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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전북지역 공모 선정작 5편 발표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올해 관객들에게 선보일 한국단편경쟁 본선 진출작 25편과 지역 공모 선정작 5편을 발표했다. 전북 영화와 전북 영화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공모 선정작에는 강준하 감독의 <개정>, 김태경 감독의 <두번째 장례>, 이지향 감독의 <스승의 날>, 허건 감독의 <연인>, 조미혜 감독의 <큐브> 등 단편 5편이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스승의 날>은 한국단편경쟁에서, 다른 4편의 작품은 코리안시네마(단편)에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올해 지역 공모에는 총 28편이 접수됐다. 지난해 출품된 47편 대비 급감한 수다. 이에 대해 전주국제영화제 문석 프로그래머는 아무래도 지역 영화 생태계가 코로나19 팬데믹에 큰 어려움을 겪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전하면서 다행스럽게도 이들 작품의 뛰어난 질적 측면은 줄어든 편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도록 하기에 충분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올해 한국단편경쟁 공모에는 총 993편이 출품돼 최종 25편이 본선에 올랐다. 극영화 17편, 다큐멘터리 2편, 실험영화 3편, 애니메이션 3편 등이다. 한국단편경쟁 출품작 경향에 대해 예심 심사위원들은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안전망 바깥의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주를 이뤘다. 또 코로나19를 소재로 하거나 소통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품들도 눈에 띄었다고 설명했다.

  • 영화·연극
  • 문민주
  • 2021.03.18 19:37

춤 신예의 데뷔 2021 신인춤판

무용계 신진작가를 양성하기 위한 우진문화재단의 춤 신예의 데뷔 2021-신인춤판이 윤시내, 정동웅, 정민지 3인의 안무가와 함께 2020년 새 판을 연다. 이들은 오는 20일 오후 7시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데뷔 공연을 올린다. 윤시내 씨는 이번 무대에서 창세계 2:16를 준비했다. 사람들이 마음속에 가진 신의 여러 가지 의미를 작품에 녹여낼 계획이다. 의미는 편안한 안식을 느끼는 신과 고통과 불안을 주는 신 등 다양하다. 게스트로 손무경, 신지안이 함께 한다. 정종웅 씨는 살면서 인간이 축적하는 경험을 춤으로 승화한다. 여행이라는 작품명처럼 꾸준하게 몸을 이동하면서 남기는 시간 속의 흔적들을 선보일 예정이며, 최정홍, 최태현씨가 게스트로 참여한다. 정민지 씨는 인생은 바다와 같다는 의미를 담은 공연 Ocean을 선보인다. 박은지, 이보람, 이수지, 김다희, 강동혁이 함께 무대에 오를 예정이며, 이들과 함께 바다의 숨과, 길, 말을 몸짓으로 묘사한다. 우진문화재단 관계자는 무용계에 첫발을 내딛는 신진무용가들의 데뷔공연을 통해 장르를 넘나드는 가장 젊은 춤의 유형을 보여줄 것이라며 우진문화재단은 신진작가 양성을 위한 신인춤판지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3.18 18:08

[학술강연회] “전북 항일 운동 배경… 일제 수탈 동맥 구실 한 탓”

