한 기획특집과 '전주 전라감영지 문화재 발굴조사 개요' 보고서 등이 실렸다.기획특집에 실린 5편의 논문은 전주 출신 유학자로 '제2의 간재'로 칭송받던 금재 최병심의 가계와 생애, 학맥과 유학사상, 항일의식에 대한 연구논문들이며, 보고서는 전라감영지 복원에 앞서 건물지 유구를 확인해 정비 및 복원의 기초자료로 삼기 위해 전주시가 전북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한 발굴조사를 요약한 것이다.비매품으로, 이달 말 전국 박물관 및 연구소, 행정기관 등 유관단체에 발송될 계획이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3.02 23:02

정읍 은선리 고분 고려시대 것 확인

백제고분으로 추정됐던 정읍 은선리 고분이 고려시대에 축조된 횡혈식석실분으로 확인됐다.고려시대 고분으로는 아직까지 횡혈식석실이 조사된 바가 없어 추후 고려시대 석실분과의 비교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됐다.산사태로 노출된 정읍 영원면 은선리 고분을 지난 8월부터 수습조사해 온 전북문화재연구원(원장 최옥환)은 26일 자문위원회의를 열고 "석실의 평면형태와 축조방법 등 전체적으로 전형적인 백제 횡혈식 석실의 축조방법을 따르고 있지만, 석실내부에서 청자 4점이 출토돼 고려시대에 축조된 횡혈식석실분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지하에 축조된 석실은 평면형태 장방형. 봉분 윤곽은 단면상에서는 확인이 되지만 전체적인 규모는 파악할 수 없다. 다만 고분 축조시 주변지역을 넓게 정지해 지하에 석실을 축조한 후 봉분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석실내부에서는 청자상감운학문 발 1점, 청자 대접 2점, 청자 접시 1점 등 4점의 유물이 출토됐지만, 내부 조사과정에서 청자편이 수습돼 원래는 보다 많은 유물이 부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발굴조사 결과 백제의 흔적을 보여줄 만한 유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규정 전북문화재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묘를 재활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경우 백제 때의 무덤을 고려 때 다시 활용한 것 같다"며 "석실에서 출토된 청자상감운학문 발이 최고품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2.27 23:02

[일과 사람] 태조 어진 모사본 그린 권오창 화백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사(模寫)하는 기념비적인 일에 참여할 수 있어서 더없는 영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원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제(高制)와 안료선택에 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어진과 관련된 학술적인 연구도 부족했고 모사에 대한 기록도 거의 없다시피 해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입니다."25일 경기전 유물전시관 기공식에 참석한 전통인물화가 권오창씨(61). 현재 경기전에 전시돼 있는 태조 어진을 1999년 모사한 권씨는 "모사 당시 재료 하나도 일일이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6개월 만에 완성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진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는 요즘에 와서 보니 부족한 점이 눈에 띄어 아쉽다"고 말했다."어떤 범본(範本)이 되는 회화작품을 그대로 베껴내는 행위인 모사(模寫)와 그 작품인 모작(模作)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짜가 아닌, 가짜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작은 원화와 꼭 같이 복제한 작품으로 서화전통을 계승하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설정돼 있습니다. 특히 어진 모사는 어진이 하나의 회화작품이기 전에 국왕으로서 숭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다른 감상용 회화와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요."어진 모사본을 진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에, 그는 "모사작가로서는 최고의 칭찬"이라며 "모사는 당대 작가의 소신이나 주관성보다는 대대로 내려져 온 고식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그동안 어진 진본이 과학적인 장치 없이 봉안되고 훼손까지 이르게 되는 걸 보며 안타까웠다"며 "유물전시관 건립이 어진의 위엄이 다시 서고 현대인들이 근접한 자리에서 어진을 감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반갑다"고 전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2.26 23:02

태조 어진 편안한 시설에 모신다

보물 제931호인 태조 이성계 어진을 봉안할 경기전 유물전시관이 첫 삽을 떴다.전주로 환안된 뒤 국립전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태조 어진을 비롯 경기전 관련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한 경기전 유물전시관 기공식이 25일 오전 10시30분 경기전내 공사현장에서 진행됐다.경기전 서편에 건립되는 유물전시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 연면적 1193㎡ 규모로 총 사업비 44억원이 투입된다.지상층은 경기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목조 한옥형태로 지어지며 전시관 내부는 어진전시관, 상설전시관, 기획전시관, 수장고, 이벤트마당 등으로 구성된다. 어진전시관에는 태조 어진을 중심으로 조선왕조 개창사, 어진의 이안경로, 어진제작기법 등 어진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며, 상설전시관에는 가마를 비롯한 경기전 유물과 반차도행렬, 왕의 일상, 영상물 등이 전시된다.경기전에는 태조 어진을 비롯해 조선 왕조 여섯분의 어진과 향정, 가마, 선, 산 등 50여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지만 항온·항습 등 과학적 시설이 미비한 실정이었다. 송하진 전주시장은 "유물전시관이 완공되면 태조 어진과 경기전에 보관된 귀중한 문화유산이 과학적 설비를 갖춘 전시관에 안전하게 보존 관리될 수 있으며,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경기전의 새로운 명소로 전통문화중심도시로서 전주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날 기공식은 태조 고황제께 유물전시관 건립을 고하고 무사를 기원하는 고유제로 시작됐다. 송하진 전주시장과 최찬욱 전주시의회 의장, 유기상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관계자들, 김영원 국립전주박물관장, 이호석 전주향교 전교,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장, 김민영 전주전통문화센터장 등 도내 각 기관 단체장들 및 문화계 인사들과 시민들 300여명이 참석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2.26 23:02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년, 원형 찾자] 경기전에 묻힌 '어진 구본' 찾아야