한말 31만세운동 전후 전북의 항일독립운동은 어떻게 전개됐는가.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서 전북이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 전북일보와 JTV전주방송, 사)사선문화제전위원회, 사)독립운동가 박준승선생기념사업회가 18일 전북일보사 2층 공자아카데미에서 주최한 호남 지역의 31 운동 성격과 전북 동부지역 투쟁상황 전국 학술강연회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였다. 전북일보 윤석정 사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수많은 애국지사가 조국 독립을 목을 터져라 부르짖었듯, 우리 모두 애국선열의 충절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사)사선문화제전위원회 양영두 위원장은 전북은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인 박준승 선생 등 최고의 애국지사가 배출된 지역이라며 피와 땀과 눈물을 바치신 순국선열 애국지사께 머리 숙여 추모 인사 올린다고 했다. 이날 나종우 전북문화원연합회장은 호남지역 31운동 성격과 전북 동부지역의 투쟁상황, 동국대 천지명 연구교수는 31운동 전후의 항일운동 양상, 최성미 전 임실문화원장은 임실 지역의 동학, 천도교와 31운동 을 주제로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전북일보 김원용 논설위원이 나섰다. 나종우 회장은 전북에서 항일 운동이 활발해진 이유를 식민지 시기 수탈에서 찾았다. 식량해양 자원이 풍부했던 호남은 19세기 일제 식민지 시기 경제적 침탈의 주된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목포와 군산항 개항 전후로 여러 제국주의 열강의 수탈 창구가 됐고, 호남선과 전라선, 목포-신의주 국호 1호선 등은 일제 수탈의 동맥 구실을 했다. 나 회장은 이런 현실은 전북민들에게 지속적인 저항의식을 불러일으켰다고 설명했다. 이런 저항의식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 이후에도 전북이 천도교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데 기인했다. 전주정읍익산임실남원 등지에 각각 종리원(宗理院)이 설치됐고, 동학 접주였던 임실의 박준승은 이준윤효정 등과 함께 헌정동지회를 조직해 활동했다. 이 같은 활동은 31운동 당시 조직적 저항으로 이어졌다. 나 회장은 전북 지역 독립선언서 배포 경로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서울에 상경했던 천도교도들이 독립선언서를 지역으로 가져와 31운동 전부터 시위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31운동이 시작된 이후 전북 동부 지역의 투쟁도 활발히 전개됐다. 임실순창남원장수진안무주에서는 종교계, 학생, 노동자,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다. 투쟁의 발생건수는 220여 회, 동원된 연인원도 3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일제에 기소된 인원도 1131명에 이른다. 나 회장은 전북 지역 31 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소극적인 양상을 보였다는 분석은 조선총독부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실상과 거리가 멀다며 종교계, 학생, 농민 등 다양한 구성원이 참여해 1920년대 이후 농민운동, 노동운동, 청년운동 등 항일독립운동의 계층을 다양하게 하는 토대를 형성했다고 주장했다. 최성미 전 원장은 동학농민운동이 31운동으로 조직적으로 이어진 근원으로 임실의 천도교를 주목했다. 1873년 동학 2대 교주 최시형이 벌였던 포교활동으로 동학이 사회운동화됐고, 당시 활동했던 인물들이 31운동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이다. 최 전 원장은 천도교 진보회 전주지부장을 맡았던 김영원 선생은 1919년 2월 상경해 의암 손병희 선생을 비롯한 천도교 지도자들과 숙의를 한 후, 임실교구를 거점으로 독립선언서를 전주, 남원, 순창, 진안 등지에 전달했다며 이에 따라 각 시군에서 3월 10일을 기점으로 독립만세운동이 불길처럼 피어올랐다고 설명했다. 천도교가 중심이 된 항일운동은 이후에도 계속됐다는 게 최 전 원장의 설명이다. 일제가 창씨개명을 할 때, 천도교 4세 교주 박인호 춘암상사는 수제자와 배일운동 투쟁위원회를 조직했고. 1938년부터는 멸왜운동(滅倭運動)을 벌여나갔다. 최 전 원장은 천도교인들은 815해방되던 날까지 멸왜운동을 계속했다고 밝혔다. 천지명 교수는 31운동 이후 전북지역에서 일어난 청년운동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전국 단위 활동을 하면서 사회주의 운동과 결합, 국내 항일운동의 사상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해서다. 천 교수에 따르면 전북 청년운동은 1920년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이전은 실력양성에 기반을 둔 지역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시기, 이후는 전조선청년당대회에 참여하며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기간이다. 천 교수는 1920년대 중반부터 전북 지역 청년운동은 본격적으로 사회주의 운동과의 연관 속에 성장했다며 특히 1922년 10월 조직된 서울파 공산주의 그룹이 익산 출신 임종환을 지역 책임자로 임명하면서 계기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 시기는 조선청년총동맹 단계로 전국 단위 청년조직 산하에서 조직적인 청년운동을 전개하기도 한다며 1925년부터 전주, 남원, 김제, 군산 용담 5개 청년회가 모여 도 단위의 통합전선 운동을 시작했다부연했다. 전북일보 김원용 논설위원은 토론회 자리에서 3.1운동에 대한 지역사 연구가 많이 이뤄지기는 했으나 사건의 나열에 그치는 감이 있다며 구체적인 활동 상황을 담은 더 많은 사료 발굴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31운동사 외연확장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위원은 2.8독립선언서를 낭독한 고창 출신의 백관수, 의병활동 지원과 노동농민운동 변호로 일제에 저항한 순창 출신 김병로, 전주 3.1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의정원장을 지낸 김인전 목사 등 전북 출신들이 국내외에서 펼친 활약은 대단하다며 이들의 활동은 전북 항일운동 역사의 큰 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고 있는 이들 지도자급 항일운동가와 지역사회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때 전북 항일운동사는 더욱 알차고 풍성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18 18:08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학예실장의 전통문화 바라보기] 대한민국의 자존심

임방울 명창. /사진=한국전통연희사전 우리 한민족은 조상 대대로 노래 부르기를 즐겨 해 온 민족이다. 그러므로 기쁜 일이 생기거나 슬픈 일이 닥쳤을 때도 노래를 부르며 함께 그 뜻과 의지를 다졌다.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란 프로그램은 벌써 방송 30주년을 지나 32년을 향해 가고 있으며, 그 방송에서 흘러나온 전통 구전민요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 보았고 같이 콧소리 한번 흥얼거리며 흉내 내 보았을 것이다. 이렇듯 전국 어느 지역이든 선조들이 부르던 구전민요는 풍성했고 우리 민족과 함께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환경도 많이 변했다. 문화 환경도 시대에 변화하다 보니 부르는 노래의 개념도 변해갔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는 빠른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고 익숙해져만 갔다. 음악적인 실 예로 이제 우리가 아는 가곡은 이미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가 부른 슈베르트의 보리수와 같은 서양 가곡으로 인지되고 있으며, 그리운 금강산과 같은 새로운 서양식 창작 가곡을 만들고 한국의 가곡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서양음악 형식의 가곡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태평성대를 꿈꾸며 부르던 가곡 태평가는 서양음악의 가곡 형식이 들어오면서 점점 잊혀만 갔고, 진정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가곡>은 오래된 우리 전통의 가곡이 아닌 다른 의미의 서양음악 명사로 되어 버렸다. 현시대에 파바로티를 물으면 모두가 아. 그 분 알아요!라고 대답을 하며 그의 명성과 더불어 음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판소리 명창 임방울에 대하여 논하면 그리 많지 않은 분들만이 호응하며 판소리를 이야기한다. 그것이 서양음악에 대한 전통음악의 열등의식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미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그들의 문화 말살 정책에 닫힌 전통음악의 그늘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일제강점기 수십 년간 전통을 빼앗기며 어려운 시기를 지내왔다. 이제 우리는 전통음악을 국민들에게 더욱더 깊게 되찾아 안겨드릴 시대에 도래했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세계를 향하고 있다. K-pop 스타인 방탄소년단이 idol이란 곡으로 세계를 누비며 전통예술인 오고무, 봉산탈춤 등을 접목해 사랑을 받았다. 또한, 우리의 전통예술가들도 세계를 향해 다양한 시도와 경험으로 변화, 도전하고 있다. 이제 다시금 우리 전통의 자존심을 드높이자.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은 얼마나 민족적 자존심이 강한지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드보르작보다 순수한 체코 토종인 스메타나를 훨씬 더 훌륭한 음악가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와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파바로티 같은 유명한 테너는 유럽인들의 자존심이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우리 민족의 자존심은 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명창 임방울이 있으며 그의 판소리 눈 대목 쑥대머리가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3.18 18:08

[신간] 서화 신한류를 꿈꾸다

서예문인화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권윤희 작가의 <서화 신한류를 꿈꾸다>(유니랩)이다. 저서에서는 서예가 18명의 개인전을 통해 작품과 예술세계를 들여다본다. 권윤희 작가는 작가들마다 취향과 개성은 다르다며 그들의 내면에 담긴 아름다움을 주관적인 감성으로 살펴봤다고 밝혔다. 예컨대 탄주(呑舟) 고범도의 서예 미학은 임성이발(任性而發)로 정의한다. 탄주의 서예가 성정이 드러나는 예술이며 꽃으로 본 것이다. 양석(陽石) 김승방의 문인화 작품을 두고는 바람소리여운(餘韻)과 울림의 미학이라고 정의한다. 양석이 고향인 밀양에서 느끼는 산자수명하고 시원한 바람소리를 작품 세계에 녹여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다른 작가들을 두고도 자생(自生)자화경계(自化境界)의 문인화 미학, 대나무를 통한 야생의 회복 축구, 거심오성(居心悟性)의 선미추구(禪味追求) 등 구절을 들어 그들의 삶과 작품세계들을 표현한다. 작가는 이들 예술가들을 서화 예술계의 리더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서화 예술도 꿈을 꿀 수 있다며 모든 이가 공감하고 열락을 공유한다면 곧 신한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화 분야의 신한류는 곧 한류 인문학의 씨앗이라며 희망은 곧 꿈이라고 했다. 권윤희 작가는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암 송성용(剛菴 宋成鏞, 1913~1993)의 風竹을 연구하여 철학박사(동양 미학) 학위를 받았다. 성균관대 초빙교수를 역임한 바 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철학 문화연구소 초빙연구원, 한국서예협회 평론분과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강암의 풍죽>과 <마음으로 읽어내는 名文人畵 1-미학코드로 보다>, 도록은 <파란 댓잎 소리가 들리네> 등이 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03.17 18:31

[신간] 코로나 19속 일상의 소중함

코로나 19 세상 속에서 느끼는 일상의 소중함을 담아낸 동시집이 나왔다. 코로나 19 팬데믹 이전 우리가 당연하게 누려왔던 자연환경, 사람과의 만남을 그려낸 신성호 시인의 <작은 것이 아름다울 때>(도서출판 북매니저)이다. 시인은 코로나19를 에이 나쁜놈, 너 정말 싫다, 얼굴도 몸도 꼬리도 없는 너는 괴물이니라며 동심으로 표현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을 회복하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학교 가는 날, 하늘 구름, 해넘이, 하늘, 개구리, 고추 잠자리 등 시 47편과 , 생명 연못마을 등 동화부록 3편이 그것이다. 특히 시작은 것이 아름다울 때에 나오는 꿈이 크다고 좋은 것 아니라 작은 꿈도 아름다운 것이 좋더라라는 표현은 시인의 바람을 함축적으로 담아낸다. 시인은 또 3년 간 소셜 네트워크에 매일 써왔던 시를 묶어 <느티나무 그늘처럼>과<자문자답>(솔디자인)을 펴냈다. 73편의 시를 담은 <느티나무 그늘처럼>은 작은 것들을 보듬고 쓰다듬어 주는 새벽의 묵상에서 출발한다. 묵상을 통해 얻은 깨달음은 일상의 모든 것이 소중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문자답>은 63편의 시가 실려있다. 시인은 어머니와 자연, 내일, 희망에 대해 깊이 사유하며, 이를 통한 철학적 통찰을 녹여낸다. 정읍 출신인 신성호 시인은 육군 3사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를 졸업했다. 현재 군산문인협회장, 사)한국문인협회 인성교육개발운영위원, 전북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시집은 <꽁당보리밥>, <이 좋은 날에> 등을 펴냈으며, 진도홍주사랑전국공모 동상, 월간 한비문학 작가대상, 전북예총 공로상 등을 수상했다.

  • 문학·출판
  • 김세희
  • 2021.03.17 18:31

[신간] 고하 최승범 원로시인, 시집 ‘짧은 시, 짧은 여운’