태조 이성계 어진 전주 봉안 600년을 맞아 경기전에 묻혀져있는 것으로 알려진 어진 구본(御眞 舊本)의 발굴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특히 전주시가 경기전 내 묻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진 구본 발굴을 위해 2007년 문화재청에 '국가지정 문화재 현상변경허가' 신청까지 냈다 반려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학계와 문화계를 중심으로 구본 발굴 작업을 포함, 태조 어진 전주 봉안 600년 기념 사업 준비를 위한 추진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진 구본 발굴은 태조 어진의 원형을 찾는 작업으로, 이를 발굴해 새로 지어지는 경기전 유물전시관에 보관한다며 전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확보하고 조선 왕조의 본향으로서 전주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경기전의 태조 이성계 어진은 1409년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해 1410년에 전주부에 봉안한 것. 이 태조 어진은 이후 1763년 한차례 수리과정을 거쳤지만 1872년 그 소임을 다하고, 현재 경기전에 봉안된 태조 어진이 새로 제작됐다. 경기전 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진 구본은 1872년 '세초매안(洗?埋安)'된 것. 「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1872) 5월 4일 기사에 따르면, '경기전의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했다'는 내용이 나와있다.태조 어진을 모사한 행사의 기록이란 점에서 의의가 큰 「어진이모도감청의궤」에도 '어진 구본은 1872년 9월 27일에 세초하여 백자항에 넣어 본전 북계상에 매안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일성록」 고종 9년 10월 7일 기사에도 '신본을 먼저 봉안하고, 고안제를 한 후에 구본은 돌돌 말아서 봉안하는데 세초하고, 또한 본전의 북쪽계단에 매안하는데, 박석으로 둘러 이를 쌓았다'고 적혀있다. 이보다 앞선 7월 17일 「일성록」 기사에는 '경기전에 신본을 9월 27일 이안하고, 구본은 같은 날 미시(未時)에 세초매안할 것이다'라고 나와있어 1872년 경기전 어진을 모사하여 경기전에 봉안한 것은 9월 27일이고, 당일 오후 1시에서 3시 사이 태조 어진 구본을 경기전 전각의 북쪽 계단 근처에 묻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일반적인 '세초(洗草)'는 종이문서를 물에 빨아 먹물을 빼고 다시 종이로 재생하는 것이지만, 어진과 관련된 '세초(洗?)'는 비단에 그려진 그림 자국을 물로 씻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어진 구본 발굴과 관련해서는 '세초매안(洗?埋安)'과 '북계상(北階上)'이 핵심 단어로, 즉 그림 자국을 물로 씻어내 경기전 북쪽 계단 근처에 매안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일부에서 태웠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이 역시 태워서 백자항아리에 넣어 경기전에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은 "조선시대 태조 어진은 왕의 존재 그 자체였다"며 "물에 씻어서 묻었든 불에 태워서 묻었든, 어진 구본을 담은 백자항아리가 발굴만 된다면야 획기적인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관장도 "역사 기록에 따른다면 적어도 백자항아리는 나올 것인데, 어진을 담을 정도면 명품이 분명하다"며 "어진 구본 발굴 작업은 조선 왕조의 본향으로서 전주의 중요한 콘텐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가장 최근에 세초매안된 어진인 만큼 땅 속에서 더 훼손되기 전에 제대로 발굴하자"며 "2010년이 태조 어진을 전주에 봉안한 지 600년이 되는 의미있는 해에 맞춰 구본을 발굴, 경기전 어진과 관련된 새로 지어지는 전시관에 보존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2.23 23:02

[태조어진 전주봉안 600년, 원형 찾자] 땅속 137년…"귀중한 유물 더 훼손되기 전 발굴해야"

태조 이성계 어진 전주 봉안 600년. 1410년 전주에 봉안, 1872년 세초돼 경기전에 매안된 태조 어진 구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경기전 어진 구본을 찾는 과정은 조선 왕조의 본향으로서 전주 역사의 원형을 회복하고 전주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전문가들은 "2010년은 전주시가 시로 출범해 환갑을 맞는 해이고,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기념하여 태조 어진을 모신지 600년이 되는 해"라며 "2010년 태조 어진 봉안 600년을 맞는 지금이 이를 상징하는 태조 어진 구본 발굴 작업을 벌이기에 적기"라고 강조한다.한국의 전통사회에서 60년은 환갑(還甲)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역사의 한 획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시작하는 의미 있는 시점. 옛 기록으로만 남아있는 태조 어진 구본을 찾아 다시 역사를 복원해야 할 때인 것이다.▲ 태조 이성계 어진과 전주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이성계(1335~1408)의 초상화는 조선시대 어진(御眞) 중 화재와 전란을 피해 온전하게 보존된 단 두 작품 중 하나로, 전신상으로는 유일한 예다. 또한 원래 봉안된 장소인 진전에 그대로 남아있는 조선 태조의 하나밖에 없는 초상이기도 하다.영흥의 준원전과 경주의 태조 어진이 태조 재세시 태조의 명으로 봉안된 것이라면, 전주의 예는 1408년 태조가 승하하고 다음해인 1409년 전주부의 요청으로 경주의 태조 어진을 모사해 1410년(태종10) 전주부에 봉안한 것이다. 조선후기 기사이기는 하지만, 「영조실록」에 남아있는 '전주는 국조 시조 본향이고 태조가 왜구를 정벌할 때에도 일찍이 이 곳에 주절하였으므로 국가에서 주나라의 기와 한나라의 풍패처럼 여겨 특별히 전우를 세워 태조의 영성을 모셨다'는 내용은 전주에 태조 어진을 봉안한 배경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기록이다.경기전 태조 어진은 봉안대상과 봉안처가 함께 보존되고 있으며 관련 기록이 비교적 풍부하게 남아있어서 역사적 중요성이 매우 높다. 이수미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관은 "최초의 어진 제작과 진전의 건립, 그리고 오랜 세월에 걸쳐 반복돼 행해진 어진의 봉안과 모사를 위해 투여된 막대한 인력과 재원은 경기전 태조 어진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며 "경기전 태조 어진은 면면히 발달해 온 한국 초상화의 역사를 대변해 주며, 더 나아가 동아시아 초상화의 독특한 전개과정을 웅변해 주는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구본 발굴 추진, 왜 중단됐나2007년 전주시는 경기전 내 세초돼 묻혔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조 어진 구본 발굴을 추진했었다.2007년 1월 전주를 방문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학계 전문가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어진 구본 발굴 작업이 시작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에 의뢰, 어진이 묻혀있는 유력한 공간으로 거론됐던 경기전 본전 후원 등을 대상으로 지중탐사기로 지질탐색을 벌였다.그 결과 2007년 7월 폐쇄공간인 경기전 본전 후원 4곳에서 매장 의심물체가 감지됐다는 통보를 받았으며, 본격적으로 구본 발굴에 들어가기 위해 전주시가 같은 해 8월 문화재청에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냈다. 그러나 9월 '문화재위원 심의결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현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신을 받게 되면서 어진 구본 발굴은 흐지부지하게 됐다.전주시 관계자는 "당시 4000만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본전 후원 600㎡를 대상으로 매장 유물 발굴을 위한 현상변경허가 신청을 문화재청에 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고 밝혔다.▲ 물에 씻어서? 혹은 불에 태워서?「조선왕조실록」 고종 9년 5월 4일 기사에는 '慶基殿 舊本(경기전 구본), 則新本展奉後(즉신본전봉후), 陪進大臣以下(배진대신이하), 敬奉洗?(경봉세초), 埋安于本殿北階上(매안우본전북계상), 恐好(공호)'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해제하면, '경기전의 구본은 신본을 모신 후에 배진하는 대신 이하 관리들이 모셔다가 세초하여 본 전각의 북쪽 섬돌 가에 매안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이는 낡은 어진의 처리 문제에 대해 의논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경기전의 구본으로 말하면 본 왕조 초기에 그린 것으로, 500년 동안 모셔오던 어진을 세초하여 매안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신중히 해야 할 일'이라고도 나와있어 경기전 어진 구본이 가진 의미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경기전 구본이 세초매안됐다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이외에도 「어진이모도감청의궤」와 「일성록」 등 역사적 기록에서 확인되는 것으로,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구본을 어떻게 묻었느냐다. 일반적으로 '세초(洗?)'가 물에 씻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태워서 묻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 1985년 쓰여진 「전주시사」에는 '1872년 너무 오래돼 낡아 새로 모사케하며 동년 9월 20일 바꿔 봉안케하고 여러차례 국난 겪으면서 400년 보존된 유일한 어진을 세초매안, 불살라 묻어버려 영원히 찾을 수 없다'고 기록돼 있으며, 이보다 앞선 1943년 「전주부사」에도 '洗(燒却)'라고 적혀있다.그러나 불에 태웠다는 의미는 불교적인 것으로 유교가 지배했던 당시 상황과 또 태조 어진이 가지는 위엄을 생각할 때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어진 구본을 세초매안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것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분명 어진을 세초한다는 것은 단순히 종이 위에 먹을 씻어내는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구본 어진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경기전의」에 나타난 어진 보관 방식에 따라 세초한 구본을 보자기에 싸서 상자 또는 항아리에 넣어 묻지 않았을까 싶다"며 조심스럽게 추측하기도 한다.어진 구본이 묻혀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북계상(北階上)'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경기전 본전 뒷뜰, 본전 북쪽 섬돌 밑, 폐쇄된 정전 온돌 속 등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추정에 불과한 것들. 현재로서는 2007년 지질탐색에서 매장 의심물체가 감지된 본전 뒷뜰이 가장 유력한 장소로 점쳐지고 있다. 그동안 경기전의 구조가 많이 바뀌었지만, 이 곳은 폐쇄공간으로 거의 훼손되지 않아 유물이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의견이다.▲ 태조 어진 구본, 왜 발굴해야 하나?태조 어진 구본이 묻혔을 당시의 상태나 위치에 대해서는 각기 다른 의견들이 나오고 있지만, 태조 이성계 어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어진 구본을 발굴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학계 및 문화계 전문가들은 귀중한 유물이 더 훼손되기 전에 발굴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차피 땅 속에서 사라질 단계에 처해있다면, 매안된 지 137년이 된 지금 발굴해 이에 대한 보존처리와 연구를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또한 경기전 유물전시관이 새로 건립되고 있어 유물 보관과 관련된 별도 공간이 마련되는 만큼, 발굴 후 보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진 구본과 함께 경기전과 태조 어진이 갖는 역사성을 종합적으로 연구, 보전, 전시하는 공간으로서 경기전 전시관에 역할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구본을 항아리에 넣었다는 기록은 태를 모셨던 태항아리(왕가 자손 태반을 담은 항아리) 개념과 비슷한 게 아닐까 싶다"는 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특히 어진은 왕을 상징하는 것으로 세초매안 당시 여러가지 형식과 의례를 갖췄을 것이기 때문에 구본 어진과 함께 관련 자료를 발굴해 연구가 진행된다면 새로운 전주의 역사문화 자원을 확보하고 전주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철배 전북대 강사는 "경기전 어딘가에 있을 수 있는 태조 어진 구본을 찾아 발굴하는 것은 문화콘텐츠와 관광자원으로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며 "이런 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지역사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관장은 "2010년 태조 어진 전주봉안 600주년 맞아 기념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 어진 구본 발굴 작업도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도휘정
  • 2009.02.23 23:02