시심의 고갈 느끼고 느끼면서도/ 시조의 이모저모 되짚어 생각하는 건/ 내 시조 내가 챙기며 메워버려 함일레 (고갈 전문) 1연 3행 단시로 자신의 시심 고갈을 탄하는 시인. 1931년생으로 올해 90세인 고하 최승범 원로시인이다. 나이가 들며 생각도 느낌도 메말라졌다고 말하는 그이지만, 창작의 열정은 쉼이 없다. 최승범 원로시인이 새 시집 <짧은 시, 짧은 여운>을 들고 왔다. 시집 제목은 짧은 시, 짧은 여운이지만 그의 짧은 시에서는 긴 여운이 느껴진다. 책을 덮는 순간, 독자들은 제목에도 선비의 겸손한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시집 <짧은 시, 짧은 여운>에 실린 시들은 이른바 풍미시, 먹거리시의 전형적인 단시를 특징으로 한다. 시인은 이미 산문집 <풍미산책>, <풍미기행>, <한국의 먹거리와 풍물> 등 음식 관련 산문집을 낸 바 있다. 특히 여행길에서 맛볼 수 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고향과 주 거주지에서 가까이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모티프로 한 시들이 눈에 띈다. 긴 겨울밤 석쇠 놓고/ 화롯가에 둘러앉아// 기름소금 발라가며/ 가래떡 먹는 밤은// 부엉이 울음도/ 밤 깊어// 애련한/ 슬픔이었어 (가래떡 전문) 시인은 시 가래떡에서 시적 대상인 가래떡의 미각적 이미지를 표현하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세시풍속을 다루고 있다. 이와 같이 시인은 음식을 통해 우리 민족의 역사와 인물을 보여줌으로써 공간적 상상력의 가능성을 환기해준다. 유한근 문학평론가는 고하 최승범은 생활의 풍류에서 예술적 향취를 느끼게 하는 선비 의식으로 시를 쓰는 시조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 시집에서는 짙은 향토색을 바탕으로 한 풍물 이야기에서부터 토속적인 음식과 술에 이르기까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가장 친숙했던 모티프를 독특한 관조와 사무사(思無邪)의 미학으로 원로시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남원에서 태어난 최승범 시인은 1958년 현대문학에 시조시 설경, 소낙비로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후조의 노래>, <설청>, <호접부>, <여리시오신 당신>, <이 한 점 아쉬움을> 등을 펴냈다. 정운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 김현승문학상, 만해문예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는 전북대 명예교수, 고하문학관 관장으로 있다.

  • 문학·출판
  • 문민주
  • 2021.03.17 18:25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길상 시인 - 코맥 매카시 ‘모두 다 예쁜 말들’

언제부터인가 교양소설 또는 성장소설을 멀리했다. 다른 말들은 술술 나오는데 이상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단어가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성장소설의 중요 문구가 눈에 띌 때마다 이 나이에 무슨 내면의 성장과 아름다움을 찾지라고 익살스럽게 말하면서도 괴롭지 않은 그 뻔뻔함에 괴로웠다. 성장소설 『모두 다 예쁜 말들』에서 그래디는 사물의 본질적 가치보다 교환가치를 우선시하면서도 교양인의 삶을 강조하는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의 속물적 근성에 환멸을 느낀다.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는 수지가 안 맞는다는 이유로 목장을 팔려고 했다. 그래디는 그 세계에서 속물로 사는 것을 거부하며 방랑의 삶을 선택한다. 그런 방랑과 좌절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이 바로 이 소설의 주제이면서 코맥 매카시 대부분의 소설의 핵심적 주제다. 이 작품은 함께 멕시코로 떠나는 그래디와 롤린스의 끈끈한 우정, 블레빈스의 무모한 살인으로 인한 시련, 목장주의 딸 알레한드라와의 사랑 및 그녀의 보수적인 아버지와 도덕적으로 타락한 멕시코 경찰서장의 음모와 협박 등의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들의 행동 이면의 심리다. 경찰서장에 의해 낭패스런 곤경에 처할 때마다 그래디는 도덕적 순결과 정신력으로 그 난관을 극복하는 반면 목장주와 그의 누나는 그래디가 왜 알레한드라를 사랑하는지, 갑자기 왜 말도둑으로 몰려 감옥에 갔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래디의 진의를 의심한다. 혹시 말썽이 생기면 묵인하거나 그때그때 타협하면 해결될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삶의 진실은 황폐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때만 다가오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블레빈스의 범죄를 구실 삼아 일행의 말을 뺏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경찰서장과 그 패거리들은 권력자나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며 부를 누리는 속물적인 인간들이었다. 약자에게 몰인정한 법률의 위력을 실감한 그래디는 다시 고심한다. 이곳은 나의 땅이 아니야라고 고백하며 메마른 황무지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고향에 돌아와서도 그래디의 정신적 방황은 계속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데는 사회적 원인이 크겠지만 무엇보다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가 곳곳에 잔존해 있는 사회에서 그 극복방법은 당장 주어질 수 없고 시련과 고뇌 속에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면적으로 성장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꾸준히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흡한 점에 대해 실존적 위기감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일 것이다. 교양인의 길은 인격의 도달점이나 자기완성이 아니다. 자기모순을 회피하지 않고 참된 삶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그런 삶이 아닐까. 이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린 메말라 가는 사회에 지금 안주하고 있는 것이다. △ 이길상 시인은 2001년 전북일보와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됐으며, 시와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병행하고 있다.

  • 문학·출판
  • 기고
  • 2021.03.17 18:25

[신간] 자연동화적인 시세계… 김예성 시집 <연인>

김예성 시인이 시집 <연인>을 펴냈다. <연인>은 진안에서 신문유통업을 하는 김 작가가 사람과 자연 속에서 사색을 즐기며 틈틈이 써 온 시를 묶어낸 것이다. 모두 5부 100편의 작품이 실려 있고 각 부마다 20편씩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이 된 연인이란 제목의 시는 제2부에 배치돼 있다. 도로 한복판에서/ 50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반가워 반가워 쓰러질까 봐/ 잡은 손을 놓지 못한다/ 마침 신호등은 허리가 아파 치료 중인데/ 차들은 잠시 갈 길을 멈추고(후략)(시 연인 중에서). 김 작가는 사람은 저마다 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간다. 남자와 남자, 친구와 친구, 이웃과 이웃을 만나게 된다. 지금 나의 삶을 밝혀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인연으로 맺어져 있다. 인연을 바꿔보았더니 연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지난 2001년 문예사조로 등단한 김 작가는 자연동화적인 시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이 시집에서 살고 있는 터전을 중심으로 발길 닿는 곳, 마음 머무는 곳에 자신을 동질화시켜 하소연함으로써 삶의 애환을 치유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안현심 시인(문학평론가)는 김예성은 자기 연민이 강하다. 그것은 자신을 무척 사랑한다는 또 다른 말이며 긍정적 의미를 내포한다. 치열하게 삶을 견인해 온 것으로 보아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학대하고 비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끝없이 나은 삶, 높은 경지의 정신세계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인>은 김 작가의 <침묵의 방을 꾸미다>, <비켜 앉은 강>, <새벽 밟기>, <내 영혼의 빛깔은>에 이은 다섯 번째 작품집이다. 진안출신인 김 작가는 한국문인협회, 전북문인협회의 회원이자 국제펜한국본부 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원이며 진안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

  • 문학·출판
  • 국승호
  • 2021.03.17 17:30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세계유산 등재두고 갑론을박

남원 유곡리두락리 가야 고분군 세계유산등재 신청서가 지난 7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프랑스 파리)의 완성도 검사를 통과한 가운데, 등재 타당성을 두고 지역 역사학자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신청에서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군은 제외하여 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사단법인 문화살림 대표라고 밝힌 글쓴이는 이 게시판에 유곡리 두락리 고분군을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과 같이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전북 동부지역에서 가야계 유적이 발견된다고 이들 지역을 가야 강역으로 지칭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가야(고령)의 서부 영남지역에서 4~5세기경의 백제 유물이 다수 출토된다고 해서 백제의 강역이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4~5세기 경 백제와 가야의 문화 교류가 활발했던 증표로 봐야 한다며 오늘날 영호남 경계지역은 고고학역사학적으로 호남 동부지방의 백제와 영남 서부지역의 가야와 인적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는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또 고분의 축조방식과 출토 유물도 백제와 가야의 특징을 동시에 갖고 있어 가야 고분군으로 단정하긴 어렵다며 문화재청도 지난 2018년 고분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할 때 5~6세기 전북 동부 지역의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글쓴이는 고대사가 왜곡되거나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며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재신청은 전국 학계와 국민들의 의견을 청취한 후에 논의하도록 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른바 호남 가야설에 대한 충분한 연구검토와 고대 국가의 영토강역에 대한 역사적 정립이 세워진 후 고분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글은 지난달 5일에 청원이 시작돼 지난 7일 청원이 마감된 글이지만, 이를 두고 전북 지역학계에서 논의는 분분하다. 군산대학교 곽장근 역사철학부 교수는 16일 모든 사람의 생각이 다 같을 수 없다며 문제가 제기되는 부분을 두고 일본중국 학자 등 다양한 전문가들과 검증을 거친 뒤 등재신청서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세계유산센터에서도 인정한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전북도 노기환 학예연구사는 문화재청에서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을 두고 학자들과 충분히 논의를 했고 절차상 문제점이 없다고 밝혔다고 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 A씨는 청원게시판에 나온 의견이 타당한 부분도 있다며전북 가야사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한 고증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전북 동부지역 백제사에 대한 연구가 완전히 선행된 뒤, 가야사를 조명해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역사학 교수 B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가야사 복원사업을 발표한 뒤, 등재를 서두르는 통에 역사적 규명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역사학 교수 C씨는 전북 동부권에 발굴된 유적이 가야의 것임은 확실하다며 특히 남원 두락리 고분군은 명백한 가야의 무덤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북 동부 가야세력이 독자세력인지 대가야가 외연을 확장한 세력인지 확실히 규명하고, 봉수의 제철유적의 실체도 좀 더 면밀히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청원 글에 대해서는 지난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할 때 전북을 배제하려는 움직임과 현 고대사학계의 입장이 반영된 글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 문화재·학술
  • 김세희
  • 2021.03.16 18:29

[최완규 교수의 '마한이야기'] 마한의 본향 만경강유역

전북의 서북부에 자리 잡고 있는 만경강유역은 마한의 본향이라 일컬을 만큼 마한의 성립과 성장에 관련된 유적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이다. 북쪽으로는 익산 미륵산, 남쪽으로는 김제 모악산을 경계로 하고, 동쪽으로는 노령산맥이 막아주고 있어서 분지와 같은 지형이지만, 서쪽으로는 지평선이 보일만큼 널따란 평야가 펼쳐져 있다. 평야로 형성된 분지와 같은 지형의 중앙으로 만경강이 흐르면서 풍부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기에 농경을 영위하기에 더할 나위없는 천혜의 지역이다. 만경강의 북쪽 익산지역은 일찍이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를 근거로 마한의 고도로 인식되어 오면서도 금강유역의 백제문화권역에 포함되어 논의가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고고학적 자료가 증가함에 따라 익산지역의 대부분 유적들은 금강이 아니라 만경강 수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금강유역과는 다른 문화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만경강문화권역을 설정할 수 있게 되었다. 만경강 남쪽의 전주완주김제 지역에서 마한관련 유적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다. 특히 전주 혁신도시 건설과정에서 완주 갈동유적이 발견된 이후 마한 성립을 뒷받침하는 토광묘 유적들이 130여기 이상 봇물 터지듯 잇달아 확인되었다. 완주 갈동유적은 2003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전주 혁신도시를 관통하는 서부우회도로 개설과정에서 17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다. 이후 갈동과 인접한 덕동유적에서는 5기의 토광묘에서 조문경과 세문경, 동과 등이 출토되었고, 원장동유적에서는 5기의 토광묘 가운데 1호분에서 세형동검 5점과 세문경 2점, 그리고 동부와 검파두식 등이 확인되어 이 지역 단일 유구 가운데 가장 많은 청동유물이 출토되어 주목되고 있다. 2011년 국내 최대 규모의 밀집도를 보이는 신풍유적에서는 81기의 토광묘가 확인되었고 각각의 분묘에서 점토대토기, 흑도장경호, 세형동검, 동경, 철기류가 발견되었다. 이외에도 혁신도시의 유적들보다 위계가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 소규모의 토광묘들이 중인동에서 9기, 중화산동에서 15기가 확인되었다. 한편 군집을 이루고 축조된 토광묘 유적과 동일한 공간 내에서 발견되고 있는 구상유구에서는 원형점토대토기와 제의와 관련되는 두형토기가 파쇄되어 공반되고 있다. 두형토기가 토광묘에서는 부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장송의례와 다른 형태의 제의 의례가 구상유구를 중심으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후대의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마한사회의 제의의례를 유추할 수 있다. 구상유구에서 보이는 제의 행위는 변화 발전되어 왔을 것인데 하늘에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과 같은 존재는 농경사회에서 파종기와 수확기에 귀신에 제사를 주관하는 자와는 격이 매우 달랐을 것으로 보인다. 곧 천군은 당시 사회통합의 리더로서 마한 사회의 정치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만경강유역에서 확인되고 있는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된 토광묘라는 묘제와 제의관련 유구를 통해 볼 때, 이 지역은 B.C 3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마한의 성립지로서 가히 마한의 본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3.16 18:29