문화재청, 발굴유적 보존기준 마련키로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유적의 보존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구체화된다.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12일 "문화재 보존 관리과정에서 국민에게 과도한 불편이나 부담을 주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고자" 규제개혁과제 9개를 선정하고, 그 일환으로 '발굴조사에 따른 유적 보존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키로 했다고 밝혔다. .예컨대 해당 유적의 접근성이나 활용 가능성, 학술적 가치 등을 포함한 '체크 리스트'를 마련해, 이 기준들을 일정 부분 이상 충족시킬 때 보존을 결정한다는 것이다.지금까지는 명확한 기준없이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가치가 있다고 결론을 내리면 이를 토대로 문화재청이 사적 지정 등의 보존 조치를 취해왔다.문화재청은 또 '건설공사에 따른 문화재 영향검토 합리화'를 위해 문화재 주변 건설공사에 따른 사전 영향 검토 항목도 더 구체적으로 확정하기로 했다.현재의 문화재 영향검토에서는 시·도지사가 조례로 정하는 지역(국가지정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500m 이내)에서 건설공사를 시행할 경우 관계 전문가 3명 이상의 의견을 들어 문화재에 영향이 있다고 1명이라도 판단하면 그에 대한 심의를 문화재위원회에서 일일이 받아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문화재청은 이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했다.문화재청은 이 밖에도 △고도(古都) 지정지구에 대한 이중 규제 해소 △문화재 수리업자의 등록요건 완화 △천연기념물(동물) 현상 변경의 시·도 위임 △등록문화재 현상변경 행위의 구체화 △등록문화재 현상변경 허가절차 간소화 △문화재 매매업자 결격 사유 완화 △국가지정문화재 현상변경 해피콜 제도 도입 등의 항목을 규제개혁과제에 포함시켰다.

  • 문화재·학술
  • 연합
  • 2009.02.13 23:02
문화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