전북 공석 문화기관장 자리 무형유산원 ‘곧’, 익산 ‘미정’

지난 1월 공석이 된 국립무형원장 자리가 곧 채워질 예정이다. 반면 같은 기간 자리가 빈 국립 익산박물관장 자리는 여전히 미정이다. 문화재청은 무형유산원장 선임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고 15일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청내 보통심사위원회는 최근 후보군 9명(3급 이상 고위공무원) 가운데 일부 후보를 뽑았다. 이후 후보 명단을 인사혁신처 고위공무원 임용심사위원회에 넘겼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마지막 단계인 인사혁신처 심사절차만 남았다며 3월 29일이 있는 주에 선임된 관장이 최종 발령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익산박물관장 인선시점은 여전히 미정이다. 특정 후보군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다. 올 2분기나 3분기 안에 선임될 수 있다는 게 상위 기관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의견이다. 국립중앙박물관장 관계자는 익산박물관장 인선은 중앙박물관 내부 인사이동과 같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문에 아직 인사안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장 공백이 장기화 될 경우 야기될 수 있는 문제를 두고는 당연히 관장 공석이 지연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다행히 연고지 업무 경력이 긴 최흥선 학예실장이 관장 직무대행을 맡아 현재까지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 문화일반
  • 김세희
  • 2021.03.15 18:15

시각예술가 정윤선 개인전… “익산 장점마을 비극, 예술로 치유하고파”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은 구석구석 의미가 배어 있는 특별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풍경을 잃을 처지에 놓여있고 심지어 그들의 생존은 죽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전시는 인간 존재의 의미, 실존적 장소 그리고 공동체 연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환경오염으로 집단 암이 발병한 익산 장점마을의 아픔을 예술로 치유하려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느 때보다 환경과 인권에 대한 가치가 높아진 요즘, 공동체 연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고민이 엿보인다. 정윤선 시각예술가의 개인전 무주의 맹시_슬픔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는 환경 재난으로 죽음과 맞닿은 채 살아가는 익산 장점마을과 인천 사월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는 눈은 특정 위치를 향하고 있지만, 주의가 다른 곳에 있어서 눈이 향하는 위치의 대상이 지각되지 못하는 형상이나 상태를 뜻하는 일종의 실험 심리학적 용어다. 전시명이 보여주듯 전시는 주의(관심)에서 멀어져 버린 무주의 속에서 고통받아 온 두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 작가는 지난 2019년 11월 우연히 뉴스를 통해 접한 두 지역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고, 전시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익산 장점마을은 지난 2001년 마을에 들어선 비료공장의 불법행위로 온 마을이 1급 발암물질로 오염돼 집단 암이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민 17명이 암으로 사망하고 22명이 암 투병 중입니다(2020년 11월 기준). 평화롭던 작은 마을은 이제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곳이 됐습니다. 주민들의 빼앗긴 목숨과 일상은 여전히 남의 동네 이야기인 채로 남아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역 리서치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작가의 퍼포먼스, 영상, 입체, 설치, 아카이브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총망라한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익산 장점마을 비료공장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영상 무명이다. 텅 빈 공장, 부식된 콘크리트 기둥 사이를 누비는 배우의 강렬한 몸짓은 이름 없이 떠도는 영혼이 생사의 번뇌 속에서 방황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그간 마을 주민들이 겪었을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치유 행위이자 졸지에 생명을 잃은 사람들과 남겨진 그들 가족에게 보내는 애도와 해원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장점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 생과 사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주민들로부터 수집한 사진과 그들의 추억이 담긴 오브제를 재촬영해 영정 사진 크기의 렌티큘러 이미지로 작업했다. 주민들은 가족과 이웃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본인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아직 제대로 수습되지 않은 집단 암 발생 피해에 죽은 자도 살아남은 자도 서로 떠나보내지 못하는 상황, 주민 모두 생과 사의 모호한 경계에 속박된 채 중첩돼 서 있는 모습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정윤선 작가는 부산 출신으로 영국 골드스미스대학 순수예술 대학원을 마치고 국내외 다수의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경험했다. 전시는 코로나19 상황 등을 고려해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전시 홈페이지(http://www.jungyunsun.com/)에서 3월 15일부터 4월 30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3.15 17:56

[이승우의 미술 이야기] 우리가 알아야 할 색채 ⑦

괴테 샘물이 떨어지는 소리/ 아름다운 무늬의 날아가는 잠자리/ 나는 이미 긴 시간 지켜보고 있었다/ 짙어지기도 하고 옅은 색이 되기도 하고/ 카멜레온처럼/ 또는 빨갛게 또는 파랗게/ 또는 파랗게 또는 초록으로/ 아! 가까이 다가가 저 색을 보고 싶구나/ 휘익 날아서 떠오르고 조금도 쉬지 않아/ 그러나 조용히 잠자리가 버드나무에 앉는다/ 자, 잡았다 잡았다/ 그런데 응달에서 잘 보면 음기의 어두운 파랑의 한색/ 온갖 기쁨을 분석하는 너도 같은 생각을 맛보겠지.는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명성을 얻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의 <기쁨>이란 시다. 번역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시는 매끄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시에서 보면 잠자리의 몸이 변하여 환상적인 여러 가지의 색으로 보이는 것을 관찰하는 것이 보인다. 나중에 괴테는 이러한 자연 관찰과 당시 예술의 선진국이었던 이탈리아에 머물면서 미술품의 색채 조형에도 몰두하였다. 이를 토대로 20년에 걸쳐 「색채론」을 3부작으로 펴냈다. 1부는 색의 정의 및 관찰한 내용에 기인한 색채론을, 2부에서는 토론을 3부에서는 색의 역사를 다루었다. 괴테의 색채 관이 기술되어있는 것은 1부이다. 1부는 다시 6편으로 나뉘며 생리적 색채, 물리적 색채 등으로 시작하여 색채의 감각과 정신적 작용으로 끝난다. 1부 1편 1장 생리적 색채에서 그는 눈에 대한 빛과 어두움의 관계나 2장 눈에 대한 검정과 흰색의 상(像)의 관계를 말했는데 색채는 빛과 어둠 사이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거슬러 올라가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말한 색은 빛과 어둠의 혼합에서 만들어진다와 같은 맥락이다. 3편은 색채 심리를 다루었는데 색채를 객관적인 각도거나 물리학적으로 다루지 않고 우리에게 색채가 보이는 방법에 대하여 통찰하고 있어 지금으로 말하면 지각심리학이나 색채심리학의 영역이 된다. 그리고 괴테는 스스로 색상환을 만들고 노랑과 파랑을 주축으로 하는 색채론을 전개하였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1.03.15 17:56

전북도립미술관 ‘전북청년 2021’·‘신자연주의’ 전

전북도립미술관이 오는 7월 25일까지 전북청년 2021, 신자연주의 전을 개최한다. 2~4전시실에서 열리는 전북청년 2021 전 초대미술가는 강유진(회화), 문채원(회화), 쑨지(회화, 설치)이다. 전북대 미술학과(서양화)를 졸업한 강유진(29) 작가는 자본주의사회의 어두운 측면, 즉 풍요 이면의 빈곤이나 소외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에 착목한 작품을 제작해왔다. 문채원(29) 작가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확대된 미래의 절망적인 현상들을 작품에 반영해 선보인다. 작가는 국민대 학사 졸업 후, 미국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쑨지(38) 작가는 보이는 것과 보는 것의 현상학적 절합을 질문하는 회화설치 작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에는 대지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같은 기간 5전시실에서 열리는 신자연주의 전은 지난 1993년 한국에서 시작된 자생적 미학인 신자연주의 예술운동을 소개한다. 가나인, 강용면, 권순철, 서용선, 정복수 작가를 초대했다. 특히 권순철(77) 작가가 1990년대 프랑스에서 그린 미공개 작품 홀로코스트를 최초로 만나볼 수 있다. 한국전쟁을 비롯한 한국사의 아픔을 대면한 작가가 프랑스에 가서 제2차 세계대전이 낳은 또 다른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서용선(70) 작가의 대표적 시리즈인 단종 역사화 작품도 마주할 수 있다. 세조와 상원사, 동대문 송씨부인은 물론 작가가 처음으로 역사화에 자화상을 그려 넣은 새로운 작품 로돈도비치, 청령포 그리기도 전시된다. 군산대 미술학과와 홍익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한 강용면(64) 작가의 만인보-현기증 또한 대규모 작품이다.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얼굴을 한 자리에 담아 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 1990년대 사비나미술관에 전시되며 미술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정복수(64) 작가의 몸의 초상, 존재학, 기쁨의 원형 시리즈를 비롯한 대형 패널 작업도 출품됐다. 신자연주의를 선언한 가나인(64) 작가는 대형 회화 신작인 버려진 땅과 삶 그리고 작가의 자전적 삶을 담은 이것은 산이 아니다를 선보인다.

  • 전시·공연
  • 문민주
  • 2021.03.15 17:56

[전라감사 100인 열전] 전라도와 인연이 깊은 유관

유관은 조선건국후 17번째 전라감사로 태종 5년(1405) 7월에 부임하여 이듬해 2월에 이임하였다. 전라감사를 거쳐 벼슬이 우의정에 이르렀으며 세종대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전라도와 인연이 깊은데, 부안 우반동에서 실학을 개창한 반계 유형원이 그의 후예이다. 반계가 우반동으로 낙향한 것은 유관의 사패지가 있었던 것에 인연한다. 전남 영암의 모산유씨 영의정 유상운, 좌의정 유봉휘 부자도 유관의 후예로, 유관이 전라감사를 지내면서 인연을 맺어 그의 장자가 모산에 뿌리를 내렸다. 유관(柳寬, 1346~1433)의 본관은 문화, 초명은 관(觀), 자는 몽사(夢思)ㆍ경부(敬夫), 호는 하정(夏亭)이다. 고려 명종 때 정당문학을 지낸 유공권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삼사판관 유안택이다. 이름자를 觀으로 쓰다가 세종 8년(1426) 그 아들 유계문이 충청감사로 임용되자 관찰사의 관자가 유관의 이름 관자와 같다고 하여 寬으로 고치었다. 1371년(고려 공민왕 2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조선건국후 개국원종공신에 책봉되었다. 대사성,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고 태종 원년 사헌부 대사헌에 임용되어, 승려 수를 줄이고 5교 양종을 폐할 것을 상소하는 등 불교를 적극 배척하였다. 태종 2년 계림부윤으로 나갔다가 무고를 당해 그의 본향 황해도 문화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태종 5년(1405) 전라도관찰사에 임용되었으며, 태종 6년 예문관 대제학, 태종 7년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태종 9년 예문관 대제학으로 지춘추관사를 겸해 『태조실록』 편찬을 주관하였다. 세종 6년 우의정에 올랐으며, 『고려사』를 개수하여 올렸다. 세종 8년 1426년, 81세에 우의정으로 치사하여 88세에 졸하였다. 유관은 태종 5년(1405) 7월 8일에 전라도관찰사에 제수되어 7월 26일에 전라도 임지로 부임하였다. 후임 전라감사 박은이 이듬해 2월 29일에 부임한 것으로 보아 이때에 유관은 이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7개월 정도 전라감사로 재임하였으며, 지방장관으로서 당시 선정을 베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 내린 제문에 남쪽 지방에 순무하니 사람들은 (유관을) 자르지 말라는 노래를 불렀도다라고 하였다. 당시 전라도 사람들의 사정이 배우 곤궁하였다. 감사 부임 직전 메뚜기떼가 기승을 부렸고, 태풍이 몰아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대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라, 경상, 충청도의 전답 측량이 이루어져 민폐가 컸다. 유관은 성품이 청렴하고 청빈하여 세종 때 청백리로 녹선되었다.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유정승은 청렴하고 검소하여 두어 칸의 초가에서 지내면서도 태평이었다 몸가짐을 필부와 같이하고 사람이 찾아오면 겨울에도 맨발로 짚신을 끌고 나가 보며, 때로는 호미를 가지고 채마밭을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았다고 하였다. 우산으로 지붕에 새는 비를 가렸다는 유명한 일화는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실려 있다. 한달이 넘도록 장마가 졌는데, 삼대처럼 집에 비가 줄줄 새었다. 유관이 우산을 잡고 비를 가리며 부인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우산이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 하니, 부인이 대꾸하기를, 우산 없는 집에는 반드시 미리 방비가 있을 것입니다하니 껄껄 웃었다. 서울 낙산 자락에 이수광이 『지봉유설』을 지은 초가삼간 비우당(庇雨堂)을 복원해 놓았다. 이 자리는 유관이 우산으로 비를 가리며 살았다는 집터이다. 유관은 이수광의 외가 5대조가 된다. 비우당은 겨우 비나 가리는 집이라는 의미이다. 성호 이익은 유관의 청렴을 정승의 손에 작은 우산 하나 들렸으니/ 지붕이 새는 비를 막기에 부족해서라 라고 노래하였다. 반계 유형원은 유관의 후예로 부안 우반동으로 낙향하여 실학의 문을 열었다. 그가 우반동에 자리한 것은 유관의 사패지로 전해지는 그 선조들의 땅이 우반동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관에게 맹문ㆍ중문ㆍ계문 세 아들이 있었으며, 맹문과 계문 두 아들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반계는 유계문의 후예이다. 반계의 8대조가 되는 유계문은 문과를 거쳐 충청감사와 형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반계의 아버지 유흠이 당쟁에 희생되어 이른 나이에 죽자 할아버지 유성민이 부안 우반동으로 내려가 잡목이 무성한 골짜기를 개간해 전답을 일구고 살았다. 우반동 하면 부안김씨를 떠올리지만 그 이전이 이미 유성민이 우반동에 들어가 살았다. 유성민은 부안김씨 김홍원에게 토지 30결을 매매하였는데 그 매매문기에 이 땅을 유관이 개국공신으로 태조로부터 받은 사패지라고 하였다. 반계는 이런 인연으로 우반동으로 내려가 그의 실학사상을 20여년에 걸쳐 집대성하여 반계수록을 편찬하였다. 유상운은 숙종 때 영의정을 지냈고, 유상운의 아들 유봉휘는 경종대 신임사화 때 소론 4대신의 하나로 좌의정을 지냈다. 유봉휘는 숙종 23년 문과에 급제하고도 글이 격식에 맞지 않았는데 유상운의 아들이어서 급제했다고 하여 합격이 취소되었다가 숙종 25년 다시 문과에 응시해 급제하였다. 모산유씨(茅山柳氏)는 유관의 장남 유맹문의 후예들이다. 유맹문은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을 지냈다. 그 유맹문의 후예들이 전라도 나주 모산리(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대대로 세거하여 모산유씨(茅山柳氏)로 불렸다. 모산마을은 유상운과 유봉휘가 부자간에 정승을 지내 부자(父子) 정승마을이라고 한다. 모산유씨들이 이 자리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유관이 전라감사로 있으면서 이곳 경치에 반하여 아들 유맹문에게 정자를 짓게 한 것에 유래하였다. 유관의 명으로 지었다는 영팔정(詠八亭, 전라남도기념물 105호)이 마을에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유관 신도비와 유상운 신도비가 있다. 영팔정을 중건한 인물이 영의정을 지낸 유상운이다. /이동희(예원예술대학교 교수, 전 전주역사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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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1.03.15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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